강만원 <개혁포럼 시사토론방>
“성경에 목사는 없다”라는 당연한 주장에 대해서 나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반발이 거세다. 겉으로 드러내고 비난하지 않아서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내 글에 비분강개하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물론, ‘소명’을 내세우는 목사의 입장에서 “성경에 목사는 없다”라는 말이 고이 들리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주장을 번복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인즉, 분명히 성경에 목사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된 '장로'가 오늘날 목사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어설픈 주장이야말로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사설(私說)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장로가 지역 교회의 우두머리였다는 점과 연관지어 ‘개교회 주의’에 기반을 두고있는 개신교의 목사를 장로와 일치시키는 것 같은데, 한 마디로 터무니 없는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만약에 개신교의 목사가 장로와 일치하는 직분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장로의 명칭을 써야 성경적인 직분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목사를 종종 ‘가르치는 장로’라고 표현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목사라는 신조어를 애써 만들 필요가 없이 장로의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라는 성경적인 명칭을 두고 굳이 목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목사는 장로와 격이 다르다는 의미를 은연중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목사는 장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장로라는 명칭이 성경적인 직분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개신교의 목사가 장로와 같은 성경적인 직분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가 이미 자가당착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목사라는 명칭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목사는 장로와 동일한 지위에 있지도 않고 처음부터 동일한 성격도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elder)는 신구약을 통틀어 신앙공동체의 어른을 의미한다. 신앙의 깊이나 연륜에서 어른일 뿐 아니라, elder라는 호칭이 시사하듯이 - 일부 예외가 없지 않지만 - 나이부터가 이미 공동체의 어른이다.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초대교회에서는 집사를 선택할 때에도 공동체의 의견에 따라서 선출된다. 반면에, 목사는 신앙의 연륜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신학교를 마치고 형식적인 시험을 치른 뒤 안수를 받으면 대번에 목사가 되지 않는가? 도대체 성경적인 직분, 다시말해 초대교회의 직분과 개신교의 목사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기에 목사가 장로에 상응하는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주장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목사라는 '새로운' 호칭 자체가 한국의 개신교에만 존재하고, 더욱이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편찬한 ‘공동번역’에도 목사라는 호칭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가톨릭에서 목사라는 비성경적인 호칭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목사라는 이름을 주장할 만한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다 분명하게 결론을 내린다.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이나, 그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하는 주장이나 사실상 둘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성경의 기록연대를 고려할 때 성경적인 직분은 초대교회에나 있을 수 있는 직분이다. 성경은 1세기에 기록되었는데,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부터 시작되는 개신교의 목사라는 직분이 시대를 거슬러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내가 “성경에 목사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나름대로 종교적인 필요와 명분에 따라서 만들어진 목사의 직분을 무턱대고 부정하거나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사라는 직분이 마치 '태초부터 예정된 거룩한 성직'인 양 함부로 거들먹거리지 말라는 고언일 뿐이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한국 교회가 이토록 타락하고 왜곡된 가장 치명적인 원인에 대해서 나는 주저없이 대다수 목사들의 교만과 허튼 권위의식, 나아가 몰지각한 선민의식에 있다고 본다.
이런 글을 쓰면서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비난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목사들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차없이 이런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나의 충정을 이해하기 바란다... 목사가 마치 교회의 제왕인 양, 지금처럼 기세등등하게 날뛰면 그리스도의 성령이 떠나고 교회가 죽기 때문이다.
목사들이여! 제발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진정한 영적 권위를 소유하라! 목사가 낮을대로 낮아져서 모름지기 죽기까지 낮아져야 비로소 교회가 살고 예수가 산다. 주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으신 것이 아닌가!
“너희들 가운데 높아지려하는 자는 낮은 자가 되라”는 주의 말씀을 명심하라.
물론, ‘소명’을 내세우는 목사의 입장에서 “성경에 목사는 없다”라는 말이 고이 들리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주장을 번복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인즉, 분명히 성경에 목사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된 '장로'가 오늘날 목사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어설픈 주장이야말로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사설(私說)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장로가 지역 교회의 우두머리였다는 점과 연관지어 ‘개교회 주의’에 기반을 두고있는 개신교의 목사를 장로와 일치시키는 것 같은데, 한 마디로 터무니 없는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만약에 개신교의 목사가 장로와 일치하는 직분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장로의 명칭을 써야 성경적인 직분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목사를 종종 ‘가르치는 장로’라고 표현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목사라는 신조어를 애써 만들 필요가 없이 장로의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라는 성경적인 명칭을 두고 굳이 목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목사는 장로와 격이 다르다는 의미를 은연중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목사는 장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장로라는 명칭이 성경적인 직분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개신교의 목사가 장로와 같은 성경적인 직분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가 이미 자가당착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목사라는 명칭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목사는 장로와 동일한 지위에 있지도 않고 처음부터 동일한 성격도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elder)는 신구약을 통틀어 신앙공동체의 어른을 의미한다. 신앙의 깊이나 연륜에서 어른일 뿐 아니라, elder라는 호칭이 시사하듯이 - 일부 예외가 없지 않지만 - 나이부터가 이미 공동체의 어른이다.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초대교회에서는 집사를 선택할 때에도 공동체의 의견에 따라서 선출된다. 반면에, 목사는 신앙의 연륜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신학교를 마치고 형식적인 시험을 치른 뒤 안수를 받으면 대번에 목사가 되지 않는가? 도대체 성경적인 직분, 다시말해 초대교회의 직분과 개신교의 목사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기에 목사가 장로에 상응하는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주장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목사라는 '새로운' 호칭 자체가 한국의 개신교에만 존재하고, 더욱이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편찬한 ‘공동번역’에도 목사라는 호칭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가톨릭에서 목사라는 비성경적인 호칭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목사라는 이름을 주장할 만한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다 분명하게 결론을 내린다.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이나, 그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하는 주장이나 사실상 둘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성경의 기록연대를 고려할 때 성경적인 직분은 초대교회에나 있을 수 있는 직분이다. 성경은 1세기에 기록되었는데,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부터 시작되는 개신교의 목사라는 직분이 시대를 거슬러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내가 “성경에 목사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나름대로 종교적인 필요와 명분에 따라서 만들어진 목사의 직분을 무턱대고 부정하거나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사라는 직분이 마치 '태초부터 예정된 거룩한 성직'인 양 함부로 거들먹거리지 말라는 고언일 뿐이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한국 교회가 이토록 타락하고 왜곡된 가장 치명적인 원인에 대해서 나는 주저없이 대다수 목사들의 교만과 허튼 권위의식, 나아가 몰지각한 선민의식에 있다고 본다.
이런 글을 쓰면서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비난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목사들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차없이 이런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나의 충정을 이해하기 바란다... 목사가 마치 교회의 제왕인 양, 지금처럼 기세등등하게 날뛰면 그리스도의 성령이 떠나고 교회가 죽기 때문이다.
목사들이여! 제발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진정한 영적 권위를 소유하라! 목사가 낮을대로 낮아져서 모름지기 죽기까지 낮아져야 비로소 교회가 살고 예수가 산다. 주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으신 것이 아닌가!
“너희들 가운데 높아지려하는 자는 낮은 자가 되라”는 주의 말씀을 명심하라.
펌출처: https://is.gd/R3gyQ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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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에 대한 추가 답변] 14-12-03 01:29
목자 + 교사 = 목사? 그런 논리라면 영어성경이나 기타 외국어 성경에서도 pastors + teachers에 해당하는 새로운 단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성경에도 pastor(목자) 외에, 한글의 목사에 해당하는 새로운 신조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글 성경에서도 개신교에서만 목사라고 번역했을 뿐, 공동번역에서도 목자라고 번역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 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명칭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목사의 직분과 자세에 관한 지적입니다. 가르치고, 다스리고...그러다 보면, 말씀의 영성은 뒤로 가고 지금의 한국(한인) 교회처럼 어쭙잖은 교만만 남습니다.
간단히 끝날 논쟁이 아니군요. 이래서 가능하면 저는 다른 사람의 글에 반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글에 드러난 내용 외에 독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필자 의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간략하게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1) 목사는 성경에 명시된 '감독'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성경에 pasrors, 즉 복수로 기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반면에, 감독은 언제나 단수입니다. 이유인즉, 감독은 복수의 장로체제가 아니라 단일 감독체제로서, 장로의 직분인 pastor(목자)보다는 차라리 가톨릭의 priest(사제)에 부응합니다.
그런데, 종교혁명 이후의 개신교는 가톨릭의 사제 성직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복수인 pastors를 채택했다가 단수 passtor로 슬그머니 넘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종교개혁이 절반의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사제 성직주의에서 목사 성직주의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며..결국, 목사 성직주의가 오늘날 개신교의 치명적인 타락을 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목사를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감독이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감독은 예수 시대에 존재했던 직분이 아니라 나중에 종교적인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자리이며, 감독이라는 단일 체제가 과연 '주의 뜻'에 합당한지 섣불리 단정할 수 없습니다.
3) 정직하고 겸손한 목사들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당연합니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했지만, 저는 목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목사들이 교회를 장악한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며, 그들이 목사라는 지위를 제멋대로 남용하기 때문에 목사의 직분이 아닌, 목사의 지위와 허튼 권위의식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좋은 목사들'이 제대로 목회하기 위해서도 '악한 목사들'은 가차없이 도태시켜야 합니다.
다시 반론이 있겠지만, 끝없는 논쟁은 의미 없는 소모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각자 주관적 판단이 있을테고, 개인적인 의견을 존중한다는 관점에서 이 정도에서 마칩니다.
1) 목사는 성경에 명시된 '감독'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성경에 pasrors, 즉 복수로 기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반면에, 감독은 언제나 단수입니다. 이유인즉, 감독은 복수의 장로체제가 아니라 단일 감독체제로서, 장로의 직분인 pastor(목자)보다는 차라리 가톨릭의 priest(사제)에 부응합니다.
그런데, 종교혁명 이후의 개신교는 가톨릭의 사제 성직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복수인 pastors를 채택했다가 단수 passtor로 슬그머니 넘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종교개혁이 절반의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사제 성직주의에서 목사 성직주의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며..결국, 목사 성직주의가 오늘날 개신교의 치명적인 타락을 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목사를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감독이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감독은 예수 시대에 존재했던 직분이 아니라 나중에 종교적인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자리이며, 감독이라는 단일 체제가 과연 '주의 뜻'에 합당한지 섣불리 단정할 수 없습니다.
3) 정직하고 겸손한 목사들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당연합니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했지만, 저는 목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목사들이 교회를 장악한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며, 그들이 목사라는 지위를 제멋대로 남용하기 때문에 목사의 직분이 아닌, 목사의 지위와 허튼 권위의식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좋은 목사들'이 제대로 목회하기 위해서도 '악한 목사들'은 가차없이 도태시켜야 합니다.
다시 반론이 있겠지만, 끝없는 논쟁은 의미 없는 소모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각자 주관적 판단이 있을테고, 개인적인 의견을 존중한다는 관점에서 이 정도에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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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성경에 있는 가에 대해]
펌출처: https://is.gd/BqEk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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