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374개 교단 교파 교리를 버리고 성령의 감동의 성경만!
* 원출처: Jiryak Evangelist / 하나님나라연합네트워크
* 원제목: 성경적 목사론 - 목사 제도는 성경적인가?
* 부제목: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목사나 교인 입맛에 맞추어 설교하지 말라!
* 수신자1: 고액 설교 사례비를 받는 자칭 사도. 선지자. 제사장. 주의 종을 자처하는 목사들!
* 수신자2: 목사 설교로 세뇌당하여 무식하고 꽉 막힌 장로. 집사. 성도의 반열에 있는 지체들!
♧ 16분 메시지 url, https://youtu.be/QXAyYmx3txs
☞ 원출처 url(공감, 댓글쓰기): https://zrr.kr/czV3
[설교자 View]
저는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문예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출판사에서 기획 편집자로 일하다가 글을 쓰고 싶어 작가로 전업했으며, 약 15년 간 아동 도서에서 성인 도서에 이르기까지 50 권이 넘는 책을 써오고 있습니다. 2010년 기독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천사와 할아버지'가 당선되면서, 기독교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사도 바울과 같은 극적 회심으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선교 단체 등에서 오랫동안 성경 공부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 약 10년 간 원어 성경연구, 타종교 연구, 진리 공부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려운 성경을 현실적으로 이해가 쉬운 생활 언어로 번역하는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교회 개혁의 사명을 받아 하나님나라 운동연합을 설립하고 교회 개혁및 사회 개혁을 위한 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기독교 관련 저서에 '성서 이야기, 아! 애양원, 산돌 손양원, 구두 닦는 성자, 백인. 백번의 인내, 기적도, 그림소리, 이해가 쉬운 마태복음 읽기, 교회의 변질과 본질, 이해가 쉬운 마가복음 읽기, 이해가 쉬운 요한복음 읽기' 등이 있습니다. ☞ 문의사항 이멜: lkyee000@naver.com ☞ 신앙경력: 1997년에 회심, 직장인 선교 단체 BBB에서 7년간 활동했고, 현재 세계 직장선교센터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기장 중앙총회 소속의 '은혜와 사랑의 교회'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의 메시지 제목은 "목사 제도는 성경적인가?(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목사나 교인 입맛에 맞추어 설교하지 말라!)"입니다. 오늘은 교회개혁과 기독교인의 본질 회복에 힘쓰고 계시는 지략 전도자 네이버 블로그 신앙칼럼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소개해 드리므로서, 한국교회 안에 팽배해 있는 부패로 인하여 악취가 나는 가증한 전통을 그리스도인들이 버릴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성경적 목사론, 목사 제도는 성경적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목사 제도가 가져온 부정적인 부분을 더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예배문제, 또는 설교문제, 성수주일 문제, 목사와 평신도 등 지금까지 전통 관례에 따라 시행해 온 목회에 관련된 비성서적인 문제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려고 합니다. 검토하려는 것은 교회개혁의 대안을 찾기 위한 절차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목사와 예배"입니다. 목사 존재의 필요성을 말한다면, 첫째가 예배 문제와 관련을 갖게 되겠지요. 교회에서의 예배는 반드시 목사를 필요로 하게 되어 있고, 모든 예배는 목사의 역할을 통해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예배의 구성 또는 순서는 어떻게 전래 되었습니까? 이런 문제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 중심이 된 예배 행위로 인하여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본래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성도들의 기본적 신분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예배로는 본래 의미의 교회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몸으로서의 교회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배 형식은 교회당이라는 틀과 구조에 맞춰서 만들어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예배 문제는 어설프게 다뤄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많은 의문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따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다만, 명심해 둘 것은 예배 중심에 목사가 있게 되면 중간자의 역할 즉, 제사장과 같은 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교회 구조는 목사로 하여금 중간자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를 두고 이대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중간 역할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 문제는 예배론에서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두 번째, "목사와 설교"입니다. 이미 앞에서 치리 장로와 말씀의 가르침을 맡은 자, 곧 목사에 관한 언급을 해 왔습니다. 목사의 중책이라 하면 말씀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교개혁 당시 교회 성직 명을 목사라 하고 목사에게 설교권을 부여한 후 교회가 분열되면서, 교세 확장을 위해 적당한 요식 절차만 거쳐 목사가 양산되고, 목사가 되면 누구에게나 부여된 강도 권 혹은 설교 권은 오늘의 교회를 개혁의 대상이 되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사가 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서
수 년. 수십 년 설교를 한다는 것은 설교가 가져온 문제가 오늘의 교회 문제의 근본이 된다는 점에서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설교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몇 가지로 나눠서 언급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 왜곡하는 성경 해석에 대한 것입니다.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당 교회는 목사 자신이 의식을 못한 채 대부분의 설교가 교회당을 위한 설교가 되어지고 맙니다. 실례로, 세 편의 설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대형교회 목사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목사들의 설교입니다. 말씀은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가지고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으로, 주께서 우리로 부요하게 해 주셨으니 믿는 자는 마땅히 부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하게 산 것은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는 요지의 설교였던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아멘 아멘을 연발하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이 설교가 성경에 맞는 설교입니까? 이 말씀은 구제비를 모금하면서 너희가 쓸 것 다 쓰면서 어떻게 구제비를
내겠는가?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경우를 들어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려면 1절부터 읽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1절부터 15절까지 참고하십시오! 다음은 이사야서 58장 6절 7절의 말씀으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유명 금식기도원에서 기도원 원장 목사가 설교한 것인데요. 요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이 풀리고 멍에의 줄이 끌러지고 압제 당한 자가 자유케 된다."라는 요지의 말씀이었습니다. 고로, 금식을 하라고 독려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유명 금식기도원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성도들이 참석했고, 목사도 수십 명이 참석한 집회의 설교였습니다. 이 분위기에 압도된 청중들은 아멘 아멘을 연발하면서 그 설교를 성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설교가 바른 설교입니까? 본문을 자세하게 읽어 보면, 사람에게는 포악하게 행하면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금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금식은 하지 말라는 말씀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금식기도원 원장은 아전인수식으로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설교했습니다. 이번에도 유명목사의 설교입니다. 에스겔서 47장 1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설교의 요지는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생수가 죽은 바다를 살려 고기 떼를 살리고, 물이 흐른 강가에는 실과가 달마다 열리고.." 그러므로 교회당 즉, 성전 문지방을 열심히 밟아라. 그리하면 여러분의 사업에, 가정에, 자녀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죽어가는 생명들이 다시 살아난다!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역시 성도들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대형교회들과 유명 목사들의 설교가 이런 식입니다. 유명 목사들의 설교이니까 순진한 성도들은 성경이 그런가 싶어서 살필 겨를도 없이 아멘 아멘으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이상 세 편의 설교는 성경의 내용과는 터무니없는 설교들입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고 아멘하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째, 의도있는 설교에 대한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에는 의도(意圖)가 있습니다. 가령, 교회당 건축을 목표로 정했으면 성전 건축 관련된
설교가 준비되는 것이고, 수양관 건축이 필요할 때에는 거기에 맞는 설교라는 것을 하고, 묘지 구입에도, 교육관 건축에도, 목사 안식년에도, 선교사 파송에도, 각종 목사의 편리한 의도를 따라 설교가 준비됩니다. 그것이 왜 나쁩니까?라고 하는 이들이 계실런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성도의 영적 양육 혹은 성도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목사의 의도에 맞춰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를 위해서 목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목사를 위해서 성도가 필요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결국 목사를 위한 교회가 될 뿐입니다. 셋째, 세뇌가 된 설교에 대한 것입니다. 목사 한사람에게 일 년이고 십 년이고 일방적인 설교를 계속 듣게 된다는 것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이미 그 신자는 설교하는 목사에게 세뇌당하여 버리기 마련입니다. 만약, 세뇌되어 최면 상태가 아니라면 그 분들은 목사의 도전 세력이 되거나 아니면 벌써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최근 대형교회들의 비리가 언론 매체들을 통해서 폭로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그 교회 교인들은 꿈쩍도 않고 도리어 자기 교회 목사 보호에 목숨까지라도 바쳐서 충성하려고 합니다. 왜 그러는 것입니까? 그런 현상이 생긴 것은 그 분들이 그 목사에게 이미 매우 깊게 세뇌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넷째, 교회 분열의 근원이 되는 설교에 대한 것입니다. 중세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4분 5열 걸레처럼 된 것은 누구나 돈 몇 푼 들여서 일정 기간의 요식 절차만 거치면 목사가 되고, 목사가 되면 누구나 설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각 개인의 성경 해석과 주장은 자기를 추종하는 세력을 만들고, 추종 세력과 함께 조금도 거리낌 없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맙니다. 그래서 교파가 만들어지고 어느 곳이나 분쟁은 끝이 없이 일어납니다. 깊이 들어가 보면, 그 근본 원인은 목사의 설교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섯째, 한 사람에게 맡겨진 영혼들에 대한 것입니다. 한사람의 목사를 통한 일방적인 설교는 신자로 하여금 우매(愚昧)한 백성이 되게 합니다. 동시에, 신자는 영적으로 편식 신자가 되어 균형 감각을 잃고,
마침내 판단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어떤 목사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자기 설교 외에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공공연히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의한 일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서 설교자 개인의 교회 즉, 개인 기업을 만든 결과가 되었고, 신자는 설교를 듣고 설교자와 함께 구덩이에 빠지는 결과가 되어도 이를 알지도 못한 채, 여기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섯째, 개인의 능력은 지역을 초월합니다. 설득력 있는 설교는 신자를 수천 명이고 수만 명이고 수십만 명이고 제한없이 끌어 들인다고 하더라도, 누구든 탓하거나 제재(制裁)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교회 구조입니다. 지금 제한없는 신자 유치를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해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설교자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주님의 소유됨을 아셔야 이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언변이 좋은 목사 즉, 설교를 잘하는 목사라면 무제한 신자를 끌어들여, 다른 교회당에 소속된 자라 할찌라도, 자기 영향 하에 둔다고 한들, 그 누구도 제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교회 사이에, 목사와 목사 사이에, 신자와 신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이 쌓여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본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공동체가 무너지고 목사 중심 교회로 전락되면서 이런 모순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목사 그는 교회의 왕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기반을 만드는데 절대적인 자기 공력(功力)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목사 자신이 의도해서가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발생하는 사고(思考)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교회의 주인이 되고, 교회의 재정은 물론, 교회의 중요 요직은 족벌로 혹은 측근으로 채워지거나, 목사의 신뢰받는 자 그러니까 목사한테 충성하는 자들에게 돌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목사의 왕국이 되고 맙니다. 목사의 왕국은 자연스럽게
세습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여덟째, 설교자의 양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목사의 기반이 되고 있는 모습은 실업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일자리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누구나 목사 지망생이 되려고 하고, 그 결과 "목사 양산"이라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목사가 된 설교자들은 수많은 교회들을 개척하게 됩니다. 개척해서 몇 년 동안만 고생하면 튼튼한 자기 기반이 된다고 믿어 버리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밑천도 안들어 가고, 기술이 없어도 되며, 힘든 노동하기 싫은 이들이 설교를 배워서 즉, 목사가 되어 설교만 해서 먹고 사는 것이 쉬운 일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사람들에게 목사님! 목사님!하며 대접 받으면서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술집이 늘어나는 것보다 교회가 늘어나는 현상이 훨신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런 것입니까? 이와 같은 문제는 목사 개개인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만든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불합리한 교회 구조를 가지고는 끊임없는 분쟁과 교회의 비리는 멈춰 질 수가 없는 것이며, 시간이 갈수록 교회 문제는 더 깊이 더 많이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데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될수록 사회를 향한 교회의 영향력이 상실된다는데에 있습니다. 교회 영향력을 잃게 되면 마침내 기독교라는 전체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기 때문에 교회는 자연히 쇠퇴 내지는 몰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미 이런 현상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목사 제도를 부정하게 되면 자연히 들고 나올 제목이 "성수주일"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설교자가 없다면 매 주일 어떻게 예배를 할까?하고 의문 제기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조직 구조에서는 당연한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주일 성수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영리, 비인기 그리스도인 유튜버 노아박 전도자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