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예수천국 불신 유황불지옥 협박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다!

* 원출처: 앤드류강 목사 / 마지막 사명 

* 원제목1: 사람이 죽으면 불멸의 존재가 되나요? 하나님의 창조 공식을 아십니까? 

원제목2: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1)

* 수신자1: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미검증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믿고 전하도록 허용한 목사들!

* 수신자2: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성경처럼 믿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맹신하며 전하는 지체들! 

                                         ♧ 32분 메시지 url, https://zrr.kr/SY1w

☞ 원출처 url: https://zrr.kr/Ds2W , https://zrr.kr/xKtb , https://zrr.kr/sEXv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라스트타임 넷을 운영하시는 앤드류강 목사께서 Q&A 메시지 "사람이 죽으면 불멸의 존재가 되나요? 하나님의 창조 공식을 아십니까?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라는 원제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국내외 한국 개신교 그리스도인 사역자및 기독교 종교단체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전도자의 한사람으로서 여러분들께 성경을 근거하여 진솔하게 말씀드린다면, "영원히 불타는 유황불 지옥"은 이집트 헬라 철학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이 세상 종교들마다 인과응보의 신, 권선징악의 신을 내세워서 선한 자는 극락이나 천국과 같은 내세로 간다고 말하고, 악한 자는 영원히 펄펄 끓는 불지옥에 처하여 영원토록 고통 받는다고 철학을 교리화하여 말하고 있지만, 곧이 곧대로 그렇게 믿는 종교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국내외 한국 개신교가 기염을 토하면서 협박 공갈 수준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무대뽀로 전파하게 하여 교단 교파 교회에 사람 수 끌어 모아 부흥해 보려는 목적으로 악용 내지는 오남용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국내와 해외 한국 개신교 사람들은

영원토록 죽지 못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불지옥 거짓말을 하는데, 교회로 나와 예수 안믿으면 영원한 유황불 지옥간다고 사기면서 닥치는대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가지고 포교짓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복음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라는대로 하면 천국! 교회가 하라는 것을 안하면 지옥! 이런 식입니다.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사람의 영혼을 친히 구원하는 분은 창조주 예수님이시지, 한국교회 다니는 성도. 집사. 장로. 목사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오지랖 넓게 동서남북 다니면서 교회 나가라고 삐끼식 포교 즉, 포섭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중동 나라에 들어 가거나, 북한에 몰래 들어가서, 호화 술집에 들어가서 덮어놓고 성경책과 교회 전도지를 준다고 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전도가 결단코 아닙니다. 아니, 그것이 기회와 동기가 되어 예수믿을 수도 있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태양신 바알 3신을 믿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 천지인데, 그딴 교회에 나가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Heaven or Grave 유튜브방에 들어 오셔서 삼위일체와 양태론 관련 제목을 찾아 별도 시간에 청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지막 사명'의  앤드류강 목사님의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이 문제의 중심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속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원히 존재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 말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이 유지되지만, 불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영원불멸의 조건입니다. 그것을 잘 아는 사단은 뱀을 매체로 이용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로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결국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거짓말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사람의 운명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죄가 지구에 들어오기 전에는 에덴 동산에 낙엽도 없었고 동물끼리 서로 죽이는 약육강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가시나무와 독초들이 자라나게 되었고 동물들의 성질이 사나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죄는 즉시 자연계에 무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영향은 인간에게도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유전자가 노화되기 시작했으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도 혼이 연기처럼 몸을 빠져나가서 영원히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죽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도 하나님처럼 영원불멸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하지만, 성경에서는 영원불멸의 속성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 말씀! “오직 그 즉,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첫째, 영원불멸의 속성을 받는 날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죽지 않을 영원불멸의 본성을 가질 수 있는 소망의 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날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인들이 영원불멸의 생명을 받는 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52절 53절 말씀! “그리스도 재림의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몇 년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에 어떤 목사가 “죽음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기고했는데, 그는 거기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죽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며, 이전에 알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죽음 이후에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이런 설교를 듣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영혼은 영원토록 불멸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불멸의 속성은 사람이 죽을 때 받는 속성이 아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한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선물입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무덤에서 부활한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불멸의 속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 신앙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의인이 죽은 후 영혼이 곧바로 하늘로 올라간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에서 환호하면서 일어나는 의인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하늘에 가 있던 의인의 영혼들이 다시 죽은 시체 속으로 들어가서 무덤 속에 누워 있다가 부활하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 신앙은 코메디가 되어 버립니다. 온 우주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도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해서 충성을 바친 의인의 부활과 영생을 그렇게 계획하셨다고 믿으십니까? 편견을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모습과

성품을 온전히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각자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영원불멸의 속성을 받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까?” 만일 영혼이 불멸하는 것이 아니라면, 죽음 이후에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성경 속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죽음에 대한 정의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말씀이 전도서에 나옵니다. 전도서 12장 7절 말씀! “흙은 예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 즉, spirit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모든 사람은 그가 악인이든지 의인이든지간에 죽었을 때 “흙은 예전에 있던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표현된 “영”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알아보기 전에, 사람이 태초에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창조의 역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살펴보면, 인간이 죽을 때 어떤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째, 사람의 창조 공식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 즉, life of breath, 생명의 호흡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즉, living soul, 살아있는 영혼이 된지라.” 아멘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창조 공식은 흙 + 생기 즉, 생명의 호흡 = 생령 = 살아있는 영혼 즉, living soul = 인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생명을 가진 인간을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 성경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용하신 재료는 오직 두 가지, “흙”과 “생명의 호흡”입니다. 흙으로 몸을 만드신 후 하나님께서 직접 아담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니까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창조하신 공식은, 흙 즉, 몸+생명의 호흡 =

생명체 즉, 살아있는 영혼 =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람”이나 “인격체”를 “영혼”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사기 5장 21절 말씀!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시편 103편 1절 말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누가복음 1장 46절 말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이 성경 구절에 나오는 “영혼”이라는 단어는 사람 속에 들어있는 “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 즉,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은 몸 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자, 사람이 살아있는 영혼 즉, 생령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 속에 영혼을 집어넣었다는 거짓말을 기독교회 전체에 퍼트렸습니다. 셋째, 사단의 거짓 공식은 흙 즉, 몸 + 영혼 즉, 사람 몸 속에 있는 연기 같은 존재 = 사람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사단의 공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연기처럼 몸에서 빠져나가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헷갈리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죽을 때 영혼이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호흡이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인간의 몸 속에는 영혼이 있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간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몸 안에 “영혼”이 들어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런 미신적인 가르침이 기독교회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두 가지 재료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넷째의 1번, 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몸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죽은 시체가 부패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몸을 구성하는 화학적인 성분이 흙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시체가 땅에 묻히면, 몸은 태초에 창조주께서 땅에서 취하셨던 그 화학적 요소들을 다시 땅으로 되돌려주게 됩니다. 전도서 12장 7절 말씀입니다. “흙은 예전에 있던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넷째의 2번, 생명의 호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눈과 귀와 코와 모든 내장과 심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서 움직이고 활동하려면 생명력이 주입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포에 생명력을 제공하고, 심장을 박동케 하고, 호흡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생명의 호흡”을 코에 불어넣으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life of breath, 생명의 호흡)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soul, 살아있는 영혼)이 된지라.” “생기”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느샤마”(neshamah)인데, 그 의미는 “생명의 호흡”(life of breath)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느샤마”는 “호흡”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욥기 33장 4절 말씀!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neshamah)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 이사야 2장 22절 말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neshamah)은 코에 있나니..” 열왕기상 17장 17절 말씀!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neshamah)이 끊어진지라.” 넷째의 3번, 사람의 죽음입니다. 두 가지로 만들었으니, 두 가지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죽음은 창조의 역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두 가지 재료인 흙과 생명의 호흡을 사용하셨으므로, 인간이 죽어서 땅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용하셨던 두 가지 재료(흙과 생명의 호흡)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사용하셨던 두 가지 재료 이 외의 어떤 것도 인간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의 반대 과정인 죽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 = 흙 + 생명의 호흡 = 사람인데, 죽음 = 사람 – 생명의 호흡 = 흙이 됩니다. 그렇다면, 전도서 12장 7절 후반부에 나오는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죽는 순간에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사용했던 두 가지 재료 중에서 “몸”은 부패돼서

원래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명의 호흡”도 처음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생명의 호흡”이라고 표현되었던 것이 전도서 12장 7절에서는 “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을 “호흡”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전도서 2장 7절 말씀!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 즉, 호흡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사람이 죽을 때 “호흡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뜻이지, “호흡”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어딘가에 보관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음 = 사람 – 생명의 호흡 즉, 하나님께로 돌아감 = 몸 즉, 흙으로 돌아감입니다. 창세기 2장 7절과 전도서 12장 7절을 비교하면 말씀의 평행 구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은 “생명의 호흡”(life of breath)과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spirit)이 성경에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오직 하나, “생명의 호흡”입니다. 어떤 영혼이나 혼이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대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죽는 순간에 무엇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까?” 영혼이 몸에서 소리없이 빠져나갑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호흡”입니까? 전구 + 전류 = 빛과 같은 이치입니다. 죽음에 대한 진리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구에 전류가 흐르면 빛이 나오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가면 생명이 있는 사람 즉, 살아있는 영혼이 됩니다. 사람의 몸을 전구라고 가정하고(전구=몸), 그 속에 흐르는 전류는 하나님께서 몸 속에 불어넣으신 생명의 호흡으로 생각하면(전류=생명의 호흡), 전구에서 비쳐 나오는 빛은 몸과 호흡이 합쳐졌을 때에 사람이 된 영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구 즉, 몸 + 전류 즉, 생명의 호흡 = 빛 즉, 영혼 또는 사람 의 공식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반짝거리는 빛을 볼 때, 우리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를 연상케 하는 매우 좋은 표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스위치를 내려서 빛이 꺼졌다고 합시다.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에 빛은 어디로 갔습니까? 빛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더이상 전류가 전구에 흐르지 않기 때문에 스위치를 내림과 동시에 빛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런 전구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몸에서 호흡이 끊어지면, 영혼(빛=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살아있는 영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죽었던 자들의 몸에 다시 생명의 호흡(전류)을 넣어주실 때까지 영혼(빛=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올림으로써 다시 생명이 흐를 때까지 영혼(빛=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올리셔서 다시 영혼(빛=사람)을 회복시키는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52절 53절 말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셨을 때 오장육부가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고, 뇌가 있었지만 생각과 개성과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에 생명의 호흡을 주시자, 즉시로 사람은 “살아있는 영혼(생령)”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생명의 호흡)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살아있는 영혼)이 된지라.”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영혼(생령=사람)은 몸과 생명의 호흡이 결합함으로써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사라지는 때는 언제입니까? 몸과 호흡의 결합 상태가 깨질 때입니다. 죽음이란, 몸과 호흡의 결합 상태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은 즉시로 사라져 버립니다. 스위치를 내리면, 전구를 흐르던 전류가 중단되어 빛이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이 죽어서 생명의 호흡이 끊어지면 영혼(사람)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의 어떤 곳에도 영혼이 몸 없이 떠돌아 다닌다거나,

몸 없이 계속 존재한다는 말씀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호흡(생명력)이 끊어져 몸과 호흡의 결합 관계가 깨어지면, 단 한순간도 영혼(생명체)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때 몸도 호흡과 결합되기 이전의 상태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호흡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메시지에서는 “호흡”이 “영”으로 번역된 단어의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또는 신약 성경의 헬라어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이 두 단어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섯째, 구약 성경의 “루아흐”에 대한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사람이 죽을 때 마치 영혼이나 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루아흐”(ruach)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루아흐”의 뜻은 “성령. 호흡. 바람. 기운”이며,

구약 성경 전체에 총 389회나 등장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루아흐”는 “성령”이라는 의미로 94회 사용되었으며, 그 이외에는 번역하는 사람이 죽음과 영혼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에 따라서 “신. 영혼. 영. 호흡. 생기. 기운. 정신. 마음” 등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 이상한 오해를 하게 됩니다. “루아흐”가 “성령”으로 번역될 경우를 제외하고, 죽음과 생명을 묘사하는 성경 구절에 나오는 “루아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명의 호흡” 또는 “생기”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구약 성경에서 히브리 원어인 “루아흐”는 어떻게 번역되었으며 또한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에서 “루아흐”는 “영”으로 번역되었지만, “루아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코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명의 호흡”을 뜻합니다.

죽을 때 “생명의 호흡(루아흐)이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마치 영혼이 연기처럼 몸을 빠져 나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처럼 번역함으로써 큰 혼돈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이 모든 사람의 죽음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악인의 영혼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 됩니다. 시편 146편 4절 말씀! “그 호흡(루아흐)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계획)가 소멸하리라.” 이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사람이 세워놓은 계획은 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죽음을 설명하는 이 성경 구절에서는 “루아흐”가 “호흡”이라는 단어로 올바르게 번역됨으로써, 창세기 2장 7절의 창조 공식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7장 5절 말씀! “내가 생기(루아흐)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는 모습을 상징하는 이 말씀에서는 “루아흐”가 “생기”로 올바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는 “루아흐”를 “생명의 호흡”으로 번역했습니다.

에스겔 37장 5절 현대어 성경입니다. “내가 너희 속에 생명의 숨(루아흐)을 불어넣겠다.” 욥기 27장 3절 현대어 성경입니다.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루아흐)이 내 코에 있느니라.” 만일 이 말씀에서 루아흐를 “영혼”이라고 번역했다면 “영혼이 내 코에 있느니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우습게 되겠습니까?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숨결(루아흐)”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코에 불어넣으셨던 그 “생명의 호흡”을 뜻합니다. 전도서 3장 19절 말씀입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루아흐)이 있어서 동일한 죽음으로 저도 죽으니..”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짐승도 사람처럼 죽을 때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짐승에게 어떤 형태의 혼이나 정신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으므로,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의 호흡”이지, 영혼이나 혼백으로 볼 수 없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 다른 것일 뿐,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서 짐승과 사람은 “동일한 호흡(루아흐)”이 있고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루아흐”를 “영혼”으로 번역한다면, 짐승과 사람에게 모두 영혼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됩니까? “루아흐”를 모두 “영혼”으로 번역하면 이런 문제들이 수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전도서 12장 7절의 완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했던 솔로몬의 말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몸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루아흐”를 어떤 의식을 가진 “혼이나 귀신”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히브리 원어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영”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서 빚어진 오해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해서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 당시에 사용했던 “흙과 생명의 호흡” 외에 어떤 것도 가감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고 죽음을 묘사했을 때, 그는 생명의 호흡이 그것을 주신 분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호흡”만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신약 성경의 “프뉴마”에 대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서 “호흡. 바람. 생기. 성령”을 뜻하는 “루아흐”가 신약 성경에서는 “프뉴마”(pneuma)라는 단어로 385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프뉴마”는 성령이나 악한 영으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하는 사람의 사상과 주관에 따라서 “영. 마음. 심령. 정신. 바람”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심지어는 “영혼”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는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고보 2장 26절 말씀! “영혼(프뉴마)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영혼”이라는 말을 성경의 난외 주에서 찾아보면, “호흡(breath)을 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이라는 표현이 “생명의 호흡”을 뜻했던 것처럼, 이 말씀에서도 “영혼”이라는 표현이 “호흡”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호흡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 말씀!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영혼(프뉴마)이 떠나시다.” 이 말씀은 십자가에 매어 달린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프뉴마”가 “영혼”으로 잘못 번역되었기 때문에, 마치 예수께서 죽는 순간에 그 분의 혼이 몸을 빠져나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다시 한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라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 말씀!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프뉴마)을 받으시옵소서!” 이 말씀은 스데반의 생명이 끊어질 때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치 스데반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389회 쓰여진 “루아흐” 그리고 신약에서 385회 쓰여진 “프뉴마”가 한글 성경에서는 “신. 영. 영혼”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원어 의미를 살펴보면, 그것이 “성령”을 가리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연관되어 사용되는 경우에는 단 한 번도 불멸하거나 죽은 시체에서 연기처럼 몸을 빠져나가는 “영혼”을 의미하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한 진실을 정말 알기 원하시는 분들은 “신. 영. 영혼”이라고 번역된 말의 원어적 의미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죽음에 대하여 오해할 수 없으며, 죽는 순간에 사람의 혼이 소리 없이 빠져나가 허공을 떠돌아 다니게 된다는 미신에 빠져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메시지를 듣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영”이나 “영혼”으로 번역된 원어가 “호흡”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앤드류강 목사의 두번째 메시지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죽은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무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 국내외 한국 개신교및 이단 사이비로 불리우는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서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한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를 걸어 두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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