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 원출처: 이오석 강사 / 인자학

부제목1(편집): 인자를 아십니까?

* 부제목2(편집): 인자 예수를 모르는데, 교회 출석. 십일조. 주일성수만 잘하면 영생을 얻는가? 

* 부제목3: NO!

♤5분 메시지, https://zrr.kr/v10q

☞ 원출처 URL: https://zrr.kr/wM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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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naver.com/baknoah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선한능력TV

* 원제목: 음녀의 교리에 취해 있는 교인들! 두아디라교회 이세벨의 오류 feat. 계시록 2장 #4

* 부제목: 현대교회는 자칭 바알 여선지자 이세벨 교리를 타협하고 용납한 두아디라 교회와 같다!

♤50분 메시지, https://zrr.kr/40Fb

☞ 원출처 URL: https://zrr.kr/tmvs

[영상 참여자 ' KDI'의 질문& 전도자 답변]

KDI궁금한 것 한가지 있는데요. 오늘날의 개신교에서 "제3성전" 이라는 말을 자주하던데, 무슨 뜻인지 부탁드립니다.

♡선한능력tv예언을 풀 때에는 역사주의적인 관점에서 풀기 보다는 사건 발생적인 관점에서 풀고 있습니다. 다니엘 9장의 70이레 중에서 마지막 한 이레를 이스라엘이 회복된 1948년 이후에 성전이 회복되고(제3성전),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된다는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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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h Bak 덧붙임 메시지]

성경 해석에는 두가지 또는 그 이상의 견해로 나누어집니다. 성령을 스승과 목자로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내 주관만으로 유명 해석가들 내용 중에서 선택하다 보면 성경에 근거한 바른 해석도 얻을 수 있지만, 성경을 벗어난 다른 복음을 참예수 복음으로 속아서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오늘 영상 메시지 중에서 영혼불멸, 영원한 유황불 지옥, 7년대환난, 비밀 휴거, 랄라라 방언, 주일성수 등을 이세벨 교리로 전한 것은 매우 바른 것이나, 제3성전은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내 마음에 들어와 성도를 성전 삼으신 창조주 예수님의 임재(성령강림=재림예수)로 보고 있습니다. 태양력 토요 안식일을 성경적으로 설명한 것은 저와 다른 교리인데, 토요 안식일도 주일성수와 마찬가지로 다른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 감화를 받아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갈라디아서 4:10)"라고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설교문을 통해 듣게 했고,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도 듣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중보자 예수님을 따로 따로 나누는 성경 구절인 디모데전서 2장 5절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를 그대로 설명한 것인데.. 번역해 놓은 성경의 문자 즉, 글자 그대로 보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상은 중세 가톨릭으로 부터 왔는데, 가톨릭의 교황및 신부 그룹이나 개신교 목사 그룹이 회중 사이의 중보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신관을 믿는 종교인은 한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고, 번역 성경을 한 사람들도 삼위일체를 믿는 분들이 했기 때문에 그런 번역이 나오는 것이지요. 하나님 따로! 예수님 따로! 성령 따로! 이렇게 믿는다면 한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3신을 믿는 것이 됩니다. 삼위일체(세 위격으로 구분한 3신1체)나 양태론(시대별로 구분한 또다른 삼위일체인 1신3태) 모두 성부 성자 성령 3신을 믿는 두갈래로 나누어져 해석한 3신입니다. 삼위일체나 양태론을 믿는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확고부동한 사실입니다. 내 영혼을 창조주 예수님께 내어놓고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이웃교회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영리, 비인기 유튜브방 Heaven or Grave로 들어 오시면 1천개 가량의 메시지가 있으니, 제목을 골고루 잘 찾아서 아멘이 될 때까지 청취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신교 40년 기간 동안, 예수 십자가 대속만 참된 것으로 받고, 나머지는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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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Pastor Namgung Younghwan

* 원제목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 원제목2: 요17:3, 롬1:7, 고전1:3, 고후1:2, 갈1:3, 엡1:2, 빌1:2, 골1:2, 살전1:1

* 원제목3: 살후1:2, 계22:16 외

* 부제목: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성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성령은 왜 없는가?

♤43분 메시지, https://zrr.kr/Qf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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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View]

하나님 우리 아버지=다윗의 뿌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윗의 자손! 그러므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 다윗의 뿌리요 자손! 삼위일체나 양태론은 창조주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Pastor Park Chung-hee

* 원제목: 십자가 복음(생명) 외에 줄 것이 없는 기독교

* 부제목: 현대교회에 나가면 위로. 교리. 윤리. 도덕. 율법은 얻되, 진리는 없다!

♤22분 메시지, https://zrr.kr/ufUm

☞ 원출처 URL(구독, 좋아요): https://zrr.kr/7pkb

[설교자 View]

성도의 삶은 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내 안에 성령이 들려주는 참 복음을 듣고 묵상하고 깨달아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전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제목: 명절예배와 장례예배?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노아 박 전도자입니다. 유대인이 사망하면 부패가 심하기 때문에 시신을 당일에 무덤으로 옮긴다고 합니다. 조문객들은 7일 동안 유족의 집을 방문해 유족을 위로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2~3일간의 장례 기간 동안 교파를 막론하고 교회에서 장례예배를 한 번씩 진행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보통 한 달의 장례 기간을 두고 교회 안에서 장례 예배를 진행합니다. 영어 청취자 중 누군가가 사망했을 때 교회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이 있나요?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이 교회에 장례식을 요청하지 않는 한 교회가 주도적으로 장례식을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사람이 죽었을 때 창조주 예수님 앞에서 찬송과 기도, 설교로 장례식을 치렀다는 구절을 찾을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한국에는 매우 독특한 교회 장례 관습이 있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세계 오지에 선교 교회를 세울 때 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의 장례 의식을 가르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것을 따르지 말라는 의미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임종예식을 하고, 관에 시신을 넣으면 입관예식을 하고, 시신이 장지로 떠나면 발인예식을 하고, 땅에 시신을 안치하면 하관예식을 하고, 납골당에 시신을 안치하면 봉안예식을 합니다. 심지어 고인이 세상을 떠난 후 매년 추도식도 거행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 찬송이 없는 장례예배와 찬송이 있는 장례예배를 분명히 구분해야 하며, 전자는 우상숭배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젊은 남녀가 결혼할 때 결혼식 예배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찬송가가 없는 결혼예식은 괜찮지만, 찬송가가 있는 결혼예식은 우상숭배입니다. 심지어 한국에는 유명한 목사가 책자를 냈다고 해서 출판 감사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찬송과 기도가 없는 출판기념회는 문제가 없지만, 찬송과 기도가 있는 출판감사예배는 우상숭배입니다. 창조주 예수님을 인간의 숭배 목적에 따라 예배하는 것은 분명히 우상 숭배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예배를 요구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목적에 따라 예배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영이시며 말씀이시므로 신자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만 예배해야 합니다. 혼합하면 세상의 우상 숭배하는 종교인들과 똑같아집니다. 끝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에는 명절이 있는데, 명절에 교회나 가정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하는 예배를 드리나요?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는 명절예배를 적극 권장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오디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Original title: Holiday services and funeral services?

[English]

Hello. I'm Noah Park, an evangelist in South Korea. It is said that when a Jew dies, the body is carried to the grave on the same day because of the high degree of decomposition. Mourners will go to the bereaved family's home for seven days to comfort and spend time with them. In South Korea, where I live, all churches, regardless of denomination, hold one funeral service during the 2-3 day mourning period. In Africa, funerals are usually held in churches with a month-long mourning period. Do any of our English-language listeners have church funerals when someone dies? Unless the Christian who attends the church requests a funeral from the church, the church does not take the initiative to organize a funeral. Nowhere in the New Testament do I find a passage that says that when a person died, they had a funeral with hymns, prayers, and a sermon before their Creator, Jesus. Brothers and sisters, Korea has a very unique church funeral custom. When Korean missionaries establish missionary churches in remote parts of the world, they are likely to teach the Korean funeral rituals to the people of those countries, so I am telling you this as a reminder that you should not follow them. When a person is dying, they have a death service; when the body is placed in a coffin, they have an entrance service; when the body leaves for the burial ground, they have a footing service; when the body is placed in the ground, they have a lowering service; when the body is placed in the ossuary, they have a sepulcher service. We even have a memorial service every year after the dead have passed away. They do this because they don't realize that this is idolatry as the Bible calls it. A clear distinction must be made between a funeral service without hymns and a funeral service with hymns; the former is not considered idolatry. On the other hand, what about the wedding service when a young man and woman get married? Similarly, a wedding service without hymns is fine, but a wedding service with hymns is idolatry. There are even too many book publishing thanksgiving services in Korea just because a famous pastor has published a booklet. There is nothing wrong with a book release ceremony without hymns and prayers, but a book release service with hymns and prayers is idolatry. Worshiping the Creator Jesus according to man's purposes of adoration is definitely idolatry, because the one God has never required such worship from Christians. We must stop worshiping according to man's purposes. Since the Creator, Jesus, is Spirit and Word, believers should worship only in spirit and truth. If we mix things up, we become just like the idolatrous religious people of the world. Finally, every country in the world has holidays, and on those holidays, do you have services in your church or home where you sing songs, pray, and preach? Most churches in South Korea are strongly encouraged to hold holiday worship services. We need to recognize that it is idolatry. We'll see you next time, and thank you for listening to the audio. 

 

 

 

[한국어] 

 

* 원제목1: 횡설수설하는 방언및 통역! 

* 원제목2: 가사없는 방언 찬양!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노아 박 전도자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 강림이라는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베드로가 모국어로 설교하자 16개국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국어로 복음을 알아듣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에게는 언어를 창조하시고 혼돈을 주어 심판하신 전능자이시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제자들에게는 너무 놀랍고 기이해서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3, 14, 15절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하는 자는 통역하게 하심을 구하라.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이 기도하고 내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리니 그러면 내가 어찌하리요. 내 영으로 기도하고 내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 영으로 찬송하고 내 마음으로 찬송하지 아니하리요?' 방언, 통역, 찬양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가톨릭. 개신교. 기독교 형태의 종교 단체. 많은 세계 종교의 종교인들이 사용하는 이상한 외치는 방언. 방언 통역. 방언 찬양이 정말 이런 종류의 횡설수설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의 개신교 종교인들은 국내외에서 횡설수설 수준의 방언을 합니다. 오순절 은사, 고린도 은사라고 주장하는데, 어떤 설교자는 고린도 교회에 참 방언과 거짓 방언이 있었다고 해석하고, 어떤 설교자는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을 제외하고 가짜 방언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참고로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에서 실제 5~6개 언어로 방언을 받았고 그 방언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통역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종교인들은 사탄이 준 옹알이 개코원숭이 방언으로 말하며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합니다! 신비주의에 빠져 방언을 노래한다면 사도 바울이 미쳤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한국 교회는 이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헛되이 믿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하고 예수의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성령께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역사하고 계시는데, 듣지 않고 불순종하면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거짓 방언! 거짓 방언 통역! 거짓 방언 찬양! 이것들은 지금 당장 버려야 할 쓰레기들입니다. 아멘이십니까? 다음에 뵙겠습니다, 오디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Original title 1: Gibberish dialects and interpretation!

* Original title 2: Singing in tongues without lyrics!

 

[English]

 

Hello. I'm Noah Park, an evangelist in South Korea. On the day of Pentecost, due to the supernatural event of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a miracle occurred when Peter preached in his own language and the Jews in the diaspora, who were scattered in 16 different countries, understood the gospel in their own language. For Jesus, the Creator, this is no problem because He is the Almighty who created languages and judged them by confusing them, but for the 120 disciples gathered in Mark's upper room on the day of Pentecost, it was too amazing and bizarre to be true. It's 1 Corinthians 14, verses 13, 14, 15. 'Therefore let him that speaketh in a tongue pray that he may interpret: for if I pray in a tongue, my spirit prayeth, and my heart bringeth forth no fruit: what then shall I do, but pray with my spirit, and pray with my heart; and praise with my spirit, and praise with my heart?' The words tongues, interpretation, and praise are prominent. Catholic. Protestantism. Religious organizations in the form of Christianity. Strange shouting dialects used by religious people of many world religions. Interpreting in tongues. You have to be able to discern if tongues praise is really this kind of gibberish. Nevertheless, Protestant religious people, especially in Korea, speak in gibberish-level tongues both at home and abroad. They claim as a Pentecostal gift, a Corinthian gift.Some preachers interpret the Corinthian church as having true and false tongues, while others say that the Corinthian church received fake tongues except for the Apostle Paul. For reference, the Apostle Paul is said to have received tongues in five or six actual languages of the Roman Empire and to have interpreted the gospel message in those tongues. However, religious people around the world speak in tongues of babbling baboons given to them by Satan, Nonsensical interpretations! If you're into mysticism and singing in tongues, you have to wonder what the Apostle Paul meant when he said you were crazy. The Korean church where I live is full of people like this. If we believe so vainly and are so sure that we can enter eternal life, what must Jesus, the Creator, think? I believe that the Holy Spirit, who feels sorry for them and tells them to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of Jesus, is at work in each and every one of them, but if they don't listen and disobey, the Holy Spirit doesn't come. False tongues! False tongues interpretation! False tongues praise! These are the garbage that needs to be thrown out right now. Amen? We'll see you next time, and thank you for listening to the audio.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 원출처: Pastor Ko Dong-yeop 

* 원제목(2018): 축도의 바른 이해 

* 부제목1: 세계 대부분의 교회는 십일조를 없앴고, 

* 부제목2: 일반 성도에게도 축도권및 당회장권 기회를 준다!

 

♤25분 메시지, https://zrr.kr/wt8u

 

* 원출처 URL: https://zrr.kr/nIKn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이웃교회의 참예수 복음을 찾아 한국교회를 위하여 말씀 배달부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동엽 목사께서 증거하신 "축도의 바른 이해"라는 원제목 글 메시지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내지는 교제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아멘' 여기까지 밖에 없는데, '있을찌어다'를 번역할 때 엉큼하게 살짝 집어 넣은 것입니다. '있을찌어다'가 원문에 없다는 것을 꼭 아셔야 합니다. 헬라의 원문을 보면 '있을찌어다'와 같은 동사는 없습니다. 그리고 '교통'하심이 아니라 '교제'하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히브리어및 헬라어 원문을 참조해 보시고 영적으로 바른 판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η  χαρισ του  κυριου  ιησου  χριστου  και  η  αγαπη  του

헤    카리스  투    큐리우     예수       크리스투    카이   헤   아가페   투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그    은혜                주    예수의      그리스도                  사랑과   

θεου  και  η κοινωνια του   αγιου πνευματοσ μετα

  데우  카이  헤  코이노니아  투       하기우    퓨뉴마토스     메타

   God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with

  하나님의               교제가                       성령의              함께

παντων υμων αμην

    판톤     휘민     아멘

     all      of you   A-men

     모두에게  너희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아멘. 이 표현이 원문에 의한 바른 번역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가지고 있는 절대 권한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축도권입니다. 축도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복을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왜 복을 빌어주는 기도가 목사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합니까? 축도의 의미를 기독교 백과사전에서 찾아 봤는데, '목사가 예배 시간에 회중을 위하여 드리는 축복 기도로서, 보통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있는 말씀을 외운다'라고 되어 있으며, 이 축도 때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관습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축도를 가장 엄숙한 순서로 인정한 나머지, 사제는 예복을 입고 이를 선언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축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신 기도, 도고, 감사 등의 기록은 있으나 축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6장 28절 말씀!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은 당시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대교회 목사들을 비롯하여 일반 성도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지금과 같은 축도 개념으로 잘못 풀어 버리면, 복을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축복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목사가 주장하기를, 만일 일반 성도가 축복을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라고 말들을 하는데, 이는 성경과 전혀 다르게 어긋난 왜곡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축복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축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계급주의적 차별 의식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서, 교회 내에 목사. 장로. 집사. 성도라는 계급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 목사라는 계급의 권위를 위한 일종의 권력 상징으로서 규정한 것인데, 이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용하시겠습니까? 

 

그런 권력 앞에 어떻게 감히 일반 성도가 교회 재정에 관하여 떳떳하게 요구할 수나 있겠습니까? 권리가 어떤 특정 집단에게만 허용될 때, 그 권리는 권력이 되고 맙니다. 그 권리가 목사라는 직분에게만 허용이 되어진다면 이것은 종교 권력의 도구로 변하게 됩니다. 목사가 전도사를 대할 때에도, '감히 축도권도 없는 주제에!'라고 내세울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축도라는 것을 하는 목사에게 주어졌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더구나 손을 높이 들고 하는 축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목사가 손을 든 순간, 하늘로부터 복이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절묘한 연상 장치로 보일 것입니다. 비슷한 모양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믿게끔 만드는 심리적 작용을 만들어 냅니다. 그저 눈감고 하는 것보다는 손을 들고 하게 되면, 목욕탕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모양을 연상하게 됨으로서, 심리적 작용에 의해 복이 쏟아질 것 같은 믿음이 생성되도록 하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했고, 이삭이 야곱에게 했고, 야곱이 아들들에게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숱하게 행했던 축복 기도 즉, 복을 비는 기도를,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사를 제외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약에는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백성을 축복하는 권한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셨습니다. 레위기 9장 22절 23절 말씀과 민수기 6장 22절에서 27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목사들은 이것이 오늘날 강단에서 목사들이 하는 축도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축복기도는 대제사장의 중보 기도였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였고,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히브리서 3장 1절과 4장 14절을 참고하십시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참고하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시며,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이십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 20절과 디모데전서 2장 5절 그리고 요한일서 2장 1절을 참고하십시오!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성도나 모두 주 안에서 다같은 형제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2장 11절및 마태복음 23장 8절을 참고하십시오! 이와 같이, 아론의 대제사장적인 축도권에서 그 기원을 찾아 축도를 한다면 누구라도 감히 쉽게 축도를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8절 말씀에 나오는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축도의 모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시편 63편 4절의 손을 들고 기도하던 관습에 따라 말한 것 뿐이고, 다투기보다 서로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참고로,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던 경건한 풍습이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서신서 끝에 있는 '축원'을 축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3절, 고린도후서 1장 2절,

 

갈라디아서 1장 3절, 계시록 1장 6절, 로마서 1장 7절, 사무엘하 15장 20절, 계시록 1장 5절, 룻기 2장 19절 말씀을 참고하십시오! 결국 그렇다면 목사만이 축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이는 편지의 끝인사로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누구나 편지로나 말로나 서로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번역성경 말씀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가 현대교회 목사 축도권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입니다. 또, 유다서 1장 24절 25절의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은 예배시의 축도가 아니라, 서신의 일반적인 끝인사에 해당합니다. 서로를 위한 축복 기도는 모든 성도에게 해당한다고 봅니다. 세상 사람들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새해에 복많이 받으라고 빌어주는데, 

 

성도 간에 축복하는 일이 어떤 직분에 의해서 제한받는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특별한 위치에 있는 바울이 자기가 세운 고린도 교회를 위한 축복이었고 또 오늘날 개교회에서 행해지는 축도를 목사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자주 흔하게 남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목사의 축도 기원은 가톨릭 신부의 강복을 흉내내어 만든 전혀 성경과 다른 우상숭배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신 일은 부활 후 승천하실 때 단 한 번 뿐이었습니다. 목사 여러분은 이를 아십니까? 누가복음 24장 50절에서 53절까지의 말씀!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아멘. 멜기세덱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4장 19절 말씀!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멜기세덱은 인류 최초의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위치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은 단 일회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삭도 야곱을 축복하였으나, 에서는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7장 34절에서 38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에서는 동생에게 축복을 다 빼앗긴 후에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니까?'라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자신이 받을 복을 애원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38절을 참고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입장에서 야곱에게 또 다시 축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성도들을 위한 목회적인 특별한 위치에서 자기 교인들을 위해 축복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자주 축도를 해댈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사가 은퇴할 때나, 혹은 목사가 죽을 때나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매 주일마다 자기 몸에서 무슨 복(福)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양 손을 들고 강복 의식을 행하는 것은 자판기의 돈만 넣으면 쏟아져 나오는 커피처럼 자주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말씀인 것입니다. 신명기 18장 22절 말씀!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만약, 축도가 복을 비는 기도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회중에게 '간절히 축원하노라!'라고 한다면, 복을 비는 사람이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것은 종교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 스스로를 격상시키려는 '사단의 무서운 함정'인 것입니다. 결단코 비는 자는 자신의 권위를 포기해야 합니다. 기도의 첫번째 태도가 구하기 위해 높은 자 앞에서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또, 만약 축도가 기도라면 그것은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빌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을 부탁하셨는데, 목사는 왜 이런 중요한 원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복을 비옵나이다. 아멘.'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면 가장 성경적임에도 말입니다. 또, 축도가 기도라고 하면서 그 기도를 꼭 가톨릭처럼 예복을 입고 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물론,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사복을 입고 축도하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복을 입는 경우에는 주기도문을 암송시키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도대체, 목회자 가운을 입고 하는 기도와 벗고 하는 기도의 구별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또, 축도가 기도라고 하면서 그 기도를 대예배나 공예배와 같은 정해진 시간에만 하도록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의식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에 따라 기도는 때와 장소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기도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축도가 복을 비는 기도라면 기도할 수 있는 자와 기도할 수 없는 자의 구별이 있는 까닭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위엄과 권위와 자만의 태도로 기도한 바리새인보다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겸손히 기도하는 자가 의롭다함을 얻고 돌아간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을 참고하십시오! 일반적으로 지금껏 목사들에 의해 쇠뇌 당하고 학습당해서 의식화된 신자들은 축도를 복받는 수단으로 곡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도를 한 그 목사에 의해서 복이 좌우되는 것처럼 오판하며 맹신하고 있습니다. 현대교회 소경 목사들의 죄가 가장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도는 비복음적인 용어이고 하나의 의식행위 밖에 안됩니다. 이는 로마 가톨릭에서 신부의 교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성도들에게 기복신앙을 갖도록 만들어 낸 발상에 불과합니다. 본래 축도를 베네딕숀(Benedic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부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위해 베네딕트 신부가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본 따서 만든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는 개신교가 이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장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축도 등 온갖 교회 목사 교리를 

 

자기네들 각자 교단 헌법에다 집어 놓고 성도들이 덫에 걸려서 맹종하도록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이상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교권이라는 자만심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분명히 목사는 그 신분에 있어서 교회의 회중들보다 높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앉아 있는 위치보다 조금 높게 한 강단에 있다고 해서 높지 않다는 것을 아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은 목사까지를 다 포함하여 죄인으로서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힘입어야만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예수 한 분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어떤 인간의 대리자를 세우고 또 그를 통하여 복을 받으려는 성도들의 태도는 절대로 성경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목사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창조주 예수님께서 목회자를 더 의롭게 하셨다거나 목회자가 아니라고 해서 덜 의롭게 하는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주일 학생예배가 끝난 후에 한 학생이 교육 전도사에게 질문했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은 예배 끝날 때 

 

손들고 하는 기도를 왜 안 하세요? 어른 예배 때는 주기도문 대신에 목사님이 손들고 축복기도 하시던데요. 우리 어린이 예배도 그렇게 해주세요. 네?' 그러자 전도사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건 목사님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단다.'라고 답변해 주었다고 합니다. 목사와 전도사가 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 아이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아이가 끼어 들었습니다. '어? 아닌데요? 영국에서는 모두 다같이 하던데요..?' 그 아이는 몇 년 간 영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아이였습니다. 영국에서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것을 한국에서는 목사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아이에게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거기에서는 직분도 없는 어린이들까지도 다같이 했던 축도였던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축복이라는 개념과 복이라는 개념이 아무 생각없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이런 말을 아무 생각없이 누구든지 오남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축복하실 수가 없습니다. 축복은 복을 비는 것인데, 말 그대로라면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복을 주라고 빌고 있다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축복 즉, 복을 주라고 누군가에게 간청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기도하다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바른 표현은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인간은 복을 비는 것 즉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아멘입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4절 말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라.' 역시 동일한 맥락의 말씀입니다. 과거 초대교회 때의 핍박이나 또 중세 때의 기독교인들의 핍박, 또 현세에도 어디 목사들만 핍박을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굳이 목사들에게만 한정하여한 말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핍박하는 자까지라도 축복해 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복하는 기도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며, 목사들에게만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목사에게만 축도권이 한정됐다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교회가 비성경적인 십일조를 없애 버린 것처럼, 세계 거의 모든 교회가 일반 모든 성도에게도 축도권 뿐만 아니라, 당회장권까지도 열어 놓고 있습니다. 특히, 한가지 특별한 사항은 이런 교회에서는 분배 원칙도 성경적이다!라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 담임 목사의 식구 수가 3명이고 그 교회 나이 어린 전도사 식구 수가 4명이었을 때, 사례비 개념의 봉급도 식구 숫자에 따라 담임 목사보다 오희려 나이 어린 전도사가 식구 1명이 더 많기 때문에, 더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축도를 주로 예배의 폐회 순서에다 넣고 선언함으로써 끝맺음을 합니다. 그러나, 축도가 예배의 끝맺음이 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끝나는 개념이 없고 생활 속에서도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후에 만찬으로서 그 모임을 마무리하고 

 

서로 교제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말씀을 유추해 볼 때, 초대교회 모임은 말씀을 강론하고 떡을 떼며 교제한 후에 헤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배는 끝나는게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같이 서로 서로에게 열심히 마음껏 축복해야 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하심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끝부분에 '있을찌어다'라고 함으로써, 괜히 언어적인 위엄을 드러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복을 빌어주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시면 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을 끌어다가 사도 바울의 편지식 설교문 끝인사를 흉내낼 필요도 없는 것이고, 가톨릭의 강복을 모방하여 가운을 입고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접신 무당처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종교 행위를 한다고 해서 창조주 예수님께서는 듣지도 응답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 목사가 입는 가운을 포함해서 현대교회 예배 끝말미의 축도 폐기하는 일에 목사의 결단이 있기를 빕니다. 내친김에, 묵도. 묵도송, 사도신경 등의 기존 예배 순서 의식을 최대한 없애고 찬양과 말씀만 나누는 것을 영과 진리의 예배로 인지하는 개혁 교회로 발돋음한다면 그 목사와 회중에 대하여 창조주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올바른 참예수 복음만을 성경대로 믿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받아서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진한다면, 비록 성도들이 많이 떠나는 아픔이 있더라도, 교단 교파를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감당하기만 한다면 바른 성경교사로 당신을 세워주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장로. 집사. 성도가 포함됩니다. 만약, 지금 이대로가 좋사오니!식으로 나간다면, 부활 천국 영생을 얻을 자가 별로 없습니다. 노아 가족 8명과 롯의 가족 3명을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어]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40년은 개신교 종교생활의 짬밥 기간입니다. 짬밥하니까 군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경력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개신교 경력은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아멘. 한국은 이방나라이고 한국교회는 이방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현대교회 목사들은 스스로 이스라엘 나라 제사장을 자처하고 신약의 사도를 자처하면서 설교하며 교회 종교 생활을 리더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의 대리자 반열에까지 올라 앉아 있습니다. 목사 그룹 전부가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대다수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의 교황은 1인 체재이지만, 개신교 교황 목사들은 가톨릭의 분봉왕처럼 작은 교황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로, 집사, 성도 그룹은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하면서 목사 받들어 섬기기를 하나님 섬기듯이 다 하여라식의 교회 계명을 준수하는 것이 교회 봉사로서, 이것이 창조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오판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것만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든, 가정경제에 적색 신호등이 들어와 빚을 지며 살든, 쪽방에 살면서 폐지를 주워 근근히 살든, 모든 소득의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하나도 숨김없이 계산기를 두드려 세금공제 전 십일조를 준비했다가 주일성수하는 일요일 예배시간에 봉헌해야만 우리 가정과 자녀에게 문제 생기지 않고 복받는다고 굳게 믿고 내 목숨 다할 때까지 하리라!를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동시에, 자녀와 후손에게 이런 종교적인 것을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했던 말 반복하느라 잔소리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십일조 도둑질 하지 마라! 네가 다니는 교회 목사 잘 섬겨라! 주일성수 철저히 해라! 새벽기도에도 열심 내라! 교회 봉사 잘 해라! 식사기도 빼먹지 마라! 등등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사회생활은 등한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세상 직업이나 사업으로 일하는 것은 썩어질 양식 구하는 일이고, 교회 관련된 것은 금과 은으로 쌓여지는 하늘 공로가 되어 나중에 상급과 칭찬 그리고 면류관이 된다고 교회에서 주워 들은 온갖 거짓말을 믿고 교회조직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월급, 사업 이윤, 회사 이윤, 은행 이자, 부동산, 기타 부수입에 관련한 모든 소득의 십일조와 137가지 목적 헌금 중에 골라 바치기 하면 나중 노후 때에는 거지 신세 못 면할텐데, 목사가 능수능란한 입으로 우리말 오역 많은 번역 성경책이건 말건 상관없이, 성경구절 도적질에다가 성경을 각색하고 변개하는 자의적인 해석 등의 오남용 설교를 얼마나 잘 해대던지, 모처럼 가족들과 휴가철에 강원도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가 만난

 

만병통치 약장수의 입담에 속아 넘어가서 효능 없는 가짜 약을 사들고 내 병 이제 다 나았다고 착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자신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믿고 계시는 여러분께서는 이것을 분별하고 사십니까? 40년 개신교 종교생활을 했던 저는 건축헌금만큼은 바치지 않았습니다. 현대판 바리새파 종교적인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만약 제가 세상적으로 잘 풀렸으면 99.99% 건축헌금을 큰 돈으로 했을 겁니다. 출석교회는 아니지만, 오래 전에 인터넷 상으로만 아는 모교회 목사가 교회 사정이 매우 어렵게 되어 그런다면서 폰 문자를 통해 건축헌금 일천만원 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경제적 사건으로 사정이 정말 말이 아닌데, 순간 눈한번만 꼭 감고 안내해준 계좌로 송금할까?라는 고민도 했지만, 배우자는 분명 반대할 것이기에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는 제게 약속하기를 교회 건물 성전이 완성되고 교인들이 모여서 교회 재정이 자립하면 반드시 갚겠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인식하던 때라서 게의치 않았지만, 지금은 교회 성전 짓는다고 건축헌금 바치도록 유도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 직업 목사로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 교회에서 당장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일성수, 새벽기도, 모든 소득의 십일조와 137가지 목적 헌금, 건축 성전헌금, 목사섬기기, 교회 봉사하기, WCC에 속한 교회, WEA에 속한 교회 등은 라오디게아교회와 같고 사데교회와 같습니다. 그 종교단체 교회에서 신속하게 빠져 나와 가나안 성도가 되십시오! 내 발로 교회를 나오는 그 시점의 교회 직분이 나의 남은 평생 동안의 직분으로 생각하시고 더이상 교단 교회에서 만든 교회 조직 직분에 연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성도로서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 하나를 걸어 두겠습니다. 예배 순서와 의식은 사도 바울이 2천년 전에 버린 배설물입니다. 진리의 복음이 되시는 창조주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신구약 성경의 One Jesus 신관과 함께 바른 복음만을 전하려고 애쓰는 성경교사 메시지를 분별하고, 귀기울여 잘 듣는 것입니다. 

 

전세계 교회와 국내외 한국교회 안에는 참예수 복음과 다른 복음이 섞여 있는데, 만약 참예수복음이 98%이고 2%가 다른 복음이라면 2% 부분만 제외하고 들으시면 됩니다. 예를들면, 십일조와 헌금은 다른 복음이라고 잘 가르치는데 삼위일체는 바른 복음이라고 한다든지, 창조주 한분 예수님은 바르게 전하는데 랄랄라 방언및 통역이 성령께서 주신 것이라고 한다든지, 랄랄라 방언및 통역은 다른 복음이라고 바르게 전하는데 영원토록 죽지도 못하고 탈출하지도 못하는 "세상종교들의 유황불 지옥"을 전한다면, 그럼에도 참예수복음을 전하는 비율이 97%에 육박하면서 그 모든 것을 통틀어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삼위일체와 양태론"이 중세 가톨릭의 잔재로서 사단의 거짓된 가짜 신관이라는 것을 성령 안에서 깨달아 분별한 성경교사라면, 100% 완전무결하게 참예수복음만 전하는 교회가 온 지구상에 없음을 감안하여, 하단 링크를 통해서 200만 가나안 성도및 예비 가나안 성도 여러분은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주시는 말씀만 들으십시오! 개신교나 독립교회 안에서 행하는 예배순서 의식이나 종교 행사및

 

돈으로 바치는 헌금들은 성도들을 상대로 사기치는 것임을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창조주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십일조와 모든 헌물의 십자가 대속 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예배든 헌금이든 전혀 없습니다. 다만 사람을 돕고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가르친 "무기명 자발적 연보 즉, 기부금. 후원금"은 있지만 이것도 교회 공동체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단회적으로 하든, 개인의 취사선택 결정권으로 하든,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연보 한가지만 있습니다. 하지 않거나 못해도 죄가 아니며, 할 수있다면 각자 가정경제 형편을 헤아려 이름 밝히지 말고 모임 공간 구석에 놔둔 연보함에 아무 때나 할 수 있고, 못할 수도 있으며,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내 자유입니다. 누구든지 오늘 메시지를 듣고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단하셔서 나의 부활을 바라며 무덤에 묻힐 때까지 자유하십시오! 대적자 사단은 성도의 자유를 몽땅 빼앗고 자신을 하나님으로 가르칩니다. 사단은 모든 거짓말의 아비입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나안 성도 "온라인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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