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는 성경적인가?


개신교, 초교파, 삼위일체는 가톨릭의 다신론이다, 성경은 예수 하나님 한분이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사람으로써, 하나님으로써-아들로써, 아버지로써)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아들 하나님"

 

예수가 세분 하나님(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중에 한 분이라면 "아들 하나님"을 낳은 마리아는 "어머니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어머님"이 되는가? 만약, 그녀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한다면 그녀는 분명 하나님이 된다는 결론과 함께 "아들 하나님" 보다 상위의 존재가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그리고, "아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위 성경 구절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여,---"라고 칭했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란 단어가 없이 그 냥 "아들이니이다"라고 한다.

 

예수님이 어찌 자신의 어머님에게 "여자여!" 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가?

 

우리나라 윤리적 개념으로 본다면 결코 "양반"에 속하지 못하는 표현법이며, 아마도 몽둥이 감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의 혈통으로 태어나 "모든 인간의 모본"이 되신다는 분의 입에서 친어머님을 향 해 "여자여!"라는 표현은 결코 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어머님"에게 "여자여!"라는 부름은 동서고금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읽혀지고 있다. 깊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누가 "여자여!" 라고 할 수 있는가? "아들" 안에 계시는 "아버지"이시다.


"사람 아들 예수"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만이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경우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하신 분도 "사람 아들 예수"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만이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라고 할 수 있다.


여자여!”는 <아버지로써>이고,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 것은 <아들로써>이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요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하나님은 목마르실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람”(아들)이 목마른 것이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잠잠하라, 고요하라">  <"잠잠하라, 고요하라">  



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누가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나?


"하나님 아버지"가 주무셨나? 아니면 육신인 "사람 아들"이 피곤하여 주무셨나? 하나님은 피곤치도 않으시며 졸지도 않는 분이신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바다를 명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시고, 잠잠케 하고, 고요케 할 수 있는 분은 "사람 아들"이 아니며 "하나님 아버지"시다. 그리고, 육신인 사람 예수가 주무신 것을 안다.



 <죽음 앞에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죽음 앞에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막 14: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sore amazed)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려 될 수 있는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누가 죽음 앞에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하시는가?

 

"사람 아들" 예수인가?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 예수이신가?

 

하나님 아버지는 죽음 앞에 "심히 놀라시며 슬퍼"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도 없고, 누구에게 기도 할 수 있는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의 원(願)과 아버지의 원(願)>   <아들의 원(願)과 아버지의 원(願)> 



눅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願)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願)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願)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願)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할 수 있는 "하나님"은 없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나의 원대로>가 있고, "인간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죽어야만"하는 <아버지의 원대로>가 있어서 "두 의지"가 있고, 두 성품이 있다.


  두 분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으로써는 <아들의 죽음>은 “창세전부터 계획된 십자가상의 죽음”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써는 십자가의 죽음이 끔찍하고 심히 두렵고 눈물 날 일(심히 놀랍고, 슬픔)이 되니 아들의 "원하는바"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는 <죽기를 두려워하는 아들>의 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상반된 두 “원하는 바”가 하나님 안에 두 분이 계셔서 문제를 발생시키는가?


아니다. 죽음 앞에 "심히 놀라며 두려워"하는 아들(육신)의 원하는 바는 <아들의 "인격(人格)"> 이며, 아버지의 원하는 바는 "인간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죽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신격(神格)"> 이다.


  인격(人格)과 신격(神格)을 구분하여 읽을 수 있고,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 세 인격체가 계시다> 는 삼위일체의 교리는 "인격"(人格)이라는 단어 사용부터 혼미스럽다. 하나님 안에는 인격(人格)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는 한 신격(神格)이 계신다.> 라고 해야 옳다. 아들 예수는 "신격"(神格)이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은 인격(人格)을 가지신 분이다.


아들의 원하는 바는 <아들 예수의 “인격”(人格)> 이며, 아버지의 원하는 바는 <아버지 예수의 “신격(神格)> 이다.


  "사람이신 아들 예수"가 "하나님이신 아버지 예수"께 기도함이다.


즉, 이는 분리된 신격(神格)과 인격(人格)임을 시사하는 것으로써 "아버지의 신격"과 "아들의 인격"이며, "하나님의 신격"과 "사람의 인격"이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 안에 거하심이 아닌가!!!


  결코, 두 하나님의 신격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아들”은 죽는다.>   <“아들”은 죽는다.>   <“아들”은 죽는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아들"죽었다. 그리고 "살으심"이 되었다.


"아버지아들성령"이 하나님이라면, 생명을 창조한 아버지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는가? 죽는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죽었다 살았다 할 수 있는가?


죽는 것은 사람인 “아들”이며, 호흡이 있고 피가 있는 <피조물>이기에 죽을 수 있다.

<아들>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하나님이시다. <아버지>“근본 본체”이시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아버지"가 "아들"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성경은 「사람(육체) 예수」 안에 누가 계신다고 설명하고 있는가?


영(靈)이신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 또 "고무풍선"을 생각 해 보자.


풍선 안에 있는 공기나 풍선 밖에 있는 공기는 다 똑 같은 한 공기이지, 두개의 공기라고 할 사람이 없듯이, 육신(고무풍선의 고무 자체) 안에 계신 분(영)이나 육신 밖에 계신 분(영)이 분리된 두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다신론"(多神論)의 추종자인 것이다.


요 14:9,10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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