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도신경을 사용 안해요?
침례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고백이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 신앙고백이 없는 신자나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수많은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신앙고백 = 사도신경”, 또는 “사도신경 = 신앙고백”이라는 공식(선입견)은 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원후 55년 초대교회의 열 두 사도가 각기 한 줄씩 신앙고백의 표현을 만들어 사도신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신조)은 12줄이 아니고 14줄 입니다. A.D 100~250년 사이에 저술되었다고 짐작되는 「믿음의 원칙」(Rule of Faith)이라는 책의 영향을 받아 381년 니케아 종교회의로 부터 무언가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시작되어 724년 지금의 사도신경이라는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탈리아교회의 신앙고백」, 「아프리카교회의 신앙고백」, 「니케아 신조」, 「콘스탄티노플 신조」, 「아시아 신조」등의 내용을 집성한 것입니다. 왜? 침례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하면, ‘신앙양심의 자유’라는 성경의 정신에 기초하여, 우리는 ‘신앙고백’(Confession)은 인정하나 ‘신조’(Creed)는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조(信條)는 법적인 강제조항이고, 고백(告白)은 신앙의 자기 발표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성경의 내용과도 다른..인간들이 제조한 신조에 따라 종교재판을 했던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신조를 만들지 않습니다. (신조에 위배되는가? 여부가 그 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백이 성경적인가?가 구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종교회의에서 만든 신조들을 정통 교리화한 것이 로마 카톨릭입니다.
1. 위 내용 하나만으로도 사도신조를 신앙고백용으로 사용안하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2. 로마 카톨릭의 신조를 굳이 기독교의 고백문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에도 하나님께 대한 표현은 좋은 고백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3. 우리는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지 않기 때문에, 사도신조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의 원문은 “I beleive in the Holy Catholic Church" 입니다. 혹시, 당신은 바티칸을 중심으로 한 범세계 종교인 카톨릭교회를 믿습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어려서부터 암송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외치고 있다면, 빨리 정신 차리십시오. 물론, 기독교에서 이 신조문을 채택할 때 ‘거룩한 카톨릭교 회’를 ‘거룩한 공회, 또는 교회’로 바꾸었다고 해도, 어떻게 개교회의 연합체인 공회나 개교회 자체가 신앙고백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다음 문구인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게 되는 현상’(공동체 현상)은 믿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4. 예수님은 나 때문에 고난 당하셨는가? 본디오 빌라도 때문에 고난 당하셨는가?
5.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는 예수님의 사역이 정지 되었는가?
6. 꼭 담아야 할 나 개인이나 교회의 사명과 선교의 사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7. 고정된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는 행위가 신앙고백으로는 적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역동적이고 다양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과 신자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그날 그 날의 살아있는 체험적 고백들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성경구절이, 때로는 찬송가 가사가, 때로는 나만의 표현이 나의 신앙고백이 될 것입니다.
1996년 11월 10일 김현철
펌출처: https://is.gd/EtWvPh
개신교, 초교파, 성경에 없는 사도신경은 하지 마라, 사도신경은 가톨릭의 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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