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장로, 집사, 목사 여러분의 청취를 꼭 부탁드립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1887년 이탈리아 가톨릭 십일조 폐지를 거부하는 개신교!
* 원출처: Lee Sang-kwon Attorney
* 원제목: 개신교 십일조 신학의 문제점!
* 부제목1: 예수의 대속으로 내 평생의 십일조를 지불하셨다!
* 부제목2: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교회 밖으로 추방한다!
* 수신자: 중세 가톨릭의 십일조 폐지를 알면서 가짜 십일조를 선동하는 목사들에게 속은 지체들!
♧ 12분 메시지 url, https://youtu.be/s1YBIAbLWIQ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예수의 대속으로 내 평생의 십일조를 지불하셨다!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교회 밖으로 추방한다!'입니다. 오늘은 이웃교회 이상권 변호사께서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하여 2014년도에 전하신 글메시지를 음성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에 있어 한국교회 율법 문제의 대표 주자는 단연 '십일조'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의 십일조 신학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개신교는 물질적인 헌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고, '지갑이 회개하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웨슬리의 말을 자주 인용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의 십일조 신학은 매우 편의적이고 왜곡되었으며, 그 결과로 안티 기독교인들은 십일조 문제를 붙들며 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십일조 신학은 개신교를 성장시키는데 일조했지만,
왜곡된 십일조 신학은 결국 십자포화를 맞고 말았습니다. 성경의 십일조 신학인 그 십일조의 근거를 아브라함에게서 찾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십일조 신학은 신명기의 행위 언약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모세 오경에서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율법의 의무'로서의 십일조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말라기에 근거하여 '십일조는 모든 성도의 의무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은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교단의 십일조 신학입니다. 이것은 바른 신학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은 모든 성도의 의무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성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진리입니까? 그러니까 거듭 말씀드려 보지만, '의무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쌓아주신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이냐? 이 말씀입니다. 애석하게도 이런 말들은 성경의 진리가 아닙니다.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첫째, 구약의 제사법을 예수님께서 친히 성취하셨으므로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가 아닙니다. 여러분! 구약 율법의 의무는 예수님이 성취하셨습니다. 이를 믿으셔야 합니다. 십일조의 의무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면 우리는 왜 신명기의 다른 율법은 지키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안식교인들처럼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며, 안상홍파처럼 유월절을 지키지 않느냐? 이 말씀입니다. 다른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서 십일조만 선별적으로 지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실 아무런 그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제사법의 일종이며, 십일조와 같은 구약의 제사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완전히 성취하셔서 폐지하셨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감당하셨다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감당하셨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가 평생 드려야 할 십일조를 다 지불하셨다고 해석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그리스도인 여러분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딱 한가지!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면 성도의 주머니를 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째, 십일조는 성도들의 의무가 아닙니다. 성도가 십일조를 의무라고 생각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면, 십일조를 하는 것으로는 상이 없고,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저주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식의 논리는 바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자신이 복음을 전파해도 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에게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복음 전하는 것으로 상을 받기 위해서 ‘자비량’ 사역을 했고, 성도들로부터 물질 지원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무에는 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물 한 그릇을 주어도 상이 있다고 했는데, 평생동안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의 십일조를 해도 상이 없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있습니다. 저는 십일조를 하면 상이 없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단 10원을 드린다 해도 그것은 상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십일조 신학은 잘못되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십일조 신학은 구약을 그대로 신약에 적용하여 예수님께서 예정하지 않은 내용을 성도에게 짐으로 지웠다는 점에서 잘못되었습니다. 십일조로 인해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십일조로 인해 선한 사업을 하고 생명을 살렸습니다. 저도 이것은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십일조 신학이 바른 신학으로 정의되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십일조 신학은 가난한 사람을 교회에서 몰아냅니다. 십일조 신학의 다른 문제점은 물질적인 기초가 없는 사람을 교회에서 몰아낸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가난한 자는 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일괄적으로 십일조를 부과하면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내는 꼴이 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교회의 십일조 신학은 가난한 자들을 교회에서 몰아내는 바람에, 가난한 자들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넷째, 십일조 신학은 물질주의를 조장합니다. 현재, 십일조 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물질주의와 기복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 교육을 하거나
십일조에 대해 설교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말씀이 말라기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느냐?' '십일조는 교인의 의무이며,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라는 엄포가 등장합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있는데, '만약에 십일조를 하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라는 공갈을 놓는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해서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십일조를 안해서 망한 사람들의 예를 듭니다. 말라기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설교하는 설교자는 다 이렇게 설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문자적으로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교가 도대체 바른 설교입니까? 이런 말씀은 그야말로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말씀을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신명기 신학이 십일조의 율법으로 변주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설교는 구약의 신자라면 수긍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신학을 가진 신자들에게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은 이단적입니다.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이 창고가 터지도록 복을 부어 주시고, 십일조를 안하면 물질적인 면에서 저주를 받는다.' 이런 식의 설교가 흘러 넘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했더니 하나님이 이런 복을 내려 주셨다.' 이런 류의 간증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하는 것이 아니라, 맘몬 신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십일조 신학은 헌금의 사용 용도를 제한하게 만듭니다. 구약의 십일조를 신약에서 그대로 차용하면, 십일조는 그 사용처에도 제한을 받습니다. '구약에서의 십일조는 레위인을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단이 십일조로 받은 돈을 오늘날의 레위인으로 잘못 인식하는 목회자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헌금의 용도에 있어 심각한 제한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의 잘못된 십일조 신학은 구약의 율법을 신약의 성도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오류가 있고, 예수님께서 이미 자유케 한
율법의 짐을 성도들에게 지우는 오류가 있으며, 구약적인 사고 방식의 기복 신앙이 교회 안에서 판치게 한 오류가 있는가 하면,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의 물질 사용의 용도를 왜곡시키는 오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물질 사용함에 있어 용도 제한이 어찌 오류인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사장과 평신도로 나누는 '계급주의적 이원론'을 극복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만인 제사장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UBF와 같은 공동체에 있어서의 이 오류는 UBF의 독특성을 훼손시키고, 교회화하는 쪽으로 이르도록 합니다. 십일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일조 내기 싫어서 그런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꼭 십일조를 내기 싫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를 가르치는 사람은 대부분 성경 전문가들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아마추어들입니다. 성경의 전문가인 목회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이용하여 아마추어들에게 사기를 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교회 조직의 직분과 봉사 등으로는 천국가지 못합니다. 개신교및 독립교회 장로. 집사.
성도가 돈십일조를 하게 되면,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쫒아가는 죄가 됩니다. 동시에, 목사도 돈십일조를 받으면, 다른 영. 다른 예수를 믿는 것이 됩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출처 url: https://is.gd/rOfr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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