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성경의 영벌은 영생을 잃고 영원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원출처: Pastor Ho-Young Yun

* 원제목: 영원한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 부제목: 영원한 불, 세세토록 타는 불이 '유황불 지옥'인가?(단회적 심판의 불이다!) 

* 수신자: 끓는 물 10초도 못견디면서, 불교와 가톨릭의 5천도 이상 '유황불지옥'을 믿는 교회들!                                                   
      ♧ 29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d_P3UIdzNic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창조주 예수님 한분 아버지는 돈을 바치라 한 적이 없다!

 

* 원제목:  당신은 저축 장려 설교를 했거나, 설교를 들었는가?(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 수신자: 일평생 직분 유지해서 천국가려고 십일조, 각종 헌금등을 바치고 있는 많은 지체들!  

 

    ♧ 26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qsVu_eGOPgA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하늘의 보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교회들의 성경 따로! 설교 따로!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당신은 저축 장려 설교를 했거나, 설교를 들었는가? -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만, 정작 교회들은 돈을 너무 많이 사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조직과 건물을 운영하려면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기업체 수준으로 운영을 하려 하니까, 하나님께서 돈이라는 제물을 받는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경 말씀을 교묘하고 교활하게 해석해서 둘러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겠지요. 첫째, 성경에는 저축을 장려하는 말씀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잠언서 6장 5절에서 11절까지를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 새가 새 잡는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듯, 어서 벗어나서 너 자신을 구하여라. 게으른 사람아! 개미에게 가서, 그들이 사는 것을 살펴보고 지혜를 얻어라. 개미는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도 없고 통치자도 없지만, 여름 동안 양식을 마련하고, 추수 때에 먹이를 모아 둔다. 게으른 사람아! 언제까지 누워 있으려느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느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팔을 베고 누워 있어야지"하면, 네게 가난이 강도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방패로 무장한 용사처럼 달려들 것이다.” 아멘입니다. 어느 이웃교회에서 저축에 대한 설교문을 게시했는데, 그 다음이 가관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읍시다!식의 설교로 바뀝니다. 여기에서 설교자가 말하는 보화는 물질, 헌금이라는 돈을 가리킵니다. 성경말씀을 변질시켜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면 십일조와 각종 헌금내지는 특별헌금등이 모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째, 하늘의 보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50절까지를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니,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참고로, 50절에 나오는 세상끝날의 악한 자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는다 라는 부분은 교회들이 ‘유황불지옥’으로 잘못 가르치고 있는데, 세상끝날에 육체로 살고 있는 멸망받을 짐승 같은 사람들을 하늘에서 유황불이 비가 내리듯이 쏟아 부어 태워서 재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종교생활하는 기독교인 무리들도 모두 해당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자들과 육체로만 사는 자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어쨌건, 하늘의 보화는 '천국 영생' , '그리스도 예수와 복음'을 말한다고 보시면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절 말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땅엣 것을 물질로만 생각하는 자세는 매우 왜곡된 것입니다.

 

예를들면, 이 세상 사는 동안 앞날을 생각하고 최대한으로 저축을 해 놓지 않으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교회도 외면하고, 집안 친족도 거절하며, 심지어 자녀도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한분 영존하신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타까움으로 지켜보실 수밖에 없는 경우까지 생길 수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고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믿는 자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극적으로 돕는 자의 손길을 붙여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경제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교회에서 당신의 금전 문제를 해결해 줍니까? 아니면, 함께 소속한 교인에게 구제했다는 제직회 보고 자료를 본 적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장로와 목사가 핑계대기를, 자기 소속 교인을 구제하게 되면 그 성도가 자존심 상해 한다고 하면서 적극적인 구제를 회피하고 있고, 그 대신에 '교회 목사 이름과 성도 일동'이라는

 

타이틀로 외부 기관에 생색내기 기부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예배 시간에 바쳤다고 해서 창조주 예수님 한분 주께서 받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복은 커녕, 화도 없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 때 소속 교회의 도움은 전무하다는 점을 아십시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당장 중단하고, 앞날을 대비하여 개미처럼 저축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저축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저축한 돈을 가지고 자신의 가정과 가문, 구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개미처럼 지혜롭게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24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없다 라는 표현을 잘못 설교하여 물질은 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바르지 못한 설명입니다. 목사들이 이 부분을 오남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참된 신은 창조주 예수님 한분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재물을 섬긴다라는 의미는 종교생활만 하면서 속사람 심령으로는 물질을 신처럼 떠 받드는 것을 두고 말합니다. 유대교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회칠한 무덤을 분별할 수있다면 즉시 깨달아 알 수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4절까지 말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어느 설교자는 방금 읽은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4절까지의 구절을 하늘의 보화로 강조하는데, 주님 앞에서 칭찬받을 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마태복음 6장 5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읽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 말씀 구절도 하늘의 보화라고 해석을 하는데, 올바른 기도자의 자세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과거의 저역시 교회 열심당 노릇을 해서 천국가려고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예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심으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첫 번째, 주일성수 율법주의자 열심당 노릇을 했고,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이끄는 바람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일요일날 자유롭게 친구를 만나거나 놀러도 못가고 그냥 교회 안에서 아니면 오후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유대교 안식일 준수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한국교회가 제대로 미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이렇게 설정해서 회중들을 교회 율법의 틀로 가두는 것인데, 예배의식 규격화를 만들고 돈이라는 제물, 즉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가지고 나오도록 주일성수라는 미명 아래 족쇄를 채우는 짓을, 겁을 상실한채 해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장 11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을 설교자들이 정말 증거하지 않습니다. 서두에 이미 말씀드린대로 저축하라는 설교를 안하고, 제물을 가지고 오지 말라는 설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 부분을 새김질해 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이사야서 1장 11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아멘.. 대신에, 사도 바울이 가르쳐준대로 각자 자발적인 기부금 형태의 무기명 연보 한가지는 본인이 취사선택해서 할 수도 있고 안할 수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바울의 연보 권면이 단회성이었다는 것도 잘 기억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서 4절까지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성도들을 도우려고 모으는

 

연보에 대하여 말합니다. 내가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 지시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대로 하십시오. 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연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로 가게 되면, 그 때에 여러분이 선정한 사람에게 내가 편지를 써 주어서, 그가 여러분의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겠습니다. 나도 가는 것이 좋다면, 그들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입으로 말하기를 모든 소득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최소 1/10은 기본이고 1/10 그 이상으로 해야 하는데, 2/10에서 10/9까지라도 바칠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속이는 종교 사기꾼을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교회 조직의 알량한 직분 하나 안 뺏기려고 일생 목사 종노릇 또는 사단의 심부름꾼 노릇만 하다가는

짐승 한 마리 죽는 것처럼 무덤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서, 영생을 빼앗기는 사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유황불지옥, 뱀지옥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제 유튜브방의 해당 제목 메시지를 찾아서 청취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메시지를 듣는 분들은 지금 이순간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예배의식 순서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복음들이 섞이지 않은 그리스도 예수의 참되신 말씀을 마음의 귀로 듣고 마음의 심령으로 믿으며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찬송을 곁들이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총 150편 시편의 기도자처럼 기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작은 두번째, 저와 집사람은 30년 동안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려고 노력했고, 내게 들어온 돈이 아닌 물품들도 시중가격보다 더 후하게 환산하여 갖다 바친 사람입니다. 자녀들 어렸을 떼 용돈 줄 때에는 반드시 당부한 사항이 있었는데, 용돈 십일조 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직장 퇴직할 때는 퇴직금 십일조 바치라고 했으며, 애경사로 들어온 경조사 비용도 십일조로 바쳤으니, 제대로 미친 사람이 과거의 저였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하고 있는 분들은 사단에게 단단히 속아 주는 일이고, 절대로 십일조로 복받고 저주받는 것이 아님을 아시고, 지금 이 메시지를 듣는 분들은 교회 조직 직분 포기하고 교단 교파 교회를 속히 떠나시기 바랍니다. 맨처음의 직분이나 지금의 직분이 집사라면 오프라인 무교단 독립교회, 온라인 무교단 독립교회, 가정교회로 계셔도 평생 집사입니다. 장로면 평생 장로입니다. 권사라는 직분은 성경에 없으니 남성이든 여성이든 장로로 여기시면 되고, 안수집사는 장로로 여기시던지 집사로 여기시던지 편하실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서리집사, 권찰은 없는 용어이니까 집사로 생각하면 됩니다. 성도는 그냥 편하게 성도로 생각하십시오!

장로. 집사. 선교사. 성도. 목사 모든 직분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을 소개합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서 13절까지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시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영원한 뜻을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는 나의 환난을 보고서, 여러분이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아멘..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증거했습니다. 여러 복음서 서두에 사도라고 밝힌 부분이 몇군데 있긴 한데, 유대교 골수 사울 당시에 그의 종교적 악행 때문이었고, 회심 후에 예수의 직접적인 제자라는 의미로 그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많은 예배, 많은 기도, 가짜 불지옥으로 교회 사람 숫자 채우는 거짓된 전도, 여러 모양과 형태의 다양한 교회조직 봉사등을 잘해서 천국가려는 사람들은 헛된 꿈을 깨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교회들은 이 성경구절과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면 멀리 가실 것없습니다. 4복음서에 나오는 유대종교 지도자들, 장로, 대제사장,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간단합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열심은 하늘 꼭대기까지 닿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사사건건 대적한 기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인 열한 사도들, 빌립 집사, 

 

사도 바울, 장로, 스테반 집사, 감독들이 예수 복음 전한다고 고액 사례비를 받아가며 사역한 기사를 한줄이라도 보셨습니까? 종교적인 직업으로 일평생 밥벌이 삼은 사람이 있었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상당수 목사 그룹들이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별의별 짓을 하는데.. 동시에, 장로및 집사 그룹들도 사회에서 뇌물받는 위치에 있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위치에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다음의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 27절까지의 성경구절은 저를 포함하여 이 메시지를 듣는 모든 분들에게 다 해당됩니다. 천국에 못들어가면 창조주 예수님께서 영생을 빼앗아 버리시고 그냥 무덤에 묻혀 흙의 원소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것이 심판이고 형벌이며, 사망입니다. 저는 악인의 육체 부활은 오역되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영이지, 육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19절에 불에 던지운다는 말씀은 예수 지상 사역시에 당시 ‘게헨나’라고 불리우던 시체 소각장을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체를 불에 태워 재가 되게 하든, 무덤에 시신을 두든, 결국 둘 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정당하게 노동해서 돈을 벌어 검소하게 사시면서 저축에 많은 힘을 쓰십시오! 헛되고 헛된 십일조와 각종 헌금이라고 하는 가짜 예물에

 

쇠뇌 당해서, 바치지 않고는 견뎌낼 수없는, 망할 십일조와 각종 헌금, 특별헌금등의 올무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다 그것들을 바치게 되면, 당신은 그만큼 가난하게 될 뿐입니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직장인들의 박봉과 가게의 적자에 허덕이며 사는 서민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십일조와 각종 헌금, 특별헌금등을 하나님이 받으시지도 않고 복을 주거나 화를 주는 일도 없기 때문에, 더이상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는 거짓말 설교자들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단 교파 노회 교회를 떠나 무교단 독립교회, 인터넷교회, 가정교회로 모이십시오! 하늘의 보화와 땅의 보화를 돈으로 대입하는 설교자들의 주장은 영지주의자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돈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야 한다 라는 그럴듯한 속임수는 사단의 대표적인 거짓말이니,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할 수있는대로 저축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 못쓰고 떠나면 자녀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하늘에 쌓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빙자하여 설교라는 것을 하는 특권 계급의식 가진 자들의 상투적인 거짓말입니다. 더이상 속지 마십시오! 목사가 장로, 집사, 성도들의 십일조와 각종 헌금 장부를 본다는 자체가 성경과 부합하지 않는 더러운 탐심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 한사람 한사람의 소득을 파악하는 목사는 성경과 전혀 다른 사기꾼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저는 목사 후보생이 이 메시지를 청취하신다면, 이렇게 권면해 드리고 싶습니다. 신학교 가지 말고 사회적인 직업부터 먼저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회직업을 가지고 직장에서 정당하게 월급을 받아서 의식주 문제 해결하고, 철저한 비영리 인터넷 교회 메신저로 사역하면 좋을 것입니다. 단 한가지! 예수 말씀으로 성령 충만하고, 성경을 늘 가까이 연구하며

 

성령께로부터 말씀을 구해서 받은 것을 전하면 됩니다. 말씀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합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전하면 성령을 소멸하고 영생을 빼앗긴채 육체로 끝납니다. 작은 세번 째, 코로나 백신 속에 마이크로칩이 숨겨져 있어서 이 백신을 맞으면 수년 안에 반드시 죽는다고 하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코드 20년 맹신과 베리칩 6년 맹신에 빠져 보았던 사람으로서 한말씀 드린다면,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요 개소리입니다. 주사 부위에 전등을 갖다 대면 불이 들어 오고, 자석을 갖다 대면 딱 붙고, 백신 속에 세균같은 것이 기어 다닌다!.. 외국에서도 영상을 조작하는 가짜 뉴스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더이상 속이려 들지 말고 속지 마십시오! 오늘 전해드린 메시지에 대하여 구독. 좋아요. 퍼가기. 공유해 주시고, 참예수복음 전파 목적을 위해 편집하셔도 괜찮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추수감사절은 말씀 밖의 바리새파 종교적인 열심이다!

 

* 원출처: Pastor Kyung-hwan Kim 

* 원제목: 성경에 없는 추수감사절을 빙자해 돈을 모으려는 목사들 

* 부제목: 추수감사절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미국 명절을 따라 돈을 거둔다!) 

* 수신자: 신약성경에서 요구한 적 없는 추수감사절에 제물(돈)을 거두는 수많은 교회들!                                               
      ♧ 7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0RVmIQ2Cbcs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이웃교회인 성경침례교회 김경환 목사께서 추수감사절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 성경적으로 바르게 증거한 메시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추수감사절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 미국 명절을 따라 돈을 거두는 것이다!'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한국 개신교회들은 소위 교회력, 즉 Church calendar라고 해서 일년 중 몇몇 특정한 날을 지정하여 절기들을 해마다 규칙적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교회력에 의해 지켜지는 주요 절기는 부활절, 성탄절, 추수감사절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세 절기를 교회의 3대 절기로 칭하고 해마다 대대적인 행사를 동원하며 지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이라는 대절기가 있는 11월이 되어 교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감사절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 아직 본토의 문화를 벗어버리지 못한 채 한국 땅에 들어간 몇몇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초창기에는 장로 교인들을 중심으로 지켜져 온 이 절기가 과연 한국인에게 맞는 것이며, 또 성경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절기인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절기나 의식을 특별히 기념하여 지킨다면, 제일 먼저 물어봐야 할 것은, 그것이 과연 성경이 명령하시는 것인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사람들의 발상에 근거한 사람들의 전통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 유래조차 전적으로 미국 청교도들의 풍습에서 근거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국 왕 제임스 1세 때 함프톤코트 회담에서 신앙의 자유를 

 

빼앗긴 청교도들은 이후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끝에 1620년 12월 21일 신대륙이었던 미국 플리머스 록크 지방에 도착하여 삶의 터전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지형과 환경이 뒤바뀌어 많은 사람이 죽고 병들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그 해 첫 수확을 거둘 수 있었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기릴 목적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으며, 이후 워싱턴과 링컨의 포고에 이어 1941년 미국 의회가 11월 넷째주 목요일을 공식적인 국가의 공휴일로 정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미국의 절기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들은 이 추수감사절이 전적으로 미국적인 절기, 즉 명절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마치 이 절기가 구약의 유대인들이 지켰던 감사절, 즉 장막절과 같은 것으로 설정하여 동일한 선상에서 지키는 것이라고 둘러대고 있습니다. 즉, 한국 교회가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 외래적인 절기를 지키는 목적이

 

마치 구약의 유대인들이 1년의 수확을 마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장막절을 하나님 앞에 절기로 지켰듯이, 교회도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구약 유대인들이 장막절. 오순절. 무교절 등의 절기들을 지킨 것은 그들이 율법 아래에서 지킨 것이며, 그것들이 결단코 신약 교회가 그 연장선상에서 지켜야 할 절기가 아니라는 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 10절을 읽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알려졌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다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종노릇하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도다.”.. 감사절을 지키려 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감사절을 굳이 지키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보다 절기를 이용하여 교회의 재정을 채우려는 데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일부 교회들은 회중으로부터 

 

더 많은 감사헌금을 거두어 들일 목적에서 11월 셋째 주로 잡아야 할 추수감사 기념일을 성도들의 봉급 날짜와 맞물려지도록 하려고 넷째 주로 늦추어 잡는 변칙을 동원하기도 한다니,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들에는 성경적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지는 구비하지 않더라도, 이 헌금 봉투만큼은 비싼 총천연색 봉투에다 그것도 “추수감사절 헌금” “성탄절 감사헌금” “특별 감사헌금” “작정헌금” “생일 감사헌금” “성전 건축헌금”등..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제목을 동원해 만든 다음, 교인들의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더 거두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빠짐없이 많은 목사들은 수주 전부터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정성껏 헌금을 마련하라”라는 설교로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어 왔을 것입니다. 올바른 헌금은 고린도후서 9장 7절의 메시지와 같이, 다른 모든 섬김이 그렇듯이 성도가 자진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지, 가지각색 봉투를 만들고

 

설교로 부담을 주어서 하도록 “만들” 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또한, 목사들이 변명하는 대로 추수감사절이 한 해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감사드리기 위한 것이라면,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처럼, 그러한 감사는 1년 365일 내내 있어야 할 것이지, 1년 중 어느 한 날을 기리면서 할 성질의 것이 못되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만 안겨주는 것도 모잘라, 불필요한 행사를 치르는데 시간을 빼앗아 바쁘게 만드는 “추수감사절”이야말로 어느 면으로 보나 한국 교회에서 당장 사라져야 할 전통 중에 하나임을 똑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전해드린 메시지에 대하여 구독과 좋아요및 각 포털사이트 블로그나 카페 퍼나르기등으로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출처: 성경에 없는 추수감사절을 빙자해 돈을 모으려는 목사들 (bbcinternation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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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십일조는 이스라엘에 한하여 실시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 원출처: Pastor Jae-geun Kim 

* 원제목: 교회시대에 십일조 의무는 없다!

* 부제목: 오늘날에도 십일조는 의무인가?(자원하여 후원하는 연보는 있다!) 

* 수신자: 구약 십일조를 돈으로 알고 있거나, 십일조를 돈으로 환산했다고 주장하는 교회들!

                              

     ♧ 8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PWaKD2gNvhk

구약 시대에 십일조를 돈으로 내는 것도 가능했었나요?

♥ [질문과답변] 구약 시대에 십일조를 돈으로 내는 것도 가능했었나요? ♥ 질문 : 구약 시대에 십일조를 돈으로 내는 것도 가능했었나요? (레 27:30) 땅의 모든 십일조 곧 땅의 씨나 나무 열매의

bible.rex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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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신구약 성경의 창조주는 엘로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원출처: Pastor Jung-soo Park
* 원제목: 누가 당신의 신(神)인가?
* 부제목: 많은 신들 이름 중에 누구를 신으로 믿는가?(나는 창조주만 믿는다!)
* 수신자: 창조주 여호와이신 예수를 참신으로 믿기 보다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교회들 

      ♧ 80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rOBFf6Xvl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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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목자는 장로이고 감독이며 모든 성도는 영적 제사장이다!

 

* 원출처: Shepherd Dong-Yeop Koh

* 원제목: 원어 성경에 목사는 없다! 현대성경 번역 과정에서 목자를 목사로 번역했다! 성경에 없는 목

   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개신교 교회에 정착 했나?

* 부제목: 목사는 오역인가?(목사는 사도나 성직자가 아니라, 목자가 바른 번역이다!)

* 수신자: 성령께서 말씀하는 직임보다는 가톨릭의 직제를 좋아해서 모방했던 수많은 교회들! 

 

    ♧ 26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pKxmycCegBg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다음 카페 운영자이신 등대지기 목자의 메시지를 전해드리므로서 원어 성경으로 돌아가는데 저와 여러분이 함께 힘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목사는 오역인가?(목사는 사도나 목사가 아니라목자가 바른 번역이다!)’입니다. 첫째, 원어 성경에 목사는 없으며, 현대 성경 번역 과정에서 목자를 목사로 변역한 오역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임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은 목사입니다. 목사는 행정적으로 교회의 대표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지요. 목사 직임에 있어서 목사와 비슷한 어원이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로이(רעי))'라 하고, 헬라어로는 ‘포이멘(ποιμην)’인데, 

 

신약성경에는 ‘포이멘(ποιμην)’이라는 단어가 18번 나오는 중에서 17번은 모두 목자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군데인 에베소서 4장 11절에만 ‘포이멘(ποιμην-목자)’을 목사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개역 성경을 위시하여 10여 종류의 한글성경과, 90여 종류의 영어성경에도 마찬가지로 목자를 목사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원래는 1968년의 신교인 기독교장로회와 구교인 가톨릭 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성경 원본을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해서 만든 책이 공동번역 성경입니다. 그 당시의 신구교 학자들은 성경번역의 원칙을 정했는데, 그것은 성경을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 라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대로 에베소서 4장11절도 목사를 목자로 번역했으나, 목사들이 생각할 때, 만일에 목사를 목자로 그대로 놔 둔다면 앞으로 개신교회 목회 존립문제가

 

심각하게 될 것을 우려해 당시엔 개신교 목사들이 가톨릭 신부들 때문에 목자를 목사로 바꿀 수가 없었지만, 그 후 개신교 목사들끼리 따로 모여서 목자를 목사로 번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사’를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원문대로 ‘목자’로 번역했고, 신구교 학자들이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와 가톨릭성경, 그리고 헬라어 학자들이 직접 번역한 성경에는, 올바르게 목자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 '목자'의 뜻은 '주님의 양떼를 돌보다' 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여기의 '목자'라는 말은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임무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서 신약의 목사 직임의 성격과는 다른 것입니다. 구약 가운데 선지서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내 안으로 오시는 선한 목자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명칭인 것이지요.

 

목사는 헬라어로 포이메나스(poimenaV) 즉 '목자'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선물을 언급하면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라는 구절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시제로 하나는 포이마니네 (poimaine)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요한복음 21장 16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라는 의미에 담겨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포이마나테(poimanate) 라는 단어인데, 그 뜻 역시' 양 무리를 치라'라는 뜻으로서, 베드로전서 5장 2절에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라고 권하는 내용에서 언급된 것입니다. 그리고, 목자를 목사직을 대칭해서 사용하는 단어는 포이메나스(poimenaV) 외에도 그 의미를 같이 하는 단어들이 몇 개 더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에피스코포스(επισκοποζ)'라는 단어로서 
감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프레스부테로스 (πρεσβυτεροζ)'라는 단어로서 '장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뜻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포이메나스(poimenaV) 즉 ‘목자’라는 말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기르는 자' 라는 뜻으로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 직임이 목사 직임의 기원이 결단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두째, 목사 직임 기원의 바른 이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12절을 읽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장 5절 말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아멘..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은 거룩한 제사장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시에 사도의 필요성은 많은 성도의 공동체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이 성도를 대변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인데, 사도권은 계급의 분리가 아니라 은사의 구분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로. 감독. 집사를 임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 직책을 안수함으로서 권위가 인계되기 시작했지요. 사도행전 6장 6절 말씀!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디모데전서 4장 14절 말씀!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안수받아 계승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2세기초 단일 감독제도가 등장하면서 부터 교권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A.D 325년 니케아종교회의 이후부터 계급 즉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직제를 로마 가톨릭이 극대화시켰습니다. 감독이 감독을 안수하면서부터 교회내에 계급 구분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사도권의 전통이 베드로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팔레스틴적 회중인 베드로 계열과 헨라적 회중인 바울 계열 사이에 서로 갈등하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사도 계승의 차원을 살펴보면, 사도가 베드로, 요한, 야고보순으로 계승되는 것이 가톨릭의 제도에 의한 계승이고, 또 하나는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부활하신 주님의 환상에 따라서 

 

증언자가 되고 사도로 임명을 받은 즉 영에 의한 사도권 임명 사이의 갈등이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임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은 목사입니다. 목사는 행정적으로 교회의 대표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 직임이 목사 직임의 기원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 왕. 선지자 직임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직임들이고,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도의 직임 역시 그 시기에만 단회적으로 있었던 직임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목자 대칭에 해당하는 목사 직임의 기원에 대하여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 대칭의 목사 직임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직임들과 무관하고, 또 신약시대에서도 사도 직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목사 직임을 부여할 때에 장로교나 감리교및 성결교 등의 경우에는 노회나 지방회에서 목사 후보생을 선발하여 신학교육을 받도록해서 시험을 거쳐 목사로 안수를 주어 세우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목사 직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은사와 직임을 각 사람에게 직접 나누어 주신 것 가운데 하나인 것에 불과합니다. 목사 직임자가 세례와 주의 만찬을 집행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 권징을 행하는 것은 전파되는 말씀의 능력에 의해 행해지는 결과인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고, 주의 만찬을 행하며,

 

성도가 서로 교제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하며, 말씀으로 책망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바르게 깨달아 택한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할 수있습니다.그래서, 바울 사도도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목자’와 ‘목사’ 차이에 있어서 목자’라는 말은 영어로는 shepherd(세퍼드), ‘양을 치는 사람’, ‘양치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목자라는 말은 양이라는 짐승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양들을 풍성한 꼴이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인도하고 지키며 수고하는 소박한 자를 가르킵니다. 이에 반하여 ‘목사’라는 말은 pastor(파스터) 또는 reverend(레베런드)라는 말로서, 

 

목회자 또는 다른 사람과 특별히 구별되는 거룩한 자, 숭상할만한 자, 경외할만한 자, 공경할만한 자, 위엄이 있는 자, 성직자라는 의미가 매우 강합니다. 영어 reverend(레베런드)는 revere(리비) 라는 단어에 nd가 합쳐진 말인데, revere(리비) 라는 말은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하다’, ‘경외하다’, ‘존경하다’라는 의미로서, 다분히 계급적이고 권위적이며 특권의식이 강한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목자’와 ‘목사’라는 용어는 상이한 성격을 담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자’는 단순히 교회를 돌아보는 은사를 지닌 교회 일군을 의미하고 있으며, ‘목사’는 일반 성도들과 신분적으로 구별되는 성직자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초대교회 때에는 오늘날과 같은 ‘목사’라는 직임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장로들이 ‘목자’의 은사를 가지고 그러한 일을 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는 장로인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직접 자세하게 언급이 되어 있어도, 디모데전서 3장 1절에서 13절까지와 디도서 1장 5절에서 9절까지에 언급되는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일절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초대교회 시기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있었다면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그 때에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교회가 세워진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목사의 자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뿐만 아니라, 더러 아예 ‘목사’라는 단어조차도 없음을 봅니다. 신약교회인 초대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교회와 관련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 중에 ‘목자’라는 단어는 총 6번 밖에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처음 형성되어진 과정부터 점차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는 ‘목자’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사용되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서신서에 5회 사용되었고 계시록에 1회가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11절은 교회 안에 성도들을 돌아보는 은사로서의 목자를 말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13장 20절. 베드로전서 2장 25절. 베드로전서 5장 4절. 계시록 7장 17절에 나오는 목자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고, 유다서 1장 12절에 나오는 목자는 이단자인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키면서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고 표현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초대교회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있었다면 사도행전에 최소한 몇 번은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었을 것이며,

 

특히 각 교회에 보낸 서신서에는 당연히 매번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장로에 대한 언급과 또 그 자격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장로들이 교회를 돌아보면서 다스리며 목회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당시 유대의 가난한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구제헌금을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30절 말씀!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아멘. 왜 구제헌금을 목사에게 보내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장로들이 실제로 교회를 다스리고 교회를 인도하며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로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교리적인 문제가 있었을 때 12사도들과 함께 의논 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절 말씀!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사도행전 15장 4절 6절 22절 23절 말씀!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그렇다면, 왜 이 중요한 회의에 목사가 빠졌겠습니까?

이 해답은 그 당시에는 교회에 목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규모가 작고 재정이 부족해서 
목사를 세울만한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처움부터 초대교회 안에는 목사라는 직위가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애당초 성경에도 없는 독신 신부제도. 교황제도를 만들었고, 개신교는 이것을 모방하여 목사라는 직위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 사도는 교회 장로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역교회를 돌아보고 감독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성령께서 교회를 감독하도록 세운 사람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7절 28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다. 장로들이 오니,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아십니다.“.. 바울은 왜 에베소 교회의 목사를 부르지 않고 장로들을 불러 그들에게 목회자의 사명을 일깨워 주었습니까? 또한 베드로는 왜 목회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교회의 목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했습니까? 만약, 교회 안에 오늘날처럼 목사라는 별도의 신분이 존재했다면 당연히 목사에게 이러한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직임으로서의 목사 제도가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로들이 서로 그 역할을 분담하여 목회 활동을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그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장로들이 이와 같은 목회 활동을 하도록

 

교회의 감독자로 삼은 분이 바로 성령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목사를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라는 직분은 서로 다른 직분이 아니라, 동일한 직분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감독은 교회를 감독하는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장로는 그 나이와 신앙 경륜이 깊다라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감독은 장로 위에 있는 어떤 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장로는 동일한 직분이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모아놓고, 성령이 그들을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 의하면, 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그리고 비두니아 교회들도 장로에 의하여 감독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구절은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절 말씀!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 말씀!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뒤에,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맡겼다." 사도행전 20장 17절 말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다.” 빌립보서 1장 1절 말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디도서 1장 5절 말씀! “내가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둔 것은,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내가 지시한 대로, 성읍마다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새로 세워진 교회에

 

왜 목사를 세우지 않고 장로들을 세웠습니까? 여러 명의 장로보다는 한 사람의 목사를 세워 교회의 모든 것을 맡기면 교회가 일사불란하게 잘 돌아 갈텐데 왜 여러 명의 장로들을 교회 안에 세웠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수의 장로들에 의한 분담 목회를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장로! 사도 바울이 세우고자 했던 장로는 역할을 분담하여 다른 장로들과 함께 목회하는 장로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이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1장 7절에서 11절까지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흠잡을 데가 없으며,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폭행하지 아니하며, 부정한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오히려 그는 손님을 잘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경건하며, 

 

자제력이 있으며, 신실한 말씀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는 건전한 교훈으로 권면하고, 반대자들을 반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종하지 아니하며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특히 할례를 받은 사람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그들은 부정한 이득을 얻으려고,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치면서, 가정들을 온통 뒤엎습니다.“ 아멘.. 베드로는 장로들이 권위주의자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절 2절 3절을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장로교 헌법에는 목사를 장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목사에 대한 정의를 성경에 기초한 장로의 임무에서 찾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목사도 장로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헌법 제2편 제5장 제24조 3항을 보면, ”베드로전서 5장 1절에서 3절까지를 근거로 하여, 목사는 모든 교인의 모범이 되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이다.“ 라고 했습니다. 신약교회인 초대교회 형성 이후에는 ‘목자’라는 용어가 교회 안에서 몇 군데 사용된 흔적은 있으나, 이 단어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직접적으로 지칭한 경우는 성경에 오직 에베소서 4장 11절과

 

유다서 1장 12절 두 군데 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11절의 경우에는 목사라는 직위를 말하기보다는 목자와 같은 일을 하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예레미야 3장 15절 말씀은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은 오늘날 목사 직임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목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오늘과 같은 목사라는 직위는 없었습니다. 이사야 56장 11절, 레위기 23장 2절 및 50장 6절, 에스겔 34장 2절 3절 말씀을 참조하십시오! 예레미야 3장 15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목자의 일을 할 사람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으로서, 궁극적으로 참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해 예언의 말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헌법 제2편 제5장 제24조 3항은 목사를 교회 치리하는 장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또다시 베드로전서 5장 1절 2절 3절의 말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목사들이 교회를 치리하며 목회 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처럼 ‘목사’라는 별도의 직임자가 교회를 치리하고 목회 했다는 근거가 성경에 한군데라도 있다면 그 성경구절을 근거로 삼았을 것인데, 그러한 근거가 성경에는 한군데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장로의 목회 자세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그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이 원칙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종교개혁자 칼빈(칼뱅)도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교회 정치를 주장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장로교라는 교단도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교회 내의 모든 직임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직임 행위에 있어서 성경의 표현을 뒷받침할 수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교회가 신학교를 통한 목회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일부 부정적인 시각이 있을지라도 하늘나라 확장하는데 있어서는 이 시대에 꼭 필요 불가결한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또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일정 부분 섭리해 가시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인 것들도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종교개혁 당시 말틴 루터나 칼벵은 교회 지도자들을 설교자 또는 선생이라고 호칭을 했습니다. 약 200년 전에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에 정착하여 개신교 총회를 결성하면서 

 

교회 지도자를 성경이 제시하는 목자의 어원과 뜻을 목사로 변형 호칭했고, 개신교회에 정착을 시켰습니다. 그 제도가 한국을 비롯한 약소국가에 미국 선교사들을 파송시키면서 미국식 목사 제도를 가지고 교육시키며 전도하다 보니까, 그냥 그대로 어떠한 변론도 없이 정착해 버린 것이 오늘날의 목사 제도입니다. 결국 한국 개신교회 목사들이 성경 번역을 하면서 에배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목자를 목사로 번역해 버린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전해드린 메시지에 대하여 구독및 좋아요를 부탁드리며, 한국교회를 위하여 함께 공유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예수는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영존하신 아버지이시다!
 
* 원출처: Pastor Young-hwan Namgung
* 원제목: 예수님도 양태론자이신가? - 로마서 1:2~4, 계시록 22:16, 이사야 7:14, 이사야 9:6
* 부제목: 예수님은 삼위일체론자이신가? 양태론자이신가?(둘 다 아니다!)
* 수신자: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관보다 신학이나 종교학자가 말하는 거짓 신관을 따르는 교회들!
 
     ♧ 59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DiwYyRpKca4
 
  사랑하는 책 원어성경 프로그램 무료 다운로드 안내: https://youtu.be/6fg2EUblrVg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한 분이다!
 
* 원출처: Pastor Adam Lee
* 원제목: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 1장 26절의 해석및 통역!
* 부제목: 창 1:26 "우리"의 히브리적 해석은?(남성형 한분 하나님과 여성형 땅이다!)
* 수신자: 4세기말에 가톨릭에서 만든 삼위일체는 창조시에 없었음을 무시하는 많은 교회들! 

    ♧ 14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JMqUroHVQ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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