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목자는 장로이고 감독이며 모든 성도는 영적 제사장이다!
* 원출처: Shepherd Dong-Yeop Koh
* 원제목: 원어 성경에 목사는 없다! 현대성경 번역 과정에서 목자를 목사로 번역했다! 성경에 없는 목
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개신교 교회에 정착 했나?
* 부제목: 목사는 오역인가?(목사는 사도나 성직자가 아니라, 목자가 바른 번역이다!)
* 수신자: 성령께서 말씀하는 직임보다는 가톨릭의 직제를 좋아해서 모방했던 수많은 교회들!
♧ 26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pKxmycCegBg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다음 카페 운영자이신 등대지기 목자의 메시지를 전해드리므로서 원어 성경으로 돌아가는데 저와 여러분이 함께 힘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목사는 오역인가?(목사는 사도나 목사가 아니라, 목자가 바른 번역이다!)’입니다. 첫째, 원어 성경에 목사는 없으며, 현대 성경 번역 과정에서 목자를 목사로 변역한 오역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임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은 목사입니다. 목사는 행정적으로 교회의 대표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지요. 목사 직임에 있어서 목사와 비슷한 어원이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로이(רעי))'라 하고, 헬라어로는 ‘포이멘(ποιμην)’인데,
신약성경에는 ‘포이멘(ποιμην)’이라는 단어가 18번 나오는 중에서 17번은 모두 목자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군데인 에베소서 4장 11절에만 ‘포이멘(ποιμην-목자)’을 목사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개역 성경을 위시하여 10여 종류의 한글성경과, 90여 종류의 영어성경에도 마찬가지로 목자를 목사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원래는 1968년의 신교인 기독교장로회와 구교인 가톨릭 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성경 원본을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해서 만든 책이 공동번역 성경입니다. 그 당시의 신구교 학자들은 성경번역의 원칙을 정했는데, 그것은 성경을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 라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대로 에베소서 4장11절도 목사를 목자로 번역했으나, 목사들이 생각할 때, 만일에 목사를 목자로 그대로 놔 둔다면 앞으로 개신교회 목회 존립문제가
심각하게 될 것을 우려해 당시엔 개신교 목사들이 가톨릭 신부들 때문에 목자를 목사로 바꿀 수가 없었지만, 그 후 개신교 목사들끼리 따로 모여서 목자를 목사로 번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사’를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원문대로 ‘목자’로 번역했고, 신구교 학자들이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와 가톨릭성경, 그리고 헬라어 학자들이 직접 번역한 성경에는, 올바르게 목자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 '목자'의 뜻은 '주님의 양떼를 돌보다' 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여기의 '목자'라는 말은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임무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서 신약의 목사 직임의 성격과는 다른 것입니다. 구약 가운데 선지서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내 안으로 오시는 선한 목자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명칭인 것이지요.
목사는 헬라어로 포이메나스(poimenaV) 즉 '목자'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선물을 언급하면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라는 구절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시제로 하나는 포이마니네 (poimaine)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요한복음 21장 16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라는 의미에 담겨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포이마나테(poimanate) 라는 단어인데, 그 뜻 역시' 양 무리를 치라'라는 뜻으로서, 베드로전서 5장 2절에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라고 권하는 내용에서 언급된 것입니다. 그리고, 목자를 목사직을 대칭해서 사용하는 단어는 포이메나스(poimenaV) 외에도 그 의미를 같이 하는 단어들이 몇 개 더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에피스코포스(επισκοποζ)'라는 단어로서 감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프레스부테로스 (πρεσβυτεροζ)'라는 단어로서 '장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뜻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포이메나스(poimenaV) 즉 ‘목자’라는 말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기르는 자' 라는 뜻으로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 직임이 목사 직임의 기원이 결단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두째, 목사 직임 기원의 바른 이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12절을 읽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장 5절 말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아멘..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은 거룩한 제사장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시에 사도의 필요성은 많은 성도의 공동체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이 성도를 대변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인데, 사도권은 계급의 분리가 아니라 은사의 구분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로. 감독. 집사를 임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 직책을 안수함으로서 권위가 인계되기 시작했지요. 사도행전 6장 6절 말씀!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디모데전서 4장 14절 말씀!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안수받아 계승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2세기초 단일 감독제도가 등장하면서 부터 교권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A.D 325년 니케아종교회의 이후부터 계급 즉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직제를 로마 가톨릭이 극대화시켰습니다. 감독이 감독을 안수하면서부터 교회내에 계급 구분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사도권의 전통이 베드로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팔레스틴적 회중인 베드로 계열과 헨라적 회중인 바울 계열 사이에 서로 갈등하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사도 계승의 차원을 살펴보면, 사도가 베드로, 요한, 야고보순으로 계승되는 것이 가톨릭의 제도에 의한 계승이고, 또 하나는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부활하신 주님의 환상에 따라서
증언자가 되고 사도로 임명을 받은 즉 영에 의한 사도권 임명 사이의 갈등이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임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은 목사입니다. 목사는 행정적으로 교회의 대표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 직임이 목사 직임의 기원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 왕. 선지자 직임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직임들이고,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도의 직임 역시 그 시기에만 단회적으로 있었던 직임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목자 대칭에 해당하는 목사 직임의 기원에 대하여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 대칭의 목사 직임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직임들과 무관하고, 또 신약시대에서도 사도 직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목사 직임을 부여할 때에 장로교나 감리교및 성결교 등의 경우에는 노회나 지방회에서 목사 후보생을 선발하여 신학교육을 받도록해서 시험을 거쳐 목사로 안수를 주어 세우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목사 직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은사와 직임을 각 사람에게 직접 나누어 주신 것 가운데 하나인 것에 불과합니다. 목사 직임자가 세례와 주의 만찬을 집행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 권징을 행하는 것은 전파되는 말씀의 능력에 의해 행해지는 결과인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고, 주의 만찬을 행하며,
성도가 서로 교제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하며, 말씀으로 책망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바르게 깨달아 택한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할 수있습니다.그래서, 바울 사도도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목자’와 ‘목사’ 차이에 있어서 목자’라는 말은 영어로는 shepherd(세퍼드), ‘양을 치는 사람’, ‘양치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목자라는 말은 양이라는 짐승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양들을 풍성한 꼴이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인도하고 지키며 수고하는 소박한 자를 가르킵니다. 이에 반하여 ‘목사’라는 말은 pastor(파스터) 또는 reverend(레베런드)라는 말로서,
목회자 또는 다른 사람과 특별히 구별되는 거룩한 자, 숭상할만한 자, 경외할만한 자, 공경할만한 자, 위엄이 있는 자, 성직자라는 의미가 매우 강합니다. 영어 reverend(레베런드)는 revere(리비) 라는 단어에 nd가 합쳐진 말인데, revere(리비) 라는 말은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하다’, ‘경외하다’, ‘존경하다’라는 의미로서, 다분히 계급적이고 권위적이며 특권의식이 강한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목자’와 ‘목사’라는 용어는 상이한 성격을 담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자’는 단순히 교회를 돌아보는 은사를 지닌 교회 일군을 의미하고 있으며, ‘목사’는 일반 성도들과 신분적으로 구별되는 성직자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초대교회 때에는 오늘날과 같은 ‘목사’라는 직임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장로들이 ‘목자’의 은사를 가지고 그러한 일을 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는 장로인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직접 자세하게 언급이 되어 있어도, 디모데전서 3장 1절에서 13절까지와 디도서 1장 5절에서 9절까지에 언급되는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일절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초대교회 시기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있었다면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그 때에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교회가 세워진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목사의 자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뿐만 아니라, 더러 아예 ‘목사’라는 단어조차도 없음을 봅니다. 신약교회인 초대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교회와 관련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 중에 ‘목자’라는 단어는 총 6번 밖에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처음 형성되어진 과정부터 점차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는 ‘목자’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사용되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서신서에 5회 사용되었고 계시록에 1회가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11절은 교회 안에 성도들을 돌아보는 은사로서의 목자를 말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13장 20절. 베드로전서 2장 25절. 베드로전서 5장 4절. 계시록 7장 17절에 나오는 목자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고, 유다서 1장 12절에 나오는 목자는 이단자인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키면서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고 표현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초대교회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있었다면 사도행전에 최소한 몇 번은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었을 것이며,
특히 각 교회에 보낸 서신서에는 당연히 매번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장로에 대한 언급과 또 그 자격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장로들이 교회를 돌아보면서 다스리며 목회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당시 유대의 가난한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구제헌금을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30절 말씀!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아멘. 왜 구제헌금을 목사에게 보내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장로들이 실제로 교회를 다스리고 교회를 인도하며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로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교리적인 문제가 있었을 때 12사도들과 함께 의논 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절 말씀!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사도행전 15장 4절 6절 22절 23절 말씀!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그렇다면, 왜 이 중요한 회의에 목사가 빠졌겠습니까?
이 해답은 그 당시에는 교회에 목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규모가 작고 재정이 부족해서 목사를 세울만한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처움부터 초대교회 안에는 목사라는 직위가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애당초 성경에도 없는 독신 신부제도. 교황제도를 만들었고, 개신교는 이것을 모방하여 목사라는 직위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 사도는 교회 장로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역교회를 돌아보고 감독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성령께서 교회를 감독하도록 세운 사람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7절 28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다. 장로들이 오니,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아십니다.“.. 바울은 왜 에베소 교회의 목사를 부르지 않고 장로들을 불러 그들에게 목회자의 사명을 일깨워 주었습니까? 또한 베드로는 왜 목회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교회의 목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했습니까? 만약, 교회 안에 오늘날처럼 목사라는 별도의 신분이 존재했다면 당연히 목사에게 이러한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직임으로서의 목사 제도가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로들이 서로 그 역할을 분담하여 목회 활동을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그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장로들이 이와 같은 목회 활동을 하도록
교회의 감독자로 삼은 분이 바로 성령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목사를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라는 직분은 서로 다른 직분이 아니라, 동일한 직분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감독은 교회를 감독하는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장로는 그 나이와 신앙 경륜이 깊다라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감독은 장로 위에 있는 어떤 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장로는 동일한 직분이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모아놓고, 성령이 그들을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 의하면, 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그리고 비두니아 교회들도 장로에 의하여 감독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구절은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절 말씀!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 말씀!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뒤에,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맡겼다." 사도행전 20장 17절 말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다.” 빌립보서 1장 1절 말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디도서 1장 5절 말씀! “내가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둔 것은,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내가 지시한 대로, 성읍마다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새로 세워진 교회에
왜 목사를 세우지 않고 장로들을 세웠습니까? 여러 명의 장로보다는 한 사람의 목사를 세워 교회의 모든 것을 맡기면 교회가 일사불란하게 잘 돌아 갈텐데 왜 여러 명의 장로들을 교회 안에 세웠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수의 장로들에 의한 분담 목회를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장로! 사도 바울이 세우고자 했던 장로는 역할을 분담하여 다른 장로들과 함께 목회하는 장로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이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1장 7절에서 11절까지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흠잡을 데가 없으며,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폭행하지 아니하며, 부정한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오히려 그는 손님을 잘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경건하며,
자제력이 있으며, 신실한 말씀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는 건전한 교훈으로 권면하고, 반대자들을 반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종하지 아니하며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특히 할례를 받은 사람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그들은 부정한 이득을 얻으려고,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치면서, 가정들을 온통 뒤엎습니다.“ 아멘.. 베드로는 장로들이 권위주의자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절 2절 3절을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장로교 헌법에는 목사를 장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목사에 대한 정의를 성경에 기초한 장로의 임무에서 찾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목사도 장로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헌법 제2편 제5장 제24조 3항을 보면, ”베드로전서 5장 1절에서 3절까지를 근거로 하여, 목사는 모든 교인의 모범이 되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이다.“ 라고 했습니다. 신약교회인 초대교회 형성 이후에는 ‘목자’라는 용어가 교회 안에서 몇 군데 사용된 흔적은 있으나, 이 단어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직접적으로 지칭한 경우는 성경에 오직 에베소서 4장 11절과
유다서 1장 12절 두 군데 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11절의 경우에는 목사라는 직위를 말하기보다는 목자와 같은 일을 하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예레미야 3장 15절 말씀은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은 오늘날 목사 직임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목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오늘과 같은 목사라는 직위는 없었습니다. 이사야 56장 11절, 레위기 23장 2절 및 50장 6절, 에스겔 34장 2절 3절 말씀을 참조하십시오! 예레미야 3장 15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목자의 일을 할 사람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으로서, 궁극적으로 참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해 예언의 말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헌법 제2편 제5장 제24조 3항은 목사를 교회 치리하는 장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또다시 베드로전서 5장 1절 2절 3절의 말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목사들이 교회를 치리하며 목회 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처럼 ‘목사’라는 별도의 직임자가 교회를 치리하고 목회 했다는 근거가 성경에 한군데라도 있다면 그 성경구절을 근거로 삼았을 것인데, 그러한 근거가 성경에는 한군데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장로의 목회 자세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그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이 원칙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종교개혁자 칼빈(칼뱅)도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교회 정치를 주장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장로교라는 교단도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교회 내의 모든 직임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직임 행위에 있어서 성경의 표현을 뒷받침할 수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교회가 신학교를 통한 목회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일부 부정적인 시각이 있을지라도 하늘나라 확장하는데 있어서는 이 시대에 꼭 필요 불가결한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또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일정 부분 섭리해 가시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인 것들도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종교개혁 당시 말틴 루터나 칼벵은 교회 지도자들을 설교자 또는 선생이라고 호칭을 했습니다. 약 200년 전에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에 정착하여 개신교 총회를 결성하면서
교회 지도자를 성경이 제시하는 목자의 어원과 뜻을 목사로 변형 호칭했고, 개신교회에 정착을 시켰습니다. 그 제도가 한국을 비롯한 약소국가에 미국 선교사들을 파송시키면서 미국식 목사 제도를 가지고 교육시키며 전도하다 보니까, 그냥 그대로 어떠한 변론도 없이 정착해 버린 것이 오늘날의 목사 제도입니다. 결국 한국 개신교회 목사들이 성경 번역을 하면서 에배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목자를 목사로 번역해 버린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전해드린 메시지에 대하여 구독및 좋아요를 부탁드리며, 한국교회를 위하여 함께 공유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