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3AMS 기독교 사이트에 소개된, 방언에 대한 난해 성경구절인 사도행전 2장 4절을 가지고 방언이 무엇인지에 대한 2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셋째, 성경에서 방언 현상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성령이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했던 오순절 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참고하십시오! 참고로, 구약에서 방언이라고 언급된 것들은 모두다 어떤 민족의 언어나 외국어들을 의미했습니다. 창세기 10장 5절 20절 31절, 느헤미야 13장 24절, 다니엘 1장 4절을 참고하십시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제자들이 말한 방언도 모두다 외국어 방언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최소한 15개 지역 이상에서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향 말로 위대한 복음을 듣고 놀라 소리쳤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8절 말씀!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이 맨 처음 받은 성령의 은사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성령의 은사 중
제일 마지막에 두거나, 아예 생략해 버렸던 방언이었습니다. 로마서 12장 6절 7절 8절과 에베소서 4장 7절에서 11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그것은 방언의 은사가 그 당시의 환경에서 가장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5절을 보니,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메시야이심과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새로운 구원의 도리를 전 세계에 전할 다시 없는 기회였지요. 그러나, 거기에는 언어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 땅을 떠난지 오래되었고, 타향에서 태어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언어에 익숙하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 언어의 차이는 복음 선포에 큰 장애가 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도들의 부족을 보충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일생 동안 성취할 수 없었던 일을 그들을 위해 행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저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방언을 정확하게 말함으로서 해외에 널리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그들의 모국어로 강력히 전파되었습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이나마 언어의 혼란을 하나로 통일해 버린 바벨탑 이전으로의 회복인 셈입니다. 이것이 오순절날 방언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사정 하에서 주신 특별한 은사였습니다. 방언은 오순절에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는 없었던 은사입니다. 그리고,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19세기까지는 보편적으로 방언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방언 은사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따라 오순절에 주어진 것이라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거두어 가실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오순절의 순수한 방언을 오늘날에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언이 오늘날 보편적으로 필수적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넷째, 방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이 임하신 후
방언을 말하였으므로 오늘날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들도 방언을 말하는 것이 당연히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도행전 2장 4절. 10장 46절. 19장 6절의 세 경우에는 모두다 방언이 주어질 만한 중대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오순절의 방언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도의 목적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성령의 강림을 강하게 인상 짓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6절에 나오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있었던 방언은 이방인을 꺼려하고 하나님의 뜻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베드로 일행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차별없이 유대인과 똑같은 성령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강하고 확실하게 알리시기 위해서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절 3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은 요한에게 침례만 받았을 뿐,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