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뒤로 물러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성경의 "지옥"은 오역이며 "무덤"으로 고쳐야 한다!

 

* 원출처: S독립선교기관 / '다엘' 前導者

* 원제목: 죽음 너머 저편

* 부제목: 오해받는 세 성경절의 의미를 압니까?(지옥이 아니라, 이 세상이다!) - 제10부

* 수신자: 100℃ 물은 1분도 못견디면서, 5천℃ 이상의 영원 불지옥을 믿는 많은 교회들!

 

    ♧ 23분 설교 메시지 url, https://youtu.be/RRhhPULn6N0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 메시지를 정독하는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일부분 매끄럽게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저는 지난 6부에서 9부까지를 통하여 재림. 부활. 영생이 현재냐? 아니면, 미래냐? 또는, 무천년이냐? 세대주의냐?에 따라 질문자 답변에 다소 견해차이가 있을 수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답변자와 견해가 일치하는 것은 "영혼불멸과 영원지옥"인데, 이 사상과 교리는 이집트. 헬라. 중세 로마 가톨릭. 한국 불교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성경적임을 그리스도인이라면 확실히 알고 성경적인 내세관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예수복음 회개천국! 예수불신 지구무덤! 세상끝날에, 살아있는 쭉정이 신자와 비그리스도인을 하늘에서 쏟아붓는 유황불로 태우는 심판!"이 무슨 의미인지, 말씀으로 분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예수 성령께 기록된 성경말씀을 찾고 구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려 주시고, 들려주실 뿐만 아니라 깨달아 믿고 선포하기까지 진리의 복음으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예수믿기 전에는 불지옥이니

 

뭐니 전혀 상관없었는데,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유황불지옥을 마치 성경처럼 가르치면서 겁과 두려움을 주는 율법적인 무지막지한 하나님으로 곡해해서 믿게 하고, 협박. 공갈. 위협적인 전도를 하며, 교회건물 조직에 붙어서 종교 조직원처럼 봉사, 충성하면 천국가고, 십일조와 각종 헌금 잘바치면 현세와 내세에 복받고, 만약 십일조를 실천하지 않으면 저주받는다 라는 사기를 치면서, "교회건물 조직  안에 있으면 천국! 교회건물 조직  밖에 있으면 불지옥이라고 세뇌시켜 매우 폐쇄적인 다른복음으로 영적 혼란. 무질서. 혼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다엘' 전도자 메시지 총13부 중에서 오늘은 그 열번째 시간으로 오해받는 세 성경절의 의미를 압니까?(지옥이 아니라, 이 세상이다!) - 10'입니다. 먼저,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는 한인교회 그리스도인의 질문사항을 소개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텍사스로 이민을 와서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4년째 침례교회에 출석하는 정아무개 침례교인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설교를 듣고 궁금증이 생겨서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즉시로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데, 생전에 예수를 잘 믿었던 사람은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영혼은 지옥으로 가서. 수십억년 아니 영원토록 불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죽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는 상태로 지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설교 말씀을 들은 이후로 지금까지, 억장을 막히게 하는 슬픔과 고통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은 나름대로 선하고 성실하게 사셨던 분들이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채 작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년 봄이나 가을이 되면 떡을 만들어서 장독대에 차려놓고 절하셨고, 무당집에 다니면서 점도치고 푸닥거리도 하시던 전형적인 시골 농부이셨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 목사님의 그 설교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는 자다가도 문득 문득 부모님 생각만 하면 식은 땀을 흘리면서 몸서리를 치곤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계실 부모님의 영혼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처사가 너무나 잔인하고 불공평하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성경을 읽던 중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차라리 죽이시지 않고, 죄인의 영혼을 영원토록 고통스럽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이런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부디 성경적으로, 제 마음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 S독립선교기관의 답변입니다.. 오늘은 오해받고 있는 세 성경절의 의미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때에 대한 오해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 22절 23절 말씀!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바울은 자신이 죽는 순간에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을 기대했다고 해석함으로써, 영혼불멸을 뒷받침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작은 첫 번째,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즉 being with the Lord 라는 표현은 바울의 편지서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일관성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절 16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시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쫒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항상 주와 함께 있을 때가 언제입니까? 사도 바울은 재림의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죽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때가 되어야만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죽거나 끝까지 살아 있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조건이 결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작은 두 번째,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우리가 언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밝히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4절 말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여기에서도 재림의 때에야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작은 세 번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 때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 3절 말씀!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세단계를 설명하셨는데, 첫번째 단계로는, 예수께서 처소를 예비해야 하고, 두번째 단계로는, 예수님이 다시 와야, 즉 재림해야 하며, 세번째 단계로는,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는 것, 즉 그리스도와 함께 거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네 번째,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진술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시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거듭 밝힘으로써, 재림시에 있을 부활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고린도전서 15장 52절 설교 편지에서도,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도 설교하기를, ”만약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에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리라.”라고 말함으로써, 죽는 순간에 즉시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육신을 떠나서” 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은 재림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부활의 날까지 무덤 속에서 무의식의 상태로 쉬고 싶다는 말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두째,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의 의미에 대한 오해입니다. 작은 첫 번째,

 

고린도후서 5장 6절 7절 8절 말씀!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이곳 성경절에서도 다시 “주와 함께 거”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영혼은 불멸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성경절을 이용하여, 영혼은 육신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그렇게 표현한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편견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그 앞에 나오는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4절까지를 읽어보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한다”라는 말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4절을 읽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 줄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어서 썩어져 없어질 몸을 “장막 집”이라는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이라는 의미는 죽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역시 자신의 죽음을 베드로후서 1장 14절에서 예고하기를,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 안다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곧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는 무엇입니까?

 

4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는 때인 재림시에 부활한 몸이 입게 될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서, 바울은 부활의 시간에 영원한 생명을 지닌 새로운 몸 받기를 사모한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말에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의도를 더욱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영혼불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울은 육체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마지막 부활의 날에 새로운 몸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 전체에 나오는 영혼과 죽음과 부활의 사상이 크게 왜곡됩니다. 또한 5절에 나오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되는 때는, 썩어져 없어질 수밖에 없는 육체 대신에 영원한 생명이 담겨진 몸을 받는 때에 해당하는 재림의 때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8절에 나오는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란 무슨 뜻입니까?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사람이 죽으면 즉시 몸을 떠난 영혼이 그리스도 곁으로 간다는 말이겠습니까?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 그 대답이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말씀!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렇다면, 심판대 앞에서 각각 그 행한 것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는 때가 언제입니까? 재림의 때입니다. 

 

계시록 22장 12절 말씀!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다시 이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서 54절까지의 말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셋째,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의 의미애 대한 오해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 19절 20절 말씀! “..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한글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을 언뜻 잘못 읽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직후에 영으로 연옥이나 지옥 어디에 내려가셔서 노아 당시에 구원받지 못해서 고통당하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연옥같은 곳이 정말 있어서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두번째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두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곳에 계시된 말씀을 비롯하여, 죽는 순간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도 끝난다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7절, 로마서 2장 6절, 에스겔 18장 24절, 계시록 22장 12절 말씀을

 

참고하십시오! 두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사상은 죽음 이후에는 일체의 의식이 없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크게 상반됩니다. 만약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 하필이면 노아 홍수 당시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특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도무지 있을 수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3장에 나오는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작은 첫 번째, 전반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이 말씀의 뜻을 자칫 오해하여,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에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어

 

살아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메시지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지니셨던 연약한 인간의 속성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심으로써 원래에 하나님으로서 지니셨던 영적인 속성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경에는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잘못 번역된 말이, 영어 성경에는 “made alive by the Spirit”, 즉 “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올바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즉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성령을 통해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받으셨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다음에 이어지는 성경절에서도 확인됩니다. 로마서 1장 3절 4절 말씀!

 

“이 아들로 말하자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부활하셨던 그리스도께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그분과 같이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일어나는데, 성경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0절 11절 말씀!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비록 육체는 죽을지라도 성도들에게는 부활이 보장되며 

 

영원한 생명이 약속됩니다. 바로 이것이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나 영으로는 살려냄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작은 두 번째, 후반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여기에서,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이며, 도대체 “옥”은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여기에 나오는 “옥”은 감시를 통하여 행동을 속박받는 뜻의 감옥, 즉 prison을 말합니다. 또한, “영들”의 헬라어 원어는 앞에서 배운 바와 같이, “프뉴마”로서 “생명”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면 옥에 갇힌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옥”은 어디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지옥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을 뜻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옥”을 어두운 세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42장 7절 말씀!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또한, 시편에서는 “옥”을 영적인 어두움을 묘사하는 표현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시편 142편 7절 말씀! “내 영혼을 옥에서 끌어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마태복음 4장 15절 16절 말씀!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옥”에 갇힌 사람들, 즉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듯이.."..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죄에 속박되어 영적인 흑암에 갇힌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서도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 말씀!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기에 “옥에 있는 영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성경은 그들의 정체를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께서 노아 홍수 당시에 멸망을 당해서 지옥에 간 혼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불순종하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6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라는 말씀도 과거에 죽은 자들 역시 그들이 살아 있을 당시에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들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죽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더라면 변명의 여지가 있겠지만, 성령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듣거나 깨닫고도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영원히 버림을 받는 준엄한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어떠한 태도를 나타내며 살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되며, 일단 죽은 다음에는 구원을 위한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이제 메시지를 청취하신 분들 각자가 답변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3가지 성경절의 의미를 아십니까?”.. 여기까지 입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11부 메시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