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부흥회나 기도원 쫒아다니며 받은 거짓 방언& 통역 버려라!

 

* 원출처: 바른믿음  

* 펌출처: 네이버 블로그 - greatimpact 

* 원제목(2021년): Babbling 옹알이 방언 기도를 버려라 - 제4부 

* 부제목: 목사님은 어떤 영적 체험이 있으신가요?

* 수신자1: 베리칩, 천국지옥 체험, 세대주의, 방언및 통역 등의 신비주의 표적을 쫒는 목사들!  

* 수신자2: 베리칩, 천국지옥 체험, 방언및 통역 등의 신비주의 등의 목사 교리만 쫒는 지체들!

 

                                             ♧ 25분 메시지 url, https://youtu.be/aRxFDz_1N7c

 

[Babbling의 사전적인 뜻과 의미]

 

와글와글, 왁자지껄(여럿이 한꺼번에 떠드는 소리), 횡설수설, 지껄임(알아듣기 어렵게), 소리내며 졸졸 흐름(물이), 재잘거림, 주절주절, 아기말 소리(다다다, 가가가, 바바바, 푸푸푸, 만만마 등), 예문: 옹알이 단계에 있는 8개월 아기(an eight month old baby in the babbling stage)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의 메시지 제목은 'Babbling 옹알이 방언 기도를 버려라(목사님은 어떤 영적 체험이 있으신가요?) - 제4부'입니다. 랄랄라 따따따 울랄라 같은 공포스러운 현대교회 방언을 성경의 방언이라고 끝까지 똥고집으로 주장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각종 포털이나 유튜브 검색을 하다가 4부로 처음 접속되셨거나, 3부를 조금 듣다가 랄랄라 따따따 울랄라 방언이 성령께서 주신 방언이 아니라니? 하면서 듣기를 중단해 버린 사람이 어떻게 검색하다 보니까 눈꼴사납게 4부가 재수없이 걸려 들어서 그래 무슨 말을 씨부리나 좀 보자!하면서 들어오신 분이 계시다면, 아는 길도 물어서 가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자! 내가 다 안다고 큰 소리치지 말자! 가르치는 마음을 내어 버리고 뭐든지 내가 다 아는 것 아니니까 일단 듣고 파악해 보자! 이런 마음으로 4부를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3부 끝말미 메시지를 못 들으셨을

가능성이 높은 분들을 위해 노아박 덧붙임을 먼저 들려드리고 진행하겠습니다. 많은 이해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노아박 덧붙임 메시지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횡설수설하는 방언. 뇌 속에서 떠오르는대로 갖다 들이대며 절제가 잘 안되는 사이비 방언 통역.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 또는 찬송가 곡조에다 혀가 풀려 제 멋대로 지껄여대는 뜻없는 소리를 얹혀서 불러대는 방언 찬양을 아직도 붙잡고 계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뭔가 있어 보이고 신령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오순절 '방언'과 고린도교회의 바울을 포함한 극소수 성도가 받은 방언은 100% 외국어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가짜 방언은 상당수 은사주의자들이 성령충만이 아닌 사단충만을 받아 무당도 방언하고 통역하는 것과 똑같은 지절거림을 방언이라고 나불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뭔소리인지도 모르는 방언 한가지만 사단에게 받은 사람은 오늘 메시지를 들으면서 끊기가 쉽겠지만, 사단이 준 방언이니까 그 망할 사단이 그 사람 속에서 아무말 대잔치 거짓말 계시로서, 본인이 통역한 말이 도대체 중언부언 오락가락 방언에 대한 통변 통역의 맞고 틀림조차도

모르는 가짜 방언 통역에 꽉 붙잡혀 중독된 사람들은 백해무익한 마약 또는 담배끊기 만큼이나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권능을 받아 단호하게 끊어내야만 합니다. 적어도 방언이라함은 이 말이 어느 나라 외국어인지 진짜로 그 외국어를 방언 통역하는 사람을 통해서라도 알게 되어야 내가 받은 방언이 진짜 외국어였구나!를 발견하고 뒤로 나자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외국어 방언 표적을 오순절 성령강림 때와 고린도교회에 일부 허락하신 것은 외국어로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한 표적이었으나, 성경 66권이 완성된 이후에는 성경으로 복음을 캐내어 진주와 같은 보화로 내 소유를 삼아 가져갈 수도 있고 나누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필요가 없는데, 21세기에도 진짜 성령 방언및 통역 은사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멘이십니까? 극히 드문 일이지만, 어느 선교사가 속한 교회에 선교 보고겸 설교하는 시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두 자매가

영어 방언을 받았는데, 중고대 과정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임에도 상대방이 영어로 말하면 한국어로 알아듣고 한국어로 생각한 것을 영어로 말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영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선교사가 지어낸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 모두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직접 그 현장에 함께 있었거나 두 자매를 아는 분이 증인으로 증거해 준다면 사실로 확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아무튼 또다른 박아무개 목사가 외국어 영어 방언받기 세미나를 개최하는 활동도 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생활 영어를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영어 방언받기 기도를 통하여 박목사 본인이 유창한 영어가 터졌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외국어이고, 통역은 이 외국어를 우리말로 동시 통변하는 것을 말한다는 점은 분명하니, 이 점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오늘은 원출처가 바른복음이고, 펌출처가 네이버 블로그 - greatimpac에서 어느 파송 목사인 선교사가 쓴 메시지를

청취가 편하시도록 잘 다듬어서 음성으로 변환하여 총4회로 전하게 되는데,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4회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전해드립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 “하나님이 나에게 말했다”는 직통계시화법(直通啓示話法)에 대한 것입니다. 작년 말 선교사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잘 아는 교회 부흥 강사로 왔었다는 분의 설교 테이프를 잠시 들었습니다. 예수전도단 YWAM 김땡땡 간사라는 이 분도 역시 말끝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했다“라고 특유의 직설 화법이 귀에 거슬렸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만 특별한 비밀 정보를 제공해줘서 그렇게 했더니 성공(成功)을 했다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기도 해보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기도가 무당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간에 직통 계시를 말하는 ”예수전도단 선교사들의 특허품(特許品)”으로 마치 신앙의 상대성이 적용되는 것처럼 말하고, 그의 말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는 듯이 그럴듯하게 말을 합니다. 만약 이 부분의 문제점을 제시하려고 한다면 마치 하나님의 메시지 권위를 깎아내리거나

문제 삼거나 하는듯한 죄책감을 일으키게 하고, 나는 들었는데 상대방인 너는 왜 듣지 못하냐? 라는 식의 우월감(優越感)을 은근히 과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여기 내게 뭐라고 말씀하는지 깨달음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그것이 마치 나에게만 직접 말하는 직접 계시인양 인상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직접 계시 화법을 빙자하여 자기 의를 과시하는 허세(虛勢)의 한 수단일 수 있음에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3. 선포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남아공 East London시의 한 중심가 어느 가정 교회에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특별 기도집회가 열렸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왔다는 흑인 목사는 “Satan! go out in the name of Jesus!”를 하루 종일 방언하듯이 외치는 기도를 하면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떠들었습니다. 두란노에서 발간한 “선포기도“라는 이책은 Steven Furtick이 쓴 책입니다. '기도의 무기력증을 걷어차고 대담하게 기도하라!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도록 기도하라!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참여하라! 불가능은 있다 그러나 불가능은 없다! 이 시대의 여호수아가 되라! 태양아, 너는 기드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라고 예시를 들어 그리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0장 12절을 참고하십시오! 어떤 분은 선포기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개 마음이 움직일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관계가 온전케 될찌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관계가 온전케 회복되었음을 선포하노라! 선포기도를 하루에 3~4번 정도 했습니다. 선포기도가 제게는 힘들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듣고 하루에 100번 이상 선포기도를 할 것입니다. 더 확신가운데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저에게 행하실 놀라운 이루심을 간증하러 다시 오겠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선포하라.“ 이것은 조아무개 목사의 ”4차원의 영성“에서도 이미 이야기한 바 있듯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믿음의 언어인 4차원의 레마(Rhema)로 선포하면 그 믿음의 선포(宣布)가 꿈을 성취(成就)시켜준다고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축복 씨크릿“이라는 제목으로

 

'선포의 법칙, 바라봄의 법칙, 감동의 법칙'이란 글을 계속 올리던 베트남의 김치복 선교사와 한번 펫북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것은 나의 20대 신앙생활을 통째로 사로잡아 먹어 버렸던 변태 심리학 그 자체입니다. 비성경적, 비윤리적, 비양심적, 비신앙적으로 흘러가면서도 세상적 욕망충족(慾望充足)이라는 실제 눈에 보이는 매력(魅力) 때문에 돌이키기 힘든 중독성 마력(魔力)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4. 주여 3연창(連唱, 連呼)에 대한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 안에서는 큰 소리로 “만세 3창”처럼, “주여 3창”을 하고 통성기도를 들어가는 것이 보통 기도의 관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죠킹이지만, 한번 부르면 별 효과가 없고 세 번이 효과적이라면 10번이고 100번이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항간에 혹자는 다니엘서 9장19절에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의 구절과 성부, 성자, 성령의 3위 일체를 각위(各位)마다 지칭하여 부르는 것이라고 하는데

 

정당한 근거라기보다는 억지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자칫 바알 선지자들이 발람을 부르거나 무당들이 펄펄뛰면서 신을 부르는 주문처럼 무속적 미신적(巫俗的,迷信的)인 행위가 되어 소위 강신(降神)을 부르는 종교적 절규로 비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6절에서 29절까지 참고하십시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밀한 중에 기도하면 은밀한 중에서 들으신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6절 7절 8절 말씀을 참고하십시오! 5. 통성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교회도 이 통성기도를 아주 좋아합니다. 한번은 통성기도가 자칫 기도의 혼란을 준다고 판단하고 우리 교회의 공적인 예배에서 통성 기도를 배제했습니다. 그 대신, 한꺼번에 3명에서 4명을 지정하여 기도 제목을 각각 따로 주면서 대표 기도를 하도록 했는데, 처음에는 통성기도에 익숙했던 분들 중에는 돌림 대표기도가 신이 덜 난다고 불평하는 교인들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907년 길선주 목사의 평양 대부흥운동 때에 시작됐다는 이 기도 스타일은 주여 3창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기도 형태입니다.

 

주로 저녁과 새벽 집회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기도 양식인데, 'Korean prayer style, One cord prayer'라고도 합니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전직 이 대통령이 무릎꿇고 통성기도에 참여하는 뉴스가 전파를 타고 구설수에 올랐던 기도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 곳 통성기도에 처음 참석한 한 초신자는 엠프의 큰 음악 속에 신자들이 손을 들고 큰소리로 울부짖는 기도에 쇼킹해서 두번 다시는 그런 집회에 가지 않겠다 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통성기도를 할 때 남의 기도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남보다 더 큰소리로 자기 소리만 들리게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목소리가 적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 것입니까?남이 듣든 말든, 자기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이기적(利己的)인 생각으로 뭉친 사람은 별문제 없겠지만,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사람이거나, 남의 큰 목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목소리가 아예 기어 들어가 버리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말씀입니다.

 

이렇게 떠드는 시끄러운 곳에서 집중 기도 훈련을 해야 믿음이 강해져서 엑스터시에 빠지기도 하고, 방언기도도 받고, 다른 은사도 받는다고들 하는데, 성령께서는 이렇게 요란한 것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십니까? 저만의 생각일까요? 각자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두째, 주님은 비디오를 주지 않고 책(written revelation)을 주셨습니다. 이 시대는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입니다. 최근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The Boy Who Came Back From Heaven”)의 저자 알렉스 말라키(Alex Malarkey)가 “천국 얘기는 내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양심선언을 했다고 합니다. 2004년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알렉스는 충돌시의 충격으로 전신마비가 왔습니다. 사고로 2개월 간의 혼수상태에서 천국을 체험했던 경험을 담은 책!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을 그의 아버지인 케빈 말라키와 공동 저술하여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알렉스 말라키는 “나는 죽지 않았고, 천국에도 가지 않았다.

 

내가 천국에 갔다고 말한 것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쓸 때 나는 성경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거짓된 이야기로 이익(利益)을 얻었고 거짓이 계속되었다. 성경을 충분히 읽어야 한다. 성경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은 그 어떤 것도 무오할 수 없다. 이 책이 계속해서 판매되고 있는 것이 수수께끼와 같고 괴롭다.”라고 인터뷰한 내용이 뉴스를 탔습니다. 이 기사는 약 25년 전 국내와 해외에 “내가본 천국”이라는 간증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펄시 콜레(Percy Collett)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당시 펄시콜레를 초청하여 집회를 했던 그 교회는 그의 비성경적인 황당한 내용 때문에 집회를 완전히 망쳤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지도자들이 온갖 거짓으로 중상 모략하여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뒤흔들면서 그의 가르침과 리더십에 의문을 갖게 하므로써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이었는데,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교인들을 위해,

 

“무익하나마 (useless)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라고 하면서, 고린도교회의 영적 혼란을 수습의 일환으로 무려 14년간 숨겨 두었던 영적 체험을 아주 조금만 털어 놓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5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아마 하나님은 바울이 복음 때문에 받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에도 좌절하지 말고 그의 미션을 수행하라고 격려하기 위해서 직접 하늘나라 상급의 단편을 미리 보여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전 총신대 교수였던 신땡땡 목사는 “내가 본 지옥과 천국”을 간증하고 다닙니다. 꿈을 꾸는 중에 영적 체험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간증한다는 그의 태도에서 이미 사도 바울과 같은 지도자의 기본 자세와 거리가 한참 멀게 느껴졌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있다.”라는 그의 말 한 마디만 보아도 그의 간증은 가짜 일색입니다. 한편, 어느 날 공립학교 순회 예수 영화를 상영하면서 과연 이 사역을 주님이 받으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학교를 컨택하고 날짜를 정하고 정규 교과 시간을 특별활동으로 할애 받아 복음을 전하는 역동적인 사역이지만,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전도를 마치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 차를 파킹하고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아주 부드럽고 감미로운 팔로 나를 번쩍 안고 하늘로 훨훨 올라갔습니다. 이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의 사역을 기뻐 받으신다는 확신을 더 갖게 되었지만, 저는 더 이상 그런 꿈을 원치 않았습니다. 주관적인 영적 체험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인데,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객관적인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여 받은 것으로 틀림없이 하나님이 주신 방언 Babbling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붙잡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이방 종교 영성에도 방언은 얼마든지 있는데, 만약 그 Babbling이 사탄이 준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험하라는 말은 검증(檢證)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의 방언 현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Babbling이든, Languages이든, 통역을 통해 모니터링을 함으로서 철저히 검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항간에 방언 Babbling 옹호자들 중에는 한결같이 이런저런 변명을 하면서 검증(檢證)하라는 하나님 말씀의 명령을 거역하기도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바블링 무지에 속아서 허비된 세월을 개탄하며 쓰레기처럼 버리는 두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본 것! 자신이 체험한 것은 자신만의 어떤 확신도 줄 수 있겠지만, 자칫 그 확신 때문에 말씀의 분별력을 상실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코 비디오를 주지 않고 그 책을 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셋째, 이른바 Babbling 신비 옹알이 방언기도, 이것을 방언의 은사라고 해야 하는가?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방언의 해석이 여러가지 이유로 상당히 비성경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리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른바, Babbling 신비 방언기도! 이것을 방언이라고 해야 하는가? 은사라고 해야 하는가? 그 문제가 무엇인가?를 붓 가는대로 쓰기 어려운 잇슈를 나름의 체험을 섞어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미 여러 목사들의 각고의 노력과 영적 통찰력으로 많은 성경적인 자료와 임상 실험의 자료를 내놓았고, 여러 바른 믿음을 탐구(探究)하는 선각자들의 용기있는 비판이 많이 있습니다. 이 자료들이 모두 완벽한 자료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현장 임상실험 연구는 박수받을만 합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응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그 교회 전통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현재의 한국교회는 보수니, 진보니, 개혁주의니, 뭐니 할 것 없이 이 카리스마틱 파도 속에 

 

휩쓸려 고린도교회의 침몰 직전의 안타까운 상황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이 잇슈는 두 형태로서 첫째로는 언어(Languages)의 은사가 주님 재림하는 그날까지 성령의 직접 터칭이나 임파테이션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 그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 말씀!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데, 웬일인지 성경이 말하는 방언, 진짜 언어(방언, Original languages) 은사는 논외로서 어디론가 아주 멀리 사라져 버렸고, 언어가 아닌 옹알이 Babbling 기도 은사가 이 언어 즉, 방언의 은사를 대표하는 양 그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즉 계시적 표적이었던 고린도전서 14장 22절의 방언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일반화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거기에서 가끔 신사도(New Apostles) 아저씨들도 출현하여 사도들이 했던 것과 같이 

 

동일한 이적, 표적의 역사가 나타나 사실 성경적인 표준이나 마찬가지라고 큰소리를 치는 입장입니다. 방언 예찬자들은, “보라! 세계교회가 다시 들어 가는데 현재 양적으로 부흥하는 교회, 뜨거운 영적 역동적인 신자들, 교회들은 전 세계적으로 단연 카리스마틱 교회 뿐'이라고 말하고, 또 아무리 성경말씀만 강조해봤자 성경 가지고는 안되니까, 소그룹  셀 교회와 대그룹 축제예배라는 두날개, D12, G12, 셀, 알파코스 등 뭔가 직접 눈에 큰 그림으로 보이는 화끈한 것을 해야만, 생동감 있는 목회! 성공적인 목회를 유지하는 목회적 현실(牧會的 現實)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들과 또다른 한편의 주장도 있습니다. 성경 기록 계시, 정경(cannon)의 완성으로 그 절대성(絶對性). 충분성(充分性). 최종성(最終性)으로 문제의 표적 방언의 은사는 끝이 났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8절 말씀!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하면서 주장하는 양측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외국어 방언 은사가 오순절 때처럼 갑자기 임합니까? 아니면, 교회 방언 학원이나

 

체면술사에게 공부해서 하면 안됩니까? 은사는 구해야 하지만 표적 은사를 구한다고 문제가 됩니까? 어떤 표적이나 기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계시적인 정경을 대치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성령께서 신자에게 기적으로 인도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그의 말씀으로 인도하시십니까? 바울은 방언 금지라고 푯말을 간단히 써 붙이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길게 설명했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저의 질문이나 의문이 이렇게 끝이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방언 언어(Languages)의 은사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sign, 증명, 증거하는 도구나 수단)”적인 은사라고 깨끗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2절 말씀!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당시 지중해 연안에 4,000여 공용어 방언이 산재하는 미전도 종족을 향해

 

복음을 외치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이 때를 따라 입을 열어 역사하셨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런 역사가 있습니까? 앞으로 어떤 성령의 특별 역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역사적으로 또는 구체적인 세계 선교계에 그런 정보나 통계를 찾기 힘들고, 선교사를 훈련할 때 성령의 직접적 터칭에 의한 언어 은사 체험이 아니라, 선교 필드의 언어학교(Language School)에서 일정기간 기본 공용 언어 훈련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선교사 훈련의 기본 상식에 속합니다. 결국, 취사선택(取捨選擇)은 각자의 몫이 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Babbling 옹알이 방언 기도를 버려라' 1부에서 4부까지 총4부를 모두 다 들으셨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성경과 다른 방언및 방언 통역을 버리신 분들은 정말 지혜로운 결단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1부에서 4부까지 모두 들으시면서 성경과 다른 방언및 방언 통역을 버리기로 작정하신 분들이 오늘 지금 계시다면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단이 준 가짜 방언 폐기 처분에 대해 환영하는 바이며, 기립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영리, 비인기 그리스도인 유튜버 노아박 전도자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출처 url: 바른믿음(http://www.good-faith.net)

☞ 펌출처 url: https://url.kr/hnj3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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