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도 네이버 "숨겨진 진실"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탄산수' 전도자께서 성경과 다르게 기독교 종교단체에서 잘못 가르치고 믿고 있는,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에 대한 글 메시지를 총5부로 나누어 음성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국내외 한국 개신교 안에서 "사람의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죽자마자, 예수님을 믿는 의인들은 천국에 들어 가고, 악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로 소금치듯하는데, 구더기도 타죽지 않는 지구 지하 깊은 공간에 갇혀서, 사단 마귀들에게 영원무궁하도록 괴롭힘 당하면서 죽지도 못하고 탈옥하지도 못하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외에도 특별식으로 전세계 천국지옥 신비체험 거짓말들을 진리처럼 믿고 사람들에게 전해주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1부에서 3부까지의 메시지를 듣고도 그것들을 깨끗하게 버리지 못하고 계십니까? 오늘 4부 메시지를 들으면서 영적인 눈이 떠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마약을 코로 흡입하고 주사를 맞으면 "완전한 사망(영혼소멸)"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4부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에는 네차례나 네페쉬가 동물에게 사용됐습니다. 창세기 1장 20절의 바다 생물! 창세기 1장 2절의 큰 바다 생물! 창세기 1장 24절의 육지 생물! 창세기 1장 30절의 새들과 육지 생물입니다. 창세기 2장은 네페쉬를 사람에게 적용시켰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네페쉬는 살아있고 쉼쉬며 의식이 있는 몸을 의미합니다. 불멸의 영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 몸과 다른, 불멸의 영혼 개념은 바벨론 유배 이전의 유대교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페르시아의 종교 철학과 희랍 철학과의 접촉으로 인하여 이런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네페쉬 Nepes [v,p,n] 는 결코 불멸의 영혼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네페쉬는 생명 그자체, 피조물, 생물, 호흡하는 산 자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네페쉬의 또 다른 용법은 이렇습니다. 신명기 12장 20절, 사무엘상 2장 16절, 잠언 25장 25절의 성구는 네페쉬를 사용해서 사람의 물리적인 필요! 이를테면, 배고픔과 갈증을 표현했습니다. 잠언 23장 2절은 지나친 욕구를 표현했고, 사무엘상 1장 15절은 달성되지
못한 욕망을 표현했으며, 시편 42편 1절 2절은 영적인 욕구와 자의적인 욕구를 표현할때 네페쉬를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26장 8절 9절은 공의를 표현했고, 잠언 21장 10절은 악(evil)을 표현했으며, 사무엘하 3장 21절은 정치 권력(power)을 갈구하는 주체를 묘사할 때에도 네페쉬를 사용했습니다. 네페쉬에 의해 표현된 다양한 감정들도 구약에 나옵니다. 이사야 1장 14절은 미움을 나타내었고, 예레미야 13장 17절은 슬픔을 나타내었으며, 시편 42편 5절은 기쁨과 환희와 걱정을 나타낸 반면에, 사무엘상 1장 15절은 불행을 표현했는데, 표현의 주체는 모두 네페쉬입니다. 베이커의 성서 신학의 복음사전을 보면, 네페쉬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같이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구약에 따르면, 모르탈 즉 멸성인간은 하나의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산 영혼 그 자체이다. 산 영혼은 두 부분이나 세 부분으로 분리되는 대신, 통합된 하나의 존재이다" 에스겔 18장 4절은 네페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Berean Study Bible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읽습니다.
"보아라! 모든 영혼은 내게 속한다. 아버지와 아들 둘 다 내 것이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 것이다(ehold, every soul belongs to Me; both father and son are Mine. The soul who sins is the one who will die)." "범죄하는 그 영혼"은 "범죄하는 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도 네페쉬가 사용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나와 보이지 않는 영혼이 분리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범죄하는 그 사람이 곧 그 자의 영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통합된 전체로서의 한사람! 혹은, 동물 또는 생물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을 신세계역 성경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영혼과 몸을 둘다 게헨나에 멸할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십시오." 이번에는, 마태복음 10장 28절을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으로읽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지옥으로 번역된 원어는 게헨나(gehenna )입니다. ge는 골짜기라는 뜻이고, 헨나는 힌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 혹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결단코, 마태복음 10장 28절이 영혼불멸을
가르치는 성구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대한 이해의 열쇠는 성서가 사용하는 "영혼, 네페쉬, 프쉬케"의 의미로 이 문장을 분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일, 이 성구를 읽는 사람이 영혼 즉 soul의 이미저리(Imagery)를 떠올릴때, 희랍 철학자 플라톤이 설파하던 "희랍, 철학적, 개념을 떠올리면 엉뚱한 교리가 탄생하고 맙니다. 유대인 성경을 보아도,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개역한글판의 "지옥"을 "게힌놈(Gei-Hinnom)"이라고 번역했습니다.[Matthew 10:28 Complete Jewish Bible (CJB)유대인성경 “Do not fear those who kill the body but are powerless to kill the soul. Rather, fear him who can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Gei-Hinnom.")] 28절의 프쉬케 곧 네페쉬가 영혼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용어지만, 반드시 "영혼"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영혼(soul)이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이미저리 때문에 독자들이 곡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조사한 모든 영문성경 번역은 "Soul"로 번역했습니다. 정통유대성경역에서는 번역팀의 "고민"의 흔적이 보입니다. 히브리 단어 " 네페쉬 "를 "soul"과 나란히 기재했습니다.
[Mattityahu 10:28 Orthodox Jewish Bible (OJB) "And do not fear those who kill the basar (flesh), but are unable to kill the nefesh (soul); but rather fear the One who is able to destroy both basar and nefesh in Gehinnom.")] 이 성구의 네페쉬 즉 프슈케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힌트는 다니엘서 12장의 맨마지막 성구에 나옵니다. 해당 구절을 보면, 천사가 다니엘이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은 잠깐 쉬다가 마지막 날 부활하여 자신의 생을 살아갈 것인데, 실제로 다니엘의 몸은 죽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나이가 차서 죽었으나, 하나님의 천사 예언처럼, 때가 되면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천사가 어느 인간에게 나타나서 죽는 것을 "쉬는 것"이라고 비유하며 알려준 것은 이 곳이 처음입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다니엘 12장 13절처럼 "쉼"이후에 다시 "일어날(rise)"거라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천사가 직접 나타나 설명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다니엘 12장 13절 말씀을 개역한글판으로 읽겠습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어서, 다니엘 12장 13절을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습니다.
[Daniel 12:13 New Living Translation “As for you, go your way until the end. You will rest, and then at the end of the days, you will rise again to receive the inheritance set aside for you.”)] 우리말로 번역하면, "첫째로, 너는 쉴 것이다. 둘째, 너는 너를 위해 준비된 유산을 받기 위해 다시 일어날 것이다."입니다. "죽음"을 "쉼"이라고 표현했다는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는 다시 일어난다고 비유했던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려면, 반드시 누워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자리에 눕는 것으로 보았고, 부활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했던 것입니다. 다니엘 12장 13절을 자세히 분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이곳처럼 분명하게, 마지막 날에 의인이 부활될 것을 천사가 언급한 성구가 없습니다. 게다가, 천사는 다니엘이 "유산" 혹은 "분깃"을 받기 위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한 다니엘이 받게 될 할당된 "몫"이, 정확히 "영원한 생명"인지에 대해서는 천사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다니엘이 다시 부활될 것을 예언한 것이므로, 다니엘이 부활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향유할 것을 언급했다고 보는 편이 바른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하나님이 죽음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이같은 부활의 언급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 12장 13절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타번역에서 다니엘 12장 13절이 다음과같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지속하라. 끝까지! 그리고, 너는 쉬게 될 것이고, 그리고, 너는 날들의 끝에 너의 분깃(상)을 받기 위해 일어날(부활) 것이다( Pero tú, continúa hasta el fin, y descansarás y te levantarás para recibir tu heredad al fin de los días)". 인간들은 매일 8시간 전후의 잠을 잡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인간들은 이것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다니엘에게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잠을 잘 때,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영혼이 구천을 헤메는게 결코 아닙니다. 사람의 의식 혹은 "잠재의식"은 여전히 그 사람의 내부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꿈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잠재의식이 다른 세계로 이동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꿈꾸면서 작동되는 잠재의식이 우리의 동기나, 우리의 욕망이나, 우리의 "inner person"이라고 표현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플라톤이 가르쳤던 영혼(soul)의 개념은 아닙니다. 플라톤이 가르쳤던 죽은 자의
몸에서 빠져 나온 "소울 / 영혼(soul)"이 제3의 장소로 이동한다는 개념으로 천사가 다니엘에게 설명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천사는 다니엘이 죽음 이후에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을 말한게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죽음을 마치 수면을 취하면서 "쉬는 것"으로 비유했으나, 그것은 다니엘의 생명 기능이 부활시까지 지속된다는 설명이 아니라, 단지 "알레고리"를 사용한 것 뿐입니다. 달리 말해서, 다니엘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있다는 설명이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부활한다는 사실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에 영혼이 불멸이고, 영혼이 죽는 그 순간에 제3의 장소로 이동한다는 영혼이동설이 "진리"라면(물론 절대로 그렇지 않지만), 다니엘이 죽었을때에 다니엘의 영혼은 어찌됐는지 "추리"해 봐야 합니다. 만일, 영혼불멸설이 "참 진리"라면, 다니엘은 의인이므로,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이동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천사는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런 해괴망칙한 개념대로라면, 다니엘이 천사로 변하는 시점은 다니엘의 사망 시점이 됩니다. 다니엘의 영혼을 하늘 천국으로 이동시키는데 수천년이 걸린다? 말도 안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죽는 그 순간에 다니엘의 영혼이 천국으로 이동한 뒤에 천사가 되어 영생한다? 앞으로 몇년 뒤면 천사의 입장에서 볼 때, 다니엘은 자기의 동료가 될 사람이다? 만일, 그게 다니엘이 경험할 미래라면, 어차피 다니엘의 미래를 예언하는 자리이니까, 천사는 그 점을 간단히 이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아! 너는 네 길을 끝까지 가거라! 너는 죽는 순간에 내가 살고 있는 천국으로 올 것이다. 그때 너를 위해 준비된 네 분깃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그때 만나자"라든지 아니면, 이와 비슷하게라도 언급했었어야 합니다. 왜입니까? 왜냐하면, 다니엘의 영혼이 죽는 순간에 몸에서 분리되어 이동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천사이므로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악인들의 영혼이
지옥으로 이동하는 것도 매일 매일 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의인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계속 이동해 들어오는 것도 날마다 목격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 12장 13절을 읽어보면, 천사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이 부활되는 그 시점까지 그러니까, 다시 일어나는 그 시점까지 "쉬게될"거라고 언급했습니다. 여기서, "쉴 거"라는 표현은 모든 번역판이 대동소이합니다. 부활되는 시점 역시도, 천사가 알려줬습니다. 천사는 마지막 날에" 혹은, "날들의 끝에"라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은 오랜 기간이 지난 "마지막 때"에 자신이 부활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이 죽음 속의 깊은 잠을 잘 거라는 것도 확실하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죽음의 잠을 자는 동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이동하지 못할 것임도 틀림없이 알았을 것입니다. 열한째,영혼불멸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에게 물어보는
8가지 질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혼불멸설 신봉자 여러분은 다음의 세가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해 보십시오! 열한째의 1. 다니엘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다니엘의 영혼이 천국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천사는 뭣하러 다니엘이 마지막 날에 부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까? 천사가 거짓말한 것입니까? 열한째의 2. 다니엘의 영혼이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만끽하면서 살고 있는데, 뭣하러 그를 다시 땅으로 부활시킨단 말입니까? 열한째의 3.다니엘의 영혼이 이미 하늘에 올라갔는데, 왜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3장 13절 말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이런 성경구절을 보고도 에녹과 엘리야가 이미 하늘에 올라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에녹과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갔다면, 모세나 아론이나 다니엘이나 욥이나 노아가 하늘로 가지 못할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에녹과 엘리야는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실 당시에 내용은, 처음부터 하늘에 살던 자는 인자 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에녹도 의인이고 엘리야도 의인입니다. 다니엘도 의인이고 모세도 의인입니다. 저는 이미 에녹과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라는 관점에서 성경적으로 분석한 메시지를, 또다른 제목으로 전한 바 있습니다. 만일, 모세가 죽자마자 하늘로 승천했다면, 왜 하나님은 신명기 32장 50절에서 "너는 네백성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천명하셨겠습니까? 여러분도 아다시피,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를 통과할 때, 나이가 20세 이상인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조리 광야에 묻혔습니다. 이들이 처벌받은 것은 창조주 여호와께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불법을 드러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가 그들과 함께 있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혹시,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악인들이었기 때문에 악인들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므로,
모세도 지옥불로 떨어질 것을 그런 식의 비유법으로 설명하셨단 말입니까? 열한째의 4.모세의 영혼이 죽는 순간에 제3의 장소로 이동했다면, 도대체 모세의 영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네 백성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리고, 모든 백성의 영혼은 지옥에 갔으므로, 모세도 "지옥"으로 이동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각자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신명기 32장 50절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 산에서 죽어라.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앞서간 겨레에게로 돌아갔듯이, 너 또한 앞서간 겨레에게로 돌아가거라." 열한째의 5.수많은 의인들의 영혼이 이미 하늘에 올려져 잘 살고 있는데, 왜 예수님(Yahushua)께서는 "부활의 첫열매" 혹은 "잠자는자들의 첫열매"라고 신약성경에서 표현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20절 말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게다가, "죽은자들"을 "잠자는자들"
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열한째의 6.만일, 모든 죽은 자들이 지옥이나 천국으로 이동하여 자신들의 행복이나 고통을 만끽하며 살고 있는데, 왜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죽은 자들이 "잠자고 있다"라고 표현했습니까? 잠자고 있는 것은 육체이고, 그들의 영혼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거나, 지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까? 만일, 잠자고 있다는 표현이 비유라면, 왜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영혼을 기준으로 말하지 않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 육체를 기준으로 말했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열한째의 7. 의인들의 영혼은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안착해서 잘 살고 있고, 악인들의 영혼은 그들의 목적지인 지옥에 안착해서 각자 자기의 여생을 살고 있는데, 왜 부활이 또 필요하단 말입니까? 열한째의 8.성서의 부활과 영혼불멸 교리가 어떻게 서로 조화가 된다는 말입니까? 각자 진지하게 생각후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어떤 자가 부활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악인이라면, 그는 의인들이 부활하는 마지막 날에 부활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그 자의 영혼(네페쉬)까지도 게헨나에 넣어 멸망시켰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을 스페인어 번역성경으로 보아도, 역시 주님의 비유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을 죽이는 자들은 영혼을 죽일 힘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게이-힌놈의 몸과 영혼을 모두 파괴할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 [Mateo:10:28(Biblia Kadosh역) "No teman a los que matan el cuerpo, porque no tienen poder para matar el alma. Por el contrario teman al que puede destruir ambos, cuerpo y alma en el Guei-Hinnom.")] 영혼불멸로 인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는데, 기독교도들은 마태복음 22장 32절도 "영혼불멸 사상"을 말하는 성구라면서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영혼이 현재 죽어 없어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그들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2절 말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시니" 이 성구는 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영혼이 어딘가에 떠돌아 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세 사람의 의인들이 과거에 죽었으나 그들의 보이지 않는 영혼은 살아있다는 뜻으로 주님께서 설명하신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표현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시내산 위에서 언급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와 조우하셨을때,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은지 오래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 세 명의 죽은 자의 하나님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세 명의 영혼(네페쉬)이 지옥이나, 연옥이나, 천국이나, 혹은 구천에 떠돌아 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세 명이 모두 살아있다는 뜻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계시록 6장을 읽어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 6장 9절 10절을 보면, 제단 밑의 죽임당한 영혼들이
소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살해당한 영혼들이 부활되려면, 동료 그리스도인 종들의 숫자가 채워질 때까지 죽음의 잠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6장 9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영혼"은, 죽은 거룩한 종들의 영혼이 성전의 제단 밑에서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들을 포함하여 순교당한 베드로, 바울같은 사람들도 현재는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그들 모두 때가 되면, 다니엘처럼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그들이 흰옷을 받은 상태라고 표현된 의미는 그들이 의로운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구를 오해하는 이유는 성서의 비유법과 은유법을 이해하지 못해서 입니다. 이 성구에도 네페쉬(프쉬케)가 사용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신약이든 구약이든 영혼에 해당하는 네페쉬나 프슈케가 나오면,
희랍 철학자 플라톤이 설파한 개념으로서의 영혼(soul)을 생각하지 말고, 창세기에나 혹은 에스겔 18장 4절에 나오는 영혼(네페쉬)의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성경을 엉뚱하게 잘못 해석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이 되고, 별들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성경구절의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마태복음 24장, 요엘서 2장, 누가복음 21장, 마가복음 13장, 계시록 6장에 나옵니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성서의 비유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의 경우, 문자적인 글자로 보고 하늘 천체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 뜻이 전혀 아닙니다. 첫째로는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직면한 카오스(혼란)에 대해 아무런 해법을 내놓지 못하며, 국민들이 그들(지도자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갖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며, 둘째로는 사회 정치 지도자들이 문자적 죽음에 처해질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열두째,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열두째의 1.전도서 12장 7절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루아흐는 생명의 호흡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고, 어느 번역본에서는 "breath"로, 다른 번역본에서는 "spirit"으로 번역했습니다. NIV 성경에서는 "생명을 주는 호흡"으로 표현했습니다. [전도서 12:7 (NIV) "So our bodies return to the earth, and the life-giving breath returns to God."] 한글역에서는 "영"으로 번역했습니다. [전도서 12:7 Korean Living Bible (KLB) "육은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스페인 번역본에서도 "영"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날에 먼지는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전도서12:7 Nueva Traducción Viviente (NTV) "Pues ese día el polvo volverá a la tierra, y el espíritu regresará a Dios, que fue quien lo dio."] 유대인들의 성경 OJB에서는 히브리어인 루아흐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아파르는 그대로 하레츠에게로 돌아가고, 루아흐는 그것을 주신 하엘로힘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전도서12:7 Orthodox Jewish Bible (OJB) "Then shall the aphar return to ha’aretz as it was; and the ruach shall return unto HaElohim who gave it."] 유대인 성경 완역본 CJB에서는 spirit 으로 번역했습니다.
"먼지는 원래대로 땅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전도서 12:7 Complete Jewish Bible (CJB) "the dust returns to earth, as it was, and the spirit returns to God, who gave it!"]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혼"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네페쉬" 대신에, 영이나 호흡을 의미하는 "루아흐"가 사용됐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불멸 사상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성구의 분석은 제가 이전에 기고한 "프뉴마(루아흐)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찾아서 정독하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열두째의 2.성서가 말하는 "죽은 자"의 상태는 어떻다고 이야기 합니까? 1. 기억이 없다. 시편 88편 12절 말씀!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수 있으리이까?" 2. 목적도 없다. 전도서 9장 10절 말씀!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3. 생각도 없다. 시편 115편 17절 말씀!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성경에는 이렇게 명확하게 쓰여져 있는데,
왜 이교도적인 철학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인간에게는 불멸의 영혼 같은 것이 일절 없습니다. 따라서, 영혼 이동설은 가짜입니다. 성경에는 영원한 불지옥. 연옥 그리고, 영원한 불지옥을 지키는 악마 그런 내용같은 것은 일절 없습니다. 그것들은 영감받은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죽어도 죽은게 아니다? 그런 것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인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결국에 때가 이르면 생명의 부활로 나옵니다. 그때까지는 비유적으로 죽음의 잠을 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존재의 끝을 의미합니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5세기 이전의 화가인데,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많은 그림 중에 중세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지옥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주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저런 그림을 그렸다? 4복음서 어디에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묘사가 있습니까?
메시아께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말씀하셨을때 강조한 요점은, 영혼이 고초를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부활이 없는 "소멸" 즉, "사라짐"이었습니다! 그런 점을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비유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새번역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이번에는 공동번역 개정판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사후세계에 관한 관념의 시작은 헬레니즘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마야인들과 고대 수메르인들과 고대 이집트인들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대의 유대사회에는 사후세계나 불타는 지옥의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사후세계의 개념은 기원전 323년에서 기원전 31년 사이에 헬레니즘이 유럽을 지배할 때, 유대지역 주변의 문화와 종교에 흡수됐습니다. 구약 성경은 대부분이 히브리어인데, 극히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됐습니다. 신약 성경은 희랍어와 아람어로 기록됐습니다.
(The word translated in English as ‘hell’, and used throughout the Old Testament, is the original Hebrew word). 구약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영어 사용자들을 위해 번역될 때, Hell로 대체됐습니다. 구약 성경의 필자들은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을 어떤 의미라고 알고 있었을까요? 구약의 필자들은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죽기 전에 의로운 삶을 살았든, 불의한 삶을 살았든, 아무런 상관도 없이 죽은 자라면 누구나 가는 곳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당연히, 그곳은 지식도. 목적도. 느낌도. 생각도 없는 곳이며, 생명으로부터 "단절된 곳"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전도서 9장 10절은 이렇게 스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9장 10절을 KLB(Korean Living Bible) 성경으로 읽습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네가 앞으로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도 없다." [전도서 9:10 Complete Jewish Bible (CJB) "Whatever task comes your way to do, do it with all your strength; because in Sh’ol, where you will go, there is neither working nor planning, neither knowledge nor wisdom."]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항상 "hell"로만 번역된게 아닙니다.
"Hell"로 번역한 번역가들은 단테가 설파한 개념을 독자가 갖도록 의도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만에 하나 그리했다면, 번역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번역가는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오로지"hell"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가는 철저히 조사하는 습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경우에 따라서 "grave"나 "pit"로도 번역이 됐습니다. CJB 성경 - 창세기 37장 35절. 열왕기상 2장 6절. 욥기 17장 16절. 이사야 14장 11절, KLB 성경 - 욥기 17장 16절, NTV 성경 - 욥기 17장 16절을 보시면 그런 사례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35 Complete Jewish Bible (CJB) "Though all his sons and daughters tried to comfort him, he refused all consolation, saying, 'No, I will go down to the grave, to my son, mourning.' And his father wept for him." / 열왕기상 2:6 Complete Jewish Bible (CJB) "Therefore, act according to your wisdom; don’t let his gray head go down to the grave in peace." / 욥기 17:16 Complete Jewish Bible (CJB) "Only those who go down with me to the bars of Sh’ol, when we rest together in the dust.” / 이사야 14:11 Complete Jewish Bible (CJB) "Your pride has been brought down to Sh’ol with the music of your lyres, under you a mattress of maggots, over you a blanket of worms."] [욥기 17:16 Korean Living Bible (KLB) "내가 죽으면 내 희망도 죽음의 문까지 내려가 나와 함께 흙 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욥기 17:16 Nueva Traducción Viviente (NTV) "No, mi esperanza descenderá conmigo a la tumba.《¡Descansaremos juntos en el polvo!》."] "구약 성경에서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은 도덕적인 구분없이 단순히 죽은 자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됐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국내외 한국 개신교를 비롯한, 기독교 종교단체들은 성경과 다른 거짓말들을 믿는 이단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다른 영의 다른 복음"을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지막 5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이나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께서는 맨 윗상단의 링크로 들어가셔서 로그인없이, 참예수 복음을 찾아 진리의 복음이라고 하는 진주와 같은 보화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