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참예수 복음을 전하는 Noah Bak 전도자입니다!"

* 원제목1: 삼위일체의 거짓!

* 원제목2: 삼위일체 반대론자는 양태론이 "또다른 삼위일체"임을 분별하고,

* 원제목3: 양태론의 거짓도 함께 드러내야 한다!

 

♤27분 메시지, https://buly.kr/GE5ZVBA

☞ 1. 가톨릭 삼위일체송: https://youtu.be/9Zg-dND0ols

☞ 2. 개신교 삼위일체송: https://youtu.be/TIKxD_ucq7g

☞ 3. 가톨릭에서도 부르는 개신교 삼위일체송: https://youtu.be/M4ONajuD_zc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튜브에 널려 있는 관련 영상이나 글 메시지를 보면, 지금이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인 예수 33년 시대인지, 중세 로마 가톨릭 시대인지 도통 헷갈리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이 매우 경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강연이나 설교만 했을 경우, 저 사람은 양태론자야!를 연상하게끔 만듭니다. 삼위일체론자에게 내 자신을 양태론자로 곡해하게 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데, 양태론은 중세 로마 가톨릭 시대의 바알 태양신 3신을 믿었던 종교인들이 삼위일체를 재해석한 "또다른 삼위일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사람 영혼 속을 길들여서 각인시키려고 하는 신은 반드시 셋이어야만 하고, 그 삼신이 한분이라는 최악의 거짓말을 참말이라고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태양신 바알 3신"과 "성경의 한분 하나님"을 결합시켜 만들어 낸 것이 삼위일체와 양태론입니다.

 

로마의 황제와 다수의 종교인들은 양태론을 짓밟았고, 삼위일체야말로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이라고 반포했으며, 누구든지 삼위일체를 참신으로 믿으라고 했는데, 안믿거나 양태론에 속해 있으면 모두다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현대교회는 중세 로마 가톨릭 시대의 후예라도 된 것처럼, 삼위일체에 미쳐 있고 양태론자를 북한 공산당보듯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양태론을 지지하면서 양태론이야말로 바른 신관이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니, 어리석은 양태론 신봉자로 보고 대단한 착각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마실 것을 먼저 부탁합니다. 성경에 글자로 분명하게 쓰여 있으니까,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이신 예수 성령께서는 아들이 없습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마리아의 몸을 택하여 성령으로 스스로 잉태하셔서 아기로 태어나 하나님의 사람의 형체인 아들의 모습으로 33년 계셨지만,

 

그 예수님의 존재가 "영존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속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로는 영원토록 동일하신 창조주 여호와이시고 예수이시며 성령이신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예수로 오신 것은 3차원의 시공간 33년이라고 하는, 한 경점! 곧, 찰나에 불과한 것으로서, 십가가 대속.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좌정하여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지양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가톨릭의 성화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가톨릭의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로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단 교단 중에 존재하는 "어머니 하나님"과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아기 예수를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는 가톨릭의 성화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보다 높은 분이 마리아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성경의 글자 그대로 읊조리면, 창조주 여호와가 아닌 분으로 믿는 것이 되고, 영과 말씀으로 계신 창조주를

 

모독하는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사람들의 아버지와 아들의 의미인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두째, 삼위일체는 성경이 아니라, 가톨릭의 것입니다. 가톨릭의 신관을 한국 개신교가 끌어들여 와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주지시켜 드리는 바입니다. 가톨릭 사제와 신부는 다음과같이 삼위일체를 믿고 고백합니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한 분이신 하느님이신데, 성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성자께서는 성부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시어 교회 안에 머무르시면서 우리를 성화시키고 사랑으로 일치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다."입니다. 한국 개신교와 신관이 똑같지 않습니까? 가톨릭의 삼위일체와 개신교 삼위일체는 껌딱지. 한통속. 아삼육. 판박이 등의 용어로는 부족할만큼 서로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그런가하면, 가톨릭의 삼위일체송을 개신교 감리교단의 송영이나 찬양대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만 있습니까?

 

십자가 위에 M자 모양의 천을 걸쳐 마리아를 상징하는 M 십자가도 가톨릭에서 이미 행하고 있는 것을 끌어 들여와, 개신교가 가톨릭을 얼마나 닮으려고 노력하는지,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삼위일체송. M십자가는 성경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의 종교다원주의를 함께 표방하는 종교연합 일치운동이라고 봅니다. 이렇게하고도 나는 넉넉히 천국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겠네!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찬송가 522장및 통일찬송가 269장! "웬일인가 내형제여" 4절을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보겠구나!" 세상끝날 불탈 때에, 가톨릭의 교리를 사랑하는 당신도 깨끗하게 지구 온세상 지옥불 속에 들어가 처참한 불의 형벌을 통과한 다음,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리는 그런 식으로, 영생을 박탈당하고 싶어 안달하는 것입니까? 째, 양태론은 1신이 아니라,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 채택받지 못한 "또다른 삼위일체"입니다. 양태론은 단일신론! 곧, 한 본질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대조적으로, 오직 한 인격으로만 하나님을 강조하는 견해였다는 이유로 삼위일체론자들한테 배척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단일신론이 아닙니다. 위키백과에서 소개한 양태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란 성부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예수로 와서, 그분이 죽고 부활하여 오순절에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한다. 즉, 동일한 한분의 인격=위격의 하나님이 세 가지 양태로서 나타나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사역했다는 것을 말한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유일신으로 느껴지십니까? 종교인들은 성경을 연구해도 고대의 철학자들이나 신약의 유명 종교인들의 가르침을 성경과 접목시키는 매우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이 마음에 안드는 또다른 무리 중에는 "역동적 단일신론"이라는 가설을 앞세워 논쟁합니다. 삼위일체나 양태론 모두다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역동적 단일신론 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부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원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예수님을 양자로 삼으셨다고 말한다. 양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처음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비로소 성령을 통해서 신적인 요소가 부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때부터 여러가지 신적인 기적과 능력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한 분이시며, 예수님은 후에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역동적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말한다" 여러분! 개소리같지 않습니까?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이런 말도되지 않는 신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일이 있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시고 성경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십시오! 모세에게 "나는 나다!"라고 창조주 여호와 자신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 가르침이 "삼위일체. 양태론적 단일신론. 역동적 단일신론" 중에 어느 것이라는 말입니까? 배가 많이 고파서 그랬는지, 너무 심심해서 재미있게 놀만한 것이 없어서였는지 모르지만, 두리번 거리던 개가 마침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풀덤불을 보더니 풀 맛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개가 풀을 뜯어 먹습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면서 소개한 영상을 보니까, 샥샥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는 개잡소리입니다. 종교인들이 밥먹고 할 일 없으니까, 가만히 있는 성경 말씀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난도질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여기에 99.9999%가 빨려 들어간 인간들은 창조주 여호와가 예수이시고 성령이심을 모른다는 이야기인데, 창조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사야서 46장 9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습니다. "너희는 오래 전에 있었던 옛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나와 같은 자도 없다." 한국 개신교가 개역한글을 가장 바른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 다음이 개역개정인데, 재번역할 일이 없어서였는지, 모두다 동일합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이가 없느니라." 세 군데 성경 모두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말씀인데, 374개 국내외 한국 개신교에서는 왜 "삼위일체. 

 

양태론적 단일신론. 역동적 단일신론" 중에서 골라잡아서 믿는단 말입니까? 요한복음 8장 58절 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출애굽기 3장 13절 말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씀은 홀로 존재한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나 혼자 뿐이야! 내 주변에 아무도 없어!라고 할 때 딱 혼자라는 생각이 들듯이, 창조주 여호와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말씀은 "나는 홀로 존재하는 신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십계명으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는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6절까지 말씀을 개역한글과 공동번역 순서로 읽겠습니다. 먼저, 개역한글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어서, 공동번역으로 읽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이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기독교 무리들이 한국 개신교이고, 한국 가톨릭입니다. 지금이라도 "삼위일체. 양태론적 단일신론. 역동적 단일신론" 을 영적 쓰레기로 여기고 버릴 마음은 없습니까? 374개 개신교 교단들이 연대해서 버리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교단 교파를 탈퇴하고 독립교회가 되어 사역할 마음을 가져보심이 어떻겠습니까? 한국 가톨릭이 단일교단이지만, 거대한 교단이기 때문에 교단 교구를 떠나 독립 공동체를 이루어, 사도 바울이 버린 종교적인 쓰레기들을 찾아 내어 버리는 것이 마틴 루터가 개혁하려고 했던 그 정신을 쫒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를 죽이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곧, 율법으로 무장한 나를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으로 죽여야만 내가 예수 성령 안에서 살아납니다. 아멘이십니까? 삼위일체론자들의 특징은 유대교의 유일신을 매우 적대시합니다. 물론, 유대교는 구약의 여호와만 인정하고,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 사이비이지만, 한국 개신교는 3신인데 유일신처럼

 

보이는 양태론을 매우 증오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양태론은 구약에만 존재했던 성부, 예수 33년 시대에만 존재했던 성자 또는 하나님의 아들, 신약시대에만 존재한다는 성령! 시대마다 하나님이 있는데, 성부. 성자. 성령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또다른 해석이 양태론이 되므로, 양태론도 삼위일체의 곁가지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33년 시대를 성자로 안보고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무리들은 구약의 성부신과 신약의 성령신만 인정하기 때문에, 2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삼위일체의 경우에는, 성부와 성자가 다르고, 성자와 성령이 다르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이 사역만 다를 뿐, 하나님들이 한분 하나님으로 활동하신다!인 반면에, 양태론의 경우에는 구약의 성부가 예수 33년 시대의 성자와 같고, 예수 33년 시대의 성자와 신약의 성령이 같다! 그러나, 이는 "한분 하나님"이 구약시대. 예수 중간기시대. 신약시대에 각각 다른 모양으로 나타났을 뿐, 동일한 한분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인데,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잘모르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을 세는게 그렇게 어렵지 않을텐데, 종교인만 되면 숫자 건망증에 잘 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성부! 둘, 성자! 셋, 성령! 3신 아닙니까? 또 반복하는 이야기이지만, 구약의 성부. 예수 33년 시대 중간기의 "하나님의 아들". 신약의 성령으로 믿는 양자론 무리들도 하나님의 신관 부분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 성부! 둘, 성령! 2신 아닙니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정말 "한분 하나님"을 더럽게 헛소리 지껄이면서 잘믿는다고 떠드는 인간들이, 기독교 종교단체 집단들입니다. 특히, 국내외 한국 개신교 사람들 말입니다. 제가 40년 동안 삼위일체가 고추장인지, 양태론이 된장인지 분간 못하고, 이 두가지 가짜 신관을 혼합해서 믿어 주었던, 이방종교 중에 하나에 불과한 개신교 골수 열심당 짓을 했었던 사람으로서, 지금도 저와같은 장로. 집사. 성도. 목사 종교인이 99.9999%라는 사실 앞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삼위일체"를 치면

 

다음과 같은 굵은 제목들이 보입니다. "세 분이지만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를 통한 하나님의 형상, 꼬마 아이 놀라워 삼위일체 설명, 삼위일체 하나님의 쉬운 설명,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 삼위일체를 쉽게 설명해 드릴께요, 하나이자 셋인 하나님, 어린 전도자가 알려주는 삼위일체, 삼위일체와 진짜 친해지는 방법, 삼위일체 알긴 아는데 설명할 방법이 없는 이유,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삼위일체의 신비, 삼위일체의 신학은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의 토대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 기독교는 유일신 종교가 아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동시에 세 분이신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 쉽게 푸는 삼위일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순수한 아이가 들려주는 삼위일체, 삼위일체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단들, 삼위일체의 교리 논쟁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난해한 교리,

 

삼위일체의 한 하나님, 성경 말씀으로 살펴보는 삼위일체의 이해,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 예수님의 세례 때에 함께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 하나님과 연합해야만 구원받는다, 천지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큰 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중심의 삼위일체 공동체, 삼위일체 주일을 지키는 이유,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삼위일체는 본래 이해할 수 없다, 사도신경 속의 삼위일체 신앙,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삼위일체의 강복, 삼위일체적 축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삼위일체 대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목사와 신부가 삼위일체를 전하면서 붙인 제목들입니다. 저는 이런 삼위일체 제목에 반기를 든 이단의 괴수입니다. 오늘날의 현대교회를 바라보는 모세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등의 사도들은 무슨 말로 경고하겠습니까? 너 그러면 영원히 불에 타서 뒈진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양태론과 관련한 내용을 검색해 보니까,

 

다음과같은 제목들이 보입니다. "유명 목사들의 양태론은 이단이다, 성경적인 삼위일체 교리가 아닌 양태론과 양자론은 왜 이단교리인가?, 양태론은 비성경적인 삼위일체 교리이다, 양태론은 잘못된 삼위일체이다, 초대교회의 이단 중에 양태론이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정통이고 양태론은 이단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같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이단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대표적인 이단은 양태론과 삼신론이다, 양태론은 이단적인 가르침이다, 세 인격체이신 한분 하나님을 양태론과 같은 인간의 초등학문으로 변질시킨 적그리스도의 도구들과 니골라당 사람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 양태론 신앙은 가짜 신앙이다, 양태론은 구원이 없다, 지방교회의 양태론 이단 비판, 영적 전쟁의 상대는 양태론이다, 양태론은 한 분이 세가지의 역할을 한다" 등 삼위일체에 대한 것보다는 매우 적지만, 대부분의 제목들은 삼위일체론자들이 양태론을 이단으로 공격하는 제목들입니다. 삼위일체와 양태론은 중세 가톨릭 시대의 두 갈래 종교인들의 해석으로서, 둘다 망령되고 가증한 허황된

 

신들의 이름일 뿐입니다. 삼위일체로 교리를 확립한 로마 가톨릭은 종교재판소를 세운 다음, 양태론자및 기타 삼위일체 거부자들 약 5천만 명에서 6천만 명을 살육해 버렸습니다. 삼위일체의 후예가 된 현대교회들도 양태론을 짓밟는 짓을 하는데,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속담을 실천하는 무리들입니다. 이 두가지 가짜 신관을 믿으면, 세상끝날 악인들이 부할하고 또, 살아있는 악인들과 함께 온세상 불심판 때에 깨끗하게 타서 재가 됩니다. 그것이 영생을 잃고 영원무궁하도록 버림받는 영벌이고, 영원한 사망이며, 영원한 저주입니다. 악인의 형벌은 죄지은 형량만큼 불에 타서 꺼질 때까지 겪어야 하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불의 고통인데, 그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정의해 놓은 악인들에 대한 사형 방법입니다. 당신이 삼위일체나 양태론을 고집한다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 예수 성령께서 베푸시는 영생 따위는 필요없고, 내가 보고 들은대로 잘 믿고 있으니까, 내 구원과 영생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그 생각은,

 

자신의 묘 앞의 비석(headstone)에 장식으로 새겨 넣을 문구로 생각합니다. 삼위일체와, 그 삼위일체 사촌지간에 해당하는 양태론은 한국 민간신앙의 삼신할머니를 믿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기를 점지하고 산육을 관장한다고 알려진, 삼신할망. 삼신할매. 삼신할멈으로 불리우는 삼신 할머니 신앙은 3신1체가 아니라, 3신3체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내가 나다!는 내가 바로 그다!인데, 어찌하여 내가 나다!가 3신이 1신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며, 구약의 하나님. 예수 33년 시대의 예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이란 분께서, 1신이라면서 세가지 역할을 한다고 거짓되게 가르치느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목사 말을 믿지 말고 성경을 똑바로 믿으십시오! 여기까지입니다. 한국 개신교및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기로 작정한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과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들을 위한 링크 하나를 하단에 걸어두었으니, 로그인없이 바른 복음 메시지를 찾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영리, 비인기 그리스도인 유튜버 노아박 전도자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 https://cafe.naver.com/baknoah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만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 원제목: 초대교회의 예배

* 부제목: 현대교회의 예배 타성화및 형식화로 본질 훼손! 모일 때마다 말씀과 주의 만찬!

 

♤7분 메시지, https://buly.kr/9t8FCHS

☞ 원출처 URL: https://buly.kr/74U7922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한국컴퓨터선교회에 소개된 구약 예배학 기준서 교수의 "초대교회의 예배"라는 제목의 서론부와 결론부만 음성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한국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모이는 일에 교회가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 모임은 언제나 예배와 함께 시작되는데, 그러다 보니 자주 드리는 예배로 인하여 타성화되고 형식화되어지는 경향이 짙게 되었고, 결국은 예배의 본래 의도와 목적에서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서에 예시된 예배의 본질과 원형의 훼손으로 인하여, 교회 공동체는 예배 신학적으로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제기하게 되는 질문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묻게 되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초기교회 예배는 과연 어떤 형태이었는가?를 찾게 됩니다. 이는 결국 원류를 따라 성서로 돌아가서 말씀에 예시된 예배의 본질적 형태를 찾아야만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그 분에게 최고의 가치를 돌린다는

 

의미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중략) 뒤늦게나마, 한국 교회가 예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의 만찬" 회복을 위한 예배갱신 운동에 진력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에 있어서 오래된 전통의 규례와 관습의 영향으로 주의 만찬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갱신을 단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배갱신 운동은 교회갱신 운동으로서, 이는 세계교회의 차원에서 줄기차게 주장되어온 교회의 자기 개혁의 한 몸부림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그릇된 예배의 내용과 구조를 갱신해야만, 그 영적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고, 참된 교회 모습으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한국교회의 그릇된 예배관입니다. 첫째, 예배 신학이 빈곤합니다.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받아 가지고 가려는 수단으로 예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째, 설교 위주의 예배 형태입니다. 따라서, 회중은 참여의 기회가 부족하여 고독하고, 소외와 불만을 느낍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개혁 전의 가톨릭의 미사 형태와 같은 것입니다. 셋째, 주의 만찬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신앙공동체의 전체 사건인데, 목사의 설교 위주의 독무대로, 성도들은 말씀을 듣는 예배 뿐이며, 감사와 교제를 나누며 헌신하는 축제적 예배공동체의 전체 사건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주의 만찬이 결여됨은 비성서적인 예배 행위로서, 이는 반드시 시정되고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길은 성서로 돌아가서, 초기교회가 행하였던 예배의 원형과 본질을 회복하는 길 뿐입니다. 그 길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의 회복에 있습니다. 마땅히, 교회는 초기교회 공동체처럼 주의 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기념하며, 이를 통한 축제적 예배 행위를 갖는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성경에 근거한 바른 지적입니다. "예배드린다" 보다는 "예배한다"가 맞는 표현이라는 어느 분의 지적은 옳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기교수의 글 메시지 중략 부분 중에서 3번 "예배의 요소"를 읽어 보니까, "예배의 요소는 말씀선포, 기도, 헌금, 찬양, 성례전 등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고 했습니다. 제 사견이지만, 사도 바울의 가르침 중에 헌금은 없고 연보가 있는데, 이를 반영하여, 예배의 요소는 말씀선포, 기도, 연보, 찬양, 성례전 등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로 수정하는 것이 신약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5번의 "주의 만찬에 대한 성서적 이해"에 대한 기교수의 핵심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의 만찬은 초기 교회에서 예배의 중심적 행위였다. 사도행전 20장 7절을 보니까, 초기 교회 공동체들은 주의 명령에 따라, 매 주마다 함께 모여 주의 만찬을 기념했다. 유대교 예배에 없는 주의 만찬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그리스도의 사건으로서, 예배의 핵심이 되는 예배 행위로서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현대교회들이 주의 만찬의 예배학적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한 몰이해로 모일 때마다 준수하지 않고, 가끔씩 연중행사처럼 거행하고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주의 만찬"과 "성만찬"을 따로 구별하여, 주의 만찬은 친교를 위한 애찬이며,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근거로 고린도전서 11장을 가지고 설명했습니다.(참고자료 URL: https://buly.kr/4xV1NLb ) 1. 주의 만찬에 대한 성구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0절 21절 2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 성만찬에 대한 성구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말씀을 읽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이 설명한 내용을 참고는 하되, 이것을 율법이나 전통으로 지키려다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보다는 또다른

 

종교적 율법의 틀에 얽매일 수 있기 때문에, 합치든 쪼개든 말씀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서를 읽고 성령의 가르침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율법으로 죽었고 복음으로 살아났다고 했기에, 우리는 진리의 복음만 취하고 형식에는 매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및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기로 작정한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과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들을 위한 링크 하나를 하단에 걸어두었으니, 로그인없이 바른 복음 메시지를 찾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영리, 비인기 그리스도인 유튜버 노아박 전도자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만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깜보' 전도자 / 네이버 카페 운영진  

* 원제목: 거짓 설교 분별법 10가지

* 부제목: 목사의 모든 설교가 성경대로의 바른 해석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사단의 밥이 된다!

 

♤8분 메시지, https://is.gd/AjKVnP

☞ 원출처: Only Jesus 말씀으로 교회 바로 세우기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네이버 기독교 카페 운영진으로 활동하는 '깜보' 전도자의 "거짓 설교 분별법 10가지" 글 메시지를 음성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첫째, 성경에 근거가 없는 설교를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말이든지 성경에 그 근거가 없다면 믿지 마십시오! 두째, 성경 앞뒤 문맥과 맞지 않는 설교를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 한구절 읽어놓고, 자기 소신이나 철학 또는 주관을 강요하는 설교를 거부하십시오! 셋째, 하나님의 성품과 대적되거나 상반되는 설교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이나,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와 상반되거나, 어떤 댓가를 요구하면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욕되게 하는 설교는 듣지 마십시오! 넷째, 세상에 속한 번영과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설교는 의심해야 합니다. 세상의 성공이 축복이라면, 모든 선지자들과 제자들은 저주받은 것입니까? 세상의 성공이 축복이라고 가르치는 목사의 말은, 목사 자신의 믿음을 앞세워 욕심을 더욱 부풀려 성도들을 그 방향으로

 

유인해서 길들이려고 하는 사단의 전술입니다. 결국, 그들은 욕심의 종이 되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목표입니다. 다섯째, 예수님 중심과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목사 중심과 교회당 중심으로 변개시키는 설교를 분별해야 합니다. 목사 중심주의는 교권적 사상과 이론을 앞세우는 사단의 교리입니다. 목사에게 순종하고, 교회당에 충성하며, 헌금을 많이 하면, 더 많은 행복과 축복을 가져 온다는 설교에 속지 마십시오! 여섯째, 솔선수범해서 섬겨야 하는 모범과 겸손과 봉사 대신에, 목사 자신을 교인들과 신분 분리로 차별화하고 특화시켜서, 복종을 강요하며 군림하려는 설교에 쇠뇌당하지 말고 도망치십시오! 그들의 거짓말에 희생양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일곱째, 설교 목사 자신의 말에 순종하면 큰 축복이 임하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이 닥친다는 식으로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면서, 교인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는 설교에 저항하십시오! 신명기 18장 22절 말씀을 보면,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 많은 목사가 이런 성경구절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목사 자신의 기준으로 축복과 재앙 설교를 하는 자는 "무엇을 안다. 무엇을 듣는다.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식의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는 무당 목사들이고,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이며, 거짓 교사요, 사단의 일꾼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속아 가산과 인생을 탕진하는 교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목사는 양심에 화인맞은 사단의 매개체일 뿐입니다. 여덟째, 십일조및 헌금의 유무나 노력 봉사 그리고, 교회 행사 참여 여부 등으로 신앙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설교는 사기꾼의 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십일조 유무나 헌금 액수를 판단하여 직분을 주는 비성경적인 관행을 일삼는 교회에서 탈출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일조 대신에 연보를 했으며, 연보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소자 즉, 가난한 자들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이를 기억하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실천했던 것입니다. (중략) 성도들에게 끌어 모은 현대적인 십일조는 큰 교회 건물을 짓고, 고액의 사례비를 받는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구제와 선교는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십일조는 세상 축복을 받는 것과 무관함을 알아야 합니다. 아홉째, 성공하려는 목사 자신의 야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교인들 선동질하는 설교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아멘하는 무지몽매함을 벗어 버리십시오! 이런 부류의 목사는 수십 가지의 헌금 명목을 만들어 착취하는데 명수(名手)입니다. 이들이 지어낸 헌금 명목이나 헌금 봉투는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교회 헌금을 물쓰듯 하는 목사에게서 도망치시기 바랍니다. 열째, 일천번제 헌금과 대출작정 헌금 등과 같은 부담스런 작정헌금을 유도하는 설교를 듣거든,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자로 여기고 그 교회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피를 짓밟는 일천번제 헌금을 유도하거나 부추기는

 

설교는 귀를 막고 듣지 마십시오! 이들은 돈만 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바알의 사제들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분별하고 이런 사악한 영적인 범죄에 대하여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와 목사로부터 빨리 도망치십시오! 이것이 말세를 사는 거룩한 성도들이 분별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저도 40년 동안 개신교 목사 그룹의 모든 말들! 그러니까, 설교를 성경 그대로 가르친다고 생각했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말씀을 분별하는데 집중하기 위해서, 예수 성령께 기도와 간구로 살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사기꾼들이 무엇을 가지고 이 세상 사회에서 사람들을 속입니까? 그 사람의 입과 혀와 말을 가지고 합니다. 그럴듯한 말을 가지고 겉을 꾸며서 의인처럼 착한척 거룩한척 의로운척 하면서 행동하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하는 목사는 성경을 도용해서 각색하고 짜깁기하여 이것 보태고 저것 보태서 말합니다. 성경가감죄를 짓고 성령훼방죄를

 

지어 가면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거대한 교회 건물과 사람 조직을 만들어, 자기 영광을 만드는 것이고, 많은 부와 명성을 얻고자 함이며, 종교권력을 손에 쥔 것도 모잘라, 정치권력까지 손에 쥐려는 자들까지 나왔는데, 좌파와 우파로 편가르기를 하여,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야로 믿고, 예수를 삼위일체 또는 양태론 두파로 나누어 두 종류의 3신을 각각 믿으면서 태양신 바알을 숭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진 정치 세계를 교회 안으로 목사들이 끌어 들여와, 우리는 좌파 교회다! 또다른 우리는 우파 교회다!를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는 아무 상관없는,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갈지자 걸음 즉, 발을 좌우로 내디디며 의젓한 척 걷는 걸음 또는 몸이 좌우로 쓰러질 듯 비틀대며 걷는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 목사나 우파 목사는 자신의 갈지자 걸음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예수 복음으로 불리우는 새술에 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류의 정치 목사나 정치 교회를 속히 떠나 가나안 성도의 길을 가십시오!

 

한국 개신교및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기로 작정한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과,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들을 위한 링크 하나를 하단에 걸어 두었으니, 바른 복음 메시지를 찾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영리, 비인기 그리스도인 유튜버 노아박 전도자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참예수 복음을 전하는 Noah Bak 전도자입니다!"

* 원제목1: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개신교의 성경적인 신앙인가?

* 원제목2: 성경과 같은지 따져 보라!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가톨릭의 교리이다!

 

♤16분 메시지, https://buly.kr/BpCXxCA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첫째,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기독교인의 가장 중요한 신앙이라고 가르치는 목사 그룹이 있는데, 대다수 목사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는 아니야! 뭔 개소리야!"라고 손사레를 칠 분도 더러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두째,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면 장수하고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거짓 목사의 말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앙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소수의 목사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을 믿고 3일만에 부활하심을 믿으면, 자원해서 예배하고 예물을 드리게 된다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각종 예배 의식과 순서를 가지고 한다면 전부 꽝입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을 힘입어 오직 진리의 복음만 전하고 나눈다면 괜찮지만, 예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예배 시간에 헌금시간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성경과 비교하여 보면 100%가 틀린 것입니다. 셋째, 앞에서 언급한 두째의 가르침 중에서 창조주

 

여호와께 예배는 말씀 중심으로만 하되, 돈으로 예물을 준비하여 창조주께 바치는 행위는 가증한 것이라고 바른 말하는 극소수 목사 그룹이 있습니다. 첫째, 두째, 셋째 중에서 여러분은 누구의 가르침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어느 결혼식장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랑이 신학생인데, 주례 목사에게 부탁하기를, "목사님! 오늘 제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대부분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주례사를 하시면서 복음을 전해주십시오!"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주례 목사는 다른 주례사를 하는 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다음과같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양가의 어르신과 부모님, 그리고 여러 친지 분들을 모시고 이렇게 뜻 깊은 행사의 주례를 맡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만나 인연을 맺게 됨으로써, 오늘 드디어 제2의 인생을 출발하게 되는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랑 000군은 일반 00대학교를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고, 신부 000양은 00대학교를 졸업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입니다. (중략) 끝으로, 성경을 믿는 제가 오늘

 

하객 여러분들께 기쁜 소식을 한가지 짧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죽음 이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전하는 것입니다만, 일요일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을 주일성수라고 하며, 하나님께 빈 손들고 나오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모든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이 두가지만 잘해도 장수하시고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주례 목사 이야기는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이 전도라는 말씀이었고, "주일성수와 십일조" 잘하면 장수하고 복받으며 천국간다고 하는 말은 성경에 없는 말을 교회들이 암묵적으로 연대하여 지어낸 거짓말을 성경처럼, 그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례 목사의 요상한 이야기를 듣고 두갈래 또는 세갈래로 나누어질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를 다니는 장로, 목사, 집사 중에도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하는 두째 그룹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가장 많고, 두째가 더러 있으며, 셋째 단계로는 대부분 넘어가기 싫어합니다. 저는 셋째를 지지하는 전도자로서, 이 부분에다 촛점을 두고 오늘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의견이 여러분과 조금 다르더라도, 끝까지 듣고 말씀 분별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예수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바라고 계시는 것일 겁니다. 세가지의 서로 다른 교리의 답변은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1장 13절 말씀!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날과 절기를 지키면서 제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까? 이런 성경구절은 첫째에 해당하는 대다수 목사 그룹은 절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창조주 여호와가 예수이시며 성령이신 말씀을 대적해 가면서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 도적떼처럼 성도들의 온갖 것을 약탈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토요 안식일 준수와 십일조! 이것은 창조주께서 요구하지 않은 것임을 성경으로 다시한번 입증해 드리겠습니다. 신명기 23장 18절 말씀!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신명기 23장 18절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더 이해가 빠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인간들이 번 더러운 돈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에 서약을 갚는 예물로 가져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런 자들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출애굽기 36장 6절 말씀! "모세가 야영지에 있는 모든 남녀에게 성소에 드릴 예물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자, 백성들은 더 이상 예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데, 앞의 성경구절과 상반된 내용이 담겨진, 이사야 43장 21절에서 25절까지 읽겠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결코 난해한 구절이 아닙니다. 신구약 안에는 창조주 여호와이시고 성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시절 초등학교 소풍 때 보물찾기 행사를 통하여 상품이 적혀 있는 쪽지를 가져 오면 해당 상품을 주었던 것처럼, 성구에 감추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시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단순히 성경구절을 글자로만 보지 말고, 광야의 감추인 맛나를 발견하는 마음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45절 46절에 나오는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가 담긴 밭을 발견하고 내 재산을 팔아 그 밭을 구매한 것과 같은 기쁨일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서 25절에 나오는 "내 번제의 양" 또는 "제물"은 예수 대속의 그림자를 말하고, "유향"은 예수의 장례에 대한 그림자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동방박사가 준비한 세가지 예물 중에는 유향이 있지 않았습니까? 유향은 평상시 향수로 사용하는 가벼운 것과 시체에 부을 때 사용하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후자를 위한 예물이며,

 

몰약은 장례때의 방부제로 쓰였고,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의 대속 제물되심에 대한 예표로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내 번제의 양이나 유향은 결국 예수께서 메시야로 오셔서 자신의 죽으심을 계시하신 것으로 보기 보다는, 유대인들이 이런 복음적인 것을 만홀히 여기고, 제물. 분향. 월삭. 안식일. 대회. 성회 등과 같은 율법주의에 매여 종살이 하는 것에 대한 경고로 이해하면 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교회도 어쩌면 신구약 성경과 무관한 것들을 앞세워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고아. 과부. 나그네에 해당하는 성도의 삶을 파괴시키는 날강도 짓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주여! 주여하는 자들이 사단의 회당 지도자가 되어 있다고 봅니다. 바알을 숭배했던 이세벨 무리 즉, 가톨릭 교리까지도 추종하면서 종교다원주의와 이단포용주의를 통하여 복음을 변질시킨 소경들 종교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은, 내 영혼을 사단에게 송두리째 내어 주는 결과로, 세상끝날 온지구상 하늘에 쏟아 붓는 단회적인 유황불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죽자마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자마자 존재하지도 않는 영원환 유황불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무덤 속에서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있고, 세상끝날에  살아있는 의인들과 악인들도 모두다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악인들은  지옥불에 쓸어 담아 심판받기 위해 부활하는 것이고,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4장 10절 11절 말씀에서 경고하기를,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성수를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구약 66권 정경이 완성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바울도 갈라디아 가정교회로 모이기 전에는 태양력이 아닌 유대력으로 회당에서 토요일날 편의상 한시적으로 모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대 동족의 핍박을 피하여 갈라디아 가정교회 모임 이후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이 가만히 들어와 미혹하는 거짓 선생들의 꾀임에 빠져,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느냐?"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종교행위를 미워한다는 의미로 예수 성령의 가르치심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겉과 속 중에서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겉에 해당하는 것은 현대교회가 만든, 예배 순서나 의식 행사 헌금 봉사및 주일성수 등과 같은  온갖 목사 교리와 교회 전통들이고, 속에 해당하는 것들은 이런 불순물을 완전 제거한 빈 마음에다, 창조주 여호와이시고 예수이시며 성령이신 한분 하나님께서 진리의 복음으로 불리우는 말씀 즉,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성령 안에 존재하는 상태로, 오직 내 마음의 반석에서 영생하게 하시는 생수가 차고 넘쳐나서 흘러 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회칠한 무덤은 유대나라에서 시신을 덮은 땅 위가 아닌 동굴이나 석회암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 겉에 분칠 것을 말하는데,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썩은 시체가 들어 있는 상태를 가지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종교생활이 바로 이런 것을 말하고, 영생은 커녕, 무덤에서 부활 때까지 잠을 자다가, 세상끝날에 악인들이 부활하여 하늘 유황불에 태워 소멸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자들은 염소요, 예수 대적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결론을 맺습니다. 첫째, 주일성수는 가톨릭의 교리입니다. 나무위키 자료를 보니까, 주일성수에 대하여 다음과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주일에는 생업이나 육체노동을 삼가야 하며, 휴식과 하느님에 대한 기도및 신앙에 방해되는 일체 행위를 피하고, 특히 주일 미사에 참례하여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넓게 해석하여 적용하면, 이는 각종 게임이나 과도한 공부 등 평일에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정신을 흡수하는 행위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계명도 된다. 이러한 주일의 육체노동 금지를 '주일 파공'이라고 하며, 신자들은 모두 지켜야 한다. 예외적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해당하는 성당 일은 허용되고,

 

봉사활동. 자선활동. 가벼운 레크리에이션 예를들어 산책이라던지 개인적 휴식 등은 주일에도 충분히 허용한다. 또한, 면도. 세면. 요리. 길걷기. 차량 승하차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기초적인 일들은 허용된다. 또한, 개신교 신자들도 주일날은 상점 영업을 쉰다던가 하는 식으로 노동을 자제한다." 어떻습니까? 도낀개낀이지만, 개신교보다도 가톨릭이 훨씬 배려가 조금 더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두째, 십일조는 중세 가톨릭의 교리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벌어진 가톨릭 교회의 십일조 폐지 조치로 인하여 십일조를 더이상 거둘수 없게 되었습니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어느 신자가 십일조에 대한 질문을 했고, 신부 답변이 매우 의미심장하여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목사가 십일조는 의무라고 하는데, 가톨릭에서는 교무금을 내는 사람은 있어도 십일조를 내는 사람이 왜 적은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질문에 대하여 소속 신부는 다음과같이 답변했습니다. "성경대로 십일조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서민들의 어려운 가정경제 살림으로 인하여 각자 경제 형편이 어렵기에,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할 수 없는 관계로,

 

한달 30일 중에서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1/30조를 교무금으로 내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도리로 규정하여 실천하고 있다. 따라서, 가톨릭에 속한 신자라면 모든 가정이 교무금을 봉헌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가톨릭의 "교무금"은 연보 즉,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걷는 기부금이 아니라, 천주님께 바치는 "봉헌" 즉, "예물"에 해당하니, 신자의 부담을 덜어 주는 "가톨릭의 십일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종교의 신은 돈이라는 제물을 받는다고 해당 종교의 종교인들은 믿습니다. 사실, 각각의 세상 종교에서 만든 신이 받을리 없기 때문에, 배후에 사단이 경배를 받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개신교에서 예수라고 하는 신이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받는다고 목사 그룹이 가르치고, 장로. 집사. 성도들이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바치면, 예수로 불리우는 신은 진짜 예수가 아니라, 사단인 것입니다. 이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고도, 부활 영생을 얻겠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무덤에서 악인 그룹으로 부활되어 온지구상의 지옥불

 

가마솥에 넣고 하늘 유황불로 태워서 티끌로 돌려보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한국 개신교및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기로 작정한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과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들을 위한 링크 하나를 하단에 걸어두었으니, 로그인없이 바른 복음 메시지를 찾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영리, 비인기 그리스도인 유튜버 노아박 전도자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만 선별하여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Pastor Taeksoon Lim / 아델포스 세계선교회

* 원제목: 방언과 방언통변의 진실

* 부제목: 각종 방언=모든 종족의 언어! 통변=해석=하나님의 여러가지 큰 일을 이해시키는 것!

 

♤185분 편집 메시지, https://buly.kr/6tZGLPn

☞ 원출처 URL: https://buly.kr/3YArUWF 포함한 총10강(1~10)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만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탄산수' 전도자

* 원제목: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의 기원

* 부제목1: 영어 성경의 Hell이 게헨나 / 스올이면 뭣하나? 

* 부제목2: 내 번역성경이 지옥인데!(5부)

 

♤37분 메시지, https://buly.kr/BpCT8Uo

☞ 원출처 URL(공감, 댓글): https://is.gd/7ZBGQJ

◐                                          ◑

☞ 부제: 불교에는 수많은 지옥(팔열지옥, 팔한지옥, 기타지옥)이 있습니다. 죄인을 갈아버리는 "불교 10대 지옥"과, 기독교회의 "천국지옥 신비체험"이 다를까요?: https://is.gd/QrvCSy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성경에 근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느냐? 아니면, 기독교 종교단체 종교인의 말을 듣고 믿느냐?는 "영원한 생명(eternal life)"과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으로 갈려지는,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대부분의 세상종교에서 말하는 "영원불멸과 영원한 유황불지옥"을 성경이라고 가르치는 목사 당신은 종교인이며,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목사한테서 이교도의 교리를 배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대는 당신도 종교라고 하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입니다. 잠언 16장 25절에서 말씀하는 길을 걷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Sometimes what seems right is really a road to death)." 신명기 30장 19절에서도, 생명과 사망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Right now

 

I call the sky and the earth to be witnesses that I am offering you this choice. Will you choose for the LORD to make you prosperous and give you a long life? Or will he put you under a curse and kill you? Choose life!)." 로마서 8장 6절에도 생명과 사망을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If our minds are ruled by our desires, we will die. But if our minds are ruled by the Spirit, we will have life and peace)."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육이 한세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한다는 것은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영원무궁하도록 "창조주 여호와이시고 예수이시며 성령이신 한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영원히 사망한다는 것은 영혼육이 영생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존재가 소멸됨을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있다고 했는데, 악인들은 심판받기 위한 부활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하겠습니다.

 

나라별로 사형 집행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흉악범에게 사형을 선고하면, 집행날자에 사형시킨 그것으로서 그 인생 존재가 끝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살아온 악인들도 세상끝날 온지구상의 하늘에 쏟아붓는 유황불(소돔과 고모라 유황불 심판처럼)로 깨끗하게 태워서 재를 만들어 티끌로 돌려보내는 심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끝날에 살아있는 악인들도 모두 포함해서 말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We die only once, and then we are judged)." 요한복음 5장 29절 말씀!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and they will come out of their graves. Everyone who has done good things will rise to life, but everyone who has done evil things will rise and be condemned.)." 기독교라는 종교적인 열심과 종교인의 착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대로의 믿음을 가졌느냐?의 여부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 말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His threshing fork is in his hand, and he is ready to separate the wheat from the husks. He will store the wheat in a barn and burn the husks in a fire that never goes out)." 아멘입니다. 글이나 음성으로 오늘 메시지 참여하는 분들에게, 기본적인 성경 말씀을 마음 바탕에 깔고 출발하시도록, 제가 먼저 이야기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네이버 "숨겨진 진실"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탄산수' 전도자께서 성경과 다르게 기독교 종교단체에서 잘못 가르치고 믿고 있는,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에 대한 글 메시지를 총5부로 나누어, 음성과 한글 텍스트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지막 5부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헬(Hell)은 적절한 번역이 아닙니다[Collier’s Encyclopedia (1986, Vol 12, p.28)]. 희랍어 70인역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할 때,

 

유대인 번역가들이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을 희랍어 단어 hades (ᾅδης)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번역가들은 헬레니즘 철학에 영향을 받아서 "스올"을 "하데스"로 번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스올이 아무런 활동도 지식도 없는 곳이라는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관념을 염두에 두고, 하데스로 번역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번역 작업시에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두 성구는 히브리어 "스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하데스"임을 보여주는 번역입니다. 사실상, 이 두 성구는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시편에서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16:10, ESV "For you will not abandon my soul to Sheol, or let your holy one see corruption." / 사도행전 2:27, ESV "For you will not abandon my soul to Hades, or let your Holy One see corruption."] 그렇다면,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실제로 지옥이 있기에 영혼이 지옥간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닌가?에

 

대해 따져 봐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안하셨다는, 누가복음 16장 19절에서 31절까지의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비유를 보면, 하데스에 있는 불꽃 속에서 부자가 고통 중에 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데스는 히브리어 스올에 상응하는 헬라어입니다. 따라서, 이미 우리가 살펴봤듯이, 하데스에 실제로 부자가 들어갔다면 그곳에서 고통을 느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하데스와 스올에는 화염 불꽃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올과 하데스는 사람이 죽어서 잠자는 상태인데 바꿔 말하면, 없어진 상태를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하데스(스올)에 사흘동안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목사들이 설명하는 그런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열셋째, 계시록 20장 10절에는 불과 유황의 호수가 나오는데, 그 곳에서 밤낮 쉬지않고 영원히 고통받는 자들이 누군인지, 그 구절이 사실인지의 여부도 알아봅니다.

 

계시록 20장 10절 말씀!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And the devil who deceived them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and brimstone, where [are] both the beast and the false prophet; and they shall be tormented day and night for the ages of ages." 열셋째의 1. 불못에 던져지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1. 사탄 마귀! 곧, 창세기 3장에 묘사된 하와를 속인 영자. 2. 짐승! 즉, NWO. 3. 거짓예언자! 즉, NWO를 위해 일하는 정부. 열셋째의 2. 계시록 20장 10절의 불이 타는 호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이 성구를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뭘까요? 1. 사탄 마귀(devil)는 영자입니다. 영자 즉, spirit being은 불에 태워지지 않습니다. 다니엘 3장을 읽어보면, 천사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던져진 풀무불에 들어가 세사람을 구출해준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천사는 문자적인 불에 전혀 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20장 10절은 비유에 해당합니다. 2. 불과 유황의 호수에는 태울 수 없는 존재가 던져졌으며,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불에 의해서 타지 않는 것이 어떻게 연소되며, 그것이 어떻게 통증을 느끼겠습니까? 계시록 20장 10절은 야수와 거짓예언자가 불호수에 던져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수"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New World Order"로 파악됩니다. 도대체, NWO가 어떻게 불과 유황의 호수에 던져진다는 말입니까? "거짓예언자"는 사람이 아니라, 계시록 13장의 후반부에 나오는 "New World Order"를 온 인류가 숭배하도록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나라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New World Order의 형상을 만들도록 주선하는 정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Corporation"이 어떻게 불과 유황이 타는 호수에 던져진다는 말입니까? 미국에는 "The Federal Reserve System" 이른바, '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Corporation"입니다. 불과 유황이 타는 호수에다 "연준"을 던져 넣었다고 표현한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20장 14절을 KLB(Korean Living Bible) 성경에서는, "그리고 죽음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졌는데, 이것이 둘째 죽음입니다."로 표현했습니다. RSV와 NLT 성경으로 보면, 죽음과 하데스도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Revelation 20:14 Revised Standard Version (RSV) "Then Death and Hades were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This is the second death, the lake of fire;" / Revelation 20:14 New Living Translation (NLT) "Then death and the grave were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This lake of fire is the second death."] 계시록 20장 14절에서 죽음과 하데스도 불못에 던져짐을 당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죽음과 인류가 들어가는 상태인 "하데스" Hades (/ˈheɪdiːz/; Greek: ᾍδης Hádēs; Ἅιδης Háidēs)는 어떻게 불못에서 고통을 느낀다는 말입니까?​ 계시록 20장 10절의 NWO, 야수와 거짓예언자도 코포레이션입니다. Corporations, 죽음, 하데스는 고통을

 

느끼는 존재가 아닙니다. "국제연합(UN)이 불못에 던져졌다"고 누가 말하면, 우리는 UN이 영원히 고초를 받는다고 이해해야 합니까? "이를 간다,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 밤낮으로 고통 받는다" 등과 같이 이러한 표현법은 단지 "비유법"일 뿐입니다. 오늘 메시지를 듣거나 읽는 분 중에서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분들은 "영원한 지옥"이 있다고 댓글을 달는지 모릅니다. 댓글을 다는 것은 자유이지만, 댓글을 지우는 것은 저의 권한이기도 합니다. 저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댓글을 통해 소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성경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 한하여 소통합니다. 그런 분들에겐 저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의 "지옥불 옹호론"에 대한 댓글을 통해서 논쟁하지 않습니다. 저의 답변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댓글 달지 마실 것을 부탁합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지옥에 관한 기사를 한번 더 읽어보시거나, 그게 아니면 도서관에 가서 "종교와 지옥"이라는 제목으로 진지한 조사를 해보시는게 나을 것입니다.

 

진지한 조사도 없이 기독교인이 십수년간 믿어온 "지옥 개념"에 관한 "확증 편향"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TV의 "전설의 고향"에서 여러차례 접해온 저승사자가 "망자의 영혼"을 데려간다는 관념은 진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귀신들이 자행하는 사기극입니다. 방금 이야기한 귀신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귀신이 아닙니다. 성서가 말하는 귀신은 디먼(demons)입니다. 저승사자를 믿으면 이스라엘의 사울 왕처럼 사기당합니다. 사울 왕은 영매 술사를 찾아가 사무엘을 흉내내는 영혼 비슷한 것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울은 죽은 사무엘을 만난게 아닙니다. 죽은 사무엘의 "영혼"같은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무엘의 영혼으로 위장한 디먼(귀신)을 만났습니다! 디먼들이 장난치는 것을 실제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이 만났다는 사무엘의 영혼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한국의 미아리 고개는 점쟁이들의 마을입니다. 점쟁이 중에는 실제로 접신한 자들이 있는데, 이들 점쟁이의 몸에 들락날락 하는 자들이 바로 귀신(demons) 입니다. 이것에 관해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저승사자가 와서 망자의 영혼을 데려간다는 TV 드라마의 묘사에 현혹돼서 진짜로 망자의 영혼이 떠돌아 다닌다고 세뇌되어 이상한 댓글을 달지 마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저승사자! 그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신 율법을 통해서 특별히 "영매술"을 경고하셨습니다. 고대 유대사회에서는 영매술사는 물론이고, 영매술사와 접촉하는 자 누구든지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기 때문에 그런 처벌을 면했겠지만, 영매술사를 찾아간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에서 죽임 당했습니다. 열넷째, 타르타루스(Tartarus)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KLB(Korean Living Bible)로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깊은 지옥에 던져 심판 때까지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두셨다." LEB 성경에서도 Tartarus가 나옵니다. [Peter 2:4 Lexham English Bible (LEB) "For if God did not spare the angels who sinned,

 

but held them captive in Tartarus with chains of darkness and handed them over to be kept for judgment,"] 한글과 LEB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말 번역본이 "지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소수의 우리말 번역판에 "타르타루스"단어가 나오긴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은 분석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기록한 아람어 원문 편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DARBY역이 가장 낫게 번역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2 Peter 2:4 Darby Translation (DARBY) "For if God spared not [the] angels who had sinned, but having cast them down to the deepest pit of gloom has delivered them to chains of darkness [to be] kept for judgment;"] DARBY역과 비교했을 때 정말이지, KLB역은 완전히 엉터리 번역입니다. 왜냐하면, "지옥"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DARBY역은 '타르타루스'가 안 나오지만, 지옥(hell)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둠의 깊은 구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서 해설가들은 타르타루스가 딱 한번 이곳에 등장한다고 말하면서,

 

사도 베드로가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시각으로 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편지를 바벨론에서 "아람어"로 기록했을 것입니다. "타르타루스"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희랍어 용어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원래 편지에는 헬라어 '타르타루스'가 없었을 것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필사본의 필사본의 필사본을 보기 때문에, 실제로 베드로가 "타르타루스" 용어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모르지만, 그렇게 추리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극히 일부 우리말 번역판이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게헨나와 스올을 사용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게헨나와 스올이 나올 자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열다섯째, 게헨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영문 성경이 "hell"로 번역한 헬라어 중에는 게헨나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게헨나(gehinnom)"는 12회 나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 "게(ge)"와 사람 이름 "힌놈(hinnom)"의 합성어입니다. 이 용어의 뜻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혹은,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12회가 나오는 곳의 일부 번역을 게헨나로 음역해서 원래의 헬라어 발음을 보존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지옥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지옥이라고 번역하면 안되는 지명을 이처럼 번역하면, 마치 "체르노빌"이라는 지명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지명을 번역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명은 번역의 대상이 아니라, 음역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번역가들이 지명은 번역이 아니라, 음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왜 대부분의 성서가 게헨나를 지옥(Hell)이라고 번역했습니까? 그게 미스테리입니다. 기원 1세기 메시아의 활동 당시에는 게헨나가 예루살렘 주민의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주변지역으로의 오염을 차단하기 위해 게헨나는 항상 불이 타고 있었고, 유황불이 닿지 않는 곳은 구더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어느 누구의 시체가 던져지는 것은 최대의 치욕으로 간주됐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다 산사람을 던지지는 않았습니다. 오로지 쓰레기와 오물과 죽은 동물의 사체와 치욕적인 사체만 던져졌던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게헨나가 12회 등장하는 성경구의 단어를 HELL로 번역하면 안되고, "Gehinnom 혹은, gehenna"로 놔둬야 합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지명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체르노빌"이란 단어가 나오는 우크라이나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 "체르노빌"이란 단어는 번역하지 않고 음역을 해서 "체르노빌"이라고 한글로 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1956, Vol XIV,p.81)은 아래와 같이 스올, 하데스, 게헨나의 번역과 음역에 대해 설명합니다. "성경의 초기 번역자들이 히브리어 스올과 그리스어 하데스 및 게헨나를 지옥이라는 단어로 지속적인 번역을 함으로써, 많은 혼란과 오해가 야기되었다. 개정판 성경 번역가들이 이 단어들을 단순 음역한 것만으로는 이러한 혼란과 오해를 해소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음역과 일관된 표현을 통해 성경 연구자는 원어 단어가 등장하는 본문을 정확하게 비교하고, 열린 마음으로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Much confusion and misunderstanding has been caused by the early translators of the Bible persistently rendering the Hebrew Sheol and the Greek Hades and Gehenna by the word hell. The simple transliteration of these words by the translators of the revised editions of the Bible has not sufficed to appreciably clear up this confusion and misconception. Nevertheless, such transliteration and consistent rendering does enable the Bible student to make an accurate comparison of the texts in which the original words appear and, with open mind, thereby to arrive at an understanding of their true significance.” – The Encyclopedia Americana (1956, Vol XIV,p.81)."] 힌놈의 골짜기에서 갓난아기를 산채로 태워 몰렉신에게 바치는 끔직한 광경을 바라보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옥불을 만들어서 악인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가한다는 기독교의 교리와 어떻게

 

조화되기나 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레미야 32장 35절을 KLB(Korean Living Bible) 성경으로 읽습니다. "힌놈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세워 몰렉 신에게 그들의 자녀를 제물로 바쳤다. 그들이 이런 끔찍한 일을 행하여 유다를 죄 가운데 빠지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며 내가 생각한 일도 아니다." 이어서, 예레미야 32장 35절을 CJB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벤-힌놈 계곡에 바알을 위한 산당을 짓고 그들의 아들딸들을 몰렉에게 산 채로 불사르게 하였는데, 이는 내가 명령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그런 가증한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유다에게 죄를 짓게 하였다'고 했다." [Jeremiah 32:35 Complete Jewish Bible (CJB) "and they built the high places for Ba‘al which are in the Ben-Hinnom Valley, to burn alive their sons and daughters to Molekh — something I did not order them to do, it never even entered my mind that they would do such an abominable thing — and thus they caused Y’hudah to sin.’"]

 

또, E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습니다. "그들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세워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록에게 바치려고 하였으나,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이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죄를 짓게 하라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않았나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않았고 내 생각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Jeremiah 32:35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They built the high places of Baal in the Valley of the Son of Hinnom, to offer up their sons and daughters to Molech, though I did not command them, nor did it enter into my mind, that they should do this abomination, to cause Judah to sin."] 다음에는, 스페인어  NTV 성경을 우리말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들은 벤힌놈 골짜기에 바알 신전을 짓고 그곳에서 그들의 아들 딸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바쳤다. 나는 그런 끔찍한 행위를 명령한 적이 없으며, 그런 일을 명령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유다가 그토록 큰 죄를 짓게 한, 믿을 수 없는 사악함이다." [Jeremías 32:35 Nueva Traducción Viviente (NTV) "Edificaron santuarios paganos a Baal en el valle de Ben-hinom y allí sacrifican a sus hijos e hijas a Moloc. Jamás ordené un acto tan horrendo; ¡ni siquiera me pasó por la mente ordenar semejante cosa! ¡Qué maldad tan increíble la que hizo que Judá pecara tanto!"] 창조주께서는 "그런 끔찍한 짓은 명령한 바도 없고, 내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메시지를 듣거나 읽는 분 중에는 악인이든 의인이든 연기처럼 사라지니까, 멋대로 살다가 죽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길는지 모릅니다. 그런 개념은 성서가 절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구약 성경에서도 의인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은 노아나 다니엘이 지금 죽어 있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살아있다는 뜻이 됩니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된다고 성서가 가르친다는 개념은 성경구절에 존재하지도 않는 최악의 궤변입니다!​ 앞서 읽은 성경구절은 지옥불 개념과 영혼불멸 사상이 비성경적임을 기술한 것입니다. 영혼이 망자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간 다음에, 연옥. 지옥. 천국으로 강제적인 이동이 된다는 개념은 완전히 비성경적임을 기술했습니다. 저의 논증이 "참"이라면, 인생은 단지 1회용이라는 개념으로 지지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에 해당합니다. 성경구절의 가르침을 등지고, 스스로 자신을 속이면 안됩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점은 명확합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 다음과같은 사실을 가르칩니다. 열다섯째의 1. 대속물이 희생되면 사람이 영생할 수 있다!에 대한 것입니다. 시편 49편 7절 8절 9절을 참고하십시오! 먼저, I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대속할 수 없다. 또한, 그는 그를 위해 충분한 대가를 신에게 줄 수 없다. 그의 생명을 대속하는 데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불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는 계속 살아야 한다. 부패를 보지 않아야 한다."​ [Psalm 49:7-9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 (ISV) "No man can redeem the life of another,[a] nor can he give to God a sufficient payment for him—for it would cost too much to redeem his life, and the payments would go on forever—that he should go on living and not see corruption."] 또, 완전한 유대교 성경으로 불리우는  CJB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습니다. "자신의 부를 의지하여 얼마나 부유한지 자랑하느냐? 아무도 그의 형제를 구속 할 수 없다. 또는, 그를 위해 대속물을 줄 수 없다. 그에 대한 대가가 너무 높기 때문에, 그 생각은 완전히 내버려 두라! 그를 영원히 살게하기 위해 구덩이를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Psalm 49:7-10 Complete Jewish Bible (CJB) "the evil of those who rely on their wealth and boast how rich they are? No one can ever redeem his brother or give God a ransom for him , because the price for him is too high(leave the idea completely alone!) to have him live on eternally and never see the pit."] 이어서, 스터디 바이블 E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참으로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속할 수 없다. 자기 목숨의 대가를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 그들의 생명의 대속은 비용이 많이 들기에 결코 충분할 수 없다. 그는 영원히 살아야하며 그리고, 결코 구덩이를 보지 않아야 한다."

 

[Psalm 49:7-9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Truly no man can ransom another, or give to God the price of his life, for the ransom of their life is costly and can never suffice, that he should live on forever and never see the pit."] 열다섯째의 2. 의인들은 "마지막날"에 부활된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12장 13절, 이사야 55장, 이사야 26장을 참고하십시오! I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 그러나, 너희의 죽은 자들은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는 부활할 것이다. 먼지 속에 사는 자들이 일어나서 기쁨으로 외칠 것이다. 당신의 이슬은 새벽 이슬과 같으니, 땅은 죽은 자를 낳을 것이다." [Isaiah 26:19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 (ISV)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But your dead will live; their bodies will rise. Those who live in the dust will wake up and shout for joy![a] For your dew is like the dew of dawn, and the earth will give birth to the dead."] 열다섯째의 3.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의인들은 살아있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잠자고 있는 상태와 동일합니다. 다니엘 12장 13절을 참고하십시오! 열다섯째의 4. 다니엘과 같은 의로운 자들이

 

부활되기 위해서는 잠시 "잠깐" 죽음 안에서 "쉬는 상태"를 지나야만 한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12장 13절의 "잠시 잠깐"이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이 말은 상징적인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미레에 부활되는 사람들은 죽음 뒤에 즉시 부활된 것으로 느낄 것입니다.​ 열다섯째의 5.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악인은 심판 즉, 치욕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 다니엘 12장 1절 2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다시 말해서, 지금 메시아의 제자로 삶을 영위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심판에서 면제됩니다! 다니엘 12장 1절 2절을 스터디 바이블 E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종말의 시간! 그 때에 너희 백성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자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라가 생긴 이래로 한 번도 없었던 환난의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당신의 백성은 책에 이름이 기록된 모든 사람을 구출할 것이다. 그리고, 땅의 먼지 속에서 잠자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서 일부는 영원한 생명으로, 일부는 수치와 영원한 멸시를 받게 될 것이다."​ [Daniel 12:1-2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The Time of the End! "At that time shall arise Michael, the great prince who has charge of your people. And there shall be a time of trouble, such as never has been since there was a nation till that time. But at that time your people shall be delivered, everyone whose name shall be found written in the book. 2 And many of those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sha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and some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이어서, 요한복음 5장 28절 29절을 E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 즉 선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나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놀라지 말라."​ John 5:28-29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Do not marvel at this, for an hour is coming when all who are in the tombs will hear his voice 29 and come out, those who have done good to the resurrection of life, and those who have done evil to the resurrection of judgment."]

열다섯째의 6. 메시아의 진정한 제자로 지금 생애를 산사람은 부활 이후에 있을 "심판"에서 제외된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I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단호하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John 5:24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 (ISV) "Truly, I tell all of you[a] emphatically, whoever hears what I say and believes in the one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judged, but has passed from death to life."]​ 심판받지 않는다? 이 말에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8절이 말하듯이, 생명의 부활로 나온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이것에 관해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계시록 20장 11절에서 15절까지를 E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백보좌 앞의 심판! 그때 나는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다. 그의 앞에서 땅과 하늘이 달아나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또, 크고 작은 죽은 자들이 보좌 앞에 서 있고 책들이 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이 펴졌는데, 그것은 바로 생명책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그들이 행한대로 심판을 받았다. 바다가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죽음과 음부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그들은 각자 자기들이 행한대로 심판을 받았다. 그러자, 죽음과 음부는 불못에 던져졌다. 이것이 두 번째 죽음인 불못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불못에 던져졌다." [Revelation 20:11-15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Judgment Before the Great White Throne! "Then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who was seated on it. From his presence earth and sky fled away, and no place was found for them. And I saw the dead, great and small,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books were opened. Then another book was opened, which is the book of life. And the dead were judged by what was written in the books, according to what they had done. And the sea gave up the dead who were in it, Death and Hades gave up the dead who were in them, and they were judged, each one of them, according to what they had done. Then Death and Hades were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This is the second death, the lake of fire. And if anyone's name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he was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죽은 자"의 종류는 큰 자나 작은 자로 묘사됐는데, 이들은 모조리 하얀 보좌 앞에 서 있습니다. 여기의 "죽은 자"는 망자의 영혼이 아닙니다! 이들은 "죽음"과 "하데스"에서 나온 자들 곧, 부활된 자들입니다! 이들을 "망자의 영혼"이라고 가르치는 종교단체가 많은데, 그들은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계시록 20장 13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5장 28절 29절을 동시에 읽으면서 대조해봐야 합니다. 사망과 하데스에 있는 자들 누구나(everyone) 메시아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되면, 그들은 부활합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하데스의 열쇠를 가지신 분인 것입니다.

계시록 1장 18절을 I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습니다. "살아있는 자다. 나는 죽었지만, 보라! 나는 영원히 살아 있다! 나에게는 죽음과 음부의 열쇠가 있다." [Revelation 1:18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 (ISV) the living one. I was dead—but look!—I am alive forever and ever! I have the keys of Death and Hades."] 계시록에 나오는 "죽은 자"라는 표현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사람의 관점에서의 "죽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죽은자"라는 표현입니다. 이어서, 마태복음 8장 18절에서 22절까지를 I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습니다.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 예수께서는 주위에 많은 무리가 있는 것을 보시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라고 명령하셨다. 바로 그때, 한 서기관이 와서 '선생님!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제가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에게는 구멍이 있고 새에게는 둥지가 있지만, 그러나 인자는 쉴 곳이 없다. 그러자, 제자 중 한 사람이 주님! 먼저 저를 보내시어 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

 

죽은 자들이 자기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하셨다." [Matthew 8:18-22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 (ISV) The Would-be Followers of Jesus! "When Jesus saw the large crowds around him, he gave orders to cross to the other side of the Sea of Galilee. Just then, a scribe came up and told him,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Jesus told him, Foxes have holes and birds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rest. Then another of his disciples told him, Lord, first let me go and bury my father. But Jesus told him,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이들은 부활한 자들이긴 하지만, 생명의 부활로 나온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죽은 자들입니다요한복음 5장 29절이 말한 "심판의 부활"로 나온 자들이, 바로 요한계시록 20장 12절이 묘사한 자들에 해당합니다. 열다섯째의 7. 모든 죽은 자들이 메시아의 목소리를 듣고 부활된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부활에서 제외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의인이든, 악인이든, 부활될 때에 자신이 얼마동안 죽어 있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 속에서의 "경과 기간"이 얼마나 길든지 짧든지 전혀 상관없이, 모든 부활된 자가 어제 잠들었다가 오늘 깨어난 것처럼 극히 짧은 순간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은 하나님이 악한 세상을 "무한대"로 허락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대의 기간 동안을 부여한다 해도, 악한 세상을 절대로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설령, 그 무한대의 기간이

 

하나님에게는 "찰나"의 기간일지라도 동일합니다. (중략) 누가복음 17장 33절에서 37절까지 2001역 성경의 우리말 번역으로 읽습니다. "목숨을 구하려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고, 목숨을 잃는 자는 살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라. 그날 밤에는 한 침대에 두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데려갈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맷돌에서 갈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데려가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뒤에 남겨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물었다. 주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날까요?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독수리들이 시체에 모여드는 것을 보게 될 때'라고 대답했다." [For those that try to save their lives will lose them, while those that lose them will live. ‘I tell you this: In that night, there’ll be two in one bed; One will be taken along, And the other will be left behind. Two will be grinding at [the same] mill;One will be taken along, And the other will be left behind.’ So they asked him:When [is this going to happen], Lord?’​ And he replied:‘When [you see] the vultures gather at the carcass.’"]​ 이때는 아직 요원합니다. 이것에 관해 저는 여러 기사를 썼습니다. 누가복음 17장 37절을 대부분의 영문성경이 Where라고 번역했습니다! 그것은 오역입니다.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 누가복음 17장 37절을 여러 성경 번역본으로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1. 21세기 킹 제임스판 KJ21 영어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KJ21 "And they answered and said unto Him, Where, Lord? And He said unto them, Wheresoever the body is, thither will the eagles be gathered together."]

 

2. 영어개역판 표준판성경 ASV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도 거기로 모일 것이니라." [ASV "And they answering say unto him, Where, Lord? And he said unto them, Where the body is, thither will the eagles also be gathered together. AMP And they asked Him, Where, Lord? He answered, Where the corpse is, there the vultures will be gathered."]

 

3. 증폭 성경 클래식 버전에 해당하는 AMPC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나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AMPC "Then they asked Him, Where, Lord? He said to them, Wherever the dead body is, there will the vultures or eagles be gathered together."]

 

4. 블루 레드 & 골드 레터 에디션 성경으로 불리우는 BRG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시체가 있는 곳마다 독수리들이 거기 모이리라." [BRG "And they answered and said unto him, Where, Lord? And he said unto them, Wheresoever the body is, thither will the eagles be gathered together."]

 

5. 홀만 성경(HCSB)의 개정개역판에 해당하는 CSB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들이 물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CSB "Where, Lord? they asked him. He said to them, Where the corpse is, there also the vultures will be gathered."]

 

6. CSB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제자들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독수리는 시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모인다고 말씀하셨다." [CEB The disciples asked, Where, Lord? Jesus said, The vultures gather wherever there’s a dead body."]

 

7. 완전한 유대교 성경으로 알려진  CJB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들은, 주님! 어디입니까?라고 물었다. 시체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가 대답했다." [CJB "They asked him, Where, Lord? He answered, Wherever there’s a dead body, that’s where the vultures gather."]

 

8. 미국성서공회 CEV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나, 주님! 이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날까요?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시체가 있는 곳에는 항상 호랑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CEV "Then Jesus' disciples spoke up, “But where will this happen, Lord?” Jesus said, “Where there is a corpse, there will always be buzzards.”]

 

9. 존 넬슨 다비 번역성경으로 알려진 DARBY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DARBY "And answering they say to him, Where, Lord? And he said to them, Where the body [is], there the eagles will be gathered together."]

 

10. "제자들의 문자 그대로 신약성경"인 DLNT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주님께, 주님,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함께 모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DLNT "And having responded, they say to Him, “Where, Lord?” And the One said to them, “Where the body is, there also the vultures will be gathered-together."]

 

11. 청취자 성경 두아이 - 라임스인 DRA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누가 그들에게 말했는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도 함께 모일 것이니라." [DRA "Who said to them:Wheresoever the body shall be, thither will the eagles also be gathered together."]

 

12. 읽기 쉬운 버전 ERV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시체를 찾는 것과 같으니, 독수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ERV "The followers asked Jesus, Where will this be, Lord? Jesus answered, It’s like looking for a dead body—you will find it where the vultures are gathering above."]

 

13. Android용 Holy Bible EHV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들이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EHV "Where, Lord? they asked him. He said to them, Where the corpse is, there the vultures will be gathered."]

 

14. 영어 표준 버전인 E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제자들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라고 하셨다." [ESV "And they said to him, Where, Lord? He said to them, Where the corpse is, there the vultures will gather."]

 

15. 영어 표준 버전 Anglicised의 성경 버전인 ESVUK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주여! 어디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ESVUK "And they said to him, Where, Lord? He said to them, Where the corpse is, there the vultures will gather."]

 

16. 확장 성경에 해당하는 EXB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주여! 이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죽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대학살로 인해 심판의 장소가 모든 사람에게 분명해질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EXB "The followers [L They] asked Jesus, “·Where will this be [L Where], Lord?” Jesus answered, “Where there is a ·dead body [corpse], there the vultures will gather [C the carnage will make the place of judgment obvious to all]."]

 

17. 제네바 성경인 GNV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도 거기로 모일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GNV "And they answered, and said to him, Where, Lord? And he said unto them, Wheresoever the body is, thither shall also the eagles be gathered together. GW They asked him, Where, Lord? Jesus told them, Vultures will gather wherever there is a dead body."]

 

18. 원어 신약성경 제3판 GNT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제자들이,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다." [ GNT "The disciples asked him, “Where, Lord?” Jesus answered, “Wherever there is a dead body, the vultures will gather."]

 

19. 홀만 크리스천 표준 성경인 HCSB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일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HCSB "Where, Lord? they asked Him. He said to them, Where the corpse is, there also the vultures will be gathered."]

 

20. 국제 어린이 성경 ICB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이 시체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은 언제나 독수리를 찾으면 시체를 찾을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ICB "The followers asked Jesus, Where will this be, Lord? Jesus answered, People can always find a dead body by looking for the vultures.

 

21. 국제 표준 버전인 ISV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주님! 어디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시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ISV "Then they asked him, Where, Lord, will this take place? He told them, Wherever there’s a corpse, that’s where the vultures will gather."]

 

22.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습을 받던 상황에서, 런던의 J. B. 필립스 목사가 당시 대중적이었던 킹제임스성경을 교회 청년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한 나머지, 직접 성경을 번핬다고 알려진 PHILLIPS 성경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하지만, 주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그들이 물었다. 시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독수리가 몰려들 것이다! 라고 그가 대답했다." ["But where, Lord? they asked him. Wherever there is a dead body, there the vultures will flock, he replied."]

여기까지입니다. 더이상, "영혼불멸과 영원한 유황불지옥" 교리에 속지 마십시오! 악인들은 세상끝날 불심판 즉, 단회적인 지옥불로 소멸됩니다. 성경에서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영생을 박탈하고 존재 소멸당함을 말합니다. 국내외 한국 개신교를 비롯한, 기독교 종교단체들은 성경과 다른 거짓말들을 믿는 이단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다른 영의 다른 복음"을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5부 메시지 글이나 오디오로 들으신 분들은, 1부부터 4부까지 모두 들어보실 것을 부탁합니다. 오늘까지, 탄산수 전도자의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에 대한 글 메시지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총5부로 나누어서 모두다 전해드렸습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이나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께서는 맨 윗상단의 링크로 들어가셔서 로그인없이, 참예수 복음을 찾아 진리의 복음이라고 하는 진주와 같은 보화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만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탄산수' 전도자

* 원제목: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의 기원

* 부제목1: 영어 성경의 Hell이 게헨나 / 스올이면 뭣하나? 

* 부제목2: 내 번역성경이 지옥인데!(4부)

 

♤32분 메시지, https://buly.kr/BISAUSb

☞ 원출처 URL(공감, 댓글): https://is.gd/7ZBGQJ

◐                                          ◑

☞ 부제: 불교에는 수많은 지옥이 있는데, 불교의 "대초열지옥(죄가 완전 소멸할 때까지 존재한다는 불지옥)"과, 기독교 지옥 중에 "영원한 유황불 지옥"이 똑같을까요?: https://buly.kr/2fajRgg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 https://cafe.naver.com/baknoah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도 네이버 "숨겨진 진실"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탄산수' 전도자께서 성경과 다르게 기독교 종교단체에서 잘못 가르치고 믿고 있는,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에 대한 글 메시지를 총5부로 나누어 음성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국내외 한국 개신교 안에서 "사람의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죽자마자, 예수님을 믿는 의인들은 천국에 들어 가고, 악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로 소금치듯하는데, 구더기도 타죽지 않는 지구 지하 깊은 공간에 갇혀서, 사단 마귀들에게 영원무궁하도록 괴롭힘 당하면서 죽지도 못하고 탈옥하지도 못하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외에도 특별식으로 전세계 천국지옥 신비체험 거짓말들을 진리처럼 믿고 사람들에게 전해주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1부에서 3부까지의 메시지를 듣고도 그것들을 깨끗하게 버리지 못하고 계십니까? 오늘 4부 메시지를 들으면서 영적인 눈이 떠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마약을 코로 흡입하고 주사를 맞으면 "완전한 사망(영혼소멸)"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4부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에는 네차례나 네페쉬가 동물에게 사용됐습니다. 창세기 1장 20절의 바다 생물! 창세기 1장 2절의 큰 바다 생물! 창세기 1장 24절의 육지 생물! 창세기 1장 30절의 새들과 육지 생물입니다. 창세기 2장은 네페쉬를 사람에게 적용시켰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네페쉬는 살아있고 쉼쉬며 의식이 있는 몸을 의미합니다. 불멸의 영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 몸과 다른, 불멸의 영혼 개념은 바벨론 유배 이전의 유대교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페르시아의 종교 철학과 희랍 철학과의 접촉으로 인하여 이런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네페쉬 Nepes [v,p,n] 는 결코 불멸의 영혼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네페쉬는 생명 그자체, 피조물, 생물, 호흡하는 산 자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네페쉬의 또 다른 용법은 이렇습니다. 신명기 12장 20절, 사무엘상 2장 16절, 잠언 25장 25절의 성구는 네페쉬를 사용해서 사람의 물리적인 필요! 이를테면, 배고픔과 갈증을 표현했습니다. 잠언 23장 2절은 지나친 욕구를 표현했고, 사무엘상 1장 15절은 달성되지

 

못한 욕망을 표현했으며, 시편 42편 1절 2절은 영적인 욕구와 자의적인 욕구를 표현할때 네페쉬를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26장 8절 9절은 공의를 표현했고, 잠언 21장 10절은 악(evil)을 표현했으며, 사무엘하 3장 21절은 정치 권력(power)을 갈구하는 주체를 묘사할 때에도 네페쉬를 사용했습니다. 네페쉬에 의해 표현된 다양한 감정들도 구약에 나옵니다. 이사야 1장 14절은 미움을 나타내었고, 예레미야 13장 17절은 슬픔을 나타내었으며, 시편 42편 5절은 기쁨과 환희와 걱정을 나타낸 반면에, 사무엘상 1장 15절은 불행을 표현했는데, 표현의 주체는 모두 네페쉬입니다. 베이커의 성서 신학의 복음사전을 보면, 네페쉬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같이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구약에 따르면, 모르탈 즉 멸성인간은 하나의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산 영혼 그 자체이다. 산 영혼은 두 부분이나 세 부분으로 분리되는 대신, 통합된 하나의 존재이다" 에스겔 18장 4절은 네페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Berean Study Bible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읽습니다.

 

"보아라! 모든 영혼은 내게 속한다. 아버지와 아들 둘 다 내 것이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 것이다(ehold, every soul belongs to Me; both father and son are Mine. The soul who sins is the one who will die)." "범죄하는 그 영혼"은 "범죄하는 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도 네페쉬가 사용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나와 보이지 않는 영혼이 분리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범죄하는 그 사람이 곧 그 자의 영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통합된 전체로서의 한사람! 혹은, 동물 또는 생물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을 신세계역 성경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영혼과 몸을 둘다 게헨나에 멸할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십시오." 이번에는,  마태복음 10장 28절을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으로 읽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지옥으로 번역된 원어는 게헨나(gehenna )입니다. ge는 골짜기라는 뜻이고, 헨나는 힌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 혹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결단코, 마태복음 10장 28절이 영혼불멸을

 

가르치는 성구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대한 이해의 열쇠는 성서가 사용하는 "영혼, 네페쉬, 프쉬케"의 의미로 이 문장을 분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일, 이 성구를 읽는 사람이 영혼 즉 soul의 이미저리(Imagery)를 떠올릴때, 희랍 철학자 플라톤이 설파하던 "희랍, 철학적, 개념을 떠올리면 엉뚱한 교리가 탄생하고 맙니다. 유대인 성경을 보아도,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개역한글판의 "지옥"을 "게힌놈(Gei-Hinnom)"이라고 번역했습니다.[Matthew 10:28 Complete Jewish Bible (CJB)유대인성경 “Do not fear those who kill the body but are powerless to kill the soul. Rather, fear him who can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Gei-Hinnom.")] 28절의 프쉬케 곧 네페쉬가 영혼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용어지만, 반드시 "영혼"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영혼(soul)이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이미저리 때문에 독자들이 곡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조사한 모든 영문성경 번역은 "Soul"로 번역했습니다. 정통유대성경역에서는 번역팀의 "고민"의 흔적이 보입니다. 히브리 단어 " 네페쉬 "를 "soul"과 나란히 기재했습니다.

 

[Mattityahu 10:28 Orthodox Jewish Bible (OJB) "And do not fear those who kill the basar (flesh), but are unable to kill the nefesh (soul); but rather fear the One who is able to destroy both basar and nefesh in Gehinnom.")] 이 성구의 네페쉬 즉 프슈케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힌트는 다니엘서 12장의 맨마지막 성구에 나옵니다. 해당 구절을 보면, 천사가 다니엘이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은 잠깐 쉬다가 마지막 날 부활하여 자신의 생을 살아갈 것인데, 실제로 다니엘의 몸은 죽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나이가 차서 죽었으나, 하나님의 천사 예언처럼, 때가 되면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천사가 어느 인간에게 나타나서 죽는 것을 "쉬는 것"이라고 비유하며 알려준 것은 이 곳이 처음입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다니엘 12장 13절처럼 "쉼"이후에 다시 "일어날(rise)"거라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천사가 직접 나타나 설명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다니엘 12장 13절 말씀을 개역한글판으로 읽겠습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어서, 다니엘 12장 13절을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습니다.

 

[Daniel 12:13 New Living Translation “As for you, go your way until the end. You will rest, and then at the end of the days, you will rise again to receive the inheritance set aside for you.”)] 우리말로 번역하면, "첫째로, 너는 쉴 것이다. 둘째, 너는 너를 위해 준비된 유산을 받기 위해 다시 일어날 것이다."입니다. "죽음"을 "쉼"이라고 표현했다는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는 다시 일어난다고 비유했던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려면, 반드시 누워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자리에 눕는 것으로 보았고, 부활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했던 것입니다. 다니엘 12장 13절을 자세히 분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이곳처럼 분명하게, 마지막 날에 의인이 부활될 것을 천사가 언급한 성구가 없습니다. 게다가, 천사는 다니엘이 "유산" 혹은 "분깃"을 받기 위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한 다니엘이 받게 될 할당된 "몫"이, 정확히 "영원한 생명"인지에 대해서는 천사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다니엘이 다시 부활될 것을 예언한 것이므로, 다니엘이 부활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향유할 것을 언급했다고 보는 편이 바른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하나님이 죽음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이같은 부활의 언급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 12장 13절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타번역에서 다니엘 12장 13절이 다음과같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지속하라. 끝까지! 그리고, 너는 쉬게 될 것이고, 그리고, 너는 날들의 끝에 너의 분깃(상)을 받기 위해 일어날(부활) 것이다( Pero tú, continúa hasta el fin, y descansarás y te levantarás para recibir tu heredad al fin de los días)". 인간들은 매일 8시간 전후의 잠을 잡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인간들은 이것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다니엘에게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잠을 잘 때,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영혼이 구천을 헤메는게 결코 아닙니다. 사람의 의식 혹은 "잠재의식"은 여전히 그 사람의 내부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꿈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잠재의식이 다른 세계로 이동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꿈꾸면서 작동되는 잠재의식이 우리의 동기나, 우리의 욕망이나, 우리의 "inner person"이라고 표현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플라톤이 가르쳤던 영혼(soul)의 개념은 아닙니다. 플라톤이 가르쳤던 죽은 자의

 

몸에서 빠져 나온 "소울 / 영혼(soul)"이 제3의 장소로 이동한다는 개념으로 천사가 다니엘에게 설명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천사는 다니엘이 죽음 이후에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을 말한게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죽음을 마치 수면을 취하면서 "쉬는 것"으로 비유했으나, 그것은 다니엘의 생명 기능이 부활시까지 지속된다는 설명이 아니라, 단지 "알레고리"를 사용한 것 뿐입니다. 달리 말해서, 다니엘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있다는 설명이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부활한다는 사실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에 영혼이 불멸이고, 영혼이 죽는 그 순간에 제3의 장소로 이동한다는 영혼이동설이 "진리"라면(물론 절대로 그렇지 않지만), 다니엘이 죽었을때에 다니엘의 영혼은 어찌됐는지 "추리"해 봐야 합니다. 만일, 영혼불멸설이 "참 진리"라면, 다니엘은 의인이므로,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이동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천사는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런 해괴망칙한 개념대로라면, 다니엘이 천사로 변하는 시점은 다니엘의 사망 시점이 됩니다. 다니엘의 영혼을 하늘 천국으로 이동시키는데 수천년이 걸린다? 말도 안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죽는 그 순간에 다니엘의 영혼이 천국으로 이동한 뒤에 천사가 되어 영생한다? 앞으로 몇년 뒤면 천사의 입장에서 볼 때, 다니엘은 자기의 동료가 될 사람이다? 만일, 그게 다니엘이 경험할 미래라면, 어차피 다니엘의 미래를 예언하는 자리이니까, 천사는 그 점을 간단히 이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아! 너는 네 길을 끝까지 가거라! 너는 죽는 순간에 내가 살고 있는 천국으로 올 것이다. 그때 너를 위해 준비된 네 분깃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그때 만나자"라든지 아니면, 이와 비슷하게라도 언급했었어야 합니다. 왜입니까? 왜냐하면, 다니엘의 영혼이 죽는 순간에 몸에서 분리되어 이동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천사이므로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악인들의 영혼이

 

지옥으로 이동하는 것도 매일 매일 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의인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계속 이동해 들어오는 것도 날마다 목격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 12장 13절을 읽어보면, 천사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이 부활되는 그 시점까지 그러니까, 다시 일어나는 그 시점까지 "쉬게될"거라고 언급했습니다. 여기서, "쉴 거"라는 표현은 모든 번역판이 대동소이합니다. 부활되는 시점 역시도, 천사가 알려줬습니다. 천사는 마지막 날에" 혹은, "날들의 끝에"라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은 오랜 기간이 지난 "마지막 때"에 자신이 부활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이 죽음 속의 깊은 잠을 잘 거라는 것도 확실하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죽음의 잠을 자는 동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이동하지 못할 것임도 틀림없이 알았을 것입니다. 열한째, 영혼불멸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에게 물어보는

 

8가지 질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혼불멸설 신봉자 여러분은 다음의 세가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해 보십시오! 열한째의 1. 다니엘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다니엘의 영혼이 천국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천사는 뭣하러 다니엘이 마지막 날에 부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까? 천사가 거짓말한 것입니까? 열한째의 2다니엘의 영혼이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만끽하면서 살고 있는데, 뭣하러 그를 다시 땅으로 부활시킨단 말입니까? 열한째의 3. 다니엘의 영혼이 이미 하늘에 올라갔는데, 왜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3장 13절 말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이런 성경구절을 보고도 에녹과 엘리야가 이미 하늘에 올라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에녹과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갔다면, 모세나 아론이나 다니엘이나 욥이나 노아가 하늘로 가지 못할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에녹과 엘리야는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실 당시에 내용은, 처음부터 하늘에 살던 자는 인자 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에녹도 의인이고 엘리야도 의인입니다. 다니엘도 의인이고 모세도 의인입니다. 저는 이미 에녹과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라는 관점에서 성경적으로 분석한 메시지를, 또다른 제목으로 전한 바 있습니다. 만일, 모세가 죽자마자 하늘로 승천했다면, 왜 하나님은 신명기 32장 50절에서 "너는 네백성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천명하셨겠습니까? 여러분도 아다시피,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를 통과할 때, 나이가 20세 이상인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조리 광야에 묻혔습니다. 이들이 처벌받은 것은 창조주 여호와께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불법을 드러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가 그들과 함께 있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혹시,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악인들이었기 때문에 악인들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므로,

 

모세도 지옥불로 떨어질 것을 그런 식의 비유법으로 설명하셨단 말입니까? 열한째의 4. 모세의 영혼이 죽는 순간에 제3의 장소로 이동했다면, 도대체 모세의 영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네 백성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리고, 모든 백성의 영혼은 지옥에 갔으므로, 모세도 "지옥"으로 이동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각자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32장 50절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 산에서 죽어라.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앞서간 겨레에게로 돌아갔듯이, 너 또한 앞서간 겨레에게로 돌아가거라.열한째의 5. 수많은 의인들의 영혼이 이미 하늘에 올려져 잘 살고 있는데, 왜 예수님(Yahushua)께서는 "부활의 첫열매" 혹은 "잠자는자들의 첫열매"라고 신약성경에서 표현했습니까? 린도전서 15장 20절 말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게다가, "죽은자들"을 "잠자는자들"

 

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열한째의 6. 만일, 모든 죽은 자들이 지옥이나 천국으로 이동하여 자신들의 행복이나 고통을 만끽하며 살고 있는데, 왜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죽은 자들이 "잠자고 있다"라고 표현했습니까? 잠자고 있는 것은 육체이고, 그들의 영혼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거나, 지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까? 만일, 잠자고 있다는 표현이 비유라면, 왜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영혼을 기준으로 말하지 않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 육체를 기준으로 말했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열한째의 7. 의인들의 영혼은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안착해서 잘 살고 있고, 악인들의 영혼은 그들의 목적지인 지옥에 안착해서 각자 자기의 여생을 살고 있는데, 왜 부활이 또 필요하단 말입니까?​ 열한째의 8. 성서의 부활과 영혼불멸 교리가 어떻게 서로 조화가 된다는 말입니까? 각자 진지하게 생각후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어떤 자가 부활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악인이라면, 그는 의인들이 부활하는 마지막 날에 부활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그 자의 영혼(네페쉬)까지도 게헨나에 넣어 멸망시켰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을 스페인어 번역성경으로 보아도, 역시 주님의 비유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을 죽이는 자들은 영혼을 죽일 힘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게이-힌놈의 몸과 영혼을 모두 파괴할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 [Mateo:10:28(Biblia Kadosh역) "No teman a los que matan el cuerpo, porque no tienen poder para matar el alma. Por el contrario teman al que puede destruir ambos, cuerpo y alma en el Guei-Hinnom.")] 영혼불멸로 인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는데, 기독교도들은 마태복음 22장 32절도 "영혼불멸 사상"을 말하는 성구라면서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영혼이 현재 죽어 없어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그들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2절 말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시니" 이 성구는 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영혼이 어딘가에 떠돌아 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세 사람의 의인들이 과거에 죽었으나 그들의 보이지 않는 영혼은 살아있다는 뜻으로 주님께서 설명하신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표현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시내산 위에서 언급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와 조우하셨을때,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은지 오래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 세 명의 죽은 자의 하나님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세 명의 영혼(네페쉬)이 지옥이나, 연옥이나, 천국이나, 혹은 구천에 떠돌아 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세 명이 모두 살아있다는 뜻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계시록 6장을 읽어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 6장 9절 10절을 보면, 제단 밑의 죽임당한 영혼들이

 

소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살해당한 영혼들이 부활되려면, 동료 그리스도인 종들의 숫자가 채워질 때까지 죽음의 잠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6장 9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영혼"은, 죽은 거룩한 종들의 영혼이 성전의 제단 밑에서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들을 포함하여 순교당한 베드로, 바울같은 사람들도 현재는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들 모두 때가 되면, 다니엘처럼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그들이 흰옷을 받은 상태라고 표현된 의미는 그들이 의로운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구를 오해하는 이유는 성서의 비유법과 은유법을 이해하지 못해서 입니다. 이 성구에도 네페쉬(프쉬케)가 사용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신약이든 구약이든 영혼에 해당하는 네페쉬나 프슈케가 나오면,

 

희랍 철학자 플라톤이 설파한 개념으로서의 영혼(soul)을 생각하지 말고, 창세기에나 혹은 에스겔 18장 4절에 나오는 영혼(네페쉬)의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성경을 엉뚱하게 잘못 해석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이 되고, 별들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성경구절의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마태복음 24장, 요엘서 2장, 누가복음 21장, 마가복음 13장, 계시록 6장에 나옵니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성서의 비유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의 경우, 문자적인 글자로 보고 하늘 천체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 뜻이 전혀 아닙니다. 첫째로는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직면한 카오스(혼란)에 대해 아무런 해법을 내놓지 못하며, 국민들이 그들(지도자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갖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며, 둘째로는 사회 정치 지도자들이 문자적 죽음에 처해질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열두째,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열두째의 1. 전도서 12장 7절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루아흐는 생명의 호흡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고, 어느 번역본에서는 "breath"로, 다른 번역본에서는 "spirit"으로 번역했습니다. NIV 성경에서는 "생명을 주는 호흡"으로 표현했습니다. [전도서 12:7 (NIV) "So our bodies return to the earth, and the life-giving breath returns to God."] 한글역에서는 "영"으로 번역했습니다. [전도서 12:7 Korean Living Bible (KLB) "육은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스페인 번역본에서도 "영"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날에 먼지는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전도서12:7 Nueva Traducción Viviente (NTV) "Pues ese día el polvo volverá a la tierra, y el espíritu regresará a Dios, que fue quien lo dio."] 유대인들의 성경 OJB에서는 히브리어인 루아흐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아파르는 그대로 하레츠에게로 돌아가고, 루아흐는 그것을 주신 하엘로힘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전도서12:7 Orthodox Jewish Bible (OJB) "Then shall the aphar return to ha’aretz as it was; and the ruach shall return unto HaElohim who gave it."] 유대인 성경 완역본 CJB에서는 spirit 으로 번역했습니다.

 

"먼지는 원래대로 땅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전도서 12:7 Complete Jewish Bible (CJB) "the dust returns to earth, as it was, and the spirit returns to God, who gave it!"]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혼"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네페쉬" 대신에, 영이나 호흡을 의미하는 "루아흐"가 사용됐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불멸 사상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성구의 분석은 제가 이전에 기고한 "프뉴마(루아흐)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찾아서 정독하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열두째의 2.  성서가 말하는 "죽은 자"의 상태는 어떻다고 이야기 합니까? 1. 기억이 없다. 시편 88편 12절 말씀!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수 있으리이까?" 2. 목적도 없다. 전도서 9장 10절 말씀!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3. 생각도 없다. 시편 115편 17절 말씀!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성경에는 이렇게 명확하게 쓰여져 있는데,

 

왜 이교도적인 철학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인간에게는 불멸의 영혼 같은 것이 일절 없습니다. 따라서, 영혼 이동설은 가짜입니다. 성경에는 영원한 불지옥. 연옥 그리고, 영원한 불지옥을 지키는 악마 그런 내용같은 것은 일절 없습니다. 그것들은 영감받은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죽어도 죽은게 아니다? 그런 것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인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결국에 때가 이르면 생명의 부활로 나옵니다. 그때까지는 비유적으로 죽음의 잠을 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존재의 끝을 의미합니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5세기 이전의 화가인데,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많은 그림 중에 중세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지옥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주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저런 그림을 그렸다? 4복음서 어디에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묘사가 있습니까?

 

메시아께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말씀하셨을때 강조한 요점은, 영혼이 고초를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부활이 없는 "소멸" 즉, "사라짐"이었습니다! 그런 점을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비유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새번역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이번에는 공동번역 개정판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사후세계에 관한 관념의 시작은 헬레니즘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마야인들과 고대 수메르인들과 고대 이집트인들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대의 유대사회에는 사후세계나 불타는 지옥의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사후세계의 개념은 기원전 323년에서 기원전 31년 사이에 헬레니즘이 유럽을 지배할 때, 유대지역 주변의 문화와 종교에 흡수됐습니다. 구약 성경은 대부분이 히브리어인데, 극히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됐습니다. 신약 성경은 희랍어와 아람어로 기록됐습니다.

 

(The word  translated in English as ‘hell’, and used throughout the Old Testament, is the original Hebrew word). 구약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영어 사용자들을 위해 번역될 때, Hell로 대체됐습니다. 구약 성경의 필자들은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을 어떤 의미라고 알고 있었을까요? 구약의 필자들은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죽기 전에 의로운 삶을 살았든, 불의한 삶을 살았든, 아무런 상관도 없이 죽은 자라면 누구나 가는 곳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당연히, 그곳은 지식도. 목적도. 느낌도. 생각도 없는 곳이며, 생명으로부터 "단절된 곳"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전도서 9장 10절은 이렇게 스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9장 10절을 KLB(Korean Living Bible) 성경으로 읽습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네가 앞으로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도 없다." [전도서 9:10 Complete Jewish Bible (CJB) "Whatever task comes your way to do, do it with all your strength; because in Sh’ol, where you will go, there is neither working nor planning, neither knowledge nor wisdom."]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항상 "hell"로만 번역된게 아닙니다.

 

"Hell"로 번역한 번역가들은 단테가 설파한 개념을 독자가 갖도록 의도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만에 하나 그리했다면, 번역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번역가는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오로지"hell"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가는 철저히 조사하는 습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이 경우에 따라서 "grave"나 "pit"로도 번역이 됐습니다. CJB 성경 - 창세기 37장 35절. 열왕기상 2장 6절. 욥기 17장 16절. 이사야 14장 11절KLB 성경 - 욥기 17장 16절NTV 성경 - 욥기 17장 16절을 보시면 그런 사례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35 Complete Jewish Bible (CJB) "Though all his sons and daughters tried to comfort him, he refused all consolation, saying, 'No, I will go down to the grave, to my son, mourning.' And his father wept for him." / 열왕기상 2:6 Complete Jewish Bible (CJB) "Therefore, act according to your wisdom; don’t let his gray head go down to the grave in peace." / 욥기 17:16 Complete Jewish Bible (CJB) "Only those who go down with me to the bars of Sh’ol, when we rest together in the dust.” / 이사야 14:11 Complete Jewish Bible (CJB) "Your pride has been brought down to Sh’ol​ with the music of your lyres, under you a mattress of maggots, over you a blanket of worms."] [욥기 17:16 Korean Living Bible (KLB) "내가 죽으면 내 희망도 죽음의 문까지 내려가 나와 함께 흙 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욥기 17:16 Nueva Traducción Viviente (NTV) "No, mi esperanza descenderá conmigo a la tumba.《¡Descansaremos juntos en el polvo!》."] "구약 성경에서 히브리어 she’ol (שְׁאוֹל)은 도덕적인 구분없이 단순히 죽은 자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됐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국내외 한국 개신교를 비롯한, 기독교 종교단체들은 성경과 다른 거짓말들을 믿는 이단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다른 영의 다른 복음"을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지막 5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이나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께서는 맨 윗상단의 링크로 들어가셔서 로그인없이, 참예수 복음을 찾아 진리의 복음이라고 하는 진주와 같은 보화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만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탄산수' 전도자

* 원제목: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의 기원

* 부제목1: 영어 성경의 Hell이 게헨나 / 스올이면 뭣하나? 

* 부제목2: 내 번역성경이 지옥인데!(3부)

 

♤31분 메시지, https://is.gd/UVmp5W

☞ 원출처 URL(공감, 댓글): https://is.gd/7ZBGQJ

[Noah Bak 덧붙임 메시지]

 

성경을 해석하는데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견해가 조금 다른 부분도 부득이 발생합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29절까지를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창조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을 진리의 복음으로 믿는 일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기준도 이것으로 결정하십니다.

 

그런데, 의인도 부활하고 악인도 부활하는데, 실제적인 부활이 아니라 영적인 부활이라면, 상당한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세상끝날에 실제적으로 의인(부활, 천국, 영생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세상끝날에 살아있는 악인들과 함께, 온지구상에 단회적인 하늘에서 쏟아붓는 유황불로 태워 완전 소멸시킨 후, 처음 인생의 재료에 해당하는 티끌로 만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후 3일간의 상태를  '탄산수' 전도자 해설을 봤는데, 저의 이해부족이겠습니다만, "악인들의 심판을 위한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탄산수' 전도자께서는 주님께서 무덤에 있는 자들 중에 악인을 부활시키지 않기로 하신다면 부활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세상끝날에 불심판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봐야 하느냐?라는 문제에 부딪칩니다. 일부 설교자 중에는 노아의 물심판이나 소돔 고모라의 불심판을, 실제적 사건이 아닌 영적인 사건으로 보

 

경우까지 있는데, 성경을 문자로 봐야 하는 부분과, 비유로 봐야 하는 부분의 구분이 정말 어렵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5부의 메시지는 원어 사본과 여러 다양한 번역본과 비교해 가면서, 옳고 바르게 해석한 메시지가 거의 대다수라고 봅니다. 저도 무덤에서 악인들을 부활시키지 않고 영생을 박탈해 버림과 동시에, 존재를 소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왜 성경 번역은 심판의 부활이라고 했을까요? 창조주 여호와이시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 저도 간구하면서, 성경의 계시대로 믿기 위한 노력을, 내 인생  골인점까지 경주를 계속할 것입니다. 가톨릭. 불교. 도교. 이슬람교 등을 비롯하여, 한국 개신교및 기독교 모양의 종교단체들은 "영혼불멸과 영원한 유황불 지옥"을 믿으니, 이것은 신구약 성경과 충돌하는 사단의 교활한 가르침입니다. 특히, 국내외 한국 개신교는 가톨릭과 함께 "영혼불멸과 영원무궁한 유황불 지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만약, 사람의 영혼이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려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죽은 자! 즉, 성경에서 창조주 예수님이 말씀하는 악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 개신교를 비롯한 기독교 조직과 건물을 갖춘 대부분의 종교단체및 세상종교들은 영원토록 끌 수도 없고 도망쳐 나올 수도 없는 영원무궁토록 영존하는 유황불 지옥공간에서 펄펄 끓이고 지지고 볶은 후에는 다시 부활하여 재생하기 때문에, 차라리 현세가 더 낫다고 하면서,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지극정성으로 돈바치고 봉사하라고 다그칩니다. 사실, 세상종교들은 거의 그렇지 않지만, 한국 개신교가 유별납니다. 그런 용도로 쓰려고, "영혼불멸과 영원한 유황불 지옥" 가짜 교리를 진짜라고 속이면서 반복적인 학습. 쇠뇌. 주입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강아지 주인이 어려서부터 훈련시켜 어떤 경우에도 반항하지 않고 순종하게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강아지를 길들여 순종하게 하는 노력은 매우 좋은 것이지만, 사람 영혼을 가지고 "영혼불멸과 영원한 유황불 지옥"으로 종교장사를 한다는 것은,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 모두다 영원한 사망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영생을 잃게 되는 영원무궁한 사형! 즉, 완전한 멸망의 심판으로서, 인생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끝내십니다. 여러분! 온 지구상에 오고 가는 세대의 모든 인생! 단 한명도, 영원토록 끌 수 없고 도망쳐 나올 수 없는 영원무궁한 유황불 지옥에서 불멸의 존재로 펄펄 끓이고 지지고 볶아도 다시 부활하여 재생되는 비참한 고통을 단 10초도 감당할 인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새빨간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끝날에 악인들을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끝날에 살아있는 악인들 모두를 온지구상 하늘에 쏟아 붓는 단회적인 유황불 불심판 때에, 깨끗하게 태워서 소멸시켜 버립니다. 오늘은 네이버 "숨겨진 진실"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탄산수' 전도자께서 성경과 다르게 기독교 종교단체에서 잘못 가르치고 믿고 있는, 지옥불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에 대한 글 메시지를 총5부로 나누어 음성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3부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다리오는 영원 불지옥 교리와 영혼불멸 교리도 믿는데, 알렉스는 둘다 안 믿는다. 둘의 토론은 지혜자 알렉스의

 

성경적인 설명으로 다리오에게 아주 조금씩 씨가 먹혀 들어가는 중대한 시점에 접어들고 있는 분위기이다. 알렉스가 이야기를 계속 전개한다. 예루살렘을 처벌하려고 바벨론 군대를 보내셔서 예루살렘을 철저히 파괴시키셨어! 그때 "게힌놈"에는 유대인들의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면서, 쓰레기 소각장으로 변해버렸던 거야!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구약 성경에서 구더기가 죽지 않는 장소가 '게헨나'라는 사실을 잘몰라! 아마 너도 잘 모를거야! 이사야서의 맨 마지막 장에서 구더기가 죽지 않는 '게헨나'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이사야 66장 24절을 보면,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고 하셨거든! 다니엘서 12장 2절에서도,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라고 했어! 모두다 영생 얻는게 아니라는 말이거든! 그니까, 주님이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게헨나를 언급하셨으므로, '게힌놈'에 얽힌 역사적 의미를 모르면, 당시의 유대인들이 무슨 관념으로

 

주님의 말씀을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었겠지! 안그래? 다리오가 많이 이해가 되었는지, 누구러진 마음으로 동의하려고 노력 중에 있는 게 보인다. 그렇구나! 네 말이 일리 있네. 근데, '네페쉬'를 사람들이 죽일 수 없다고 주님이 말하셨잖아? 네 말대로 네페쉬가 그 '사람 자신'이래며? 그럼, 왜? 사람들은 사람들의 네페쉬를 못죽인다는 거지? 글고, 하나님은 네페쉬까지도 죽일 수 있다고 하셨고! 그니까, 하나님이 몸과 '네페쉬' 둘다 '게헨나'에서 멸절시킬 수 있다고 하셨다는 말인데, 그게 도대체 무슨뜻일까? 알렉스가 다리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즉시 한다. 좋은 질문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령과 육을 입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다시는 부활이 안되는 영구적인 처벌을 내리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설명한 것이지. 인간 가해자는 피해자의 몸만 죽일 수 있어! 유대인들이 골고다에서 예수님을 죽였듯이 말이야. 그러나, 예수님이 사흘 뒤에 부활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어. 왜일까? 왜냐하면, 예수님을 부활시키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지.

 

순교 당한 메시아의 제자들은 마지막 날에 모두 생명의 부활로 나올거라는 그런 의미가 되지! 계시록에도 그와 유사한 표현이 나와! 계시록 19장 끝에는 야수와 거짓예언자가 불과 유황의 호수에 던져진다는 표현이 나오거든? 그런데, 같은 표현이 계시록 20장에 다시 나와! 거길 보면, 천년 끝에 사탄 마귀가 무저갱에서 풀려 나와서 사람들을 미혹한 다음에 처벌받는 장면이 설명돼 있지! 거길 보면, 사탄도 불과 유황의 호수에 던져진다고 말하거든! 근데, 거기엔 이미 야수와 거짓예언자가 들어 있어! 여기말한 불과 유황의 호수는 여러 한글성경에 '불못'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야! '둘째 사망'이란 표현이 직접적으로 계시록에 이렇게 나와있지!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시록 20장 10절을 보면, 영원히 고통받는다고 말하지. 누가? 불못에 던져진 자들이래. 불못에 던져진 자들이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표현 역시, 일종의 메타포라야! 계시록 20장 14절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어!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거길 보면, 죽음과 하데스도 '불호수'에 던져지거든! 네가 대답해봐! 죽음과 하데스가 고통을 느낄 수 있어? 그런 것들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잖아? 그치만, 그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지! 그니까, 죽음도 하데스도 불못에 던져지면, 영원히 소멸된다는 뜻이야! 그리되면, 다신 '죽음'이 없게 되는 거지.​ 불과 유황이 실제로 타고 있는 문자적인 호수는 아예 없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 그런 문자적인 호수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그건 성경 비유법에 대한 그들의 이해 부족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밖에 안돼! 활화산에 존재하는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런 곳처럼, 실제로 수십 억의 악인들의 영혼들이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설명이야! 사탄은 Spirit이야!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지. 그러므로, 마그마 때문에 사탄이 고통받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상상의 날개를 펴는 억지 궤변에 불과하지! 안그래? 계시록 20장 10절이 말한 불못에 던져지는 것들은 '코포레이션'이야! 야수 즉, 짐승이고, 거짓예언자는 Government야! 그런 것들은 물리적인 고통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잖아? '불못'은 상태를 나타내는 비유법이야!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일까?

 

다신 살아 나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이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다시는 존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영원히 확정된 소멸 혹은 '사라짐'을 의미하지. 그것이 불과 유황의 호수가 의미하는거라구! 생각하면, 자의적인 해석 밖엔 안돼!​ 성서가 사용한 '네페쉬' 용법도 좀더 조사해 봐야해. 어떤 좋은 예가 있을까? 그래! 이 성구를 한번 살펴보자구! 이건 사도행전 2장인데, 놀라운 점이 들어 있어. 사도행전 2장 27절의 표현은 정확히 시편 16편10절을 옮긴 것인데, 너도 아다시피, 시편은 원래 히브리어로 기록됐잖아? 그러므로, 시편 16편 10절과 사도행전 2장 27절을 서로 비교해 보면서 분석하면, 사용된 용어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수가 있겠네! 사도 베드로는 시편 16편 10절이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성취했다고 성령의 영감 하에서 설명을 했어! 여기서 유의해야 하는 용어는 네가지야! 첫째로, 히브리어 스올과 헬라어 하데스야! 둘째론, 히브리어 네페쉬와 헬라어 프쉬케야! 놀랍게도 이 네가지 용어가 한꺼번에 이 성구에 등장하지.

 

그래서, 원어의 의미를 연구하려는 사람한테는 정말 좋은 성구야! 사도행전 2장 24절에서 28절까지인데, 비교해보면 돼!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강조된 27절은 정확히 다윗의 시편 16편 10절을 옮긴 것이야! 같은 번역인 ESV로 대조해 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시편16편 10절에서, 'my soul to Sheol'은 '내영혼을 스올에'라고 한글로 번역되거든. 그런데, 여기 영혼이라고 돼 있잖아? 이게 네페쉬야! 그니까, '당신은 나의 네페쉬를 스올에 버려 두시거나,

 

당신의 거룩한 자가 썪음을 보게 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로 번역되는 문장이야! 이 문장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비교해 보면, 스올에 해당하는 하데스의 의미를 알 수 있고, 네페쉬에 해당하는 프슈케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거거든! 정통 유대인 성경과 희랍어 행간번역을 대조해 보면, 쉽사리 욧점이 파악될 수 있어! 두 성구를 대조해 보면, 다음과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1. 영혼 즉, soul=히브리어 네페쉬(nefesh)=희랍어 프쉬케(psyche) 2. 무덤(grave)=히브리어 스올(sheol)=희랍어 하데스(hades).. 스올과 하데스는 죽은 자가 들어가는 "무덤"을 의미하지! 이 단어를 대부분의 엉터리 번역판이 지옥 즉, Hell이라고 번역했어! 일부 번역판에서는 그런 오해를 막으려고 hell 대신에 hades라고 희랍어 원어의 발음을 영어로 표기했다네! 그래서, 두 성구의 의미가 너무 중요하므로 의미 분석을 해야 해! 한글로 번역하자면, '당신은 나의 네페쉬를 스올에 버려두시거나, 당신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게 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네페쉬가 무덤 즉, 하데스 또는 스올 안에 있다는 표현에 유의해야 하지.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사망하시고 그 분의 네페쉬 즉, 영혼이 그 분의 몸에서 떠나 제3의 장소로 이동한게 아니거든! 왜냐하면, 주님의 네페쉬 즉, 영혼은 스올에 삼일간 있었거든! 그 분이 골고다에서 운명하시는 바로 그 순간에, 그 분의 육체에서 네페쉬 즉, 영혼이 빠져 나간게 아니란 소리야!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사도행전 2장 27절의 말을 설명할 길이 없어져! 골고다에서 그 분의 육체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간 그 분의 네페쉬 즉, 영혼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 분이 누워있는 무덤에 같이 있어야 하지? 만약에, 그런 보이지 않는 네페쉬 즉, 영혼이 주님께서 운명할 때 육체에서 빠져 나갔다면, 도대체 어디로 이동한 것일까? 넌 '영혼불멸설'을 믿는 자니까, 네가 한번 대답해 봐라! 질문 1. 골고다에서 자유로와진 예수님의 네페쉬(영혼)는 어디로 갔어? 1-1. 천국에! 1-2. 지옥에! 1-3. 연옥에! 1-4. 여기저기 떠돌아다님! 1-5. 골고다에서 자유로와진 네페쉬가 없었다!

 

질문 2. 삼일 후 그러니까, 니산월 18일에 그 분이 부활하셨잖아? 그때 그 분의 육체가 무덤에서 사라졌음을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확인했는데, 그 분의 부활때 예수님의 네페쉬 즉 영혼은 어떻게 됐을까? 2-1. 예수님의 네페쉬(영혼)는 구천을 떠돌다가, 그 날 그러니까 니산월 18일에 예수님의 육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2-2. 예수님의 네페쉬(영혼)는 천국에 갔다가 성서 예언을 성취시켜야 하기 때문에, 니산월 18일에 무덤 속의 육체로 다시 들어가면서, 예수님이 부활했다. 2-3. 예수님의 네페쉬(영혼)는 골고다에서 그 분의 육체를 떠났다. 그때부터 그 분은 영자 즉, spirit이 되셨다. 니산월 18일에 그 분의 네페쉬(영혼)는 그분의 body로 들어가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 분의 육체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곤, 그 분의 Body를 없애셨다. 그 분의 네페쉬(영혼)는 골고다에서 육체를 떠난 후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것은 예수님의 네페쉬(영혼)였다. 문닫힌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갑자기 나타나셔서

 

10제자들을 놀래킨 것도 예수님의 네페쉬(영혼)였다. 2-4. 예수님의 네페쉬는 니산월 18일에 무덤에 누워있던 body로 돌아갔다. 그 즉시, 주님은 부활됐다. 부활되신 이후에, 하나님이 다시 예수님의 네페쉬를 빼내시고 그 분의 body는 사라지게 만드셨다. 예수님은 그때부터 네페쉬(영혼)만 남았다. 그 네페쉬가 40일 이후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2-5. 골고다 언덕에서 주님의 육체와 분리되어 떨어져 나온 영혼 같은 것은 없다. 주님의 존재는 끝났다. 그 분의 사체는 무덤 즉, 스올에 아무 활동없이 죽음의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어 성서 예언이 성취되어야 할 니산월 18일이 됐다. 그때 하나님은 주님을 다시 완전한 생명으로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일요일에 그 분의 존재는 재개됐다. 그러기에, 그 분의 존재는 스올에 있었던 사흘간은 끊긴 상태였다. 그 분은 니산월 18일에 생명의 부활로 나오셨다.. 네페쉬는 항시 모든 번역판이 영혼 즉, soul로 번역했어. 왜냐하면, 히브리어 네페쉬에 상응하는 영혼(soul)이란 말 외에 특별한 단어가

 

없기 때문이야. 네페쉬를 스올 혹은 하데스에 버려둔다는 말은 뭐야?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God는 게헨나에서 몸과 영혼을 멸하실 수 있다고 했다는 거, 기억해? 지금 이런 걸 정리해보는 거는 네가 질문한 거를 정확히 분석해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야! 그니까, 예수님이 네페쉬 즉, 프쉬케를 하데스에 해당하는 스올에 던져서 파괴시킨다고 하시지 않고, 게헨나에 던져 파괴시킬 수 있다고 하신 점을 유의해봐! 왜 그러셨을까? 왜냐하면, 예수님은 게헨나와 스올 또는 하데스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셨기 때문이지. 신약 성경은 게헨나가 아니라, 하데스 또는 스올에 있는 자들이 부활될 거라고 알려 주거든!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냐면,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 있지!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시록 20장 13절에 무슨 헬라어가 나올까? 행간번역을 봐야겠지? 사망에 해당하는 용어는 뭘까? 그리고 음부가 뭘까?

 

이 음부를 음부라고 하지 않고 지옥이라고 번역한 번역판도 있어! 만일 그리되면, '지옥'이 죽은 자들을 내어준다고 번역되면서, 굉장히 기독교인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그래서, 번역이 가장 중요해. 번역이 엉터리면 그걸로 인해 "가짜 교리"가 나올수 밖에 없는 거거든. 헬라어 행간번역으로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을 보니까, 1. 사망=thanatos(death) 2. 음부=무덤=하데스(헬라어 hades / 히브리어 sheol)로 나오는데, 명확하지? 죽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의 일반적 명칭이 뭐였더라? 무덤이지? 그걸 히브리어로 '스올 / Sheol (/ˈʃiːoʊl/ SHEE-ohl, /-əl/; Hebrew: שְׁאוֹל Šəʾōl)'이라고 하고, 그리스인들은 '하데스' Hades (/ˈheɪdiːz/; Greek: ᾍδης Hádēs; Ἅιδης Háidēs)라고 발음했지. 그니까, 앞으로 사람들이 부활되어 나오는 곳은 '게헨나'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오는 곳은 '하데스 즉, 스올'인 거야! 다리오가 귀를 세워 듣더니 매우 진지하게 질문을 한다. 그러면, 메시아이신 주님께서도 하데스 스올에 가셨었어? 알렉스가 즉시 답변한다. 바로 그거야!

 

주님도 하데스 스올에 계셨었지! 게다가, 주님의 네페쉬 영혼도 스올에 3일간 있었지. 넌 '영혼이동설'을 믿으니까, 지금 내가 한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어! 예수님은 게헨나에 가신 적이 없지. 물론,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야. 그니까, 부활될 사람들이 현재 있는 곳은 게헨나가 아니라, 하데스 스올이지. 여기까지 이해했으면 네가 아까 질문한 것의 대답을 할 차례야. 네가 뭐라고 물었더라? 다리오가 다시 의심이 들었는지, 다음과같이 말한다. 네 말대로 네페쉬가 그 사람 자신이래며? 근데, 하나님은 네페쉬까지도 죽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왜 가해자는 피해자의 네페쉬를 못죽인다는 거지? 알렉스는 항상 답변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라 막힘이 없다. 네가 대답해봐! 예수님의 몸은 누가 죽였지?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이 죽여서 무덤 하데스에 안치했지? 그치? 그럼 그때 산헤드린은 예수님의 몸과 영혼 네페쉬를 둘 다 죽였을까? 아니면, 몸 body만 죽였을까? 대답해봐! 다리오가 말한다. 히브리어 네페쉬의 본뜻이 사람 자신 이래며? 그니까, 주님의 몸과 네페쉬가 둘다 스올에 버려두지 않을 거란 말이, 시편 16편 10절에 나왔던거 아냐?

 

그렇치? 그니까, 예수님 자신이 죽은채로 스올에 사흘을 머문거고, 그러다가 니산월 18일에 부활하셨잖아? 그래서, 주님의 몸과 네페쉬 영혼은 둘다 스올 하데스에 사흘간 있었다고 볼 수 있겠네! 알렉스가 다리오 답변에 신이 났다. 그래! 정확히 이해했네. 고로, 앞으로 부활될 자들의 영혼 곧, 네페쉬는 하데스 스올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지. 예수님의 네페쉬도 매우 짧은 시간동안 하데스에 있었던 거고. 그치? 그럼, 왜 주님은 몸과 네페쉬를 게헨나에 넣어 멸절시킬 수 있다고 하신 걸까? 네가 대답해봐. 다리오가 느긋하게 답변한다. 만약에, 어느 죽은 자를 하나님이 다시는 부활시키지 않기로 작정하셨다면, 그런 경우에 그 사람이 게헨나에 들어갔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뭐, 그런 개념 아닌가? 알렉스가 맞장구를 친다. 바로 그거야! 그런 사람은 죽어서 무덤 스올에 가 있어도 앞으로 하나님이 부활시키지 않으실 계획이므로, 게헨나에 들어갔다!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안그래? 당연히 우린 어떤 자들이 그런 입장에 놓여있는지 모르지.

 

그니까, 누가 이미 게헨나에 들어갔는지, 누가 하데스에 있는지, 정확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안그래? 어차피 그 분이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는 거니까. 맞지? 다리오의 마음 속에 말씀으로 충만해졌다. 음! 이해됐어! 그래서, 사람들은 네페쉬까진 못죽인다! 왜냐하면, 죽임당한 사람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가해자들의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니산월 18일에 무덤에 계신 네페쉬 상태의 주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것과 같다? 그런 뜻이겠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악인을 안일으키고자 하신다면, 절대로 그 자는 부활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로 결론을 낼 수 있겠네. 내 결론이 맞어? 알렉스가 다리오와 소통이 잘되어 기분좋게 답변한다. 맞어! 그니까 만에 하나, 하나님이 가룟유다를 부할시키지 않기로 결정하셨다면, 가룟유다는 이미 게헨나에서 영혼 네페쉬까지 멸절된 거라고 말할 수 있지. 반대로,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당했는데 로마인들은 바울의 body는 죽일 수 있었으나,

 

바울의 네페쉬 영혼은 죽이지 못했지.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있기 때문이야. 가해자는 하나님의 계획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수 없다는 뜻이 돼! 마치 예수님을 사흘만에 부활시키실 때, 가해자 아무도 영향을 못 미쳤던 것과 같은 거지. 바울이나 다니엘같은 의인들은 모조리 때가 되면 생명의 부활로 나올 거야. 다시말해서, 의인들의 네페쉬는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그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 네페쉬는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마라'는 이 말씀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운 문장은 아니지. 기독교인들이 이 문장을 읽고 영혼불멸 사상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기에 나온 단어인 영혼과 지옥을 자신들의 종교단체에서 일러준 관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이야! 자신들이 평소 사용하는 영어나 한글로 마태복음 10장 28절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희랍어나 히브리어로 영혼과 지옥을 뭐라고 칭했는지 조사할 수 밖에 없어! 특히, 그 사람이 종교단체로부터 잘못 인도 받지 않으려는 생각을 갖는다면,

 

조사할 수 밖에 없거든! 이런 사람은 성경 밖으로 잘못 인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 너도 아다시피, 한국의 할머니들이 손주들이 보채면 까까 먹을래? 까까줄까? 라고 하잖아? 까까줄까?란 한글을 스페인어로 번역할 때 어찌해야 할까? Caca란 발음은 스페인어 사용자들에겐 "똥"이란 뜻이잖아. 그니까, 콜롬비아에 사시는 스페인어를 약간 아시는 한인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에게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섞어서 사용하면, 옆에서 듣고 있는 이웃집의 현지인 여자는 기겁을 할거야! 왜냐하면, 현지인 여자가 듣기에는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에게, 똥먹고 싶으니? 라고 물어본 거거든! 그런데, 그 할머니의 손자 반응이 가관이야! 왜냐하면, 그 손주가 매우 좋다!라고 답변했으니 말이야. 그래서, 이웃집 여자가 너무나 놀란 거야. 이웃집 여자는 어이가 없어서 얼른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한테 이렇게 말했어! 여보 여보! 옆집의 한국인 할머니가 자기 손주에게 똥먹고 싶으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눈이 휘둥그레 가지고 손자를 쳐다보는데,

 

손자가 웃으면서 대답하는거야! '응'이라고! 여보! 한국인들은 손주들에게 똥을 먹이나봐! 이거 신고해야 하는거 아냐? 아동학대로? 남편왈, 설마! 에이 말도 안돼! 요즘 세상에 똥을 먹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당신이 잘못 들었겠지! 여자왈, 아냐! 나 진짜로 똑똑이 들었어! 분명히 "까까"라고 했어! 남편이 말하기를, 그 한인 할머니 스페인어도 잘못하시잖아? 그니까, "까까(caca)를 스페인어로 한게 아니라, 한국어로 한게 아닐까? 까까(caca)가 다른 무슨 뜻이 있겠지? 그걸 그딴 식으로 이해하면 어떻게 해? 안그래? 부인이 답변한다. 그런가? 듣고 보니 당신 말이 일리가 있네! 내일 할머니 아들한테 다시 물어봐야겠네! 까까(caca)가 한국어로 무슨 뜻인지 말이야! 이리하여, 남편 덕택에 한인 할머니는 아동학대죄로 잡혀갈 뻔 했다가 모면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라네! 그러므로, 주님이 게헨나로 발음하신 것을 영어로 Hell이라고 번역하거나, 한국어로 지옥이라고 번역하면, 서로 언어 이해 부족으로 해괴망칙한 이해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생긴거지.

 

할머니가 까까(caca)라고 말했다면, 할머니와 손주가 과자나 사탕의 의미로서 의사 전달을 서로에게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러므로,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를 올바르게 스페인어로 번역하려면, 할머니의 말을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하지. 할머니왈, 과자 먹고 싶어?(¿Quierés galletitas?) 손자왈, 응! 응!(Sí Sí.) 다리오왈, 야! 진짜 웃긴다! 하하하! 난 한국어 까까가 스페인어로 "똥"이란 뜻인 거, 오늘 처음 알았다! 알렉스왈, 그니까, 지옥이란 영어 hell이 어디서 왔는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생각해봐. 지옥불 교리나 영혼불멸 교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하와에게 말한 거짓말과 관련이 있어! 다시말해서, 하와가 죽자, 사탄이 나중에 널리 퍼트린 개념이야. 사후세계 관념은 고대 이집트 그리고 수메르 사회도 광범위하게 믿었던 개념이거든. 영혼불멸 교리와 지옥불 개념은 사후세계에 관한 개념이야! 안그래?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거짓말이 또다른 거짓말을 낳은 셈이지! 그게 바로 영혼불멸 사상이야! 열째, 마태복음 10장 28절에 hell을 사용한

 

번역판들은 잘못된 번역판들이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ell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이미지와 예슈아(Yahushua)께서 알려주시고자 했던 의미 간에 굉장한 간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에 따르자면, 영어 단어 hell은 helan에서 파생했습니다. helan의 의미는 "감추다"라는 뜻입니다. 이 용어의 원래 의미에는 열이나 고통의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덮어 두다, 감춰진 장소"의 뜻을 가졌습니다. 고대 영어에서 “helling potatoes”라고 말하면, "감자를 굽는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땅속에" 혹은 "지하실에 감자를 두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에게 hell이 전달하는 의미가 너무나 많이 왜곡되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오랫동안, hell이라는 말이 악인들이 가야 하는 "지하의 깊고 어두운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여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어로 "Go to the hell!"이라고 말했을때, 고대 영어를 사용하던 사람이 들으면 "지하실에 가라구?" 라고 이해할 것입니다. 

 

예슈아(Yahushua)께서 유대인 청중에게 전달하신 게헨나 게힌놈의 의미는 "소멸"이었습니다. 그 점이 바로 시편 37편20절에 정확히 나옵니다. 게헨나의 실제로 존재했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불리우던 곳입니다. 이 계곡에서 이스라엘인들이 갓난 아기들을 산채로 몰렉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은 70년동안 폐허로 변했습니다. 나중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쓰레기 소각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쓰레기 소각장을 땅속의 깊은 지하공간에 유황불못이 있다는 식의 지옥으로 번역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우리가 읽는 성경의 마태복음 10장 28절의 끝부분이 "지옥"이라고 표현되었다고 해서, 단테의 지옥을 떠올리거나, 불교의 지옥 그림을 연상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께선 그런 의도로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웨이마우스역의 마태복음10장 28절은 타번역보다 훨씬 낫게 번역했습니다. 게헨나가 보입니다(Weymouth New Testament / 마태10:28 "And do not fear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but rather fear him who is able to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Gehenna). 성경 번역가들은 원래 언어의 의미를 제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러시아 시베리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책임자가 방사능 오염지역인 체르노빌을 언급하면서, 다음과같이 기술자들에게 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이 각자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시베리아가 체르노빌이 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태만해지면 제2의 체르노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이 사라지고, 그 지역에 현대식 도시가 건설된 수천년이 지난 후에 윗문장을 번역한다면, 원자력 과학자가 무슨 의도로 체르노빌을 언급했는지 먼저 알아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네페쉬에 관한 위키백과 사전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적인 견해로 볼때, 사람이 영혼을 갖는게 아니라, 사람이 곧 영혼이다"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동물도 네페쉬라고 합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의 네페쉬 요약을 보아도, 사람은 네페쉬를 갖는게 아니라, 사람이 곧 네페쉬다!라고 정의했습니다. 히브리어 네페쉬는 히브리어 성경에 754회 나오며, "산 영혼"으로 번역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국내외 한국 개신교를 비롯한, 기독교 종교단체들은 성경과 다른 거짓말들을 믿는 이단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다른 영의 다른 복음"을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4부 메시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이나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께서는 하단의 링크로 들어가셔서 로그인없이, 참예수 복음을 찾아 진리의 복음이라고 하는 진주와 같은 보화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교회 잘 떠나셨습니다" (바알 3신, 주일성수, 십일조로 "지옥불" 운명에 처한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되었기 때문에!): https://buly.kr/6ieMMz2 또는 https://buly.kr/G3AWMRz ​

◐                                          ◑

☞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 https://cafe.naver.com/baknoah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