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샘물책방' 전도자

* 원제목: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

* 부제목: 목사 1인 체재하의 조직적이고 율법적인 교회는 성경에 없다!

♤8분 메시지, https://zrr.kr/TIJv

☞ 원출처 URL(공감, 댓글): https://zrr.kr/gbA8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네이버 블로그 '샘물책방'을 운영하시는 가나안 성도 전도자께서 소개하신 글 메시지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 원제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예비 가나안 성도 여러분과, 현재 가나안 성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믿는 분들과 함께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가나안 성도는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교회에 ‘안나가’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가 됩니다.  200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이후, 코로나 시국의 과정에서 빠르게 급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나안 성도"라는 말은 1970년대 함석헌 선생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가나안 성도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지만, 대략 2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가나안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볼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보는 입장을 취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할 것이고,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성도 수가 급증한데는 실망스런 교회의 모습, 목회자의 윤리 문제, 지나친 봉사와 훈련 강요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으로 보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가나안 성도"와 구별해야 할 것으로는 "무교회주의"가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다시 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면, 무교회주의는 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하겠습니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교회론과 구원론 등 복잡한 신학적 쟁점들을 다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저의 이해 범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무교회주의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용어이고, 저도 이에 대해서는 깊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일본의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1861~1930)를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근대 무교회주의라고 하면 우치무라 간조를 대표적인 인물로 꼽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의할 부분은 우치무라 간조가 처음부터 무교회주의자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비록 중퇴를 하기는 했지만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권력과 조직을 갖춘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30년 동안 "성경 연구"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꾸준히 성경 강의를 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이 때 그의 성경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 중에는 당시 일본 최고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도쿄대 출신들도 많이 있었고, 조선 유학생들도 있었는데, 함석헌. 김교신. 최태용 등이 바로 그에게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우치무라 간조 자신은 그 누구 중에 후계자를 지명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교회 내의 계급 내지 서열화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가 교회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교회 내의 권력화를 부정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는 기존 교회의 틀로는 이런 권력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이 설립한 교회 마저도 떠났고, 평생 성경 강의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조선에서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사상을 가장 철저하게 실천한 인물은 김교신 선생(1901~1945)입니다. 양정고보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에는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코치이기도 했던 김교신 선생은 "성서 조선"이라는 잡지를 간행하고 성경공부 모임도 가졌습니다. 이 때 함께 한 가장 가까운 친구가 함석헌 선생(1901~1989)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도 나중에 이 모임에 합류했습니다. 김교신 선생은 후일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으며, 흥남 질소 비료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섬기다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치무라 간조와 김교신 선생은 비록 오늘날과 같은 전통적인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신 뒤에 숨지 않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참신으로 믿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고자 애쓴 분들이었습니다. 특히, 우치무라 간조는 수천 명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천황의 교육 칙어에 절을 하지 않음으로서, 일본의 국적 즉, 국가의 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신 뒤에 숨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신 뒤에 숨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간 우치무라 간조와 김교신 선생은 늘 큰 가르침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가나안 성도는 나와 내가족의 이름을 교회조직 명부에서 지워버린 사람입니다. 목사 자신은 짐을 하나도 안지면서 성도들의 어깨에다 무거운 짐을 지워주면서, 주일성수, 토요 안식일 준수. 성탄절을 비롯한 가짜 절기, 십일조및 각종 헌금. 직분, 직함, 교회봉사, 영원한 유황불 지옥 포교 행위 등에 얽매여 일생 종노릇하던데로 부터 과감하게 돌아선 가장 지혜로운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철저한 무교회주의자가 된 우치무라 간조는 기존 교회 내의 계급 내지 서열화를 타파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 속에 감추어진 성경 말씀을 나누어 전하면서 복음을 증거했다는 점에서 강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저는 목사의 축도를 100% 부정하지만, 어느 일본교회 목사가 축도할 때 오른쪽 팔만 이분의 일을 들고 축도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교회 목사들이 가운을 입고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잡신숭배자 무당처럼 가짜 복을 빌어대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개신교 축도는 가톨릭 신부의 강복을 모방한 주술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무교회주의자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영원한 복음 안으로 더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우지무라 간조가 지적한 것처럼, 기존 교회 조직에 붙잡혀 있는 한, 특별히 종교공화국 수준의 한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아닌 방종이 되어, 국가나 법도 종교가 저지르는 범죄를 완전무결하게 단속하지 못하는 불가침 영역이 되어 버린 현실을 본다면,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무교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한 분이나, 가나안 성도가 이미 되신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 하나를 걸어두겠습니다. 가나안 성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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