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가 일요일 예배를 폐하고 다른 날을 정해서 예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래 동영상은, 콘스탄틴 로마 황제가 정치 권력을 견고히 하는데 초대교회를 이용했고, 바벨론 태양신 숭배등의 혼합주의를 교회로 끌어 들여 지금의 개신교 변질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리려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가 또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그러므로, 나는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8:15~16, 18)


[1] 4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 https://youtu.be/f4xGrbQcEvA

by 한국 메시아닉 선교방송



[2] 5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 https://youtu.be/PkNTEjoRt-g

by Pasteve Korean


[3] 5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 https://youtu.be/SCB6umgQL9c

by 한국 메시아닉 선교방송


개신교, 초교파, 초대교회로 돌아 갑시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대적하는 이방종교다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삼위일체는 로마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만들어진 가톨릭 종교 권력의 산물입니다. 삼위일체 논쟁이 심한 것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이고, 삼위일체 거부 이유로 종교 살인도 행하였습니다!!

 

 바알 삼위의 이름이 하나님 이름으로 둔갑하다!  


 

 14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https://youtu.be/jK1yVekn1io


오직 유일하신 그리스도 예수 성령 하나님 한분만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 이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사단적인 모든 이론을 폐기하십시오!!


- 삼위일체론: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세 위격, 세 인격)로 존재하지만, 본질은 한분임

 

- 삼신론: 세 인격의 세 하나님

 

- 양태론: 시대에 따라, 성부 성자 성령으로 나타나는 한 인격의 한 하나님

 

- 종속론: 성부 성자 성령이 온전히 하나인 주체이나, 성자와 성령은 성부께 예속됨

 

- 양자론: 하나님이 예수를 양자로 삼았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됨


 

[가톨릭 자료 일부 스크랩]  



 

이번에는, 수많은 카톨릭 신앙인들의 머리털을 쥐어 뜯게 만드는 <삼위일체 교리>를 이 <입체기법 설계도>란 명칭을 사용해서 설명해 보자.

 

즉, 메타포로 이해하는 교리 <삼위일체>라고나 할까? 미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이신 성 파트리치오(Saint Patrick)께서 세개의 클로버 잎사귀를 활용해서, 삼위일체 교리를 메타포(Metaphor)적 비유로 설명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파트리치오는 클로버(Clover) 한 포기를 손에 들고 “보는 바와 같이, 이것은 하나의 클로버이지만 끝은 세 잎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도 한 분이시지만, 그의 위(位)는 셋으로 되어 있다”라는 성명을 하였다.


먼저, <삼위일체 하느님>이란? 바로 <카톨릭 교회>란 의미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삼위일체 교리는 수학 방정식 구하기다.  카톨릭교회=성부+성자+성령  

 

하나의 입체적 물건인 빌딩
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분야의 전문 인력과 건축자재들이 요구된다. 즉 건축설계사, 건설현장 인부를 지휘하는 십장, 건축자재 조달 부서,설계도면, 주춧돌, 벽돌..등이 필수요소들이다.

 

이런 건축에 비교해서 삼위일체 교리를 풀어 봤더니 <카톨릭 교회> 건축물이 된다.

 

하느님 아버지라는 <성부>의 설계자의 지시에 따라서, 예수님이라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성자>가 카톨릭교회를 세우는 건설현장 총지휘자로서, 건축물을 쌓아가는 각각의 인부들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는 <성령>의 도움으로 만들어 놓은 <카톨릭교회> 인 것이다.

 

우리들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천주교 입문 과정에서 배운 삼위일체 교리, 인성과 신성으로서의 예수님, 원죄등에 관한 모든 것이 기록된 성서가 바로 <로마서>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된 비교적 긴 편지글이고, 상당히 난해한 글에 속한다. (중략) 이 로마서는 55~57년경에 쓰여진 글로, 최초 <천주교 교리본>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이하생략)


개신교, 초교파, 성경에 어긋나는 모든 이론을 폐합시다, 회개와 개혁, 천국지옥







 


종교다원주의자들, 기독교회 모양을 갖춘 이단및 사이비 교주들, 이런 종교 사기꾼을 따르는 자는 성령훼방죄로 인하여 회개가 불가능하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그 길이 잘못된 줄 알고 예수 대속의 보혈샘에서 예수 피로 목욕하며 회개 하십시오!


 동영상이 안보일 때: https://youtu.be/i6UqDPcAQTg

by 정택주 목사


개신교, 초교파,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거짓말하는 성령훼방죄다

etc_02.gif?v=2 삼위일체 교리의 놀라운 기원 - J블로그 

     <- 위 한글 제목을 클릭하세요!!

삼위일체 기원에 대한 매우 소중한 자료입니다. 성경대로의 믿음과 자 구원은 직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소 긴 메시지이지만, 성경 1독과 비교하면 머리카락 한올 정도입니다. 그리스도 종된 장로-집사-목사 사역자분들의 필독과 함께, 개혁을 부탁합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놀라운 기원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의 완성 이후 수 세기 동안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그 뿌리는 역사 속에서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간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처음 제자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옳지 않은 말이다. 우리가 해야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말씀을 살펴서 이점이 분명히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과 신약성서 기록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다양한 이단적 사상과 가르침들이 초기 교회 안에서 일어났고 외부로부터 안으로 유입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이름으로 것이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마태복음 24:4~5).

다른 본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고를 읽을 있다( 24:11, 20:29~30, 고후 11:13~15, 딤후 4:2~4, 벧후 2:1~2, 요일 2:18~19, 26, 4:1~3).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지난 20 만에,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다른 복음으로 이미 돌아섰다 기록했다( 1:6). 그의 편지에 따르면 그는 거짓 사도들과, 거짓 사역자들 싸워야 했는데, 그들은 사기를 쳐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사람들이었다 (고후 11:13). 그가 처리해야 했던 주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거짓 형제들이었다 (26).

1세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요한삼서 9~10절에서 보듯이, 상황은 매우 심각해서 거짓 사역자들이 공개적으로 사도 요한에게서 대표자들을 영접하기를 거부했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교회에서 쫓아냈다!

혼돈된 시기에 대하여 저명한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그의 고전적인 로마제국이 쇠망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검은 구름이 교회의 번째 시대에 가득했다(1821, vol 2, p. 111).

오래지 않아서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수의 무리로 흩어졌다. 이제는 고대의 이교도에 뿌리를 많은 개념과 관습과 타협을 매우 다른 종교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신앙을 점유하고 바꾸어버렸다. 그렇게 종교를 서로 섞는 것을 혼합주의라고 하는데, 당시에 로마제국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역사학자 제시 헐버트(Jesse Hulburt) 시대의 변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1세기의 마지막 세대인 68년에서 100년의 시대를 암흑기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교회에 대한 박해의 암울함 때문이지만, 두드러진 이유는 교회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우리가 가장 적게 알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행전처럼 우리를 인도해 주는 빛도 없으며, 역사에서 빈칸으로 남겨진 공란을 채워줄 작가도 없다

사도 바울 이후 50 동안 교회에는 암막(暗幕)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우리는 희미하게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암막이 걷힌 것은 주후 120년경에, 초기 교회 교부들의 글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시대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른 교회를 발견하게 된다(기독교 교회사, 1970, p. 33).

이렇게 매우 다른교회는 권력과 영향력이 증대되었고, 겨우 두세 세기 안에 강력한 로마제국마저 지배하게 되었다!

2세기까지, 신실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적은 무리들’( 12:32) 지독한 박해의 물결에 떠밀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성서적인 진리를 굳게 붙들었다. 그들을 박해한 것은 로마의 주권자들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실제로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 가르치는 자들이었다(고후 11:4, 1:6~9).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다른 생각이 갈등으로 치달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죽음, 그리고 부활 이후 그와 같은 초기 십여 동안, 그리고 이후 두어 세기 동안, 다양한 사상들이 예수님의 진정한 본성을 설명하려고 출현했다. 그분은 사람이었나? 그분은 하나님이셨나? 그분은 사람처럼 보인 하나님이셨나? 그분은 단지 환상으로 보이셨나? 그분은 사람이셨는데 나중에 하나님이 되셨나?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으셨나, 아니면 그분은 영원히 성부와 함께 존재하셨나?

모든 사상들은 그에 대한 반대파를 만났다. 원래 교회의 신앙의 일치는 사라졌는데, 그것은 새로운 신앙과 이교도로부터 차용하거나 수용한 많은 것들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대체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분명히 두어야 점은, 초기 역사에서 있었던 지성적이고 신학적인 논쟁이 일어나 삼위일체의 교리가 만들어질 , 진정한 교회는 대부분 그곳에 없었는데, 이유는 그들은 지하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 중요한 시기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다룬 우리의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The Church Jesus Built) 거짓 그리스도교의 출현장을 참조하세요.)

이런 이유로, 격랑의 시기에 우리가 자주 보는 것은 진리와 오류의 논쟁이 아니라, 오류와 다른 오류 사이의 논쟁이다. 이것은 많은 현대의 학자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는 중요하다.

이런 것의 고전적인 예로는 그리스도 본성에 대한 논쟁인데, 논쟁으로 인하여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는 325년에 열린 니케아(오늘날의 터키 서부) 공의회에 개입했다.

콘스탄틴은,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최초의 그리스도인로마황제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태양숭배자로서 임종 직전에서야 세례를 받았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에 그는 그의 장자와 아내를 살해했다. 그는 또한 셈족을 극렬하게 싫어했는데, 그의 칙령 중에는 혐오스러운 유대인 놈들 가장 사악한 자들의 관습이라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관습들은 사실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고 예수님과 사도들도 행하시던 것이었다.

로마제국 안에서 일어난 규모의 소요가 있던 시절의 황제로서, 콘스탄틴은 제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제국을 통합하는데 종교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사실 그가 그리스도인 종교를 수용하고 공인한 일차적인 이유였다( 때까지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으며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콘스탄틴은 새로운 도전을 만났다. 종교 연구가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 그의 신의 역사(A History of God)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해결해야 문제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였다그리스도인의 분열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날 새로운 위험이 일어났다”(1993, p. 106).

니케아 공의회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논쟁

콘스탄틴은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했는데 이유는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 제국의 통일이라는 목적을 함께 이루고자 함이었다. 당시에 일차적인 문제는 아리우스 논쟁(The Arian Controversy)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자신의 왕위를 든든히 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점차 집단으로 성장해가는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는 그들에게 상당한 호의를 보여주었으며, 그렇게 그의 의도는 교회를 강하게 하고 하나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리우스 논쟁은 하나됨에 위협이 되었고 힘을 약화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문제를 종식시키는 일에 착수한다. 당시의 모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스페인의 주교인 호시우스가 그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동방과 서방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시노드(총대원=총회대의원)들이 모인다면 조화는 회복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콘스탄틴 자신은 논쟁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으나 논쟁을 끝내는 일에 열심이었으며, 호시우스의 조언은 그에게 매력적으로 들렸다” (Arthur Cushman McGiffert,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954, Vol. 1, p. 258).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성직자인 아리우스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치기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반드시 시작이 있었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이셨다. 나아가, 만약 예수님이 아들이시라면, 아버지는 이전에 계셔야만 한다.

아리우스의 가르침에 반대하여 일어난 사람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였다. 그도 역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집사였다. 그의 관점은 삼위일체의 초기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은 분이시지만 동시에 서로 구별되신다는 것이었다.

교회의 공의회가 어느 관점을 받아들일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크게 보면 임의적인 것이었다. 카렌 암스트롱은 자신의 신의 역사(A History of God)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교들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325 3 20일에 니케아에 모였을 , 그리스도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대의원들은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주장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 (110).

황제로서 콘스탄틴은 비록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교회의 교리를 결정해야 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음 해에 그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살해했다.)

역사가 헨리 채드윅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콘스탄틴은 자기 아버지처럼, 불멸의 태양(the Unconquered Sun) 숭배했다” (The Early Church, 1993, 122). 기독교를 수용한 것과 관련하여 채드윅은 설명하기를, “그의 회심은 은혜에 대한 내적인 경험으로 간주되어서는 된다그것은 군사적인 문제였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그의 이해는 결코 명확하지 않았다” (125).

채드윅이 강조해서 말한 것은 콘스탄틴이 임종 시에 받은 세례는 그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가진 것을 의미한 이었으며, 당시의 통치자들은 고문이나 범죄자의 사형집행 같은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세례를 미루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127). 그러나 이런 정당화가 황제의 회개가 진실한 것이었다는 것을 규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버트 브락스(Nobert Brox) 교회사 교수인데, 콘스탄틴은 결코 실제로 회심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을 확증하는 이런 주장을 한다: “콘스탄틴은 어떤 회심의 경험도 없다. 그에게는 신앙의 변화에 대한 어떤 표지도 없다. 그는 스스로 다른 신에게로 돌아섰다는 말을 적이 없다그가 기독교로 전향할 , 그에게는 그것이 불멸의 태양(Sol Invictus, the victorious sun god)이었다” (A Concise History of the Early Church, 1996, 48).

니케아 공의회에 대한 설명의 글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콘스탄틴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으며, 토의를 적극적으로 이끌었고, 개인적인 견해도 피력했다 공의회에서 제기된 신앙고백에서의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양식에 대해서도 말했다황제에 의해 장악된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은 가지 경우만 빼고 신조에 서명을 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견해와 반대되는 것이었다 (1971년도 , 6, “Constantine,” 386).

황제의 승인을 받아서 공의회는 아리우스의 소수견해를 배척했으며, 그것을 대체할 명확한 어떤 것도 없이 아타나시우스의 관점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의 견해도 역시 소수견해였다. 교회는 시점 이후로 공식적인 지지를 하는 이상한 위치에 남겨지게 되었으며,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은 회의에 참석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지지를 받았다.

삼위일체 교리가 공식적으로 수용될 토대가 이제 놓여졌으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지난 세기 이후에야 일어난 비성경적인 가르침이었다!

니케아의 결정으로 논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니케아 공의회는 논쟁을 종식하지 못했다. 카렌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신학을 사절단에게 주입하려고 애썼다황제의 호의를 등에 업고서의견의 일치를 이루는 모습은 콘스탄틴을 기쁘게 했는데, 그는 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거의 이해가 없었지만, 실은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결코 만장일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난 후에, 주교들은 자신들이 전에 하던 대로 가르쳤으며, 아리우스 논쟁으로 인한 위기도 60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다시 일어나 싸웠으며 황제의 호의를 다시 얻어냈다. 아타나시우스는 추방되었는데 최소한 다섯 이상 그렇게 되었다. 자신의 신조를 수용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10~111).

계속되는 불일치는 때로는 폭력과 피를 부르기도 했다. 니케아 공의회의 여파로 생긴 일에 관하여, 역사학자 듀란(Will Durant)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했다: “아마 2 동안에(324~325) 그리스도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인의 수는 로마 역사에서 이교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인의 수보다 많을 것이다” (The Story of Cilvilization, 4: The Age of Faith, 1950, 8). 잔혹하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다른 관점을 가진 다른 이들과 싸우며 살해했다!

이후 십여 동안에 대하여, 앞서 소개한 해럴드 브라운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 세기의 중간 십여 동안, 340~380년까지, 교리의 역사는 재판과 교회 음모 그리고 사회적 불안정의 역사에 가까웠다 시기에 형성된 중심교리는 종종 음모나 대중 선동에 의해 형성되었고 성령이 이끄시는 기독교의 공통된 의견일치로 것이 아니었다” (119). 

논쟁은 성령의 본질로 옮겨가다

불일치는 다른 주제로 옮겨갔는데, 그것은 성령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 점에 대해서, 니케아 공의회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이것은 아타나시우스의 신조에 갑자기 생각 듯이 추가된 것처럼 보였다,” 카렌 암스트롱은 말한다.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서 혼동을 하고 있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일한 이름을 가지신 분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분일까?” (115).

앞에서 언급한 라이리(Ryrie) 교수도 이렇게 말한다: “4세기 후반부에 명이 신학자들이 소아시아의 갑바도기아(오늘날 중부 터키)에서 와서 삼위일체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했다” (65). 그들이 제안한 생각은 아타나시우스의 관점보다 걸음 나간 것이었다. ,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동등하시며 하나의 본체로 계시지만, 서로 구별되어 계신다는 주장이었다.

사람들은, 가이사랴의 부교 바실과 그의 형제인 니사의 주교 그레고리, 그리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였는데, 그들 모두는 그리스 철학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는데” (Armstrong, 113), 철학은 그들의 개인과 신념에 분명히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 철학이 삼위일체 교리에 미친 영향을 참조하라).

그들의 관점에서, 카렌 암스트롱이 설명하듯이, “삼위일체는 신비하고 영적인 경험으로서만 의미가 있다그것은 논리적이나 지성적인 양식이 아니며 상상적인 패러다임으로서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나지안주의 그레고리는 이점을 분명히 하여 말하기를, 하나 안에 있는 위격을 묵상하는 것은 사고를 혼동하게 하고 지성적 명료성을 흔들리게 하는 심오하고 압도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위격의 영광을 상상하기 전에는 하나에 대하여 생각할 없다. 나는 다시 하나로 돌아오기 전에는 셋을 구별할 없다. 위격 중에 하나를 생각할 , 나는 그분을 전체로서 생각하며 나의 눈은 가득해지고,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부분은 나에게서 멀어진다” (117). 암스크롱의 결론은 많은 서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삼위일체는 정말 당황스러운 것이다라는 것이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계속되는 논쟁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로 이어지다

381년에 , 콘스탄틴이 죽은 44년이 지나,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오늘날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공의회를 소집했다. 나지안주의 그레고리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임명된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공의회를 주재했으며, 성령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했다.

역사학자 찰스 프리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381년의 공의회에서 있었던 신학적인 논쟁에 관해서 사실상 거의 몰랐지만, 그레고리는 확실하게 성령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수용하게 하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성령은 성부와 동일본질을 가지고 있다(인격에 있어서는 동일하다는 의미다. 경우에 본질은 개개의 성질을 가리킨다).

문제를 그가 소극적으로 다루었는지 또는 의견의 일치를 기회가 없었는지, 마케도니아인주교들은 성령의 신성에 대하여 완전히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공의회를 떠났다보통, 그레고리는 자신의 권위로 삼위일체에 대한 신성한 말씀 수용하기보다는 대중의 의견을 선호한다고 주교들을 비난했다” (A.D. 381: Heretics, Pagans and the Dawn of the Monotheistic State, 2008, p. 96).

그레고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병들었고, 공의회에서 물러났다. 이제 누가 회의를 주재할 것인가? “ 사람은 넥타리우스라는 나이 도시 원로의원으로서 도시의 시민들에게 경기를 관람할 있도록 후원하는 일을 결과로 사람들 사이에 인기 있었던 고위공직자였다. 그런데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의 세례를 받지 않았는데 의장으로 뽑혔다넥타리우스는는 신학에 대해 무지한 같았으며, 요구된 신앙을 억지로 수용한 뒤에 세례를 받고 성별 되었다” (Freeman, pp.97~98).

이상하게도, 바로 직전까지도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사람이 공의회의 사회를 맡아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가르침을 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삼위일체는 공식적인 교리가 되다

갑바도기아의 신학자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성령의 신성을 확정했는데, 그것은 때까지 어디에서나 분명하게 가르친 적도 없었고, 성경에도 없는 것이었다 (The HarperCil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God,” p. 568).

공의회에서 결의된 결정을 일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또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유일하신 분이시며,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나셨으며또한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며 생명의 공급자시며,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그분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신앙고백은 또한 하나의 거룩하고, 공교회적인(여기서는 우주적이고 완전하고 전체적인) 그리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내용을 확정했다

381년에 나온 선언은 훗날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신조로 알려지게 되는데,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삼위일체 교리가 공식 신앙이 되어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가르침이 되었다.

신학교수 리차드 핸슨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공의회 결정의 결과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대체 가능한 다양한 의미로부터 축소하여 오직 분이시라는 의미로 바꾸어버렸다. 오늘날 서양의 사람들이 하나님 이야기할 분이시며,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Studies in Christian Antiquity, 1985, pp. 243-244).

그러므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공의회를 소집하기 일년 전에 스스로 세례를 받고서, 60 전의 콘스탄티누스처럼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를 결정하는데 참여했다. 역사학자 찰스 프리만이 말한 바와 같다: “우리가 기억해야 중요한 점은, 테오도시우스는 신학적 배경지식이 전무했으며 결과 자신이 모르는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를 가진 양식을 교리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논쟁을 황제령이 잠잠하게 했던 것이다” (p. 103).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금지된 다른 신조들

이제 결정이 내려지자, 테오도시우스는 다른 관점들에 대해서 어떤 관용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칙령을 반포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교회로 하여금 주교들이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가르는 말에 순종하라고 명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단일한 위엄과 동일한 영광을 가지고 계시며, 신성모독적인 구별에 의해서 어떤 차별도 없으며, 위격에 대하여 인정하고 신격이 통합되어 있음으로써 삼위의 질서가 세워진다” (리차드 루벤스타인의 말에서 인용, When Jesus Become God, 1999, p. 223).

테오도시우스가 내린 다른 칙령은 계속해서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가까이 것을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하나님이시며, 동등한 위엄을 가지고 계시며, 삼위로 계심을 믿읍시다. 우리는 법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르기를 승인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우리의 판단으로는 그들은 어리석은 광인들이기에 이단자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이 붙여져야 한다고 선언하며, 또한 교회의 이름으로 그들의 집회를 불러서는 된다.

그들은 가장 먼저 신적인 정죄라는 벌을 받을 것이며, 둘째로는 우리의 권위로 처벌되어야 하며, 하늘의 뜻에 따라서 그들에게 고통을 것을 결정하노라” (헨리 베턴슨(Henry Bettenson) 그리스도교의 문서(Documents of Christian Church)에서 재인용, 1967, 22).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도 다르고 사도들도 결코 가르치지 않았던 그리고 성경의 다른 저자들에게도 낯선 가르침이 단단히 고정되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성경의 진정한 계시로 확정되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나 황제의 칙령과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이단자로 낙인 찍혔고 그에 따른 대접을 받았다.

시행착오를 통하여 삼위일체 교리가 결정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비정상적인 사건은 신학교수 앤토니와 리차드 핸슨이 그들의 책에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한 이유가 된다. 그들이 , 합리적인 신앙: 그리스도 신앙을 조사함(Reasonable Belief: A Survey of the Christian Faith)에서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의 수용은 최소한 삼백 동안 지속된 신학적 탐험의 결과라고 지적했다사실 그것은 시행착오의 과정(거의 무작위적인 과정)으로서 과오는 결코 비정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성삼위일체 교리를 다른 어떤 방식으로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것이다” (1980, 172).

후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냈다: “이것은 오랫동안의 혼란 가운데서 이루어진 과정으로서 교회 안에 다란 사상적 학파들이 스스로 만들어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 것이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가?’…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결정된 논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175).

성공회의 교회 지도자요 옥스포드 대학의 강사인 커크(K. E. Kirk) 삼위일체 교리의 수용에 대한 계시적인 글을 다음과 같이 썼다: “성령의 신성에 대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입증은 세기에 시작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대의 작가들이 자기들의 신념에 기초하여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놀랍게도, 그들은 아무런 신념도 없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기독교 신학의 이런 실패는….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 중심축이 되는 논리적 정당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음에도 사실로 일어났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교리의 입증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신조가 삼위일체이어야 하는 이유를 신학이나 철학이 제공하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아야 것만 같다” (삼위일체 교리의 진화,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관한 에세이에서, A. E. J. Rawlinson, 편집자, 1928, 221~222).

성경적이지 않는 교리를 믿는가?

짧게 말해서, 이것은 삼위일체 교리가 어떻게 도입 되었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이며, 또한 그것을 수용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단이라고 또는 불신자라고 낙인 찍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두고자 , 성경이 말하지 않는 교리에 기초를 해야만 할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이후 3세기가 지나 명문화 교리에 기초하여, 또한 (지난 수세기는 고사하고) 수십 동안이나 논란이 되고 있는 그런 교리에 기초하고, 또한 신앙의 초보자나 불신자가 주재하는 종교회의에서 강요된 교리라면, 그리고 시행착오의 과정에 의해 결정된교리라면 그런 교리에 기초를 두어야만 할까?

물론, 그래서는 된다. 우리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창조주께서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셨는지를 보아야 한다.

원출처: https://is.gd/d67I9a

개신교, 초교파, 삼위일체는 세분 하나님 신관이다. 삼위일체는 로마 가톨릭에서 만든 것이다

 


 

원출처 :WCC 반대운동 연대 / WEA 반대운동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 seoul


"크고 선명한 글자 정독이 가능하도록, 14호 글자로 편집하였음을 양해 부탁합니다"


 WCC의 기독교관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카톨릭교, 어떤 사람은 불교,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믿는 것으로 주장하는 WCC이다. WCC는 그래서 교회일치 차원을 넘어서 종교일치와 모든 인류를 하나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위하여 펼치는 WCC 운동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 같은 사실 자체가 WCC는 기독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WCC 주장처럼 기독교회가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이고,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 것이고, 이 세상에 속했다고 한다면, 그 기독교는 다른 여러 종교들과 같이 이 세상 종교이고, 이 세상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아래 그림과 같이 그 기독교는 여전히 죄 아래 있고, 율법의 저주 아래 있고, 사망권세 아래 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문제이고 잘못된 사상인지 아는가? 



하나님께 창조 하신 이 세상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 모든 인류는 그 어떤 종교와 관계없이 다 죄 아래 있고, 율법의 저주 아래 있고 사망권세 아래 있다. WCC는 이 같은 사실 자체를 숨기는 자들이다. 성경을 가지고 눈으로 보아 알면서도, WCC는 이 같은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WCC는 기독교회가 아니고, 기독교회에게 거짓 증거하여 속이는 자들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 모든 인류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주인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죄가 주인이다. 율법이 주인이고 사망권세가 주인이다. 죄, 율법, 사망은 이 세상과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위에 왕노릇하는 흑암의 권세를 가진 세력들이고, 이 세상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 아래 종노릇하는 자들이고,


그 마지막은 멸망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질문에 다시 유념하고 유념하자. 하나님이 권세 많고 능력 많다고 해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가?  없다.  왜 없는가?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 위에 굴림하는 왕이 죄이고, 율법이고, 사망권세이고 사람은 여기에 속한 종들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성경적인 우리 기독교회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가?


하나님이 죄에게, 율법에게, 사망권세에게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내어주고서다.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의 왕이고 주인이 죄, 율법, 사망권세이기에 값을 지불하여 주지 않고서는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고 멸망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죽으심이고 율법의 저주에 대한 죽으심이고, 심판과 그에 따른 형벌 곧 사망에 대한 죽임을 당하여 주신 죽으심이고,


하나님은 사람을 사로 잡고 왕노릇 하며 주인 행세하는 죄, 율법, 사망권세에게  희생 제물로 자기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또는 속전(값, 댓가) 으로 주고 사신 구원이다. 능력과 권세  많으신 하나님도 이 세상에 있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독생자를 내어 주시고 이를 통한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이고 구원의 문을 여신 것이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그러므로,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죄 아래 있지 않고,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고, 심판과 그에 따른 사망권세 아래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죄에게, 율법의 저주로 부터, 심판과 그에 따른 형벌, 곧 사망권세로 부터 예수님을 값으로 내어 주시고 사서 건져 내신 것이다.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을 지으셨기에 선한 마음이나 선한 행동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행위 구원을 주장하고, WCC는 다른 종교에도 예수님과 같은 구원자가 있어서 구원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펼친다. 이는 다른 복음이고 저주 받을 자들이다.


(갈 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은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속전으로 저주의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그 값으로 구원하신 이것이 복음이고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다. 기독교회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WCC는 기독교회도 아니고, WCC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선교는 완전 다른 복음이고 저주 받을 자들의 주장이다. 복음을 변케 하였고, 복음을 왜곡 시켰고, 복음을 거짓 증거하는 자들이 WCC이고,


이러한 WCC 회원이 한국교회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과 NCCK이다. 한국교회 여러분! 여러분들이 만약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이 세상에 속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WCC 기독교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속전으로 주시고 사신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며, 하나님깨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속전으로 주시고 사신 성경적인 기독교회라고 한다면, 여러분 자신을 이 세상 사람들과 이 세상과 분리하여라.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죄인들이고,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고, 심판으로 모두는 멸망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길과 구원의 문을 여신 십자가를 통해 벗어나야 한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지만, 또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이 세상 사람들이지만 멸망 당할 죄인들이고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이다. 이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성경적인 구원관이고 이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보내 주신 것이며,


예수님은 이 구원을 성취 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처절한 저주를 받고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고 저주의 죽임 당하심으로 여신 구원의 길이고 구원의 문이고, 이 길과 이 문으로 죄와 올법의 저주와 심판과 그에 따른 사망 권세로 부터 벗어나 해방된,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존재가 성경적인 기독교회이다.

    

우리들의 신학과 신앙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야 한다. 그러나, WCC는 십자가로 말미암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으로 말미암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이들은 죄아래 있고 율법의 저주아래 놓여 있고, 갇혀 있고, 심판과 그에 따른 형벌로서 사망에 처해져야 하는 멸망의 자식들이다. 


이런 WCC가 기독교회 옷을 입고, 기독교회 명찰을 가슴에 달고, 기독교회 자리에서 기독교회 간판 달고 기독교회 흉내를 내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나님 선교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WCC가 주장하는 그 모든 행위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경적인 기독교회를 노략질하는 거짓증거들이다. 


정말 무서운 간계를 가진 WCC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속전으로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임 당함을 통하여 구원하신 성경적인 기독교회를 다시금 이 세상으로 끌어 내려서 죄악된 이 세상에 처박아 버려려는 정체를 가진 사탄의 회중들 중에 회중들이 WCC이다.


한국교회는 WCC 교단들과 관계를 끊어라!

끊지 않게 되면 반드시 자멸하되,

속히 자멸하고 말리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이 세상에 존재하는..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원의 문과 구원의 길로 나온 성경적인 기독교회가 아니다. WCC는 성경적인 기독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기독교회 모양새를 하고서 흉내를 내는 자들이고, 그 목적은 성경적인 기독교회를 다시금 이 세상에 끌어내려서 기독교회의 고유한 생명을 끊어 버리려는 사탄의 회중들 중에 회중들이고, 그 미끼가  삼위일치 하나님의 선교이고 일치운동이다.  


개신교, 초교파, WCC 반대운동연대는 예수 진리 때문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배도다


 

                

   


원제목: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하시는 일은? (히 7:24~8:2)  


1. 들어가며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에 그 분은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지 아니한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승천하신 뒤에 어디에 앉으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원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그리고 성경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잘못 넘겨 짚으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말하기 쉽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어떤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2.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이 있는가?

성경을 읽다 보면, 난감할 때가 가끔씩 있다. 그 대표적인 용례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막 16:19, 골 3:1, 히 10:12)"는 표현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12:2)"는 두 가지 표현이 다 나온다.


어찌 되었든지 이 두 가지 표현을 한데 모아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이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천상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또다른 예수님의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3. 하나님 보좌는 2개 3개가 아니라, 오직 한 개뿐이다.

신구약성경을 다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한 개의 보좌에 좌정해 계신다(사 6:1~10, 단 7:9). 구약시대에는 그곳에 앉아 계신 분이 여호와이시다(사 6:8). 하지만 요한계시록 22장에 의하면,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 내지는 "여호와의 보좌"라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라고 한다(계 22:1,3).


그렇지만, 여기에 쓰인 '보좌' 라는 단어는 단수 명사다. 즉 보좌가 한 개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광경에 대한 계시의 종점에서는 그 보좌를 "하나님의 보좌" 라고도 말하며, "어린양의 보좌"라고도 말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어린양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혹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우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을 다 상징적인 것으로 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메튜헨리는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이렇게 주석한다. "그것은 그의 위엄있는 주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에게 우주를 통치할 수 있는 권세가 부여된 것이다. 지금 그는 창세 전부터 그에게 있었던 영광으로 영화롭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호크마 주석에서는 "거기서 예수는 영광과 권위를 상징하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우편이라는 개념은 상징적인 개념이다. 사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볼 수가 없으시며, 우주에 충만하시다. 그러므로, 그 분에게는 오른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왼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 때부터 하나님의 오른편이라는 개념이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쓰였다.


예를 들어 보자.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모세가 이렇게 노래한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 15:6)"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과연 오른손이 있는가? 영이신 그분에게는 보이는 오른손이 없다. 그분이 권능으로 홍해 속에 세계 최강의 애굽 군대를 수장시킨 것을 빗대어서 모세가 주의 오른손이 이 영광을 드러냈다고 말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세로서 애굽 군대를 쳐부수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을 일컬어 그분의 오르손이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편에서 다윗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그렇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분 권능으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일컬어 자신의 오른쪽에 그분을 모시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에게는 사실 오른편과 왼편이 따로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말이 곧 예수께서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기까지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대체 무슨 일을 하셨길래 그러한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일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그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 10:12~13)"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이서 지상에서의 속죄 사역의 직무를 온전히 감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예수께서 지상에서 감당해야 할 속죄 사역을 다 완성하시고 승천하사 영광스러운 자리를 얻게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6.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따로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 혹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하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있는 또 다른 보좌가 있고, 거기에 예수께서 앉아계시는 줄 착각한다. 아니다. 성경 66권을 다 뒤져 보라. 오직 하나님의 보좌는 단 한 개 뿐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2개 내지는 3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중세시대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아이콘들에는, 하나님이 세 명의 사람 혹은 세 명의 날개 달린 천사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분들이 보좌에 앉아 있을 때에는 3개의 보좌 위에 세 분이 각각 따로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7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 https://youtu.be/qbJj1L6EUSc

by 동탄명성교회


[Messenger 小考]


신구약 성경 말씀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성경에 없습니다. 한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교 입니다. 로마 가톨릭이나 세상 종교에 침투해 있는 거짓으로 만들어진 헛된 신의 모양 형태는 삼신 할머니 같은 삼신론이나 머리가 세개 달린 신의 모습이 많습니다. 성경에 삼위일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가톨릭에 삼위일체를 전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삼위일체 라는 것이 그리스도교로 들어왔는지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로마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로 나온 후, 다시 변질되어 재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삼위일체가 터를 잡아서 내 피부처럼 된 것인데, 과감히, 이것을 도려내야만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 아버지 성령 한분께 영광을 바르게 돌리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개신교, 초교파, 신약성경의 초대교회로 돌아갑시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다

 8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 https://youtu.be/bPTfvRXVruU

by scuba miniz


[스크랩]


한국의 WCC에 가입된 교단은 한국 교회 협의회(KNCC)에 속한 9개 교단이 WCC에 가입을 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순복음 교단이 WCC에 가입을 안했다고 하지만, 기하성이 속한 KNCC가 WCC에 가입이 되어 있으므로, 2013년 부산 총회때 이영훈 목사가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적극 지지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WCC에 가입된 9개 교단

1. 한국기독교장로회(한신대)


2.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장신대 외등등)


3. 기독교대한감리회(감신대 = 감리교신학대학교,협성대,목원대등)


4. 대한성공회(성공회대)


5. 구세군대한 본영(구세군사관학교)


6. 기독교대한복음교회(복음교회신학교)


7. 한국정교회(신학교없음)


8.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한세대)


[Messenger 小考]


종교다원주의 근본이 되는 '로마 가톨릭' 주요 핵심 교리

 

원출처: https://youtu.be/PAtq0hCHMBM


혹시, 장로-집사-목사 여러분들께서 아래의 교리를 아멘하며 믿으십니까?


1. 교황은 거룩한 아버지다.

2. 마리아는 원죄없이 태어난 여인이다.

3. 마리아는 여자 중보자다.

4. 마리아는 하늘의 모후다

5. 마리아는 부활 승천한 여인이다.

6.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다.

7.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앙을 가지면 저주받는다.

8. 예수 그리스도없이 모든 종교 사람들이 구원받는다.


국내외 한국 개신교 장로-집사-목사 사역자 여러분! 위 자료를 보셨는데도, WCC-KNCC 교단및 교회에서 비진리와 타협하는 신앙생활을 계속하겠습니까? 속히, 비 WCC-KNCC 교단및 교회로 옮기거나, 성경적인 독립교회로 새출발 하십시오!  두사이에서 언제까지 머뭇거리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비진리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하던지  아니오  하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베리칩 거부하면 천국가고 베리칩 받으면 지옥간다고 주장하는 베리칩 종말론자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분들입니다. 베리칩 이라는 사단의 거짓말을 맹신해 버리면,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 되어 사단의 인을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습니다. WCC-KNCC 사상에 함께 동조하거나 중립으로 방관하면, 로마 가톨릭 핵심 교리를 받아들이는 자가 되기 때문에, 이미 666인(사단의 인)을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베리칩 같은 물질은 과학의 산물일 뿐이고, 666표는 전혀 아닙니다. 저는 과거에 바코드 20년 맹신자였고, 베리칩 6년 맹신자였습니다. 바코드-베리칩 맹신에서 돌이키게 하려고 저를 설득시켜도, 666인을 이미 받은 영적 귀머거리-소경된 베리칩 종말론자였는데, 회개하고 성경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성령인으로 다시 표해 주셨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외적으로 그럴듯하지만, 내적으로는 사단의 영혼 멸망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개신교, 초교파, 종교다원주의는 영적 자살이다, 천국과 지옥을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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