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한국교회에 시급하게 전파되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예수 말씀보다도 목사 말을 무조건 믿는 것은 불순종이다! 

 

* 원출처: 'euangeliou' 전도자

* 원제목: 십일조, 죽음에 이르는 성령 훼방죄!

* 부제목: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 - 제4부

* 수신자: 유대인도 아닌 한국인이 십일조및 헌금 행위로 예수 배척하고 있음을 모르는 지체들!

 

                                            ♧ 26분 메시지 url, https://youtu.be/6-XAmnBwaEU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하게 구분해서 교회 예배시간에 바친다는 것자체만 보면 감히 아무도 흉내낼 수없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로 볼 수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일생 동안 돈 벌기도 어렵지만 돈을 어디에다 바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인데, 수익에 대한 지출처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돈이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창조주 예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돈이라는 것도 차근차근 잘 생각해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십일조와 각종 돈헌금을 바친 기독교인의 경우에는 돈십일조와 각종 돈헌금이라는 "기독교 복채"와 반드시 연관지을 것이기 때문이고, 성경에 십일조와 헌물이라는 구절을 교활하게 이용한 목사 설교를 들은 것과도 꿰어 맞추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며, 비그리스도인이 받은 물질의 복의 경우에도 성경과 연결지어 따져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유안젤리오' 전도자께서 2019년에 

 

증거하신 십일조에 대한 바른 복음적인 메시지를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 - 제4부'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십일조를 통한 거대한 불법의 음모와 올무에 빠져 사탄 신학의 궤변에 갇혀,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어 피를 흘리고 자기를 사신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삯군들이 짐승이나 농작물 대신에 현금으로 십일조라는 돈을 갈취하고 속죄 제사 대신에 복받는 복채 돈봉투를 강대상에 쌓아놓고 그들의 신 하나님에게 무속의 기도로 바치는 퍼포먼스를 통한 다른 복음이 개신교의 교리가 되었으며, 이성없는 염소들이 돈으로 제사를 하는 종교가 되어 복음이 그들에 의하여 가리워지게 된 것입니다. 중세 카톨릭의 면죄부만 있으면 자신은 물론 연옥에 있는 친척들까지 돈의 권능에 의한 중보의 힘으로 천국으로 올라가는 황당한 보증수표가 되었는데, 복음시대의 십일조가 황당하게도 개신교의 면죄부와 진리가 되었고 만복의 원인과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터 위에 쌓아 올려진 인간의 의가 되기 때문에, 중세 카톨릭 시대의 면죄부처럼 판단과 이성을 마비시킨 황당한 십일조의 미혹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로 부터 아프리카의 샤먼과도 같은 존경과 숭배를 받기도 하며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반성경적인 삯군들에 의하여 개신교가 복음에 대한 율법주의적 논쟁과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싸구려 율법 목사들은 율법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율법과 율법적인 것은 다르며, 은혜로 구원 받은 자로서 율법적인 십일조를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것 입니다."라고 말이지요. 그야말로 비판의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이며, 해석할 가치조차 없는 개구리 소리같은 개굴개굴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완전한 염소이며 삯군 교사들이 교인들의 영혼이 상처받거나 죽는 것 따위는 관심이 없고 오직 십일조를 이용하여 돈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서 미혹하는 이 비지니스 궤변의

 

의미를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래도, 이 양심없는 거짓 설교에 아멘 아멘하시겠습니까? 은혜의 시대에 배설물같은 가치에 불과한 율법 십일조를 추구하는 것은 선택 받지 못한 신이방인들의 유전적인 원죄적 죄의 경향성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여기고 다시 죄 가운데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소의 본성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국 개신교의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염소 교회들이 율법적 신앙을 복음과 바꾸는 억지와 궤변과 사탄적 음모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와 함께 끊임없이 그 누구도 그 뜻을 해석할 수없는 개구리 소리를 내면서 비밀 기도라고 하면서 거짓말하는 방언과 함께 또 다른 종류의 귀신을 접신하는 방언과, WCC의 기독교 이단화를 위한 발명품인 영성 운동이라는 이름의 주술행위를 받아들인 예배 순서와 형식등의 수 많은 불법적인 사망의 누룩들을 교회로 들여와, 이제는 이단들과 정통과 무속을 서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교리적으로나 행위로나 본질적으로 모두가 똑같이 서로가 불법적인 누룩으로 범벅이 되어 하나로 통합되어

 

가고 있으며, 다만 그들 사이엔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름의 구별이 있을 뿐, 똑같이 초교파 에큐메니칼이라는 간판 아래 공통의 허무한 가치와 신앙의 행위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결단코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없는 본질적으로 택함 받지 못한 자들만의 행위라고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미혹하는 궤변 신학 혹은 이단 신학을 통하여 복음으로부터 멀어져 간 자유주의 해방신학의 추종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는 초기 기독교로 돌아가는 종교 회복 운동의 기회를 버리고 대신에 종교 개혁을 선택하여 카톨릭을 대부분 모양만 바꾸어 계승한 세력들이며, 성경말씀을 비틀어 혼잡한 언어로 불순종을 경쟁하는 것을 교리로 만들어 지키는 다른 복음 즉 사탄 복음을 숭배하는 이단 종교가 된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가 기독교 교리와 로마,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바벨론의 무속의 신들을 통합한 종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훗날 카톨릭이라는 미신과 제사의 종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박해를 끝내고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승인한다는 미끼와 함께 미신들과의 통합을 조건으로 하는 적그리스도적인 음모에 의하여 기독교를 부패하게 하는 올무로 초기 기독교를 확실하게 박살낸 세력이 카톨릭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카톨릭 사상을 거부하고 신앙양심을 지킨 초기 기독교 신자들을 대학살했습니다. 카톨릭이 적그리스도적인 행동으로 초기 기독교인들을 학살한 것처럼, 개신교가 루터로 부터 시작된 초기 기독교로의 회복 운동이 아닌 카톨릭에 대한 종교개혁 운동을 하다가 중도에서 유턴하여 카톨릭의 진보 세력으로 남아 껍데기 포장만 바꾸고는 크리스토교(Χριστοῦ)가 아닌 개신교라고 이름하고 오히려 더 타락한 카톨릭의 개신교가 되어 복음으로 부터 멀어져 카톨릭과 함께 적그리스도적인 종교가 되어 크리스토(Χριστοῦ)인의 영혼을 대량 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말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대문에 붙인 95개조의 반박문보다 훨씬 더 많은 950개 이상의 불법에 대한 반박문을 이 시대의 

 

개신교 대문에 붙여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와 봉투 헌금을 바친 사람들에게만 복받게 하는 헌금기도와, 십일조 못바친 사람을 무시하는 삯군 교사의 양심이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염소라는 증거이며, 자격없는 평범한 계급의 목사가 사도의 흉내를 내며 축도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우상화 놀음일 뿐입니다. A.D 325년에 초기 기독교를 대학살하였으며, 그의 군인들의 군화발 아래 기독교를 짓밟은 적그리스도적인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소집된 사제와 주교들로 이루어진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지만, 개신교가 카톨릭의 진보 세력답게 에큐메니컬 공의회인 카톨릭의 '니케아 공의회' 결의 사항으로 공포된 사탄 교리 대부분을 인정하고 개신교의 교리로 받아 들였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기독교를 승인한 성인으로 추앙하지만, 콘스탄티누스야말로 기독교 신앙에 주술적 사상을 끌어들이고 이를 거부하는 초기 기독인들을 학살한 장본인이며, 근본적인 기독교 교리를

 

카톨릭의 이름으로 더럽히고 대학살을 저지른 주인공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카톨릭과 개신교에는 복음이 사라졌으므로 차라리 카톨릭과 개신교의 제도권 밖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근본주의적 독립 크리스찬으로 살아야만 할 것입니. 카톨릭의 니케아 공의회 결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개신교가 카톨릭과 똑같은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였으며, 그리고 율법을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으로 구분하고 도덕법은 영원히 유효하고 나머지는 폐하여졌지만, 구약 율법이 유효하다고 불법적이면서 자폐적으로 저주받을 결정을 했습니다. 기독교의 원수인 카톨릭의 궤변적인 율법 해석을 그대로 수용한 개신교가 기독교 행세를 하며 지키는 도덕법은 미혹하는 불법이므로, 불순종하게 유도하는 교리는 마귀 숭배를 위하는 법이 되는 것이고, 새 언약 안에서 모든 율법과 율법의 가치를 부여하여 섬기는 율법과 율법적인 것은 하나도 남김이 없이 모두 범죄 행위이며, 특히 복음 안에서 도덕법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모략의 덫입니다. 복음이 율법에서 나타난 도덕법의 뜻과 일치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지만 그 속성은 전혀 다른 것이며, 도덕법을 포함한 구약의 모든 율법에 대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모두 못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 신학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아가페(αγάπη)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배설물 신학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를들어, 카톨릭의 염소들이 도덕법으로 분류한 십계명의 율법은 초등학문 안에 있으며 복음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크리스토의 존귀한 피가 그 안에 없으며 다만 십일조 안에 예수님의 피가 예표적 상징으로 존재하는 그림자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이룰 수없는 것이며, 성경이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 율법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이나 계시나 율법의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이르러 완성이 되고 끝이 났습니다. 한 두 개쯤 남겨둔 율법이나 예언이나 계시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방인이었던 한국인에게 이 시대에 도덕법이라는 궤변적인 낡은 율법을 요구하는 삯군 교사들은 복음을 비틀어 다른 복음으로 해석하므로 복음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소경이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이며, 이들에게는 멸망과 심판이 예고된 자들이며, 복음을 율법으로 해석하여 율법을 복음으로 만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욕하는 마귀적인 행위를 일삼고 교인들에게 그 행위를 강요하는 사탄의 앞잡이들입니다. 율법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어떠한 율법의 의도 주장할 수없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이 주장하는 의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더우기 인간의 의는 하얀 옷이 아닌 더러운 옷이라고 계시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의 의를 주셨으나, 신약시대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는 혼인 잔치의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피흘려 세우신 가장 값진 십자가 복음의 의를 

 

선물로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율법주의의 유대인과 염소와 개신교인들과 신이방인들에게는 구약의 율법의 의를 결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만 허용된 율법 십일조를 이방인이었던 한국 사람들이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행하면서, 신약시대에 가짜 유대인 행세를 하며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과 율법을 혼합해서 믿는 행위는, 저주받을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개신교의 현주소가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 구약의 율법은 복음이 아니며 예수님의 육체를 밟는 저주받을 행위입니다. 그 곳에는 구약의 선택된 민족 유대인만을 위한 구약의 율법과 유대인에 대하여만 엘로힘이 인도하는 구원의 역사가 있으며, 신약시대의 선택된 이방 민족을 위한 성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구약 성경이 아닌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된 유일한 복음인 신약 성경만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유대인만을 위하여 쓰여졌으며, 신약 성경은 신약의 언약 백성만을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신약의 언약 백성이 구약의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유대인까지도 신약시대에서 행하는 율법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의 율법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없고, 다만 유대인들을 위한 불완전한 율법의 속죄 제사만이 존재할 뿐이며, 신약에 대하여는 지나가 버린 옛 언약과 옛 예언이 있었을 뿐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피가 존재하는 오직 신약성경 안에만 존재합니다. 구약의 어떤 율법으로도 신약 교인을 거룩하게 만들 수 없고, 율법은 오로지 유대인에게만 유효한 것이었으며, 유대인이 아닌 신약의 언약 백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초등학문적인 배설물에 불과한 존재일 뿐입니다. 만약, 구약이 신약백성에게 유효하다면 성경 안에서 이유를 밝혀야겠지만, 그 어떤 성경 구절도 

 

구약이 복음이며 신약의 언약 백성을 구원한다고 기록하지 않았으며, 수 많은 곳에서 거듭하여 오히려 율법의 행위가 불법이며 배설물에 불과하며 그 행위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라와 하지 마라로 구분된 "행위의 의"만을 강조한 율법 안에는 "원수를 아가페(αγάπη) 사랑하라."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아가페(αγάπη) 사랑하라."라는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법이 없고, 율법으로는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 안에서는 구약의 율법과는 비교할 수없이 강하고, 높은 차원의 계명의 율법은 탐심이 도둑질이며 음란한 눈길이 간음이며 미워하는 것이 살인 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자나 도덕법등을 선별하여 지키는 자는 복음의 자비심없는 심판에 의하여 모두 도둑이며, 살인자이며, 음행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인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이 구약의 율법과는 완전히 구별되고 단절되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신약시대에 개신교인들이

 

이방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유대인이 되어 율법을 완전히 다 지켰다고 해도, 그러나 그들은 눈이 범죄함으로 눈을 빼야할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모든 율법주의자들이 도둑이며 간음한 자이며 살인자이므로, 율법에 의하여 돌로 내려침을 당해야 할 대상자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 15절 말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에 의하여, 율법에 대하여 고난을 당하실 때에 율법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 선생에 의하여 기소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율법도 함께 일점일획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못박았습니다. 결코 도덕법 따위의 율법을 일점일획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십일조와 율법을 꺼내어 다시 율법의 밑으로 들어가 율법과 사탄의 종노릇하며 교리의 중심으로 믿고 있는 개신교의 이교도적인 행태의 근본이 성경을 떠난 카톨릭의 전통적 교리를 살짝 모양만 바꾸고 받아들인 또 다른 변종 카톨릭이라는 증거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지금도 개신교의 교리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개신교는 무속적인 유대교와 다를 바 없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바라보는 구약 성경을 유일한 경전으로 사용하는 유대교는 우상숭배 종교이며 무속종교입니다. 또한, 이슬람도 율법을 지키면서 '알라 God'나 '알라 하나님'을 같이 믿고 방언도 하는데 개신교와 무엇이 다른 종교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어 코란은 알라 하나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유대교 또한 율법과 엘로힘을 믿고 있음으로 율법과 하나님을 믿는 개신교와 동일하거나 사촌관계 정도의 종교로 여겨집니다. 천주교 역시 개신교 하나님의 아류인 하느님이라고 만든 신이 있으며,

 

귀신과 태양신의 우상을 숭배하면서 같은 방언을 하므로 개신교와 차별이 없는 같은 예큐메니칼 종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과 카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힌두교등 세상의 모든 종교는 같은 이름의 하나의 God를 숭배하며 하나의 접신 방언을 하는 우상 종교로 은밀히 통합된 것은 장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이념적인 신학으로 통합되어 있던 것입니다. 또한, 한국 개신교의 대부분은 십일조 행위를 지속하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종교 단체가 되었으며, 원문 성경에 없는 다른 우상의 하나님을 만들어 숭배하는 적그리스도적인 믿음을 지지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교인 이교도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와 개신교는 우상숭배의 형식만 다를 뿐, 똑같이 우상숭배하고 있는 형제된 이교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과 천주교와 개신교와 세상의 모든 샤머니즘이 겉 표면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God나 하나님을 숭배하고 같은 방언의 굿으로 춤추는 영성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카톨릭과 이슬람등은 똑같이 율법 아래 있지만, 개신교는 율법의 전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반절 혹은 몇개 정도를 골라서 지키고 있으면서도 율법으로 정통하다고 스스로를 구분하겠지만,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그 중에 하나만 어겨도 모든 율법에 범한 자가 되는 것이므로, 온 율법을 지켜야하는 종교가 유대교와 더불어 이슬람과 카톨릭과 개신교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말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러므로, 이슬람과 카톨릭과 개신교에는 공통적으로 유일신 사상이 있으며, 그리고 그 모든 종교가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신 God이 있으며, 영성의 방언과 율법이 함께 존재하므로 적그리스도적인 이단 세력들이 해방신학과 에큐메니칼로 통합하는데 걸림돌이 없이 마귀적 신앙의 연합체가 된 것이 바로 카톨릭이 만든 WCC이며, 이것이 염소들과 선생된

 

삯군 교사들의 모임이며 그들이 가톨릭을 대표로 하는, 카톨릭의 음모를 따르는 집단의 정체성입니다. 마태복음 12장 6절 말씀!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이곳에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를 죄로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참으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Lord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율법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며,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안식일 범함을 정죄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율법 십일조 제사의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희생 제물은 원치 아니하시고, 자비를 원하시며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Lord가 되시며, 무너질 율법 성전보다 더 크심을 밝히셨지만, 율법 선생인 바리새인과 개신교인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율법의 주일성수와 율법의 십일조를 주장하며 율법적인 가치를 부여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정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 16절 말씀!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테오스(θεός)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이 구절에서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은 율법 선생인 서기관및 바리새인과 똑같이 안식일의 정신을 강조한 성수 주일과 십일조라는 신 율법을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율법의 도덕법을 가르치는 율법선생 서기관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또 다시 못 박는 자들입니다. 결과적으로 개신교인들이 율법의 상징적인 장소인 성전도 아닌 교회에서 지키는 신율법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다 더 큰 것이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율법이 중요한 교리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차라리 십일조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개신교인들이 주일성수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교리로 여기고 성경에서 그 근거를 억지로 찾아서 궤변적인 해석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주일은 성경에 의한 해석도 아니며 주일을 만든 장본인은 개신교가 아니라, 초기 기독교를 학살한 카톨릭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하여 공포(公布)한 것으로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닌 바벨론의 종교를 해석한 날입니다. 즉, 초기 근본주의 기독인들을 카톨릭이라는 우상숭배의 덫으로 유인하고 덫에 걸리지 않은 카톨릭의 외부에 있는 초기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기독인들을 무참히 대학살한 원수가 해석한 선데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가 없는 카톨릭의 해석을 개신교의 형님쯤으로 여기고 카톨릭의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주일과 주일 성수가 의미하는 것은 카톨릭이 숭배하는 바벨론의 신, 태양신에게 제사 즉 미사를 드리는 날이므로, Sunday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또한, 크리스마스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절기도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는 카톨릭에서 창작한 원수의 작품입니다. 크리스마스 용어를 살펴 보면, Christmas의 Christ는 크리스토라는 뜻이고, mas는 카톨릭의 고대 어원에서는 미사(Mass)를 뜻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뜻하는 것은 크리스토를 미사 지내는 날이며, 미사는 카톨릭이 만든 거룩한 제사라는 뜻으로 거룩한 예수님의 탄생일을, 예수님을 제사 지내는 날로 속이고,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카톨릭 사전은 크리스마스를 축제일(祝祭日), 즉 제사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축(祝)은 '빌 축' 혹은 '저주할 축'을 뜻하는 글자이며, 제(祭)'는 제사를 뜻하므로 '축제(祝祭)'는 '제사를 지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생일을 기념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렇게 속이는 망령된 교리적인 새로운 절기가 율법적인 것으로, 주의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주일성수를 지키는 신율법도 부족해서

 

부활절. 추수감사절등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한 것까지, 모두 비판할 가치도 없는 성경의 근거없는 사탄적인 다른 복음으로 미혹하는, 새로운 날이나 새로운 절기를 만든 카톨릭을 따라 개신교가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와 한국 개신교인들이 바치는 십일조가 똑같이 배도적인 무서운 목적을 갖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된 생일 잔치는 바로의 생일 잔치와 헤롯의 생일 잔치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40장 19절에서 22절까지를 보면, 바로의 생일 잔치에서 감옥에 있던 빵 굽는 자들의 우두머리를 목베어 죽여서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또, 마태복음 14장 10절 11절을 보아도, 헤롯의 생일 잔치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이처럼 이교도 왕들의 생일 잔치에서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죽이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카톨릭이 숭배하는 태양신인 바알의 생일이 12월 25일입니다. 그렇다면, 12월 25일은 이교도의 왕이며 사람 신(神) 바알의 생일 잔치에서 누구를 잡아 죽이겠습니까?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잡아 죽여서 제사 지내는 끔찍한 날입니다.

 

오늘 4부 메시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5부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출처: 십일조, 죽음에 이르는 성령 훼방죄(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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