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삼위일체 이단사상과 싸우느라 영적으로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양태론은 여호와(구약시대), 아들 예수(신약시대), 성령 유일신(성령시대)을 믿는 가톨릭의 반대 신관이다'입니다. 양태론은 가톨릭의 4대 교리인 삼위일체가 비성경적이라는 점을 들어, 중세 가톨릭의 일부 종교인들이 교리화했던 신관입니다. 먼저, 삼위일체를 짧게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은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한분 하나님을 통칭합니다.
그런데,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으로 오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따로! 아들 따로! 성령 따로!인데, 세가지 호칭을 하나라고 변개 조작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태론은 어떻게 만든 것일까요? 하나님을 셋으로 나눈 것은 삼위일체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계셨다가 지금은 안계시는 분이 되었고,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계셨는데 그 분은 하나님이 아니시며, 성령시대에는 성령께서 한분 하나님에 해당하는 유일신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는 성령의 입장에서 보면.. 여호와는 상왕이고, 예수는 태자이며, 성령의 위치는 현재의 임금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성령 한분만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겠지요.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한분 하나님은 이렇습니다. 말씀이신 창조주 여호와가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대속.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예수의 영이신 성령으로 회개시켜 예수복음을 믿게끔 만들어서 거듭나게 한 영혼 속으로 강림 또는 재림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좌정하시고 임재하여 계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성령강림과 예수재림은 동일한 사건이며,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은바 된 자들 영혼 속에 이미 들어오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신약시대를 사는 지금 이시간에도, 그날과 그시를 모르는 한 경점에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강림 또는 재림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멘이십니까? 하나님의 신. 창조주. 말씀. 여호와. 성령으로 잉태되신 육신의 예수. 부활예수. 승천예수. 성령강림. 예수재림은 모두 동일한 영으로 한분 하나님의 영을 통틀어 호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3신1체도 틀렸고,
양태론의 1신3태도 틀린 것이라고 전해드리는 것입니다.한국인들의 군중심리 모방은 일본사람들과 겨루어도 도낀개낀 정도로 극심합니다. 중국인을 포함해도 좋을 정도로 모방을 좋아하는 민족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이 뭐를 하면 반드시 나도 따라서 행동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습성 말입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해가 잘 안가는 한국인 패션 중에는 사람의 신체 라인에다 바지를 맞추어 갈비씨 스타일로 유행하는 부분입니다. 옛날에 나팔바지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그것 입고 나가면 미쳤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나팔바지와 홀태바지 중간 정도의 적당한 바지통으로
유행시켜서 입고 다녔으면 하는 입장입니다. 아무튼, 중세 가톨릭 시대의 삼위일체에 저항하여 극과 극을 이룬 양태론은 패배했는데요. 당시 교황이 종교회의를 열고 삼위일체 찬성자 318명 종교인만 참석시켜서 100% 찬성 투표로 통과시키고, 삼위일체 반대자 약 6천만 명을 쳐 죽였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삼위일체론자와 양태론자가 주장하는 신관들 모두 가짜인줄도 모르고 머리가 터지도록 이단정죄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아마, 한국교회 내에 종교재판소 세우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교단에서 제명시키고, 목사. 장로. 집사 직분을 박탈할 것입니다. 삼위일체나 양태론이 가짜신관이었다는 것을 알면 이단싸움은 중단되지 않겠습니까?그래도 싸우면, 개독교에 미친 사람들이겠지요. 신구약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복음만을 증거합니다. 양태론이나 삼위일체는 사단이 누룩으로 빚어 만든 혼합주입니다. 이것을 마시면 낮이나 밤이나 영적으로 취해서 비틀거리게 됩니다. 한국교회 장로. 집사. 성도. 목사 사역자 여러분들은 양태론 또는 삼위일체라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지금부터 ‘말씀과 성령으로 계신 창조주 여호와 예수님 유일신’을 믿으십시오! 여태껏, 하나님의 형태가 시대별로 세번씩이나 바뀌었는데,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계셨고,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진짜 아들인 예수님이 계셨으며, 성령시대에는 한분 하나님이신 성령이시라면서, 한분 하나님을 삼등분시켜 만들어 낸, 양태론이라는 거짓신관을 끊어버리십시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는 맨 상단에 있고,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는 맨 하단에 있으니,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의 친절한 안내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한국교회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삼위일체는 성부(교황). 성자(아기 예수). 성령(마리아)을 믿는 가톨릭 신관이다’입니다. 삼위일체는 가톨릭의 4대 교리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가톨릭을 친정으로 두고 살다가 종교 불화를 겪고 뛰쳐 나온 개신교 외에도, 교단에 속하지 않은 독립교회 장로. 집사. 성도. 목사 사역자 여러분들은 삼위일체의 실상에 대하여 들어보셨거나, 각종 자료를 찾고 공부한 결과,
성경과 전혀 다른 거짓신관이라는 것을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만약, 교단및 교회 조직을 떠난다면, 목사라는 종교권력을 잃을 수도 있고, 장로. 집사라는 종교감투를 벗어버리면 큰 일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알아도 모른채 하고 들어도 귓등으로 흘려 버리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중세 가톨릭 때의 종교재판소는 국가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적인 기독교를 만들어 로마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였으니, 무소불휘의 권력을 남용했고, 사람 인권은 가톨릭에 위배 당하지 않아야만 보장해주는 흑암의 시대였고 적그리스도의 세상이었지요.
서두에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중세 가톨릭을 친정으로 두었으나 16세기 무렵에 종교적인 교리 불화로 인하여 '로마 가톨릭을 저항한다' 라는 의미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으로 개신교가 태동했습니다. 가톨릭 친정 체재를 떠나 복음주의 기독교 교파를 만들어 출가한 셈입니다. 복음주의 교회를 이루어 성경대로의 믿음을 갖겠다고 출발한 개신교파가 많은 세월을 거쳐 신학자. 목사를 배출하면서 여러 교파가 생겨 성경의 근본 말씀과 다르게, 누룩에 해당하는 혼합주의가 섞이면서 많은 신학적인 문제를 낳게 됩니다.
혼합주의 중에서도 가톨릭주의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삼위일체라는 신관은 태양신 바벨론 3신을 기초로 하여 성부의 자리에는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교황이 앉아 있고, 성자의 자리에는 예수를 격하시킨 아기 예수를 마리아가 안고 있는 형상을 만들어 창조주 예수님을 사람 예수로 만들었으며, 성령의 자리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중보자로 받들어서 섬기도록 했습니다. 개신교와 독립교회에 해당하는 한국교회 신학자. 목사 선배 사역자들이
각색을 해서 가톨릭의 내면에 담겨 있는, 교황. 아기예수. 마리아를 교리 중심에 감춘 다음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3신을 1체라고 하면서 가톨릭과의 삼위일체 교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실제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천국지옥을 믿는다면,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삼위일체 반대자 약 6천만 명을 죽인 중세 가톨릭의 종교재판소 살육을, ‘말씀이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아버지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 되겠습니까? 한국교회에 정중하게 권면합니다.
지금 당장 예배 순서에서 폐지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송. 삼위일체 형식의 사도신경 암송. 삼위일체 이름으로 행하는 세례 또는 침례. 삼위일체 형식으로 짜깁기하여 두손을 높이 쳐 들고 하는 축도는 당장 중단하십시오! 세례 또는 침례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이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 또는 침례를 베푸십시오! 그리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됩니다. 부디, 예수님 유일신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목사하라는 계시를 들었거나 내가 목사하고 싶어서 너도나도 목사된 사람들이 성경에서 명령하지 않은 신학교에 들어가 성경을 포함하여 삼위일체를 배운다고 합니다. 예배 요소에다 삼위일체를 심어 놓으니, 예수교와 가톨릭이 절묘하게 결속된 '천주 기독교'가 된 것은 아닌지, 개교회별로 장로. 목사 그룹이 철저하게 검증하고 폐기하십시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는 맨 상단에 있고,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는 맨 하단에 있으니,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의 친절한 안내를 부탁합니다.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개신교에서 예수복음을 받았고, 지금도 개신교에서 예수복음을 공급받습니다. 동시에, 교단에 속하지 않은 독립교회 설교 메시지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의 근본 뿌리에 속한 믿음의 깊이를 찾아서 공부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거짓교사들의 가짜복음에 해당하는 누룩이, 개신교와 독립교회에 상당히 많이 혼합되어 있는데, 이를 알고 계십니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뜨거운 감자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한국교회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당신은 1. 2. 3위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아니면, 기체. 액체. 고체의 하나님을 믿습니까?’입니다.
성경에는 한분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귀신들도 한분 하나님을 믿고 떤다고 했으니까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말씀이신 창조주 여호와!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말씀이신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여러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한분 하나님을 통틀어서 호칭하는 것일까요? 한국교회 장로. 집사. 성도. 목사 어는 분이라도 한분 하나님을 표현하는 호칭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분이라는 하나님이 여러 종류로 쪼개어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1 2 3위 라는 하나님의 서열이 있다는데도 1신이라고 합니다. 제 말씀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속한 개신교와 독립교회 대부분이 이렇게 주장하며 하나님 신관을 따라가며 믿고 있습니다. 제1위의 하나님은 성부이시고, 제2위의 하나님은 예수님이시며, 제3위의 하나님은 성령이라고 하는 삼위일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도대체, 삼위일체가 뭔지나 제대로 알고 믿는 것입니까? 가톨릭 성경인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서 한국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하여 철저하게 검증도 안하고 덮어놓고
아멘하면서 믿어 버리니, 이것이 틀린지 맞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오랫동안 세뇌와 중독으로 영혼을 콘크리트화시킨 교단 교리가 성경처럼 토착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목사를 직업으로 삼아 생계를 꾸려가는 신약성경의 인물을 제시하라고 한다면 누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12제자도 아니고 바울도 아닙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목사되었다는 의미로 '자칭 목사' 라는 닉네임을 붙여 준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라고 부탁한 성경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많은 성도들 무리 중에서 제비를 뽑거나 투표를 해서 목사 세우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초대교회 7집사 세웠던 방법대로 성도들 중에서 집사. 장로. 목사를 세워야 맞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하십니까? 요즘은, 설교의 홍수 속에 영적인 기갈 시대를 만났으니까, 신학교와 무관한 장로. 집사. 목사를 성도들 무리 중에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과 말씀이 충만하고 가르침의 은사를 받았으며, 양무리의 본을 가지고
선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으로, 무보수 사역 맡을 자를 선출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회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십일조와 각종 헌금은 폐지하고, 자발적인 자유의사로 결정한 기부금과 동일한 각자 연보를 무기명으로 내어 놓아서 모인 돈으로 구제를 실천한 초대교회를 따르는 것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신약성경에 신학교 출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한번 확인해 보실 것을 요청합니다. 전혀 없습니다. 삼위일체는 중세 가톨릭에서 태양신 바벨론 3신을 기초로 하여
여기에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식으로 자리 배치를 한 것입니다. 태양신의 성부는 니므롯이고, 성자는 담무스이며, 성령은 세미라미스인데, 세미라미스를 마리아로 바꾼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어쨌건, 그래서 3신이고 3신이 1신이라면서 삼신일체 내지는 삼위일체가 된 것인데, 신학교에서 가톨릭의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친다고 하니 기가막혀서 말문이 막혀 버릴 지경입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이 삼위일체송을 부르고, 삼위일체 형식을 갖춘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삼위일체 형태의 세례를 베풀고, 삼위일체 형태의 축도라는 것을 하니, 도대체 이런 종교적인 행위가지고 한분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니, 하나님의 인내도 세상 끝날까지라고만 생각합니다. 심판 날까지 그냥 내버려 둔 것입니다. 혹시나 돌이킬 자가 있을까하여 저같은 부족한 인생을 성령의 도구로 사용하여 여러분들께 이 사실을 알리게끔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끝이 없으시지만, 예수님 보혈의 공로가 값없이 무한하시지만, 때가 되면 더 이상의 용서와 자비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회개 외에는 대책이 없지요. 그런데, 기체 액체 고체의 하나님을 믿는 무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을 셋으로 나눈 것은 똑같은데, 삼위일체와 다른 점은 하나님의 형태가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이고, 예수님의 시대에는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 형태였고,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유일신이라는 것입니다. 물의 형태는 기체 액체 고체가 있듯이, 나라고 하는 존재가 상대에 따라서 아버지 아들 남편이 된다는 것인데, 하나님을 세 종류의 관계적인 형태로 설명하는 것이 맞는지, 각자 영적인 분별 차원에서
성령께 기도하고 말씀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삼위일체를 양태론으로 설명하다 보니까. 기체 액체 고체가 나오고 아버지 아들 남편이라는 형태까지 동원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리 꿰어 맞추든지 저리 꿰어 맞추든지 양태론이라는 중세 가톨릭 시대 종교인들의 거짓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숭배하게 만드는 신관으로서, 구약 아합왕과 이세벨 부부 시대의 혼합신입니다. 이것을 똑바로 알고 개혁해야만 천국에 입성할 수있을 것입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세상종교의 잡신을 믿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들은 1 2 3위의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시겠습니까? 아니면, 기체 액체 고체의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신구약 성경에서 선포하고 있는 하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미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말씀이신 창조주 여호와!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말씀이신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시라고 말입니다. ‘말씀이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신구약의 유일신입니다. 이를 믿고 전파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장로. 집사. 성도. 목사 사역자 여러분들께서는 정말 지혜롭고 복된 분들입니다.한국교회 안에서 삼위일체와 양태론이 쌍욕을 해가며 싸우는 이유는 중세 가톨릭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단이 만든 멸망의 가증한 속임수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를 안믿는다고 양태론자들을 포함하여 삼위일체 반대자들을 무려 6천만 명이나 소를 잡아 죽이듯이 사람들을 도살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설명드려도 말귀를 못알아 듣고 이단타령만 할 것입니까?
아무튼, 회개해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려는 자들처럼 미련한 사람은 없습니다. 목사들이 모세의 자리와 선생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설교가 100% 성경인 것처럼, 있는 말 없는 말을 섞어서 퍼뜨린 것을 장로. 집사. 성도들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한, 삼위일체와 양태론의 덫에 걸려들지 않을 수없습니다. 교단을 떠나 독립교회를 이루어 장로 집사 2인 리더 무보수 체재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성경을 바르게 가르칠 생각을, 신중하게 성령께 기도하고 응답을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로 집사 그룹 중에는 성경에 대한 가르침의 은사가 있는 분들이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비량 설교가 가능합니다. 성령과 말씀이 충만하고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교회학교 교사. 초 중 고 교사. 대학교 대학원 교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썩히지 마시고, 한국교회 영혼들과 뭇영혼들을 살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행동해 보십시오! 찬양 한두곡 부르고 새번역이나 전수성경으로 설교하고 그냥 마치면 됩니다. 침례는 개울 계곡 강 호수 바다로 나가서,
'말씀이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 유일신의 이름으로! 침례를 홍길동 홍길순에게 주노라! 아멘.'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중세 가톨릭시대에 성경은 신부에게만 읽거나 보도록 했고, 만약 그 외의 사람이 성경을 읽거나 보게 되면 문제를 크게 삼았으며, 성경을 번역하면 엄청나게 박해했다고 합니다. 목사를 사회적인 직업과 같은 생계수단으로 삼아 버린 목사 그룹들만 설교하도록 자기들끼리 결정해 놓으니까, 제 멋대로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해도, 장로 집사 성도 그룹들은
그게 100% 성경인줄 알고 그냥 믿어버리는 무식함 때문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신학교와 목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공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미입니다. 반드시, 한국교회는 파선할 것입니다. 파선해야만 살아남을 자는 구원받고, 물에 빠져 죽을 자는 빠져 죽을 것이니까요. 사도 바울도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물론, 해피엔딩의 구원을 이루었지만, 한국교회가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극소수 그룹에서 위기 상황을 진단해 주는 메시지를 가끔씩이라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 집사 2인 리더를 세운 무보수 인터넷 또는 오프라인 교회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의 경우에 자신의 사무실이나 가정집을 활용하면 됩니다.
구역예배 수준 정도로 진행하면 무난하지 않겠습니까? 한국교회는 자정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사분오열이고, 오합지졸입니다. 삼위일체와 양태론이 뭔지도 모르니까, 괜찮다고 말해서는 안될 이유는 예배순서 여러 곳에 이미 삼위일체가 깊이 들어가 뿌리박혀 있고, 목사 설교 시간에도 삼위일체 신관이나 양태론 신관을 종종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는 맨 상단에 있고,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는 맨 하단에 있으니,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의 친절한 안내를 부탁합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장로교 개혁교단 N교회 박아무개 목사의 ‘십일조의 두얼굴’ 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2004년도에 설교한 메시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구약에 존재했던 주님의 모형이며 그림자들을 모두 다 제거하셨다고 믿는 줄로 아는데, 그렇다면 십일조는 구약의 요구입니까? 아니면, 신약의 요구입니까? 먼저, 구약시대를 사신 예수님이라는 점을 알아야함에도,
신약시대의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라면서, 목사들은 이상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상고해 보고 과연 이 말씀이 오늘날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박식한 성경학자는 아니지만, 마태복음 23장 23절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십일조라는 의미가 얼마나 거짓이고 가증하며 추악한 것들로 드러나고 있는가를 알 수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아멘..
모든 대화에는 항상 상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흑백의 논리처럼 다르게 나타납니다. 특히, 마태복음 23장 전체의 내용을 보면 시종일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으면서 하시는 말씀으로 일곱 구절의 말씀은 서두에서 부터, “화 있을찐저” 라고 저주를 전제로 하셨고, 또 33절에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라는 그들의 결과론을 필설하셨습니다. 더욱이,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에서 깨달아야할 것이 있다면
이 말씀들이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도 되지만,오늘날 소위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목회자들에게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에 대해서 누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절에서, 이미 교황과 같은 목사들을 일컬어 하시는 예언의 말씀으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라고 하셨다 생각합니다.어쩌면, 이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오늘날의 목회자들에 적중하는 말씀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그저 탄복할 지경입니다.
저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함은 율법의 자리에 앉았음을 일컫는 말이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자리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기 위해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기 위해 장로. 집사. 성도들의 혈세인 십일조를 착취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라면, 어디서 도적질한 것일까요. 구약의 십일조나 신약의 연보는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에게 사용하라고 한 것인데,
구약의 십일조를 돈으로 거두어 들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독사의 새끼들아! 뱀들아! 라는 말을 들어도 싼 것입니다. 수 천만원 또는 억대가 넘는 자가용들은 예수를 팔고, 장로. 집사. 성도들의 피를 태우면서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한국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호통치실 것만 같습니다. “로마 천주교의 바티칸 궁전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질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어찌하여 십일조라는 면죄부로 궁궐같은 가짜 성전들을 짓고 있느냐? 그리고, 너희들은 스스로 교황들이 되어 가난한 백성들의
혈세로 부를 누리고 있는 것이냐?멜기세덱은 드리는 자가 아니요, 받는 자로 그 멜기세덱이 되는 나 예수는 내 자신을 바쳐서 속죄의 제물로 종결하였다.그래서, 제사는 예배로 바뀌었고, 모든 절기가 예배의 날로 바뀌었으며, 제물은 너희의 헌신으로 대신하게 되었고, 십일조는 연보가 되었는데, 그것을 정녕 모르고 있다는 것이냐? 아니면, 알면서도 이를 철저하게 속이거나 무시하는 것이냐?십일조는 강제적인 율법이지만, 연보는 은혜로 즐겨내는 것이다. 또한, 연보는 나를 바쳐 십일조로 완성시킨
전부를 드리는 것의 표가 되는 과부의 두렙돈이 아니고 무엇이냐? 율법 아래에 있는 자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할 것이나, 율법의 완성 아래에 있는 자는 모든 것이 나 예수의 것으로 여기는 산 제사의 표본이 아니겠느냐? 또 성전을 허물어 버리고 너희를 성전 삼지 않았느냐?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이제는 실체로 내가 성령과 말씀으로 나타났는데, 왜 십일조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냐?.. 이런 경고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성경구절이 마태복음 23장 23절입니다.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초대교회의 성도 중에는 자신들의 재산을 기부한 사람도 있었는데, 유대교에서 개종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끼리 정통 유대 동족을 피하여 공동생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율법적이요 계산적인 십일조가 아니라, 기부하는 연보 정신이었음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바울 서신들이나 제자들이 기록한 신약의 모든 성경을 살펴보아도, 십일조를 하라든가 주일성수를 하라는 가르침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연보와 십일조를 구분하실 수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신약에 와서 본질적으로 사용하지도 않는 십일조를 다시 율법화해서 장로. 집사. 성도들을 꽁꽁 묶어 놓으려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십일조가 없었다는 사실은 바울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 당시에도 십일조가 있었다면 바울이 직업을 가지고
구태여 천막을 짓거나, 루디아를 비롯한 많은 성도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그러했으며, 특히 일곱 집사를 세운 것은 십일조의 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연보를 관리하도록 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더 확실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율법과 복음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수차에 걸쳐서 다른 말들로 여러분들을 이해시키려 하고 있지만, 한국교회의 장로. 집사. 성도들은 바리새인들 같은 목사들 때문에,
십일조라는 율법에 완전히 묶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쉽게 말해서 약속어음과 같은 것이라고 '윌리엄 헨드릭슨' 이라는 사람이 갈라디아 저서에서 밝혔습니다. 약속어음은 현찰과 교환되고 나면 그것은 어디에도 쓸 수 없는 버려진 휴지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대한 크나큰 복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면서, 변질된 목사들은 목에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율법의 다른 얼굴을 벗어 버리고, 은혜의 얼굴 곧 그리스도의 얼굴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분 자신을 드려서 우리를 사신 것처럼 우리의 전부를 드려서 그분을 사야만 합니다. 저는 언제나 바울의 고백을 즐겨 듣고 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아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을 하는 자들에게는 십일조라는 제도 자체는 오히려 가증스러운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숫양이나 물질을 바치는 제사보다도
말씀 순종을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의 우리 제사는 로마서 12장 1절의 죽은 제사가 아니라, 산제사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예배의 어떤 의식적인 날이나 제물이나 절기나 규례나 나타나 보이는 어떤 물질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제사로서의 삶속에서 열매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으로 완성이 되었고, 이로 인해 모든 절기와 제사는 폐하여지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 모든 날을 주의 날로
안식할 수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성전이요 율법이요 절기며 제사와 십일조를 말하는 자들은 구약이나 율법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율법을 완성하셨지, 율법을 폐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율법은 존재를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20절을 채택하고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의 완성을 아래와 같이 답변을 드리고 본질적인 것을 논하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 31절 말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우선, 근본적인 논리로 율법은 종이며 백성의 신분에서 지켜야 하는 법이라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는 자들의 법으로 곧 하나님의 근본 사랑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 서신들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에서는 율법의 초등학문을 버리고 담대히 그리스도 앞에 서라고 요구하심을
받지 않았습니까? 십일조는 레위지파. 과부. 고아. 객을 위해 지정된 것입니다. 레위지파는 다른 어떤 분깃도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렇다면,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도 레위인이 존재합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가톨릭을 비롯한 구교와 신교에 구약의 레위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성도들 모두가 만인 제사장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은 자기자신을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줄곧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성전이 어떻고, 제단이 어떠하며, 제사와 십일조가 어떻고,
절기를 찾으면서, 그리스도를 완전히 욕되게 하고 성도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은혜가 무엇이며 믿음이 무엇입니까? 은혜 아래에 있고, 믿음 아래 있다고 하면서 율법의 종처럼 굴어야 하겠습니까? 생명의 피를 주신 예수님의 이름을 영접하여 참 믿음생활을 하는 참된 성도라면, 영혼과 생활에서 속박을 벗어난 새들처럼, 자유로움과 다정함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예수믿고 인간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도덕군자의 피를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으로 명하기를,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피조물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완전할 수 없었기에, 인간은 율법의 명령을 어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보니 율법에 사로잡힌 바 되어 율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감사할지니율법의 규제를 받을 필요가 없는 완전한 권세를, 예수님의 피를, 자유의 생명을, 주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게 된 까닭에 인간들도 마침내 피조물만을 억압할 수 있는 율법의 세력을 뛰어넘어서 모든 율법으로 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라고 하는 장로. 집사. 성도들이여! 제사장을 가장한 목사들이여! 아직도 제2의 이스라엘을 꿈꾸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율법의 노예들이었던 저들의 누추함이 그렇게도 좋아 보였던가 말입니다.
교회들이 십일조에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왜 바울이나 사도들이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는지, 성령께 간구해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10장 10절과 누가복음 9장 3절에서,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적인 답으로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5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제자들이 복음 전도에 나섰을 때, 사도적인 권위나 제사장적인 위엄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주님처럼 형제요 친구처럼 찾아갔던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모습은 형제요 식구요 친구처럼 모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율법적인 성전세나 열한 지파에게 내는 십일조의 세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은 단순히 돈을 교회에 내는 기부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바치는 손길의 믿음을 본다는 것이며, 봉헌의 마음을 살펴 복과 화를 준다는 것으로, 무당들의 복채 개념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를 다른복음으로 보고 문제를 삼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당장 중단하시고, 무기명으로 각자가 결정한 기부금에 해당하는 연보를 교회 공동체 앞에 내어 놓거나 형편이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는 맨 상단에 있고,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는 맨 하단에 있으니,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의 친절한 안내를 부탁합니다.
1. 구약 성경에 있는 토지 소산물. 나무 열매 십일조는 지금의 헌금제도가 아니다. 2. 십일조는 가나안 시대에 땅이 없는 레위인. 고아. 나그네. 과부를 위한 것이다.
3. 말라기 3장을 '십일조 내면 복받는다'로 해석하게 되면, 돈놓고 돈먹기가 된다.
4. 십일조는 믿음의 고백이고 신앙 행위라는 말은 성경에 써 있지 않는 내용이다.
장헤이프명확한 말씀! 속이 다 시원합니다. 목사들이나 신학교수도
이렇게 말씀 안하세요~ .
김민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Noah Bak 끝맺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위 설교자의 메시지는 구구절절 성경적입니다. 모든 소득의 1/10을 구별해서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할 수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를 설교하는 이유는 거듭난 그리스도들이 성경대로 따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부터, 모든 소득의 십일조. 각종 헌금의 의무에서 자유하십시오!
과거 30년 동안 십일조 율법주의자였던 저의 입장에서, 장로. 집사. 성도 여러분들께 감히 권면한다면, 십일조는 중단하고 월정연보(기부금). 자원하는 연보(기부금)를 무기명으로 공동체 앞에 내어 놓으면 됩니다. 연보의 짐을 어깨에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와 각종 헌금의 멍에를 벗겨드리는 차원입니다. 형편이 어려우면 안하셔도 됩니다.
한국교회 개신교및 독립교회는 세대주의 전천년(대부분), 삼위일체(대부분), 양태론(상당수)으로 인하여 문자주의. 미래주의. 종교다원주의. 이단포용주의. 칼빈주의. 베리칩주의. 은사주의및 거짓 방언. 개인적인 천국지옥 신비체험. 자의적인 성경해석등으로 인하여,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따로! 내 심령 속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 따로! 육을 다시 입고 오시는 재림예수 따로! .. 설교를 빌미로, 창조주 여호와 아버지 예수님 유일신을 모독하고 있으며, 성경 말씀을 목사 마음대로 왜곡. 난도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