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참예수 복음을 전하는 Noah Bak 전도자입니다!"

* 원제목: 방언이란 무엇인가?

* 부제목: 성경의 복음전파 방언은 외국어이다! 고린도교회 방언은 이방종교 방언이다!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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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3AMS 기독교 사이트에 소개된 오순절의 방언과, 예수 성령을 모르는 무당이나 세상종교인들의 방언및 통역을 분별하기 위한, 마지막 4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바울은 자기 편지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당파가 많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연약하고 일시적인 실수를 저질렀던 형제들이 매도되고 정죄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7절 말씀에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하는 것이 바울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편지 보낸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8절을 참고하십시오! 그러므로, 바울은 엄하게 방언을 금지하라고 꾸짖고 싶었지만, 예수님 편에 서서 바라본 연민의 정 때문에, 교회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상황에서, 방언같은 미묘한 현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책하는 것을 피하고 완곡한 표현을 쓴 다음에, 그가 고린도에 가서 들었던 말의 사실 여부를 확정”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절을 참고하십시오! 바울은 그래서 내가 갈때 까지는 “금하지 말라”라는 아주 소극적이고 걱정스러운 한 마디를 덧붙인 것이지요. 결론부의 말씀으로 지금까지의 메시지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조주께서는 현대 교회들이 성령의 침례를 받은 증거로 강조하는 방언을 과연 필요로 하시는가? 두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을 즐기기 위해 꼭 방언을 할 줄 알아야 하는가? 셋째, 오늘날의 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비정상적인 방언 현상이 과연 성령 충만의 증거일까?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은 세가지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많은 성경 학도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지껄이는 방언은 거의 모든 종교에 공통된 원시적인 일반 현상으로서, 언어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언어적인 특징이 전혀 없어 생명이 없는 소리요, 허공에다 외치는 공허한 자기 소리일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은사 중에서 특히 방언의 은사가 가장 모방하기 쉬운 것이라고 합니다.

 

발성 기관은 하나님만이 사용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방언 현상은 희랍신의 축제. 강신술. 몰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니까요.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봐도, 하나님의 음성은 항상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헛소리로 표현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뜻이 있는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창조주께서 그런 비정상적으로 지껄이는 방언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고 분명히 믿을 수가 있습니다. 방언으로 해야만 하나님께서 인상깊게 들으시면서 기도 효과가 있다고 오해하는 것은, 창조주의 속성에 대한 큰 오해이며 불신이 됩니다. 오늘날 현대교회의 지껄이는 방언은 설령 통역을 세운다고 해도, 어지러운 언어의 분열이요 무질서의 표본이 될 뿐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비정상적인 소음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방언이 전혀 필요없다고 주장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제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오순절과 같은 방언 현상은 특수한 사정의 환경인데, 오늘날에도 있을지 모르지만 섣부른 예단이나 속단은 금물입니다. 잘 모르면 잠잠히 있는 편을 택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마도 현대교회의 참된 방언이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신문. 잡지 등의 출판물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식간에 온 세상으로 전달하는 라디오. 텔레비전.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일지 모릅니다. 마지막 4부 메시지는 여기까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된 방언들로 기록된 결과물이 "성경"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계십니까? 깨어있는 누군가가 "방언및 방언 통역"을 즉시 버려야 한다고 말하거든, 딱 두가지만 떠올리십시오! 첫째, 성령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당도 한국교회와 똑같이 "방언과 방언 통역"을 한다! 두째, 세상 종교들마다 하는 "방언및 방언통역"이 한국 개신교와 전혀 다르지 않다!입니다. 이상으로, 총4부 메시지를 모두 전해드렸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참예수 복음을 전하는 Noah Bak 전도자입니다!"

* 원제목: 방언이란 무엇인가?

* 부제목: 성경의 복음전파 방언은 외국어이다! 고린도교회 방언은 이방종교 방언이다!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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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도 3AMS 기독교 사이트에 소개된 오순절의 방언과, 성령을 모르는 무당이나 세상종교인들의 방언및 통역을 분별하기 위한, 3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설명해 주고 안수하여 성령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체험을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의 체험과 연결시키셨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방언을 말해야 된다는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이 있었으나 방언 현상이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오순절에 3,000명이 믿었으나 방언을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 5,000명의 회심 때에도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복음의 정수를 말하면서도 로마서에 단 한 번도 방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전서보다 후대에 쓰여진 로마서

 

12장 6절과 에베소서 4장 11절 12절만 봐도, 방언의 은사가 전적으로 생략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기도를 가장 많이 드리신 예수님께서 방언으로 기도하셨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문제는 고린도 교회의 방언 현상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오순절의 방언과 같은 성질의 어떤 외국어였는지 아니면, 당시 희랍신들의 제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황홀 상태의 지껄임인지에 대한 여부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바울 자신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에 대하여 한결같이 "글롯사(glossa)"라는 헬라어를 써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고린도가 국제 무역도시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주워들은 외국어를 연결하여 방언이라고 자랑했는지도 모릅니다. 또, 이교신 제사에 익숙했던 이방인 개종자들이 황홀 상태에서 나오는 지껄임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성령의 은사라고 주장하면서 영적인 능력을

 

과시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외국어이든 열광적인 지껄임이든 간에,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모두다 성령의 은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지럽고 소란스러웠던 고린도 교회의 방언을 책망한 바울의 편지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7절 9절 19절 말씀!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교회에서..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 보다 나으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일부 방언 현상을 찬성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방언이든지 간에, 그 결과가 걱정스럽고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는 이상, 그것이 성령 충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므로 바울은 찬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바울이 사실상 고린도 교회의 일부 방언을 금하고 싶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전서 14장 19절에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그것은 그들의 방언이 성령 충만함의 결과도 아니고, 쓸데없는 짓이니까, 하지 말라는 책망의 완곡한 표현인 것입니다. 여섯째그렇다면 바울은 왜 문제가 되는 표현들 예컨대,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와 같은 애매 모호한 말을 했을까?라는 의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5절 14절 39절 말씀을 참고하십시오!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심정을 가진 바울의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1년 반을 머물렀던 사랑하는 교회였는데,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어지러운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과 슬픔에 잠겨 “많은 눈물로(고후 2:4)” 적은 고린도 복음 서신을 보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 마지막 4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참예수 복음을 전하는 Noah Bak 전도자입니다!"

* 원제목: 방언이란 무엇인가?

* 부제목: 성경의 복음전파 방언은 외국어이다! 고린도교회 방언은 이방종교 방언이다!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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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3AMS 기독교 사이트에 소개된, 방언에 대한  난해 성경구절인 사도행전 2장 4절을 가지고 방언이 무엇인지에 대한 2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셋째성경에서 방언 현상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성령이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했던 오순절 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참고하십시오! 참고로, 구약에서 방언이라고 언급된 것들은 모두다 어떤 민족의 언어나 외국어들을 의미했습니다. 창세기 10장 5절 20절 31절, 느헤미야 13장 24절, 다니엘 1장 4절을 참고하십시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제자들이 말한 방언도 모두다 외국어 방언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최소한 15개 지역 이상에서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향 말로 위대한 복음을 듣고 놀라 소리쳤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8절 말씀!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이 맨 처음 받은 성령의 은사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성령의 은사 중

 

제일 마지막에 두거나, 아예 생략해 버렸던 방언이었습니다. 로마서 12장 6절 7절 8절과 에베소서 4장 7절에서 11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그것은 방언의 은사가 그 당시의 환경에서 가장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5절을 보니,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메시야이심과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새로운 구원의 도리를 전 세계에 전할 다시 없는 기회였지요. 그러나, 거기에는 언어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 땅을 떠난지 오래되었고, 타향에서 태어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언어에 익숙하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 언어의 차이는 복음 선포에 큰 장애가 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도들의 부족을 보충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일생 동안 성취할 수 없었던 일을 그들을 위해 행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저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방언을 정확하게 말함으로서 해외에 널리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그들의 모국어로 강력히 전파되었습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이나마 언어의 혼란을 하나로 통일해 버린 바벨탑 이전으로의 회복인 셈입니다. 이것이 오순절날 방언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사정 하에서 주신 특별한 은사였습니다. 방언은 오순절에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는 없었던 은사입니다. 그리고,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19세기까지는 보편적으로 방언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방언 은사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따라 오순절에 주어진 것이라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거두어 가실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오순절의 순수한 방언을 오늘날에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언이 오늘날 보편적으로 필수적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넷째, 방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이 임하신 후

 

방언을 말하였으므로 오늘날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들도 방언을 말하는 것이 당연히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도행전 2장 4절. 10장 46절. 19장 6절의 세 경우에는 모두다 방언이 주어질 만한 중대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오순절의 방언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도의 목적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성령의 강림을 강하게 인상 짓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6절에 나오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있었던 방언은 이방인을 꺼려하고 하나님의 뜻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베드로 일행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차별없이 유대인과 똑같은 성령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강하고 확실하게 알리시기 위해서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절 3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은 요한에게 침례만 받았을 뿐,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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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3AMS 기독교 사이트에 소개된, 방언에 대한  난해 성경구절인 사도행전 2장 4절을 가지고 방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설명한,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총4부로 나누어 전해 드릴텐데, 오늘은 1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한국 개신교 교회안에만 방언과 방언 통역이  있다고 많이들 착각하는 장로. 집사.  목사도 계실텐데, 방언과 방언 통역은 무당도 할 수 있으며, 가톨릭. 불교. 이슬람교. 남묘호렌게쿄. 상당수 세상 종교들마다 있음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영이시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방언및 방언 통역을 허락하셨다면, 세상종교 안에서도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건데, 종교다원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사도행전 2장 4절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날에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말한 방언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다른 은사도 많은데,

 

하필이면 방언의 은사를 그때 주셨습니까? 지금도 그때처럼 방언을 해야 할까요? 지금 온교회가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과,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째, 방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령 침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첫째 증거가 방언(方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몇 가지를 그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의 1, 앞서 읽은 사도행전 2장 4절을 근거로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그들은 성령 충만의 표적으로 방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째의 2, 고넬료의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때, 그들이 방언을 했다는 사도행전 10장 46절을 근거로 말합니다. 첫째의 3에베소 교회에서 바울이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는 사도행전 19장 6절을 근거로, 현대교회 방언의 근거로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충만의 외적인 표적의 공통 분모였던 방언이, 오늘날 성도들의 성령 충만한 체험의 외적인 표적이

 

된다고 해서 안될 것은 없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성경적으로 확증된 성령 충만한 체험의 강력한 외적 표현 이라는 것이지요. 성령의 은사 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는 방언의 은사와 신유의 역사를 들 수 있고, 또한 일반적으로 성령 침례의 최초의 외적 증거는 방언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성령 운동을 연구할 때 가장 깊이 연구해야 할 문제가 방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성령 은사를 강조하는 교회의 신자들 사이에서 방언의 역할과 위력은 대단해 보입니다. 방언은 성령 충만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외적인 우월감을 고취시키기 때문입니다. 억눌리고 찌들린 사람들에게 방언이란 그들의 지위를 놀라울 만큼 짧은 시간에 격상(格上)시켜 주는 마술 상자와 같은 것입니다. 사회나 교회 안에서 힘없고 약하고 무식한 사람이, 방언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놀라움과 부러움과 주목을 받아 새로운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방언이 과연 성령 충만의 첫째 외적 증거라 할 수 있는지 고찰해 보는 것은 성령 운동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두째, 방언은 하늘의 언어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일까요?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 현대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껄임 같은 방언은 같은 종류입니까? 방언은 유익한 것입니까? 아니면, 해로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방언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이런 어려운 문제들은 성령 선물 운동이 오순절 교회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독교 교회들을 유행처럼 휩쓸었던 지난 몇 십 년 동안, 많은 진실한 기독교인들을 당혹하게 했던 문제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많은 지성적인 비신자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었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2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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