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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초교파, 삼위일체는 콘스탄틴 황제와 1800명의 주교 중 삼위일체 지지자 318명이 투표로 결정한 태양신 숭배의 바벨론 삼신 교리이다, 양태론은 삼위일체에게 패배하여 이단교리가 되었고 종교재판소에 의해 살육 당한 교리가 되었다, 천국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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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enger 歸結]
삼위일체송을 부르고, 삼위일체 구조로 만든 사도신경을 하고, 삼위일체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베풀고, 삼위일체 이름으로 축도하는 것은 성경의 음녀인 가톨릭을 따라 가는 일이며, 음녀의 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배에서 즉시 중단하고 회개하십시오! 삼위일체는 태양신을 숭배한 바벨론의 삼신 교리에다 성경을 짜깁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자료를 정독하시면 성령과 말씀이 영을 바르게 분별시켜 주실 것입니다.
[원제목] 삼위일체 교리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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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6:4)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필자는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삼위(三位)로 존재하시는데, 그 삼위는 하나이다’ 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삼위일체 교리가 기독교에서 받아 들여진 이유는, ‘사람’ 이신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형태로 이 땅의 메시야로 오셨다는 개념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않다.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같이 식사를 하셨고, 창세기 32장에서 그 분은 야곱과 씨름을 하셨다. 무한 능력의 하나님은 자신을 어떤 형태로든지 나타내실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세분(細分)해 버리는 ‘엉성한’ 교리가 꼭 필요한가? 삼위일체론자들은 하나님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셋으로 나눈다. 성경은 하나님이 셋으로 나누어진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삼위일체’ 라는 것은 성경 용어가 아니다.
삼위일체는 이방종교로 부터 차용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에 불과하다. 성경은 하나님이 한분이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삼위일체 교리는 하늘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1/3 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냥,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더 쉽지 않은가?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그분은 자신을 여러 형태로 계시하실 수 있다. 사람들이 만든 교리에 맞도록 자신을 셋으로 쪼개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아버지?
(마 1:20)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마리아를 수태시킨 분이 성령이라면 성령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성령과 성부 하나님 둘 다 아버지 하나님이 된다는 뜻인가?
성령이란?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Ruach, 스트롱 색인번호: 7307)이며, 숨, 공기, 바람등으로 정의 된다.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로는 프뉴마(pneuma, 스트롱 색인번호: 4151)인데 동일한 의미이다. 말 그대로, 성령은 하나님의 숨결인 것이지, 분리된 하나의 신격이 아니다. 성령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살펴보자.
(창 1: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고후 3:17) "이제 주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빌 1:19) "너희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공급해 주심을 통해 이것이 나의 구원으로 바뀔 줄 내가 알므로.."
(고전 15:45)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윗 구절들에서, 성령을 아버지(Father)나 아들(Son)로 대체시켜도 아무런 지장이 없지 않은가? 성령은 그 자체가 독립적인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호흡이나 하나님의 힘을 나타낸다.
(사 9: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 구절에 삼위일체의 개념이 있는가? 예수님은 아들이신데, 또 아버지라고 불리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음의 구절을 한번 살펴보자.
(요 10: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이 구절만 보아도,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적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 하신다. 삼위일체 교리 신봉자들은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한다. “나와 내 아버지는 2/3의 하나님이니라.” 예수님은 또 말씀하신다.
(요 14: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예수님은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이기도 하다. 신격의 분리나 나눔은 없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오류다.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오직 하나이시다. 그분은 3위 하나님의 집합체가 아니시다. 그분은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을 나타낼 수 있지만, 그분 자체는 하나이시다.
(사 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부터 너를 지은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모든 것을 만드는 주니 곧 홀로 하늘들을 펼치고 친히 땅을 넓게 펼치며.."
윗 구절을, 예수님에 관한 구절인 골 1:15~18절과 비교해 보라.
(골 1:15~18)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 되었노라. 또한, 그분께서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윗 구절에서는 예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 격하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자신이시다.
(사 63:16) "틀림없이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비록, 아브라함은 우리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오 주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구속자시니 주의 이름은 영원부터 있나이다.
윗 구절의 '주'는 아버지 뿐만 아니라, 구속자이신 예수님이기도 하다.
(사 43:11) "나 곧 나는 주니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윗 구절들은 '주'가 아버지요, 구속자요, 구원자임을 밝히 말한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자들은 굳이 하나님을 분리시켜서, 성부 하나님의 역할과 구속자로서의 성자 하나님의 역할로 나누려 한다. 교리가 점점 복잡하게 꼬이게 된다.
주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주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과 메시야는 한분이시고 동일한 분이시다. 단순 명쾌하지 않은가? 오직 한분 하나님만 계신다. 성육신 前의 메시야는 누구인가? 성육신하신 메시야 바로 그분이다. 그분이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아버지이시고, 주님이시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삼위일체론자들은 그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다음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창 1:26~27)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 A.D.325) 이전에는 ‘let us’(우리가) 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천사들과 함께 말씀하심을 의미하였다. 삼위일체론자들은 천사들은 창조 사역을 할 수 없으므로 윗 구절에서 사용된 복수 형태의 어휘(us, our)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 주장이 옳다면, 27절에서도 복수 대명사(they, their)를 사용해야 되지만, 단수 대명사(he, his)가 사용되었다.
‘창조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바라(bara)인데, 이 동사는 단수 명사와만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26절의 복수 대명사는 하나님이 천사들과 함께 말씀하심을 의미하며, 창조 사역 자체는 하나님 한 분만 행하신 것이다. 창세기의 다른 구절에서도, 우리들(us)이라는 표현이 하나님과 천사들을 지칭함을 보여준다.
(창 3:22~24)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가운데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 그런 까닭에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사 그를 땅에서 취하였으므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쫓아 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에하드(Echad; 하나)
삼위일체론자들은 신명기 6:4절의 쉐마 이스라엘에 사용된 히브리어 echad가 복수 형태임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삼위를 주장한다. 하나님이 삼위가 아니라면, 단수 형태의 yachid가 사용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있는 논박이지만, echad의 용례를 모두 찾아보면, echad가 절대 단수(오직 하나)를 표현할 때도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전 4:8) "한(echad) 사람이 홀로 있고 대신할 자가 없으니 참으로 그에게는 자식도 없고 형제도 없도다. 그럼에도,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으며 또 그의 눈은 재물로도 만족하지 아니하고 또 그가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해 수고하며 내 혼에게서 좋은 것을 빼앗는가? 하지도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며 참으로 쓰라린 해산의 고통이로다."
(삼하 13:30) "그들이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죽이고, 하나(echad)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하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삼하 17:12) "이처럼 우리가 그를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습격하되, 마치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그의 위에 내려 앉아 그와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echad)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삼하 17:22) "이에 다윗이 일어나서 자기와 함께 있던 온 백성과 함께 요르단을 건넜더니,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요르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하나(echad)도 없었더라."
엘로힘(Elohim)
삼위일체론자들은 또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복수인 elohim임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삼위를 주장한다. 그러나, elohim이 복수 형태인 것은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절대적 권능과 주권으로 모든 천지 만물을 포괄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elohim 이 복수이긴 하지만, 단수처럼 사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 '나' 곧 네 하나님, 여기서 우리 곧 네 하나님이라고 표현되지 않았음에 주목하라!) 몇 구절만 살펴 보자.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곧 주 네 하나님(Elohim)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레 19: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나 주 너희 하나님(Elohim)이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지니라."
(신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주 네 하나님(Elohim)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사 41:13) "나 주 네 하나님(Elohim)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리라."
마태복음 28:19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삼위일체론자들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보여주는 구절이다. 다른 복음서나 서신서에서는 침례를 줄 때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행하는 것을 주지하라. 윗 구절에서 과연, 성령의 이름이 무엇인가? 이 구절로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비약인 것이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받은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것이며,
엘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엘엘리욘(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엘로헤 이스라엘(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것이고, 창조자. 구속자,.주권자. 심판자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것이다. 광대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
(요일 5:5~8)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냐?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하늘에 증언하는 세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라. 또, 이 세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마태복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론자들은 이 구절이 삼위일체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에 대한 증인을 여러 각도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즉, 하늘의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처럼, 땅에서는 물(침례)과, 피(십자가 처형)와 성령이라는 말이다. 다음 구절을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눅 3:21~22) "이제 온 백성이 침례를 받았을 때에 예수님께서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몸의 형태로 그분 위에 내려오시고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어떤 기도를 드릴지 몰랐단 말인가? 삼위가 서로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다신론이다. 필자는 예수님의 기도는 그분의 人性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즉, 그분은 인간으로서 기도를 드린 것이며, 하나님의 일부분(성자) 으로서 다른 부분의 하나님(성부)께 기도하신 것이 아니다.
무한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태 안에 내주하심을 묵상해 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또한 완벽한 사람이셨다. 그분은 시험 받으셨고, 배고프셨고, 고단했고, 우셨고, 고통을 느끼셨고, 따돌림 당하셨고, 인간의 죽음까지 경험하셨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께 힘을 주십사하고 기도드린다.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도 연약함을 느끼실 때, 그분 자신의 하나님됨과 권능에 의지하려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다. 따라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은 그분의 인성을 나타내신 것이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마 6:9의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경우 처럼), 꼭 그렇게 한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혼자서 기도하시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마 26:37~45)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시면서 비로소 슬퍼하시며 몹시 괴로워하시더라.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멀리 나아가사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도대체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었느냐?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되 육이 약하도다 하시니라. 그분께서 다시 두 번째 나아가사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오셔서 보시니, 그들이 다시 자더라. 이는 그들의 눈이 무거웠기 때문이더라. 또, 그분께서 그들을 떠나 다시 나아가사 세 번째 같은 말씀들로 기도하시고, 그 뒤에 자기 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그 시각이 가까이 왔으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죄인들의 손에 넘겨졌느니라."
왜,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는가?
(마 27:46) "아홉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것은 곧,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이라."
삼위일체론자들은 윗구절을,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짊어 지셨을 때,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그분을 버려야만 했으며, 성자 하나님은 버림을 받으셨다” 라고 해석한다. 삼위 하나님을 별개의 개체로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다신론을 인정하는 셈이다. ‘삼위’의 개념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면, ‘일체’ 라는 개념이 파괴되는 것이다.
또한, 윗 구절은 예수님이 버려 지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셨을 뿐이다. 이 말씀은 시 22:1을 그대로 인용하신 것이다. 말씀을 인용했다는 것과, 실제적으로 버려 지셨다는 것은 같지 않다.
(시 21:1)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 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 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예수님은 단순히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신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신 것인가?..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두가지 모두일 것이다. 즉, 그분은 십자가 상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 지시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그 고통속에서 시편을 인용하여 표현하신 것이다.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짐을 짊어 지셨을 때, 버림받았다고 느끼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고, 죄와 공존하실 수 없으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시다.그런데, 인류의 죄짐을 다 지셨으니, 메시야로서의 딜레마(dilemma)에 빠지신 것이다. 심판자로서 동시에 구원자가 되셔야 했기 때문이다.
(사 63:4~5)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 속에 있고 내가 구속할 자들의 해가 이르렀으나, 내가 보니 도와주는 자가 없었으며, 또 떠받쳐 주는 자가 없었으므로 내가 이상히 여겼노라. 그러므로, 내 팔이 내게 구원을 가져왔으며 내 격노가 나를 떠받쳤느니라."
윗 구절을 다음 구절과 비교하라.
(눅 1:68~72)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사 구속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자신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존재하던 자신의 거룩한 대언자들의 입을 통해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이요. 또,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긍휼을 이루시고 자신의 거룩한 언약.."
하나님은 죄를 가까이 하실 수 없으시고, 인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 조차도 구속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 그 둘 모두를 취하셨다. 그분의 신성은 죄 없는 완벽한 희생물이 되었고, 그분의 인성은 세상 죄를 다 짊어지신 것이다. 시편 22:1절을 인용하시면서, 예수님은 이러한 신성과 인성의 갈등을 표현 하셨으며, 또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당하시는 그분의 고통을 표현하신 것이다.
한분 하나님
(슥 14:9) "또, 주께서 온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한 주만 계시며 그분의 이름도 하나만 있으리라."
(말 2:10) "우리 모두에게 한 아버지가 계시지 아니하냐? 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더럽힘으로 각 사람이 자기 형제를 대적하며 배신하느냐?"
(막 12:29, 3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모든 명령 중에서 첫째 명령은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이시니, 그 서기관이 그분께 이르되, 옳소이다.선생님이여! 한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 외에 다른 이가 없으므로 선생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나이다."
(롬 3:30) "할례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 무할례자를 믿음을 통해 의롭게 하실 분은 한 하나님이시니라."
(엡 4:6)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딤전 2:5)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고전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노라.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약 2:19)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삼위일체론자들은 왜 성경에서 “한 하나님이 계시니라.” 라는 구절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삼위일체론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 끝 -
하나님의 신관을 바르게 가지십시오!
끝까지, 긴 글을 1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