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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한부종말론의 원인제공자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작성일자         글쓴이  코이네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한부종말론은 대부분 세대주의라는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세대주의 자체는 이단이 아니지만, 이단들이 오용할 수 있는 원인제공이 되고 있습니다. 세대주의란 무엇일까요?


세대주의의 연혁


1. 세대주의는 19세기 말경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사람 달비(Darby)에 의하여 시작되었는데 그는 집사요 변호사로 무능한 기성교회에 대하여 반발의식이 생겨서 일본의 무교회주의와 비슷한 운동을 전개 했습니다. 달비는 그 운동본부를 영국 폴리머드에다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에 명칭을 달비파, 폴리머드 형제단이라고 했습니다.


2. 세대주의 운동은 19세기말 부터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전성을 이루었습니다.


정식으로 신학교육을 받지못했던 스코필드 목사가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만들어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는 무디신학교와 달라스 신학교가 중심이되어 있습니다. 세대주의는 19세시말-20세기초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대결을 하고 있었을때 보수주의(칼빈주의, 개혁주의)에 가세했기 때문에 한때 혼동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3. 우리 한국에는 초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들어왔으며 지금은 각교단에 스며있는데 특히 보수주의 교회들 속에 많이 있습니다.


왜, 세대주의라고 하는가?


세대주의는 성경예언에 대해 특히 종말론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하는 신학파로 변쇄적 전천년 학파라고 하는데 세대주의라 이름하는 것은 성경의 사건을 세대로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가 신봉하는 스코필드 관주(사설 성경)에는 역사적 사건들을 어느 시대에 되었다는 관주를 붙였습니다. 세대주의 역사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7,000년과 7세대로 경륜하셨다는 것입니다.


7,000년은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00년 아브라함 부터 예수 탄생까지

2,000년, 예수탄생으로 부터 예수 재림까지

2,000년 합 6,000년에다가

지상 1,000년 왕국까지 합하여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 4,000+신약 2,000년+1,000년 왕국 = 7,000년)


또,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7세대로 구분하셨는데 그 세대마다 특이한 시험과 심판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무죄시대로서 범죄전 아담시대로 무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양심시대로 아담 범죄후 노아 홍수 시대로 양심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인간통치정부 시대로 노아홍수 이후부터 아브라함까지 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정부 세력으로 한번 더 구원 기회를 주셨으나 바벨탑 사건으로 실패했다고 합니다.


네번째, 약속시대로서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로 약속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율법시대로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로 율법으로 구원을 알는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은혜시대(교회시대)는 은혜(복음)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일곱번째는 1,000년 지상왕국시대로서 왕국 통치를 통해 구원 얻는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7,000년과 7세대로 경륜하셨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신학적 가설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성경적인 것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역사를 7,000년으로 말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첫째는 천지창조(안식식일까지 포함) 7일입니다. (창1:)


이들의 의하면 예언의 하루는 1,000년이라는 것입니다. (벧후 3:8) 7일이니 7,000년이며 7세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 입니다. 왜냐하면 겔 4:6에 일일이 일년이니라 고 했으니 7일이면 7년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번째는 성경에 나오는 연대에 의한 년대 특정입니다.


성경은 족보가 많이 나옵니다. (창5:, 10:, 25:, 36: 대상1:-8: 마1: 눅3:)그중 가장 오랜 역사는 6,984년이고 가장 짧은 것은 3,483년이 된다고 합니다.


맛소라 사본은 BC 4004년을 아담창조로 70인경과 사마리아 5경은 BC 5411년, 영국 라이트 푸트는 BC 4004년 10월 18일에 창조가 시작되었으며 10월 23일 금요일 오전 10시에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하며 영국 어설 감독(1581-1651)은 BC 4004년이라고 했고 미국 사람 스코 필드도 어설의 주장대로 BC 4004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후 카톨릭 내의 개혁세력인 쥬이스트도 BC 4004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온 족보를 가지고 인류연대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족보에 열거된 사람들 중에는 단축된 것이 많고 히브리어 숫자는 이해하는데 난관이 있으며 창10장 족보는 개인보다 국가 민족 발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로 부터 여러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 1:5,20,31,32) 인도의 역사는 BC 6204년, 아라비아는 BC 6174년 바벨론 BC 6158년 중국은 BC 5507년 등입니다.


근년에 발굴된 여리고 성은 9000년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다만 보수주의 학자들은 1만-2만년으로 보며 노아 홍수를 지금 부터 1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경륜을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속죄뿐이었습니다. (창 3:15엡 1:4-5)


그러므로 세대주의 7,000년과 7세대는 허구요 신학적 가설로 믿을 수 없는것이며 이런 허구와 가솔위에선 주후 2,000년대 재림설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대주의 사상이 기성교회, 그리고 이단들(여호와 증인, 안식교, 시한부 정말론, 각종이단들)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세대주의 중요 신학 사상들


1. 성경관


세대주의 성경은 구약신약으로 구분하고 구약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고 신약은 신약교회에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계명은 이스랑엘이 지킬 규범이요 신약교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통일성과 유기성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세대주의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잘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릇된 표준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그들은 세대주의 스크필드관주 성경을 전제로 하고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다는 신앙고백 1장9조에 모순됩니다. 두번째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성경을 유대민족주의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천국)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를 엄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일반적 세계의 나라요, 하늘나라는 유대인을 위한 다윗왕국이 회복된 나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하늘날(천국) 곧 다윗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거절로 실패하여 연기되었는데 그 연기된 천국이 주님의 지상 재림후 지상 1,000왕국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인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날(신국)과 하늘나라(천국)는 이명동의이며 주님의 유대왕국 건설(다윗왕조 회복)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대요리문답 45.91 소요리문답 102)


3. 구원관


각 세대마다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7 세대로 구분하여 세대바다 구원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 구원받고 신약시대에는 은혜9복음)로 구원 받는 다는 것은 성경의 은혜의 교리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신앙 고백 7장 3절 5절 25장 2절)성경의 은혜의 교리는 아담부터 세상종말까지 예수 십자가 은혜로 (복음)만 구원얻는 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 교회관


세대주의는 신약교회가 유대인의 사고(예수죽인 일)로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신약교회를 세울 마음이 없었는데 유대임의 실패때문에 임시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의 교회를 구약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사이의 괄호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이스리엘과 교회를 양분합니다. 교회를 필요없는 방해물로 봅니다.


그리하여 교회조직(성직)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를 약화 시키는 잘못입니다. 주님의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오셨고 (마 16:18-20) 교회가 바로 주님의 몸이시며 (고전 12:27)엡 1:23, 4:12, 골 1:18) 이스라엘은 신약교회의 예표로 그림자입니다. 아담부터 주님의 재림까지 교회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신앙고백 25장 2절 대요리문답 62,64)


5. 지상 천년왕국관


주님의 재림후 지상에서 현재의 인류가 역사가 계속되는 천년왕국이 있느냐 하는 문제로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없다는 설은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이 있습니다. 무천년설은 아예없다는 것이요 후천년설은 주님의 재림전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으로 실상은 문자적으로 천년설은 믿지 않습니다.


있다는 설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변쇄적 전천년설)이 있는데 양자는 주의 재림 후 지상에서 천년왕국이 있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천년 왕국의 내용에 대해서는 가가기 다릅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전세계적인 것이요 세대주의는 유대인 중심으로 BC 586년에 다윗왕국인 유대가 바벨론에게 멸망되었는데 그 왕국이 그리스도에 의해 회복되고 이스라엘이 전세계를 지배하며 예루살렝이 솔로몬의 성전이 재건되고 피의 제사가 복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20장에 나온 천년은 상징적인 숫자이며 사도신경은 1,000년 왕국에 대하여 언급이 없으니 근본적으로 무천년이요 장로교회의 모든 교리도 근본적으로 무천년이며 어거스틴과 칼빈도 무천년입니다. 지상 1,000년왕국이 있다고 할 때 여러가지 난제가 발생됩니다.


6. 종말론


세대주의 종말론은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번쇄주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성도의 부활과 공중휴거, 7년 혼인잔치 7년 대환란, 적 그리스도 츨현, 하나님의 진노,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생존민족들의 심판, 대환란기의 죽은 성도의 부활, 적 그리스도의 멸망, 사탄의 잠시 석방, 곡과 마곡의 전쟁, 악인의 부활, 대심판, 신천신지,등 순서가 너무 복잡합니다


세대주의의 장단점


1) 장점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 열심히 전도하는 것 재림 사상의 철저, 교리를 강조하는 것등입니다.


2) 단점은 지나친 타계주의와 현실참여 회피 문화과업 등한시 잘못된 교회관 때문에 분열조장, 계명 수행 나태, 일제시대 신사 참배를 하게 하게된 동기도 되었습니다. 사회정의에 대해 등한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대주의는 성경적인 개혁주의가 아니며 특별히 종말론은 전통적인 기독교 종말론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2,000년대에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재림론은 큰 과오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대주의 2,000년대 주의 재림을 기초로 삼은 시한부 종말론은 아주 잘못된 이단입니다.


펌출처: http://koinenews.com/archives/817


개신교, 초교파, 비성경적인 주의는 잘 연대한다, 성경의 요구는 연대하지 않는다


 새 해부터는 예배에서 새번역 성경을 사용합니다  

 

2016.12.13  

         

성경의 한글 번역의 역사는 많은 지면이 필요한 내용이므로 지금 사용하는 있는 성경을 위주로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에 착수하여 1900년에 신약전서를 발행했고 1911년에는 구약전서를 발행했습니다.


이 신약전서와 구약전서를 합쳐서 옛번역이라고 합니다. 이 옛번역을 1938년에 개정하여 새로이 발행했는데 바로 개역 성경전서입니다. 이 개역 성경전서는 1961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맞추어서 개정하였는데 개역개정 번역본이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와 교단에서 공인하고 사용해왔던 성경이었습니다.

 

1998년에 와서야 1938년에 발행된 개역을 골격으로 하고 그동안 사용해 오던 1961년의개역 성경을 현대적인 단어로 대체한다고 하면서 만들어진 번역본이 지금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 번역본입니다. 1961년의 개역판은 단지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맞추어서 개정한 것이지 내용 자체를 수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재번역이 아닌 단지 한글 맞춤법에 맞춘 개정이었으니 1998년의 개역개정은 1938년 개역 성경전서가 나온지 60년만의 개정이라 할 수 있어서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많은 성경학자들이나 목사들의 평가는 개역판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개정개정판의 어투가 개역판과 크게 다르지 않는 고어체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어체의 어투는 옛날 궁중에서 왕과 신하들 사이에서나 존재했던 말이기에 처음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이해에 어려움이 많고, 심지어 문화충격 비슷한 것을 경험하기까지 합니다. 이러 이유로 기존 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조차 성경을 가까이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1993년에 발행된 표준새번역은 원어번역 성경입니다. 이전의 개역 성경은 한문성경과 영어성경은 번역한 수준이지만, 표준새번역은 성경의 구약 원어인 히브리어 성경과 신약 원어인 헬라어 성경에서 직접 번역하였습니다.


2001년에 나온 표준새번역 개정판이 발행되었는데, 2004년 표준새번역 개정판의 공식 명칭이 새번역으로 정해졌습니다. 새번역은 무엇보다도 현대인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읽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새해인 2017년부터는 교회 예배에서 공식적인 성경으로 새번역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려는 이유는 우리 교회가 영혼 구원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려는 교회 본질에 충실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려면 비신자가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성경을 보고 질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성경을 그들이 이해하기 수월한 성경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비신자뿐 아니라 성경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기존 신자들에게도 유익한 결정이 될 것입니다.

 

기존의 개정개정판 성경을 그대로 간직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다만 예배시간에 성경을 봉독할 때에는 새번역으로 읽으려고 합니다. 이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팁을 말씀드리면 번역본을 다양하게 참고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판이 있다 할지라도 새번역을 같이 병행해서 읽으면 본문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 새번역 한 권의 가격은 조금 비싼 식사 한 끼 정도의 가격에 지나지 않습니다. 


펌출처: http://bethelpc.org/menu04/1573


 신구약 새번역성경 전체 오디오 듣기: 새번역 성경      위 한글 제목을 클릭하세요!!


개신교, 초교파, 새번역은 원어에 충실한 쉬운 성경이다, 개역이나 개역개정은 영어. 중국어 번역을 고어체로 재번역하면서 전체적으로 어렵다




[Messenger 小考]


개인적으로 받은 예언이나 계시는 매우 신중한 영분별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그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가 됩니다. 다만, 세상을 떠난 노르웨이 여성(1968년 당시: 90세)이 21세기의 교회와 세상을 언급한 내용은 기록된 성경과 연계하여  참고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보고,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많은 교회들이 믿고 따르는 세대주의 종말론(재림 2회) 또는 베리칩 666과 같은 허탄한 루머는 성경말씀을 위반하므로 어느 교회든지 속지 말아야 합니다. 기록된 66권 성경말씀이 예수교회의 교과서 입니다. 설교자나 전도자는 성경말씀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8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 https://youtu.be/U_0vVmQ923E

by I Love God


개신교, 초교파, 근신하라 깨어라, 회개하고 예수복음을 믿으라, 천국과 지옥

WCC를 기독교적이라거나, WCC를 알면서도 모르쇠, WCC 방관자는 왼편에 섭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가 아니라는 분들과 

 WCC가 뭔지 모른 분들께! 


WCC의 충격적인 실체에 대하여 배도(이단) / 마지막때의 징조 (펌)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란 세계의 기독교 교파 간의 연합기구를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의 명의로 W.C.C.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W.C.C.의 정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책부터 소개합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최덕성 / 본문과 현장 사이) 는 W.C.C. 위험성과 그 실체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W.C.C.가 얼마나 종교다원주의와 뉴에이지 신학에 오염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며 실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 일치와 진리 안에서만 연합운동의 정당성이 성립됨을 역설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W.C.C.의 총회는 실로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탈기독교화 되고 있습니다. 19세기까지의 세계선교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수행하는 복음 전도에 초점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선교협의체로 출범한 W.C.C.는 시간이 갈수록 복음전도를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암스테르담 총회(1948년)는 기독교적 고백에 입각하여 모였습니다. 하지만, 웁살라 총회(1968년)부터는 개교회와 지역교회의 보편성을 인류의 보편성과 관련시키면서 사회참여와 사회정의 실현을 교회의 선교과제로 천명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복음전도에 따른 영혼구원은 뒷전이며 생태, 환경, 복지 등..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쟁점들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는 나이로비 총회(제4차, 1975)부터는 본격적으로 혼합주의의 경향을 띱니다. 뱅쿠버 총회(1983, 제5차)에서는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석에서 연설을 들었습니다. 이 총회 지도자들은 인디언 토템 주상을 세웠으며 신학자들은 타 종교의 예배 의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에는 바아르 선언문을 통해 종교 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천명했습니다. 괄라룸플 대회(1990)에서는 성령님께서 온 세상에 내재해 계신다고 선언했으나 이는 성령님의 편재성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 대회에서 성령은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로 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인격성을 부인하고 단지 하나의 능력 정도로 치부하는 이런 관점은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적인 교리이기도 합니다.


이듬해에 열린 캔버라 총회(1991)에서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종교 대표자들까지 초청했습니다. “오소서 성령이여”라는 주제로 회집된 캔버라 총회에는 약 2,000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예배, 발표, 토론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죽은 영들을 불러내고 그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초혼제로 시작되었으며,


W.C.C.는 이를 20세기의 오순절 사건으로 평가했습니다. 경악스럽게도 이 초혼제를 집행한 장본인이 한국의 정현경 교수였습니다. 그 당시, 정현경 교수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 이름이 적힌 소지를 불태운 뒤 그 재를 하늘로 뿌리며 초혼제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원혼의 음성을 못 들으면, 성령의 음성도 못 듣는다고 주장했고,


한 맺힌 영들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떠돌아 다닌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명백한 이단사설로 규정된 ‘귀신론’의 내용과 진배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단사설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적인 언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에서는 이에 대해 극찬하며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과연 이런 내막을 알고서도 W.C.C.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를 일독하시기 바랍니다. 예총총회 총회신학원의 논문자료인 《W.C.C. 및 W.E.A.에 관하여, G.C.F.란 무엇인가?》 역시 W.C.C.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이하에서는 이 자료의 내용을 요약 ? 발췌해 보았습니다.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합니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를 믿든, 유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뭐든지 잘만 믿으면 천당도 가고..극락도 가기 때문에 구태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당위성이 사라집니다.


천주교(Roman Catholic)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결정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불교나 원불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와 함께 의식도 진행하면서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W.C.C.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장하여 자유, 공전, 평화, 환경, 인권, 화합 등의 듣기는 좋지만 애매모호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정통 기독교에 반하는 反성경, 反기독, 反교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인본주의 성경관, 세속적 구원론, 선교 무용론 등을 내세우고 있는 W.C.C.는 실로 기독교라는 이름의 정치적인 탈을 쓰고 있는 반기독교 세력입니다. W.C.C.는 심지어 이단사설이라고 불러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적그리스도적인 특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W.C.C.의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이를테면, 불교, 유교, 도교, 이슬람, 샤머니즘 등에도 나름대로 구원의 빛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식입니다. 이처럼 종교다원주의는 자연스럽게 선교무용론으로 직결됩니다.


기독교의 엔진과도 같은 대위임령이 원천봉쇄 되는 셈입니다.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종교다원주의를 채택했으며, W.C.C.는 제4차 총회에서 수용하고 제6차 총회에서 실제로 적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딘버러 선교대회(1910)에서 일부 사람들의 주장이 있었고, 예루살렘 선교대회(1928)에서 ‘확대된 선교’의 개념으로 종교다원주의가 배태되었습니다. 그러나 탐바람 대회(1938)에서 헨드릭 크레머(Hendrik Kraemer)가 특수계시와 일반계시와의 불연속성을 주장함으로써 종교다원주의는 한동안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총회에서 재차 수용되었고 제6차 총회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의 채택 이후 종교 간의 대화라는 선교방법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전도를 대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 중심적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이 역시 종교다원주의의 한 갈래로 각 종교에서 부르는 신은 명칭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하다는 사상입니다.


즉, ‘하나님’이나 ‘알라’나 ‘부처’나 명칭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핵심적인 복음 진리는 철저하게 해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W.C.C.의 웁살라 총회(1968)는 종교다원주의의 신학적 근거가 되는 ‘사람 사이에 걸어 다니시는 하나님’의 신론과


‘교회 밖의 그리스도’의 기독론을 수용함으로써 세속화 신학의 강조와 함께 종교다원주의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이웃 사랑을 철저히 우상화함으로써 하나님 사랑조차 이 안으로 함몰시켜 버렸습니다. 밴쿠버 총회(1983)에서는 테일러(John V. Taylor)가 종교다원주의에 기초한 종교간 대화를 강조하면서, 드디어 선교 무용론을 펼쳤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선교를 중지하고 타종교와 대화하여 세계평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W.C.C.는 1984년, 타종교인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천주교의 입장인 《다른 종교인에 대한 교회의 태도 : 대회와 선교에 대한 반성과 방향》이라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언문을 정식으로 수용했습니다.


1989년에는 미국의 산 안토니오에서 타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선교 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최고의 이슈는 기독교와 타종교 간에 관계성이었습니다. 결국 1990년, 스위스 바아르에서 선언문을 통해 기독교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선포했습니다.


2. W.C.C.의 기독론과 종교 간의 대화
 

장로-집사들 뿐만 아니라 목사들까지도 W.C.C.가 강조하는 종교 간의 대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도를 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W.C.C.에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도를 폐기처분하고 전도 무용론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W.C.C.에서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란?


‘종교다원주의에 근거하여 복음전파 등의 선교를 하지 말고 세계평화와 협력을 위해서, 그리고 서로의 종교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하자는 것입니다. W.C.C.에 의해 전도는 개종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종교를 잘 믿게 하는 것으로 대치되었습니다. 뉴델리 총회(1961)에서 요셉 시들러(Joseph Sittler)가 제시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과 웁살라 총회(1968)에서 홀렌베거(W. Hollenweger)가 제시한


‘교회의 담장 밖에 계시는 그리스도’라는 논문이 종교다원주의와 종교 간의 대화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란? 모든 문화와 종교에 그리스도(구원자)가 나타나는데, 유대교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고, 석가에게는 석가 그리스도로, 마호메트에게는 마호메트 그리스도로, 공자에게는 공자 그리스도로 나타난다는 이론입니다.


‘교회의 담장 밖에 계신 그리스도’ 개념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담을 넘어 모든 종교에 현현한다는 이론입니다. 이는 로마가톨릭 신학자인 라너(Karl Rahner)가 제시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이와 같은 기독론의 재해석은 타종교에도 그리스도의 활동이 있기 때문에 구원이 가능하다는 종교다원주의로 귀결됩니다. 웁살라 총회 이후, 종교 간의 대화는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W.C.C.가 시작한 종교 간의 대화운동은 1967년 스리랑카의 캔디 모임을 효시로 하여 레바논의 알잘톤 회의,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인도의 낙돔 회의(1971), 레바논 회의(1972), 콜롬보 회의(1974)를 거쳐 나이로비에 이르렀습니다. 1973년에는 토마스(M. M. Thomas)가 힌두교인은 종교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교 공동체로 이동해 갈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그 자신의 문화 공동체로 그대로 속해 있으면서


소위, ‘기독교 힌두’(Christlicher Hindu)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77년 W.C.C. 대화국은 ‘공동체에서의 대화’라는 주제로 태국 치앙마이에서 회의를 가졌고, 대화 지침서에 “신이 타종교 안에서도 결정적으로 역사한다.’ 라는 신학적 명제를 근거로 타종교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종교 간의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1983년 W.C.C.는 밴쿠버 총회에 타종교인 15명을 초청하였고, 그 중 4명은 정식으로 발표에 참여시켰습니다. 1989년 미국의 샌안토니오에서 타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선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 스위스의 바아르에서는 마침내 W.C.C. 중앙위원회가 모여 타종교에 대한 선언문을 작성하여 발표했는데,


이것이 그 악명 높은 ‘바아르 선언문’(Baar Statement)입니다. 이 선언문은 기독교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는다는 신학적 틀에서 벗어나 포괄주의를 거쳐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야 함을 강력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W.C.C.가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는 커밍아웃 선언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W.C.C.의 성령론과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를 근거로 종교 간의 대화를 주장하는 W.C.C.는 더 나아가 보편적인 성령을 강조합니다. W.C.C.에 논리대로라면, 성령의 역사는 온 우주에 미치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편파적으로 왜 기독교에만 역사하실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랑의 하나님은 성령의 빛을 모든 종교에게 비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맥락에 따라, 각 종교에 나타난 영적 능력과 신비현상은 동일한 성령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논지를 펼칩니다. 이런 궤변에 근거하여 W.C.C.는 이슬람의 ‘수니파’나 힌두교의 ‘쿤달리니’ 집회에서 나타나는 신비적 체험이나 무당들의 영적 현상을 성령의 역사와 동일시합니다.


쉽게 말해, 이는 범신론에 기초한 혼합주의 사상으로 기독교 상식으로는 일말의 여지도 없는 이단사설입니다. 만약 W.C.C.가 아닌 개교회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가는 대번에 이단으로 정죄되어 교계에서 매장당할 것입니다. 개교회 목사들은 쥐 잡듯이 잘도 잡는 이단 사냥꾼들이 어째서 W.C.C.를 향해서는 제대로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는지


참 의아합니다. 정리하면, W.C.C.의 성령론은 범신론에 기초한 종교혼합주의입니다. 1928년의 예루살렘 대회는 ‘확장된 선교’ 개념을 제시하면서 조심스럽게 종교혼합주의 문을 열었습니다. 1932년에는 대표적인 프리메이슨 가문인 록펠러 재단의 지원 하에 호킹(W. E. Hocking)이 지난 100년 동안의 선교를 조사했습니다.


그는 ‘선교의 재고’라는 보고서를 통해 종교 보편성과 혼합절충주의를 주장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혼합절충주의는 1961년 뉴델리 총회에서 인도 신학자 데바난단 (P. Devanandan)에 의해 거듭 강조되었습니다. 그는 타종교를 성령의 창조적인 사역으로 설명함으로써 타종교의 빛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웁살라 총회(1968)와 밴쿠버 총회(1983)를 거쳐 종교다원주의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종교다원주의는 캔버러 총회(1991)에서 보편적 성령의 강조를 통한 종교혼합주의로 발전했습니다. 여기서 이화여대의 정현경 교수는 무속 신앙적 혼합주의의 형태를 띠면서 초혼예식(위령제)을 거행한 바 있습니다.


4. W.C.C.의 구원론과 사회구원


W.C.C.에서 말하는 구원론은 전통적인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론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구원론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죄 사함 받고 영생하는 진리에 대한 신앙고백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W.C.C.가 말하는 구원론은 세속화 신학과 해방신학에 근거한 정치적인 해방과
 

경제적 착취로 부터 해방, 그리고 구조적인 악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합니다. 즉, 구원은 영적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 해결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W.C.C.에서는 선교의 목적을 ‘인간화’라고 역설합니다. 1975년의 나이로비 총회 역시 ‘정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구조적인 불의로부터 해방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영적 구원은 사회문제 해결로 대치되었습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필요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책임감을 가지고 구조적인 악과 싸워 사회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면 그것이 곧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W.C.C.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진리인 구원론을 철저하게 비틀어버렸습니다.


기독교의 본래적인 선교개념은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사회복음을 동시에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음이 영적구원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반면, W.C.C.의 선교개념은 복음전파가 아닌 사회참여를 뜻합니다.


세속화 신학에서는 사회참여와 정의실현을..해방신학에서는 구조적인 악으로부터 해방, 경제적 착취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인종 차별로부터 해방 등을 구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선교는 이러한 사회적 구원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또한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독교의 정체성은 내려놓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합니다.


즉, 대화를 통해 이룩한 세계평화가 곧 선교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W.C.C.의 선교는 복음전파가 아닌 세상문제에 대한 인간적 해결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1973년의 방콕 대회에서는 ‘오늘의 구원’을 다루면서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빠진 W.C.C.의 선교용어를 복음주의 선교용어와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형적인 용어혼란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화란의 선교신학자 호켄 다이크(J. C. Hoekendijk)는『흩어지는 교회』(TheChurch Inside Out)를 통해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고, 웁살라 총회(1968)에서는 세속화 신학에 근거한 사회 참여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제2분과 위원회에서는 복음을 사회복음으로, 구원을 인간화의 해방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1973년 방콕 대회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오늘의 구원’을 다루면서 오늘의 구원을 ‘해방’, ‘인간화’, 그리고 ‘자기정체성’이라고 발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을 해방자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서구선교가 제국주의 선교를 했기 때문에 피 선교지를 억압했다고 평가하면서 선교사 철수령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공식적인 선교사 철수령은 20세기에 두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첫번째 선교사 철수령은 하버드 대학의 호킹 교수에 의해서입니다. 호킹 보고서는 사방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으나 그의 보고서를 받은 록펠러 재단은 선교사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미 종교다원주의 사상에 심취한 상태에서 선교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국 록펠러 재단은 선교비 지원을 중단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돌아오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두번째 선교사 철수령은 W.C.C. 방콕 대회 여파 때문이었습니다. W.C.C.는 1971년 중남미의 바르바도스 섬에서 인종차별 투쟁사업 회의를 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선교사들은 종교적 가면을 쓰고서


인디언 문화를 배척하고, 인디언을 선교의 대상으로 굴복시키고 또 다른 식민주의를 자행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W.C.C.에 의해 선교사 철수령이 또다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돌아갈 선교자금은 마르크스 식 해방운동의 활동자금(무기 구입 등)으로 전용되었습니다.


5. W.C.C.의 성경관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역사책에 불과하고 인간이 저술한 하나의 책으로 간주합니다. W.C.C.는 곧잘 “이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마치 하나님의 주권을 대단히 강조하는 척합니다. 하지만 W.C.C.의 이러한 명제는 신본주의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바 오히려 철저한 인본주의에서 비롯되는 논리일 뿐입니다.


특히, ‘웁살라 대회에서 이러한 입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고, “세상이 선교 사업 목록을 제시한다.”는 논리에 따라 세상의 문제들을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즉, 선교사업은 성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W.C.C.는 성경 역시 수많은 역사책 들 가운데 하나라는 관점에 따라 그것의 해석에 있어서 역사비평을 전면적으로 도입했습니다.


W.C.C.에 따르면 성경 역시 인간이 저술한 하나의 역사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철저한 역사적 비평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해석법에 따라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들은 모조리 거부되었고, 구약의 많은 사건들도 단순한 신화로 치부되었습니다. W.C.C.내의 많은 자유주의 교회 지도자들은 경전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과 같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들도 믿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그들은 성경이 가장 강력하게 성토하는 죄악 가운데 하나인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 아울러, 소돔과 고모라 기사 등 동성애를 금지하는 내용들은 아예 다루지 않습니다.


1. W.C.C.를 조종하는 배후세력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 기간(1917-1947) 동안 러시아는 자기민족 약 5000만 명을 희생시켰는데 다수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러한 살인집단이 색깔을 바꾸어서는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 때(1958.3.18) 느닷없이 평화공존, 핵무기 제한, 핵실험 금지 등을 주장하며 소위 위장평화 전술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처럼, 공산당이 반대자에 대한 숙청정치가 여의치 않자, 궤휼정치로 색깔을 바꾸어 나오면서 적극적으로 이용한 대상이 바로 W.C.C.입니다. W.C.C.가 발족되기 전, 소련의 스탈린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평화연맹’을 조직했습니다(1947. 9). 이 단체는 주로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과 그 위성국의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었는데,


세계교회 침투를 위한 세계적화 사령부였습니다. 소련 공산당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제3차 W.C.C. 총회에 대비하여 1958년 11월 체코 프라하에서 ‘세계기독교평화회의’를 조직하였고, 이 회의에 서방교회에서만 60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는 흐루시초프의 ‘동서공존’이라는 ‘위장평화 전략’이 먹혀든 결과였습니다.


세계적화 전략을 달성하고자 선택된 기만전술의 주 무대가 바로 W.C.C.입니다. 이러한 은폐된 진실은 W.C.C.의 발자취를 추적하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1) 제1차 총회 1948년 8월 23-9월 4 장소: 화란 암스트레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구속주로 믿기 보다는 그 사회적 관심과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후 유증과 관련해 죄로 말미암아 잃어 버린 영혼의 구속 보다 세계의 사회 주의에 역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연합국과 동맹국의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관계를 재개 하는 것. 전쟁난민과 포로들을 구호하는 것. 책임있는 민족주의 특성에 대한 정의 등.. 정치적 무질서에 대한 교회의 간섭이 그들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2) 제2차 총회


1954년 8월,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렸으며, ‘현대의 정치적 정의는 공존’이라는 모토를 내세운 대회입니다. 여기서 그리스, 유고, 터키의 정교회가 정식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N.C.C.K.도 이때 가입신청을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갈라지기 시작한 분기점이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보수교단 대표들은 반대연설을 하고 퇴장했으나, 기장, 기감, 예장(통합), 측은 N.C.C.K.의 이름으로 W.C.C.에 가입했습니다.


이 총회에서는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라는 신앙고백을 선언함으로써 스탈린의 평화공존 결의안을 지지했습니다. 스탈린을 격하시키는 연기를 하며 서방세계를 완전히 속여 넘긴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제3차 총회에 대비하여


1958년 11월, 체코 프라하에서 ‘세계기독교평화회의’를 조직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서방교회에서만 600만 명이 참가했는데, 이는 흐루시초프의 ‘동서공존’이란 위장평화 전략이 절묘하게 먹혀든 결과였습니다. 흐루시초프의 평화전술에 전 세계의 기독교계와 서방세계가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던 것입니다.


3) 제3차 총회


1961년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정식회원국이 된 것도 이 3차대회 때입니다. 복음전파에 대한 선교 추진보다는 독재정권, 인종차별, 여성운동, 노동문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토의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집단적이고 국가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과 오는 세계의 한 시범적인 단체이며, 교회의 사명은 단지, 사회의 봉사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을 주장했습니다. 더군다나, 총회의 대표들은 ‘세계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어 아래, 타종교들도 세계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교회와 세상 사이, 기독교와 이방종교 사이의 구별을 없애는


‘보편구원설’을 W.C.C.의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으로 채택함으로써 발족된 지 13년 만에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3차 총회에는 소련의 K.G.B. 요원이자 ‘세계기독교평화회의의 의장이었던 니코딤이 소련교회 대표 자격으로 참가하여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와 함께 정식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니코딤은 W.C.C. 중앙위원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W.C.C. 회장으로 당선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니코딤은 흐루시초프의 공산당 노선을 선전했으며,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필수이념임을 운운하는 성명서를 채택했습니다. W.C.C.는 창설 당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병폐를 다 같이 지적하면서 대화로서 평화공존을 꾀하자는 그럴듯한 모토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공산권의 병폐보다도 서방세계의 병폐를 지적하는 데만 훨씬 치중했습니다. 이러한 때 니코딤이 회장에 당선됨으로써 그 용공성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공산주의 선전기관으로 변질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들은 '산업선교' 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일으켰습니다. 1966년 제네바에서는 ‘혁명을 위한 개혁’이랑 주제 아래, 산하교회와 사회분과 위원회가 개최되어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파괴원리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공개 성명서를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4) 제4차 총회


1968년 7월, 스웨덴 웁살라에서 개최되었으며, “만물을 새롭게 하라”는 주제 하에 그리스도 외에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인정한 적그리스도적이요, 반성경적인 총회였습니다. 특히, 이때부터 다른 종교에 대하여는 ‘다른 신앙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제4차 총회에서는 타종교를 향한 열린 태도를 가지고 함께 궁극적 진리를 파악하자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혼합주의가 주창되었습니다.


또한, 인종차별 투쟁 사업으로 무기를 지원하며 기독교 박멸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에 대한 지원이 합법화되어 물질적인 원조까지 하는 등..복음적 선교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필립 포터 총무는 1969년 5월 25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지에 “W.C.C.는 만일 폭력이 정치적이고 경제적 독재를 전복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면 그 폭력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기고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마 26:52)과는 정면으로 상치되는 사상을 선포했습니다. 《기독교 사상》1972년 11월호에서는 “폭력 혁명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기독교의 봉사를 말할 수 없는 시기가 왔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공산혁명 과업을 교회가 본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에큐메니칼 리뷰》지에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군사원조를 끊어야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W.C.C. 총무의 발언들은 하나같이 참된 기독교와는 상극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제5차 총회에 대비하여 1975년 1월 인도 곧다암에서 ‘아세아 기독교 평화회의’를 설립했습니다. 이때 북한까지도 ‘조선인민공화국 기독교 연맹’이란 거짓된 이름으로 참석했습니다.


북한이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임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입니다. 이런 북한에서 정상적인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4차 총회에서는 남한으로 부터 미군 철수, 미-일의 남한 군사 원조 반대, 남한 기독교인 중심의 민중 옹호 투쟁지지 및 투옥자 석방 등의 내용이 결의되었습니다.


5) 제5차 총회


1975년 11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해방신학 :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개최되었습니다. 이 총회에서는 구원의 복음과 선교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해방’이라는 말로 재 정의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묘사하여 해방신학자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W.C.C. 총무가 말하는 해방이란 죄로 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자본주의와 서구사회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W.C.C.는 서구와 미국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공산주의 국가의 인권유린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침묵했습니다. 이처럼, 해방신학이란 설탕으로 포장된 마르크스주의일 뿐입니다. 아울러, 이 총회에서는 이방 종교들과 마르크스주의까지도 진리의 범주에 포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회의 대변자인 로버트 브라운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교(무슬림), 힌두교, 불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총회에는 로마가톨릭,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참석하여 본격적으로 혼합주의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은 아예 없이 모든 종교를 수용했습니다. 특히, 로마가톨릭과 아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5차 총회에서는 K.G.B.의 보스이자 평화연맹 의장인 니코딤이 드디어 W.C.C.의 의장에 당선되었고, 마르크스주의자인 필립 포터 목사가 총무에 당선되었습니다.


미국 대표인 로버트 브라운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해방을 위한 의식화 고취’를 연설한데 이어 ‘아세아 기독교 평화회의에서 북한이 주장한 내용을 제5차 총회 성명서 내용에 포함시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총회 신앙고백서는 마르크스 게릴라 운동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자본주의 와 인종차별주의 및 식민주의의 불의한 모든 구조를 파내고하지 않는 한, 어느 국가나 민족도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사회주의는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는 첩경”이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이에 1975년 11월 24일자 타임지는 나이로비 총회 소식에 대해 “W.C.C.는 세계 크리스챤을 연합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어 신학적인 차이점들을 감소시키는데 주력해 왔으나 사회적인 정치적 해방의 문제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1977년, W.C.C. 필립 포터 박사는 중앙위 기조연설에서 “공산주의가 베트남에서 승리한 것은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해방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이 위대한 베트남의 승리는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인민을 고무시키고 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W.C.C.회보 E.P.S '77.6.9. 기사.


6) 제6차 총회


1983년 7월 24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100개국 300개 교파에서 3,000여 명이 모여 정의, 인간존엄에 대한 투쟁, 환경오염, 하나 됨을 향한 진일보, 공동체를 통한 삶의 치유와 공유 등을 논의했습니다. 레닌이나 스탈린처럼 총칼로 까부수는 정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사상적인 독소입니다.


제6차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 이었으나, W.C.C.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범세계적인 사회주의 질서를 위해 죽으셨다는 의미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한국에서도 40명의 대표가 참가하여 2명이나 W.C.C. 중앙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대표단은 “제6차 총회는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용공단체라고 오인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총회 주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사들의 발언이 온통 미국을 비방하는 내용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악에 관한 문제들의 화살을 미국에 몽땅 돌림으로서 소련으로 하여금 어부지리를 얻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W.C.C.의 활동을 연대적으로 분류해 보면, 1948년~1965년까지는 ‘책임 사회구현’이고..1965년~1968년까지는 ‘급진주의 추구’..1969년부터는 ‘해방신학의 승리’였습니다.


창설 당시에는 대화와 평화공존을 강조하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함께 지적하는 척 했습니다. 그러나, 1961년 3차 총회에서 소련 K.G.B 요원이 회장에 피선된 것을 계기로 그 진면목이 본격적으로 드러났습니다. 1966년 제네바에서 해방신학 원칙을 채택하여 “혁명을 위한 폭력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공개성명까지 발표했으며,


1977년에는 나이로비의 제5차 총회에서 공산주의 사상의 게릴라 활동을 공인했고, 자본주의 타파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이를 실제로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침투하여 자유주의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더 나아가, 한국에 까지 그 마수를 뻗혔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제6차 총회에는 소련 및 동구 공산권 대표들까지 참석하여 막시즘적인 사회주의의 비전을 더욱 드높이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화하며, 타종교도 역시 하나님께로 가는 또 다른 길임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W.C.C.에 참가하는 목사나 장로및 집사들의 다수는 막시즘과는 무관하지만, 그 지도부는 이렇듯 뼛속까지 참된 기독교의 박멸을 추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입니다.


따라서 본인의 의도가 아무리 신실하더라도 이와 같은 W.C.C.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불법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것이요 이용 당해주는 격이 됩니다.


7) 제7차 총회


1991년 2월, 호주 캔버라에서 “오소서 성령이여 -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개최 되었습니다. 이 총회에서는 전 지구를 구원하는 문제에 있어서의 성령 현존의 중요성, 또는 영성(Spirituality)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이때 중공교회 이외의 6개의 교단이 새로 가입했습니다. 정회원에 가입된 교단은 필리핀 성공회, 침례 자유오순절교회, 남아공 화란개혁교회이고,


준회원에 가입된 교단은 볼리비아 루터교회, 엘살바도르 침례교회, 산살바도르 루터교회였습니다. 북한도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 4명이 세계교회협 사상 처음으로 업저버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이 총회에서는 이화여대 정현경 교수가 착취 당했다는 하갈과 광주, 천안문 등에서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는 초혼제를 진행하고 이를 성령의 강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와 토착종교와의 융합이 시도되었습니다. 로마가톨릭,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이외에도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을 포함한 세계의 15개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대규모 종교혼합집회를 갖고, 세계종교의 통합과 단일성을 외쳤습니다. 그야말로 혼잡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극치를 보여준 총회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8) 제8차 총회


1998년 12월 3~14일까지 아프리카 짐바브 하라레에서 개최되었습니다. W.C.C.가 창립 된지 50년이 되는 희년총회로 진행된 이 모임의 주제는 “하나님께 돌이켜라 - 희망 중에 기뻐하라”로서 인류는 그의 문제를 씨름하는 중, 삼위일체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궁극적 방법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남북한 교회 대표자들이 공동예배를 드리고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9) 제9차 총회


2006년 2월14일~23일까지 브라질 남부 도시 포르토 알레그레의 폰티피? 카톨릭 대학교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총회에는 348개 회원교단에서 691명 총대 포함한 약 4천명 이상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혁 하소서”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변혁이란 범세계적 사회주의 체제로서의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캐치프레이즈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또한 이것은 바티칸의 캐치프레이즈와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결국, 다 한통 속입니다.


10) 제10차 총회(부산)


W.C.C.의 위선적인 실체
 

어차피 이 땅 위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떠한 정치체제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정치, 즉, 완전한 공의에 기초한 정치는 오직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불완전한 정치체제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느 체제하에서 하나님을 더욱 자유롭게 섬기고 예배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반드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복음진리에 대한 선교활동이 보장되는 체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체제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성경대로 복음 전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들의 철두철미한 박멸을 추구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마땅히 모든 교회가 대적해야할 사탄의 견고한 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W.C.C.는 바로 그 마르크스주의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투시키는 선봉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W.C.C.가 말하는 인권은 보편적인 인류의 인권이 아니라, 오직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인권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숨은 파리보다도 못한 것이요 죽어 마땅한 것입니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끝까지 W.C.C.를 옹호하시렵니까? 역사상 무수한 인명을 살상한 바티칸(히틀러의 배후에 바티칸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입니다.)및 단기간에 수천만 명을 죽인 소련 공산당, 그리고 그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북한정권과 결탁된 W.C.C.와 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임을 기억하십시오.
 

결론입니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및 용공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호박에 줄을 그어놓고 수박이라고 우기는 것 만큼이나 어불성설입니다. 실로 눈가리고 아옹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출처]  WCC의 충격적인 실체에 대하여 | 작성자 000

[펌출처] https://is.gd/0sui6t


개신교, 초교파, 종교다원주의는 니므롯의 바벨탑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지옥이다

 4분 동영상이 안보일 때

: https://youtu.be/rULKuF5IJ0c

by 아멘넷


개신교, 초교파, 승려의 개종은 유대교 사울이 기독교로 개종한 표적과 같다

 책자 안내 목적은? 십일조 폐지가  

 성경적임을 알려, 회개와 개혁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is.gd/fWkt4U


[소개]  박민흥 목사의 『십일조의 혁명』. 율법에 근거하여 십일조를 드린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십일조를 드려서는 안 됨을 주장한다.


[서평]  https://is.gd/Sune4V 


개신교, 초교파, 구약 십일조는 23조며 돈이 아니다, 신약은 각자가 정한 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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