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기도를 멈추라    ♣ ..생명의 말씀    Admin     


 

                                  "식사기도를 멈추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6:1)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5)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믿는자, 곧 십자가의 삶을 사는 자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행동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은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약하거나 추한 모습은 감추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서

        칭찬과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혹, 좋은 인상을 받고 싶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비난이나 멸시나 수치를 당치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도 역시 본래적인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좀 소극적이겠지만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추하고 악하고 이기적입니다.

        좋은 모습으로 본성을 가리기 보다는 

        정직한 편이 낫습니다.

       

        사람들은 겉치레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것은 곧 예의범절, 도덕, 도리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그것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평화롭게 잘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들로써 자기 체면치레나

        자기 영광을 위해 더 자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식사전에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음식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마땅하고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진정한 감사없이

        습관적으로 드려지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행위로 여기거나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이라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식사 기도 후에,

        음식에 대해 불만을 품고 불평하거나

        원산지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나

        식사 중에 나눠지는 무익한 대화는

        감사기도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음식앞에서 취하는 태도가

        감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식전의 기도는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식사기도를

        자신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혹은 기도하지 않고 식사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서

        비난할 지 모르기 때문이거나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기 위해 행하면

        그것은 기도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하지 않음이 좋습니다.

 

        자신의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일치하지 않을 때 

        식사기도는 별 의미가 없을 뿐아니라

        오히려 불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육신의 삶이 그쳐질 때 시작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이 십자가에서 마쳐질 때에

        비로소 참다운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식사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늘 기도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요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항상 은밀히 행해지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감사를 잃지 않습니다.

 

        식사기도 후에

        감사하지 않고 식사하는 것보다는

        식사기도는 없어도

        감사하며 식사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자는

        늘 기도하며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굳이 식사 전에

        따로 기도하는 행위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가 없는 기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식사 기도는

        오히려 해롭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행하는 식사 기도는

        자신을 형식과 가식에 가둘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는

        오히려 복음 증거를 저해합니다.

 

        십자가에서 육신의 삶을 마친

        참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굳이 식사기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식사 중에도 마친 후에도

        감사를 잃지 않습니다.

        그의 쉼없는 내면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때로는 외적인 식사기도가 필요할 때도

        거절치 않습니다.

 

        식사기도를 행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없으며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식사기도의 유무로써 

        타인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은

        율법적 삶에 갇힌 초보에 해당합니다.

        식사기도는 잘하면서

        이기적인 삶을 포기치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기도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일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어차피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인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또한 식사기도를 통해

        복을 구하고 비는 행위는

        응답받을 수 없는 정욕적인 기도이며

        잠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자기 만족에

        해당할 뿐입니다.

     

        기도있는 거짓 기도가 있으며

        기도없는 참 기도가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기도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늘 참된 기도를 내면으로 드리는 자입니다.

        외적인 기도만을 기도의 행위로 여기는 자들은

        진정한 믿음이나

        기도를 맛본적이 없는 자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내면의 기도이며

        그리스도와의 끊임없는 내면적인 교제입니다.

        그의 기도는

        시작 시간도 마치는 시간도 없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

        영원한 교제의 삶에 들어간 자입니다.

        그는 보이기 위하거나

        듣기에 좋은 유창한 기도보다

        어눌하나 은밀하고,

        정직하며 진실한 기도를 좋아합니다.

 

        당신의 식사기도로

        당신의 믿음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식사기도의 유무로

        믿음을 가늠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니 어정쩡하고 정욕적이고

        이기적인 기도를 멈추십시오.

        식사기도는 참 믿음도 없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믿게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식사기도를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십자가를 통한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매순간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아니,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성경엔 그리스도께서 식사기도하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어정쩡한 믿음을 가지고 식사기도 정도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알며 살아가는

        거짓을 버리십시오.

 

        식사기도 하지 않으면서도

        식사 외의 모든 일까지 함께 늘 감사하며,

        식사때만 그리스도인인 것같은 가식을 버리고

        식사기도 하지 않고도

        묵묵히 삶으로써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진정한 믿음을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09.08.22


       원출처: http://boxs.kr/EOCUV

  십일조 헌금은  과연  성경적인가?   

글 쓴 이 : 장로 고태영

 

* 본 내용은 핸드폰으로 보기에는 장문(長文)이므로 요약을 먼저 실었습니다.

 

모든 내용을 보실 분은 요약을 보고 이어서 보시기 바니다.

 

 00- 요약 --00


1.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이 최초


아브라함이 BC 2115년 경 북방왕국과의 단 전투에서 (Lot)과 재물들을 구출하여 오는 중에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그를 맞이하며 아브라함을 축복하는데 이때 아브라함은 노획한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드렸다. 이것이 십일조의 최초 기록이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십일조를 명하심


아브라함과 야곱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십일조를 드린 반면, 이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로 하여금 세상의 어떠한 일들도 하지 말고 오직 성막에서 제사장 직무만을 감당하게 하셨는데 그들의 생계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소산의 십의 일에 속한 것들을 레위지파에게 드리게 하였다.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일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믿음을 질책하시면서 십일조를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a tenth)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의 십일조도 행하고 또한 율법의 목적인 "공의와 자비와 믿음"도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을 책망하시며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제사가 없어지고 은혜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소득의 십일조계속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인용하거나 확대해석 해서는 안된다. 예로,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시고는 그 시대의 율법에 따라 행하게 하는 말씀이 나온다.

 

마태복음 8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offer the sacrifice that Moses ordered)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기도로 치유받은 자가 제사장에게 보이고 예물 드림이 지금 시대에는 불필요 하듯이 예수님께서 그 시대사람들을 질책하며 하신 말씀을 이 시대에도 모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4. 예수님 부활 승천 후의 십일조는?


신약 시대는 레위 직분이 폐지되고 제물이 필요 없는 시대로 바뀌었다! 예수님께서 단 한번에 자신을 드림으로서 십자가 보혈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는 깨끗하게 되는 것이므로 예전처럼 짐승을 제물로 잡아 레위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가 된 것이다.(베드로전서 2:9)

 

그런 이유로, 신약 성경에서 바리새인 꾸짖을 때 예수님 말씀 이외에는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율법시대에 있었던 십일조는 더 이상 존속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난 지 8일 만에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으셨지만, 은혜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할례가 필요 없는 것처럼~! 

 

십일조를 대신하여 새로운 단어가 성경에 나오는데, 연보(모금, collection, contribution)라는 단어이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의하면, 연보는 이미 정해진 량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정한 대로 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고후 9:7)고 했다.

 

오늘의 헌금은 연보의 개념으로 '성도 각자의 마음에 정한 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복음시대에 어울리는 은혜로운 헌금제도이다!

 

5, 천주교에서도 십일조 제도를 폐지했는데 왜 개신교 일부에서는 존재

하는가!


1079 신부에게 자식의 세습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 독신 제도를 도입하고, 그후 개신교의 종교개혁시대에 이르러 십일조 제도를 아예 폐지한다. 과거 종교 개혁의 대상이던 천주교에서 이렇게 성경으로 돌아가, 올바른 헌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기독교계(개신교)에서는 오직 성경(Only Bible)만을 강조하면서도 왜 십일조 제도는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자녀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깝다. 왜?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가르쳐 준 헌금 방법을 따르지 않는가!

 

6. 사도 바울이 권하는 헌금(연보)의 자세


1)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2) 자원(自願)하여

3)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는 마음으로.

 

* 계속 정독하세요: http://cafe.daum.net/abj3927/OdTQ/32

 천국은 확실히 있다의 저자 토마스주남은 거짓선지자 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65
E-mail jyrman@naver.com 작성일 2010-03-30 오후 6:11:54
내용
토마스 주남은 거짓선지자 입니다. 이러한 글을 쓴다는 자체가 바로 그녀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옷과 흰 드레스, 보석을 치장하는 것을 주님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6년에서 2002년까지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딸아, 오늘이 내 생일이다.” (329쪽)

“전에 나는 멋진 옷과 보석으로 차리고 교회에 갈 때 죄책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주님이 축복해 준 것을 입는데 대해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48쪽)

“2001년 3월4일 예배후 주님은 내게.. 딸아, 3월11일 주일에는 흰 드레스를 입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57쪽)

“2001년 3월11일 예배후, 이제부터는 기적의 춤을 출 때마다 흰 드레스만 입어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459쪽)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은 천국을 간증하는 책이 아니라, 토마스 주남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그녀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그가 거짓선지자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단을 분별하는 가장 첫번째 조건은, 그 교주나 지도자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위상을 높이거나, 신격화를 시키거나, 신령한 존재로 부각시킨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이단을 판단합니다.

137페이지 / 나는 네가 나의 특별한 딸임을 알기 바란다. 나는 너를 나의 친구로 대할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 믿는다.

199페이지 / 너는 복을 받을 것이고, 너를 믿고 너를 돕는 사람들도 복을 받을 것이다...너는 모든 교회에 놀라움이 될 것이고...

226페이지 / 딸아, 너는 내게 특별하단다.

256페이지 / 책의 표지에는 너의 사진을 넣도록 해라.

268페이지 / 사도 요한 처럼 나는 주님으로부터 책을 쓰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338페이지 / 내 딸아, 너는 말세의 여선지자이다. 너는 내 말과 예언의 산 증인이다.
 
341페이지 / 내가 너에게 성직을 주노라.

341페이지 / 나의 딸아, 너는 이제 완벽하게 만들어진 그릇이다.”

342페이지 / 주님은 온 바다와 온 세계를 보여 주시면서 '세상은 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57페이지 / 주남아, 너는 100점 이상으로 시험을 통과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형교회 목사가 이 책을 번역하고 추천하였다는 사실은, 그에게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입니다. 그 대형교회 목사는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정성필 목사: 프로슈코마이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신구약 성경 66권을 보면, 돈으로 바쳐야 하는 돈십일조 없습니다. 그러나, 각자 자원하여 감사함으로 정해서 내어놓는 돈연보는 있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안식일 문제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자체 증언

    <- 위 한글 제목을 클릭하세요!!

 

 십일조에 관한 글 / 신완식 목사


1. 목사는 레위 족속이 아니고 제사장도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십일조는 율법시대에 주어진 것인데 지금은 율법이 완성된 복음의 시대요 은혜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왜 십일조만 시행하고 할례는 시행하지 않나요? 여성들은 예배 시간에 왜 머리에 두건을 쓰지 않나요?

2. 교회는 성전이 아니고, 예배는 제사가 아니며, 헌금은 제물이 아닙니다.
요즘도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등을 하고 있나요?

3. 아브라함이 드린 것은 자신이 거둔 땅의 소산인 농작물이나
소유한 가축에서 드린 것이 아니고 전리품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드린 것은 결코 전리품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개인의 소유에서 나온 소득에 근거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은 오직 유일회적인 일이요, 정기적으로 행한 구약시대의 십일조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4. 야곱의 서원은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 한 것이고 반드시 ‘If~’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대로 그가 실지로 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는 성전도 제사장도 율법도 생기기 전이고요.

5. 구약시대에 드린 십일조 품목에 ‘돈’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지금은 돈만 받지요^^?

6. 구약시대에도 십일조 의무를 면제 받은 직업들이 있습니다.
수확을 위한 바구니를 만든 상인들, 들판에서 일하는 종들이 신는 신발을 만든 사람들, 추수 수확을 위해 마차를 만든 목수들, 들판에서 일하는 종들이 물을 길어 나르도록 물통을 만든 도자기 공들, 들판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외투를 만든 여인들, 임금을 받고 들에서 일한 종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였기 때문에 십일조 뿐 아니라 성전세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7. 헌금은 반드시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마 10:8하, 마 5:42, 롬 15:26-27, 눅 6:38 등)
즉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8. 바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유다가 쓴 성경에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전무 합니다.
즉 초대교회는 이미 십일조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유럽 교회들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합니다. 제가 다니는 영국 교회도 공식적으로 십일조는 언급조차 않고 있어요. 물론, 아프리카나 스리랑카 인도 등에서 온 이들 중에 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도 사실은 위의 내용들을 잘 모르고 있지요.
유럽 교회들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십일조를 중심으로 헌금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 인건비, 유지비, 구제비 등 실질적인 재정관련 사항들은 ‘십일조’를 강조함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목사들이 구체적인 재정 필요 사항들을 장로-집사들에게 알려서 그분들이 기쁜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한국 교회처럼 그렇게 강조하니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지요.


희 교회는 십일조 강조 하나도 안하고 저도 지금 십일조 안 해도 할 일 다하는 교회랍니다.
구제와 선교를 위해 적극적으로 헌금을 하기 때문에 제 기억으로 지난 5년 동안 꼭 한 차례 그것도 스쳐 지나가는 말로 헌금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질문자께서 참조하신 성경주석을 쓴 이는 위의 기본적인 사실을 모른 채 의례적 논리를 따라 쓴 것 같습니다.

한국도 머지 않아 십일조 문제를 극복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영국 교회도 100여년 전까지는 했으나 지금은 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태의연하게 대처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들은 유럽 교회가 죽었다고 하는데 그런 측면도 있겠으나 영국은 ‘병든 한국 교회’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살아있는 교회랍니다.

십일조는 무조건 소득의 십 분의 일을 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반드시 소출과 가축에서 드렸고 직업에 따라서 면제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어부와 목수가 그 대표적인 예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도 십일조를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십일조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제사장이 있으며 성전 제사가 있을 때 유효했던 제도로서
초대교회 때는 시행하지 않다가 중세에 들어 교회가 제도화 되면서 다시 시행된 제도입니다.

영국과 서구 교회는 더 이상 십일조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이는 믿음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성서적인 근거 문제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십일조의 근본 취지인 극빈자, 장애인, 노인, 어린이, 여성 그리고 사회보장 및 복지에 대해 깊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와 직분자들도 맹목적으로 십일조를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취지와 뜻을 밝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 한다고 복이 굴러 온다거나, 하지 않으면 저주받는 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감언이설에 불과 합니다.

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십일조와 헌금에 대해서는 그토록 용감할까요.
아무리, 가난하게 자라고 없이 살아와서 돈에 한이 맺혔다고 해도 성서를 정직하게 읽고 해석하여 교회 회중 앞에서 바르게 전해야지, 그처럼 혹세무민하니 참 답답하네요. 차라리, 사업을하면 돈을 원없이 벌 수도 있을텐데, 왜 하필이면 목회를 돈벌이의 수단 쯤으로 여기려 드는지, 정말 팔짝 뛰고 뒤로 나자빠질 심정입니다. (이하생략)

 

 

[펌게시자 사견]


신약시대에서는 제물의 성격을 가진 세가지 십일조를 지킬 수도 없고, 그것을 지켜서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에서 모든 소득의 현금 십일조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것은 사도들과 장로-집사-목사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배시에 제물을 요구하

 

시지 않았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참고로, 천주교에서는 매월 교무금으로 교인들 본인 각

 

자 또는 가족들간에 상의하여 결정한 다음, 매월 1/10 미만~1/30(30일의 하루) 범위로 자신들이 자원

 

해서 냅니다.


신약성경을 근거로 기독교 개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인 본인이 스스

 

로 결정하는 월정 연보(자원하는 기부금)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봅니다. 이것들을 모아 구제 용도로

 

사용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고아-과부-나그네-교회 사역자의 생활및 교회 운영을 지원하는 구제 용

 

도로 바르게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개신교가 비성경적인 십일조로 길들여졌지만, 이제부터라도 본

 

인들이 월정 연보를 결정하여 교회에 기부하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내면 될 것입니다. 자유하시기 바

 

랍니다.


 

[최석봉 목사] 여러 헌금은 없고, 자원해서 미리 저축하여 연보를 내는 것이 성경적이다


 


전체화면 보기(네모): https://youtu.be/7dED8dHA6u0

     황성광 목사: 회복의빛 서광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국내외 한국 개신교에 깃든 천주교 교리 혼합의 회개와 개혁을 위하여 공력을 들여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개신교 개혁 차원으로, 찬송가 가사인 개신교 찬송가 송영을 부르실 때 반드시 개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찬양(삼위 찬송) 성부(가톨릭:교황) 성자(예수) 성령(마리아의 영) 아멘 -> 예수(개신교:구주) 대속(죄사함) 부활(영생,영벌) 재림(구원,심판) 아멘 ,,이탈리아-스페인이 급하다고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정도로 매우 성급하고 모방을 좋아합니다. 어찌하여 천주교 모방하길 좋아할까요. 위 동영상 메시지(자료,글)를 끝까지 전체화면으로 보세요! 교회 장로-집사-목사라고 다 천국가지 못합니다. 바리새인-사두개인 같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열심이었으나 독사(사단)의 자식들이라고 예수께 저주받은 성경 기사를 뻘로 보면 안됩니다. 회개와 개혁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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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선지자의 천국지옥 체험을 맹신하는 기독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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