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입니다. 믿음은 있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는다? 왜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떠났습니까? 교회를 다니지 않는 크리스천들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영상 참여자 댓글 모음]
♤@user-nl8jx9lp2k: 200만 명이 교회를 떠나하나님을 믿는 것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유튜브를 통해 올바른 신앙을 갖게 되시길 바랍니다.혹여 성경적으로 궁금한 내용이 있으시면제가 아는 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user-vy5kz2rm8e: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user-ul6fv9yi4c: 본 저서에 대해 지금까지의 전통이든, 정통이든, 하나님의 나라를 이뜰어 온 교회에 관해 하나님은 죽으셨는가?의 긍정성도 포함한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한 비판 의식이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목사의 권위를 폄하하기로 일축시켜 버린 성도들을 보면서 본인들 자체도 진리대로 살기보다는 타협이 많았다는 자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측이 함께 성찰해야 하는 때라고 하는 포커스에 맞추면 더 맞을 듯 하네요.
♤@ajpark9818: 목사 입장에서 볼 때, 가나안 성도와 같은 문제가 생기면 그때에는 양측입니까?권위는 목사들 거고, 공로도 목사들꺼라는 얘기입니까? 목사들이 십자가에 달려서 성도를 구원했나요? 어디라고 누구 앞에서 감히 권위 타령인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벌어먹는 일도 못하는 권위도 있던가요? 성도 지갑에 의존해 살면서 감사도 모르겠거든 나대지 말던가 아니면 스스로 벌어먹는 것부터 배우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던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들 무능으로 교횟밥 먹자고 망가뜨렸지, 목사들이 이끌어온 거 좋아하지 마십시오!
♤@dhch716: 원래 기독교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성도모두가 제사장이고, 성소와 지성소 둘 다성전 건물이 필요없이 가정. 공공장소.카타콤. 회당 등에 자유롭게 모인게교회였습니다.모두 성도였고,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교회에서는 각자 직분으로만섬긴 것이었죠. 그러다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제도화되다 보니까, 사제. 성직자. 교황(?)등이 생기면서 중세 암흑기가 생기고,모든 것이 부패하면서 왜곡되어 버린 것입니다.
♤@pyunglimlee: (중략) 마태복음 23장 1~2절과 8~12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않았으니..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너희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천주교는 교황이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개신교는 신학과 교리로 사람이 만든 계명과 전통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목사가 교회 당회장이 되어 하나님 말씀을 교훈하는 설교 강대상 주인으로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교단과 교파의 보호 아래, 지역교회를 목사 개인이 교권으로 통치하며 다스리고 있습니다.목사를 도와주는 역할로 변질된 장로. 권사. 집사. 임원들은 목사의 뜻과 권위를 믿고 순종으로 맹종하며, 목사의 뜻과 마음대로 통치를 할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는 보좌 역활이 되었습니다. 이런교회당은 성경 말씀에 기록된진짜 교회가 아닌 예수의 영(성령)이 없는 거짓 가짜 교회입니다.
●지금 개신교 교회당에서 이 말씀이복사판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 대신에당회장 목사 이름을대신 넣으면 정확하게 딱 들어 맞습니다.교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잘 알고 있고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7장과도 똑같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렇게 정확하게 잘 지적해 주시면서, 아버지도 한분으로 너희는 모두형제 자매라고 하셨는데, 교회당 안에서계급을 만들어 대형교회는 재벌회사와똑같은 방법으로 교회당이 운영되어 왔습니다.하늘에 속한 예수의영(성령)이 임한 사람은 이 말씀을 받을것이고, 땅에 속한기복주의로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화를 내면서 아니라고 대적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들도 들어가지 않고들어가려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하는도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얻기 위하여 바다와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되게 하는도다."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따르지도 행치도 않고 교인들 모두 목사 말만 믿고 섬기고 따르며 행합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배나 지옥 자식이라 합니다.교회당 건물에 십자가 걸어 놓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행동으로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안중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24절, 28절, 3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지니라.맹인된 인도자여!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가득하도다.. 뱀들아! 독사의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피하겠느냐?
●성경책 말씀 속에서 성령으로 하나님과 예수를 만난 사람은 신학과 교리를믿지도 따르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예수에 대한 믿음 만으로 생명을걸고 인내하며 끝까지 지켜가고 있습니다. 교회당에서 신학과교리로 배운 종교 예식과 목사 설교 예배를 통해서 만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율법적인 신앙은? 십자가가 달린 건물과, 신학 나온 목사만 찾는 사람들이 그것을 예수 믿음이라고 하면서 종교적인 틀에 갇혀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당 프로그램을 통한 기적, 이적,병고침, 방언, 꿈, 환상, 계시 등의 온갖 거짓 은사를 거쳐서 하나님을 만난사람들의 신앙생활은? 모두 각자 본인들의 생각과 뜻대로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라는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예수 믿음 생활과, 오직 성경 말씀으로만 믿는 예수 믿음과는 천지 차이로 다릅니다. 세상 육신적인 믿음과, 예수의 영(성령)에 의한 영적인 믿음은 그 차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강하게 충돌하면서 대적 합니다. 현재 개신교 교회당에서행하는 일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일점 일획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똑같이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리고, 십일조를 비롯하여 헌금 봉투만해도 수십 종류로서, 교인도 거액 헌금자는삼키고, 가난한자하루살이는 걸러내는데, 외식과 불법이가득한 신약의 말세에 해당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목사의 교회당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달려 있는 교회당 안에서 행하여지는 저런 우상숭배들을 보시고우리 주 예수께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지옥의 심판을어떻게 피하겠느냐?"라고하시는데, 목사와 교인들은 회개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마지막 때에 무엇을 어떻게 누구에게 회개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교회당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오늘날 "가나안 성도들"입니다.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 입니다.하나님 앞에서 알면서도 행치 않는 죄를 "고범죄"라고 합니다.이 동영상으로 다시한번 더 말씀드려 봅니다. 십자가가 달린 건물 안에서 주인 노릇하는 신학 나온 목사가 있는 장소는 교회가 아니고,예수 믿는 본인 자신이 "성전" 곧 교회 라는 것을 확인 시켜 드립니다.
♤@user-vy5kz2rm8e: 99.9%가 가짜인데, 어찌 개인이 참된 교회를 찾겠습니까?복음을 모르면 두려워서 현재의 잘못된 교회를절대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옮겨도 같겠죠!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네이버 블로그 '행복한 세상 만들기' 블로그장께서 소개하신 글 메시지 "가나안 성도" 원제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예비 가나안 성도이신 기성 교인 여러분과, 현재 가나안 성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믿는 분들과 함께 행복한 세상 만들기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 나가"가 됩니다. "가나안"은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난 이스라엘 백성처럼 새로운 교회, 또는 이상적인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는, 의도적으로 기성교회를 거부하며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누가 가장 먼저 이 말을 사용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1970년대 중반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한 김용기 장로가 신학교 채플에서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학교 이름인 "가나안'의 푯말을 누군가 발로 걷어차기에 김장로가 물었더니 비포장 도로에 자동차 바퀴가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데 "안 나가"라고 쓰인 팻말이 자기를 놀리는 것처럼, "뭐 안 나간다고?"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는 대답입니다.
당시 이와 같이 교회에 안 나가는 기독교인이 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초에 함석헌 선생이 「씨알의 소리」 1971년 8월호에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한국 가톨릭 2백 년과 개신교 백 년 역사에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올 때는 밑바닥층 사회의 불쌍한 민중 종교였던 기독교가, 지금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기풍이 교회 안을 채워 버려 중류 계급의 종교가 되면서, 가나안의 소망이 '안 나가'의 현상 유지로 타락해 버렸다. 그들은 사회악과 겨루는 역사의 싸움에서 뒤를 빼고 금송아지 앞에서 절을 하고 둘러앉아 노래부르고 춤추는 것을 예배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발가락인 아래층 사회가 교회에서 빠져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내쫓긴 것이다. 그는 "민중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중류 계급의 종교가 돼 버렸다"면서 "교회 제도화"문제를 탄식하는 대목에서, 함석헌 선생은 45년 전에 이미 "가나안"을 거꾸로 읽는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였던 것입니다.
가나안 성도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특정 교회를 떠난 사람이나 기독교 신앙 자체를 떠난 사람은 가나안 성도가 아닙니다. 이들은 "선데이 크리스천"이나 "나이롱 신자"처럼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약한 사람으로 펌하하기 쉬우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부분 10년 이상 정착해서 다니던 사람들이었으며, 구원의 확신도 있던 진지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현재 가나안 성도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확한 통계도 없습니다. 갤럽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를 믿다가 신앙을 떠난 사람이 약 56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떠난 사람 중에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가나안 성도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어릴 때의 신잉생활은 가족 환경 안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학에 가서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선택할 시기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생기고
유물론과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인가? 아니면 내 상상이 투영된 하나님은 아닌가? 라는 문제 의식에 대한 이들의 고민과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이 교회 안에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의식에 대한 질문을 하면 오히려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거나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현실에 교회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수 밖에 없고, 끝내 교회로 향하던 발걸음을 끊게 된다고 합니다. 초기 성인기의 경우에는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적응이 필요한 시기이며, 개인이 접하는 사회도 급변하기 때문에, 더욱 큰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기독교인의 경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경적인 관점및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면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기도 힘들 뿐더러,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에 시달릴 우려가 매우 큽니다.
미국의 경우, 10대 때에 교회에 참석하던 미국 젊은이들의 60% 가까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기에 교회를 떠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믿음과 관련된 것이라 강요하거나 주입한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문제에도 집단주의적인 요소가 작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참고자료: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정재영. IVP출판)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한 분이나, 가나안 성도가 이미 되신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 하나를 걸어두겠습니다. 가나안 성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네이버 블로그 '샘물책방'을 운영하시는 가나안 성도 전도자께서 소개하신 글 메시지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 원제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예비 가나안 성도 여러분과, 현재 가나안 성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믿는 분들과 함께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가나안 성도는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교회에 ‘안나가’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가 됩니다. 200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이후, 코로나 시국의 과정에서 빠르게 급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나안 성도"라는 말은 1970년대 함석헌 선생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가나안 성도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지만, 대략 2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가나안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볼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보는 입장을 취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할 것이고,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성도 수가 급증한데는 실망스런 교회의 모습, 목회자의 윤리 문제, 지나친 봉사와 훈련 강요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으로 보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가나안 성도"와 구별해야 할 것으로는 "무교회주의"가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다시 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면, 무교회주의는 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하겠습니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교회론과 구원론 등 복잡한 신학적 쟁점들을 다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저의 이해 범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무교회주의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용어이고, 저도 이에 대해서는 깊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일본의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1861~1930)를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근대 무교회주의라고 하면 우치무라 간조를 대표적인 인물로 꼽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의할 부분은 우치무라 간조가 처음부터 무교회주의자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비록 중퇴를 하기는 했지만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권력과 조직을 갖춘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30년 동안 "성경 연구"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꾸준히 성경 강의를 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이 때 그의 성경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 중에는 당시 일본 최고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도쿄대 출신들도 많이 있었고, 조선 유학생들도 있었는데, 함석헌. 김교신. 최태용 등이 바로 그에게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우치무라 간조 자신은 그 누구 중에 후계자를 지명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교회 내의 계급 내지 서열화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가 교회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교회 내의 권력화를 부정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는 기존 교회의 틀로는 이런 권력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이 설립한 교회 마저도 떠났고, 평생 성경 강의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조선에서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사상을 가장 철저하게 실천한 인물은 김교신 선생(1901~1945)입니다. 양정고보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에는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코치이기도 했던 김교신 선생은 "성서 조선"이라는 잡지를 간행하고 성경공부 모임도 가졌습니다. 이 때 함께 한 가장 가까운 친구가 함석헌 선생(1901~1989)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도 나중에 이 모임에 합류했습니다. 김교신 선생은 후일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으며, 흥남 질소 비료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섬기다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치무라 간조와 김교신 선생은 비록 오늘날과 같은 전통적인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신 뒤에 숨지 않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참신으로 믿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고자 애쓴 분들이었습니다. 특히, 우치무라 간조는 수천 명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천황의 교육 칙어에 절을 하지 않음으로서, 일본의 국적 즉, 국가의 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신 뒤에 숨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신 뒤에 숨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간 우치무라 간조와 김교신 선생은 늘 큰 가르침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가나안 성도는 나와 내가족의 이름을 교회조직 명부에서 지워버린 사람입니다. 목사 자신은 짐을 하나도 안지면서 성도들의 어깨에다 무거운 짐을 지워주면서, 주일성수, 토요 안식일 준수. 성탄절을 비롯한 가짜 절기, 십일조및 각종 헌금. 직분, 직함, 교회봉사, 영원한 유황불 지옥 포교 행위 등에 얽매여 일생 종노릇하던데로 부터 과감하게 돌아선 가장 지혜로운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철저한 무교회주의자가 된 우치무라 간조는 기존 교회 내의 계급 내지 서열화를 타파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 속에 감추어진 성경 말씀을 나누어 전하면서 복음을 증거했다는 점에서 강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저는 목사의 축도를 100% 부정하지만, 어느 일본교회 목사가 축도할 때 오른쪽 팔만 이분의 일을 들고 축도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교회 목사들이 가운을 입고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잡신숭배자 무당처럼 가짜 복을 빌어대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개신교 축도는 가톨릭 신부의 강복을 모방한 주술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무교회주의자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영원한 복음 안으로 더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우지무라 간조가 지적한 것처럼, 기존 교회 조직에 붙잡혀 있는 한, 특별히 종교공화국 수준의 한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아닌 방종이 되어, 국가나 법도 종교가 저지르는 범죄를 완전무결하게 단속하지 못하는 불가침 영역이 되어 버린 현실을 본다면,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무교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한 분이나, 가나안 성도가 이미 되신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 하나를 걸어두겠습니다. 가나안 성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2008년도에 네이버 지식인 공간을 통하여 닉네임 juju공공공공님이 개신교 사람으로서 "신학교 개혁에 대한 제안"을 제시했는데, 닉네임 KART공공공공 답변자 내용도 함께 소개하므로서, 저를 포함하여 그리스도인 여러분께 유익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용은 최소한 압축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신학교 개혁을 제안하는 취지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회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많은 침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개신교 침체는 많은 원인들을 들 수 있겠으나, 그 중에 하나는 분명히 목회자들의 자질에 있다고 봅니다. 목회자는 영적인 면, 도덕적인 면, 조직적인 면에서 교인들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직책인 만큼 교인들보다는 탁월하진 못할 망정, 우월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면을 많이 노출시키고 있음으로서, 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으며 교회를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약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교인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해악을 끼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일이며 근원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대두시키는 것이 됩니다. 우선, 제도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생각해 본다면 신학교 문제부터 개선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신학교 개선 혹은 개혁에 대해 다음 몇가지를 제안해 보겠습니다. 첫째, 목사 후보생은 스스로 지원이 아닌 교회 추천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목사는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자신의 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위하여 일꾼이 되는 것이므로 첫걸음부터 교회의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사는 신학교에서 지식만 습득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영적인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의 신학교는 그 사람의 영적 성숙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를 더 잘 아는 것은 그가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급선무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까다롭게 그를 심사하여 후보생으로 신학교에 교육을 의뢰해야 합니다. KART공공공공님의 답변입니다. "목사후보생을 지원이 아니라 추천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제도 역시 '추천제' 입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교회 '담임목사'의 추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노회에서 절차를 거치고 노회의 추천 형식으로 입학합니다. 그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인정을 받으셔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현재 제도가 그런 제도입니다. 담임목사의 추천이 필요한데, 엄격한 공동체는 교회 제직회 추천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있는 교회가 그를 인정한다는 말이 됩니다." 두째,신학교는 목사 후보생에게서 돈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신학교는 돈을 위하여 운영되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히 교회 일꾼을 양성하는 쪽으로 목표와 사명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사 후보생에게 돈을 받으면서, 그사람의 영적인 자질 여하는 생각하지도 않고, 지식만 습득했다고 해서 졸업장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 후보생에게 돈을 절대로 받아서는 안됩니다. 국가의 간성인 사관 생도들을 양성할 때에도 생도에게서 돈을 받지 않는 것처럼,
신학교도 학생에게서 돈을 받지 말고 그 운영은 노회 즉, 지방회나 총회 부담으로 해야만 합니다. 물론, 후보생을 위탁한 교회에서 교육비를 부담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학교가 후보생들에게 돈받은 그 댓가로 졸업장을 줘버리게 되면 영적 자질 유무에 관계없이 자격증을 주는 결과가 되므로, 얼마든지 불량 자격자가 많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개연성을 봉쇄하자는 것입니다. KART공공공공님의 답변입니다. "신학교는 목사 후보생에게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되면 신학교 운영은 어떻게 합니까? 물론, 교단이 전적으로 지원하면 됩니다. 교단이 신학교 운영일체를 책임지고 신학생은 돈을 내지 않도록 하여 신학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교단에서 신학교의 위치는 아주 힘없고 관심받지 못하는 집단입니다. 또한, 교단이 신학교를 지원하려면 결국 교단 내에 각 교회가 신학교를 위해서
많은 헌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금도 교단의 각 교회가 신학교를 후원하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학교 운영에는 아주 모자랍니다. 한국교회가 교단의 신학교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교단의 신학교를 위해서 크게 후원금을 내어 놓겠습니까?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속한 교단의 신학교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교단과 교단 소속 교회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신학교를 살려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이것은 이웃 교단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교단이 신학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위기를 만나도 이러한데, 평소에 교단과 교단 소속 교회가 신학교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큰 돈을 투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셋째, 사설 신학교를 폐쇄해야 합니다. 교단에 속하지 않은 사설 신학교는 오늘날 많은 불량 목회자 양산의 온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히 교회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있고 한국교회 전체에 위협적인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자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설 신학교는 운영을 지원하는 마땅한 단체가 없으므로, 자연스레 신학생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운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학교의 운영과 확대를 위하여 더 많은 학생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교회의 추천이 없는 무자격자들도 받아 들이게 되는 비리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여기에서 수많은 불량 목회자들이 나올 여지를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KART공공공공님의 답변입니다. "사설 신학교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사설 신학교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설 신학교를 없앨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국가가 나서겠습니까? 개신교가 천주교처럼 통합적인 하나의 조직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종교적인 차원에서 조정이 가능하겠지만, 개신교는 무수히 많은 교단이 있기에 조정 역할을 해줄 단체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종교적인 차원에서 조정도 불가능합니다.
사설 신학교 문제가 심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완전히 없앨 방법은 없습니다.신학교가 교단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한국교회가 개혁되기 위해서 신학교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학교의 개혁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물량주의' '양적성장 제일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물량주의'의 지배를 받습니다. 숫자만 많이 모이기만 하면 최고입니다. 대형교회는 무조건 선하고, 대형교회 목사는 능력있는 목사이며, 성도든 목사든 대형교회를 사랑하고 대형교회를 지향합니다. 물론, 대형교회가 좋은 일도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교회 숫자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량주의'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아무리 바르게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이미 물량주의에 지배를 받는 신학생들은 졸업한 후 '물량주의'의 지배를 받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도 '대형교회' 목사를 추종하며 '대형교회'의 프로그램을 따라하고 '대형교회'를 지향합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인 물량주의의 병폐입니다. 이렇듯이,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병폐들이 먼저 없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신학교가 변화된다고 하더라도,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질문자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질문자의 말씀에 소위 '태클'을 걸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질문자의 제안에 공감하고 신학교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도 모두 인정합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개신교 교회에서 전임사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제 말에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넷째,결론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위기는 한국교회의 자정노력 여하에 의해 위기도 될 수 있고 기회도 될 수 있습니다. 신학교 개혁은 바로 그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는 사설단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목회는 개인사업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인 것입니다. 목사는 개인의 성공을 위한 직업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인 것입니다.
결단코, 목사나 목회를 개인의 영달을 위한 일로 오해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이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교회 모두에게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저는 한국 가톨릭처럼 단일교단 즉, 독립교단이 매우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019년 기준 문체부 종교현황 자료를 보면, 한국 개신교는 현재 374개 교단이나 있는데, 248개 교단은 전혀 확인이 안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만 봐도, 한국 개신교가 얼마나 엉터리이며 극도의 이기주의 오합지졸 종교단체라는 반증이 되고도 남습니다. 2천년 전의 고린도교회가 4개 교파를 가지고 있을 때 문제가 많은 교회였구나!를 연상할 수 있듯이, 표면적으로는 교리 문제라고 하지만 실상은 영역 싸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신교 부흥은 할 필요가 없고, 도리어 영국교회나 유럽교회처럼 "떠날 자는 떠나고 남을 자는 남으라"는 주의입니다. 기독교 종교인들은 모두 떠나고, 성경 말씀 붙잡고 참예수 복음으로 살려는 사람만 남으면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불리우는
바알교 태양신 3신을 믿는 삼위일체나 양태론을 쫒아가는 자들은 가장 먼저 한국교회를 떠나야할 자들입니다. 99%가 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99.99%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한편, 신학교 숫자는 총 400개인데, 인가 신학교는 신학교 전체 중의 20%에 해당하는 약 57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신고도 안한 비인가 사설 신학교입니다. 이 정도면 개판 오분전! 완전히 아수라장 아닙니까? 얼마나 목사라는 직함이 잘하면 출세할 수있는 직업이 되고 많은 돈을 만지면 이런 짓들을 다 하는지, 오늘 이시간 정신 제대로 한번 바짝 차려봅시다! 세상 직업 갖지 않고 직업 목사되어서 성도들이 힘들게 벌어서 갖다 바치는 십일조및 각종 헌금 등을 재정으로 모아 일생 항존직 주님의 종 행세하려고 그 길을 가고 있다면, 그 길을 가려 한다면, 잘못된 선택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텐트 메이커"가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 보면 해답이 나옵니다.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살 줄 알아야 하는데, 한국 개신교 목사 그룹은 기본적인 신앙양심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옛날 사람이니까 그런 것이고, 나는 경제적으로 부요한 한국에서 목회 사역을 하는 사람이니까 매우 다르지 않느냐고 손사레를 친다면, 뭐 그 사람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겠지만, 성경을 들이대면 뚱딴지같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전체교회의 약 70%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미자립 교회 또는 개척교회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70인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부탁하신 누가복음 10장 4절 말씀과, 12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베풀면서 주고 받은 대화인 누가복음 22장 35절 말씀입니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오늘날 창조주 예수님의 필요에 따라 부르신 성경교사가 100% 맞다면, 아마 지금도 그런 헝그리 정신 즉, 희생 정신으로 사역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교회의 목사, 장로, 집사, 성도는 모두 다 사회적인 직업을 갖고 각자 달란트로 무보수
개인 사역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 상태에서는 예수 성령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성경을 깨달아 알게 하실 "스승과 목자"이신데, 말씀을 구하기만 하면 잘 풀어서 복음을 가져 가도록 자세히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신학교 재학생및 졸업생이 몇 명인지 모르지만, 현직 목사가 대략 10만 명이나 되는데, 이런 인원이 도대체 왜 필요하냐?라는 말씀입니다. 창조주 예수님께서 주일성수나 토요 안식일 준수를 어기면 안되고, 예배할 때 반드시 십일조및 각종 헌금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까? 신구약 성경으로 답변합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창조주 예수님은 사단의 3신을 믿으면서 주일성수, 토요 안식일 준수, 십일조, 각종 헌금, 수많은 예배와 기도, 종교생활을 위한 봉사와 교회 포교 행위등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물론, 말씀 모임에 힘쓰는 것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교회에 출석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니, 성경책 1권만 가지고 오직 예수 성령만 의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니, 피차 오해가 없기를 빕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예수 안에서 부활 천국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제 유튜브방 Heaven or Grave로 오셔서 복음적인 자료를 찾아 메시지를 청취하면 가나안 성도가 되겠다는 결심이 서게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했거나 가나안 성도가 이미 되신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 하나를 걸어 두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저주받는다(지옥간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맨정신의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그런 주장을 무조건 옳다고 하거나 옹호할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맨정신의 시각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태복음 10:29~31)."
[영상 참여자 댓글 모음]
♡@delight7994: 자살하면 지옥간다고 말하는 자들은 복음을 잘 모르는 자들의 입질입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지요. 지들은 앞날을 어찌 알기나 합니까?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말입니다. 저도 참새 두마리 말씀을 배웠습니다만, 하늘의 새도 주님의 주권에 들어 있다는 그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user-wk9fm1ql3e: 혹시, 그럼 인간의 자유의지도 하니님의 섭리 안에 있나요? 그렇다면, 자유의지를 왜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맨정신 장로: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재료로 사용하시는것으로 보아야 합니다.자유의지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해 그 방향으로 잡아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즉, 배가 반대편 항구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라면, 가는 동안 배는 좌우로 선장 맘대로 조타수 손에 따라 움직이는게 자유의지라고 한다면, 그 배가 자기들 맘대로 움직일 것 같지만 그 목적지로 배를 가도록 설정하고 처음 계획대로 도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간섭과 이끄심이라는 것입니다.우리가 사는 게 자유의지대로 사는 것 같지만, 어항 속에 들어 있는 물고기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어항을 들고 흔들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데, 물고기는 여전히 그 어항 속에서 자기 맘대로 헤엄치고 있는 것과 같아요.그 어항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어항 관리자는 다 보고 체크하고 있으며, 그 주인의 손길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자기들이 잘나서 지 맘대로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그 간섭 아래에서의 자유가 진짜 자유인 것입니다.배 안이 답답하다고 뛰어내려 헤엄치는 게 자유가 아니라, 물고기가 어항 밖으로 뛰쳐 나온다는 건 곧 죽음입니다그 안에 있는 게 자유입니다.감사합니다
♡@ann154: 맨정신님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습니다.성경에서 자살한 사람들이 어땠는지 본다면,자살이 괜찮다는 것처럼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저와 당신이 살인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저와 당신이 자살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맨정신 장로: 자살이 괜찮다고 전파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영상 메시지를 끝까지 잘 들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