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과거의 저처럼 종교생활을 하는 분들은 안계십니까? 무슨 말씀이냐 하면, 한국 개신교에서 신학교 출신 목사주의의 374개 교단이 연대라도 한 것처럼 직장과 사업장 문제로 분주하게 살다 온 장로. 집사. 성도 그룹에게 어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번째, 교회와 사회를 두 영역으로 나누고 이렇게 설교 시간에 강론합니다. "여러분! 사회 직업은 썩어질 양식 얻는 일이라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늘의 상급과 칭찬이 없으나, 교회 조직 부서에서 행하는 모든 소득의 십일조및 각종 헌금. 주일성수. 새벽기도. 주중예배. 금요예배. 가정예배. 장례예배 봉사등은 하늘 천국 은행에 그 공로와 업적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특히, 십일조및 각종 헌금은 내가 천국에 가면 도로 되찾아서 사용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성경적인줄 알았는데, 지금은 새빨갛다 못해 시커먼 거짓말이라는 것을 거듭 깨닫고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천하에 성경으로 사기치는 신구약 약장수 집단 374개 교단에
삯군이 얼마나 많을지, 창조주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고 계십니다. 두번째, 목사는 창조주 예수님께서 세운 특별히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하면서, 사회직업을 갖지 않은 것이 무슨 벼슬을 딴 것처럼 자랑하는등, 세상은 썩은 것을 구하고 교회는 영원한 것을 구한다면서, 사회적인 직업을 갖지 않은 것으로 유세 떠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180도로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직업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기사가 없지만 굳이 그가 마지못해 받았다면 생필품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사회적인 직업 없이 산 속으로 들어간 장삼 입은 불교 승려나 수단 입은 가톨릭의 신부처럼, 사회적인 직업을 포기한 가운 입은 신학교 목사가 그런 류의 종교인이 되기로 작정한 이상, 성경과 다르게 말해도 장로. 집사는 마치 설교권 내지는 복음 전도권이 없는 것으로 오판하여, 성경과 목사 설교가 일치한다고 착각들을 해서, 덮어놓고 아멘
아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한사람 한사람이 영적인 제사장이고, 예수복음을 증거하는 성경교사 자격이 거듭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세번째, 종교적인 열심이 너무 도에 지나쳐서 그 종교적인 열정을 직장과 가정으로 끌어들여 와서 닥치는대로 성경에도 없는 가짜 불지옥으로 교회에 사람 끌어 모아주기 하는 개신교 삐끼짓을 많이 했습니다. 무려 1987년부터 2020년까지입니다. 교회, 직장, 가정, 음식점에서 식사 전에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것을 진짜 감사보다는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오늘 이 메시지를 듣는 분들은 가톨릭 수도원의 식사기도 식사전의 것만 베낀 개신교식 식사기도를 중단하시고, 제발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일반인과 똑같이 식사를 즐기십시오! 창조주 예수님께서 그런 것을 요구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가족에게 가장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직장생활하면서 결혼하기 직전까지도
한국 개신교의 주일성수와 십일조 율법주의를 쫒아서 자녀들의 복음적인 자유를 본의 아니게 억압 당하도록 한 부분을 포함해서, 맛있는 음식 한번 제대로 못사주고, 용돈 항상 부족하게 준 점에 대하여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정말 할 얘기가 많지만, 이 다음 기회가 있을 때 한꺼번에 몰아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성경도 아닌 이런 가증한 회칠한 무덤을 때려 부숴 버리고 성령과 말씀으로, 참예수 진리의 복음으로 거듭나셨으면 합니다.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내가 율법으로 왕과 주인이 된 상태에서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삼아 목자와 주인이 되어 주심을 말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유안젤리오' 전도자께서 2019년에 증거하신 십일조에 대한 바른 복음적인 메시지를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 - 제6부'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구약시대에 그리고 유대인에게만
유효했던 율법 십일조는 유일한 선민이었던 유대인의 증표이며, 속죄 제사를 통한 유대인의 구원과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통한 언약 백성의 구원을 위한 예표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는 신구약 시대에 율법에 속하지 않은 언약 백성의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한 직접적인 예표로서 구약의 핵심적인 주제이며, 존재 목적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창조주 엘로힘에게 율법에 의하여 십일조를 드려 레위 제사장이 그 십일조의 십일조로 속죄 제사를 드렸으며, 레위 제사장에게 속하지 않으며 율법에 속하지 않은 신약 시대의 언약 백성은 율법 이전의 시대에 태어나 율법에 속하지 않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방불케 하는 멜기세덱에게 유대인들처럼 가축이나 농작물을 드리는 율법의 헌물이 아닌 원수를 쳐서 이기고 획득한 전리품의 십일조를 유일하게 직접 멜기세덱에게 드림으로서, 멜기세덱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마중하였습니다.
히브리서 7장 2절 3절 말씀!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다음으로 그는 또한 살렘 왕인데,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습니다. 그는 테오스(θεός)의 아들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신약시대의 언약 백성은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크리스토의 은혜 안에 있으며, 율법에 속하지 않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직접 자신을 제물로 드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구속함을 받는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으신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같이, 이제 우리는 예수님에게 우리 자신을 직접 십일조의 속죄 제물로 드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가 아닌 예수님의 직접적인 피와 살을 먹어야 합니다.
신약 백성의 속죄 제사를 위한 십일조는 돈이나 율법 십일조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야 하며, 적그리스도적인 궤변 신학의 미혹자인 염소들의 사탄주의를 극복하고 얻은 전리품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드려야할 것입니다. 십일조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선택된 민족이며 구약시대에 유일하게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에게만 적용된 속죄 제사의 규례였으며, 이는 크리스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사 그의 소유된 모든 신약의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한 언약 백성의 구속을 예표하는 복음의 비밀입니다. 구약시대에 가나안 백성들만이 유일하게 율법으로 십일조를 드릴 자격이 있었고, 또한 그들만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었으며, 유대인과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DNA가 다른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고조선 시대나 고려 시대나 현대교회 시대에 십일조를 바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며, 바칠 자격조차 없는 이방인 신분이기 때문에
율법 십일조와 한국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분배 받지도 못했고, 할례 받지 못했으며, 레위 제사장도 없으며,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등의 율법을 충족할 수없는 십일조를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한국 사람이 헌물이 아닌 현금으로 십일조를 바친다고 한다면,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스갯 소리 정도로 취급하는 불순종 교리를 믿는 저주받을 자들이 되고 맙니다. 구약시대에 십일조로 드리는 화목 제물 대신에 십자가에서 온전한 희생 제물로 단번에 죽으신 예수님을, 결과적으로 또 다시 희생 제물로 바쳐 죽이고자 하는 행위가 한국교회들의 십일조인데, 돈으로 십일조를 바친다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박고자 하는 무지몽매한 행위가 되는 것으로 반드시 저주받을 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단순한 헌금이나 교회 운영비를 사칭하는 목적으로 함부로 쓰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증표이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표상이므로, 함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모독하는 용서받지 못할 "성령 훼방죄"를 범한다면 사탄과 함께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완전한 율법을 흉내내어 양이나 소등의 짐승으로 장로. 집사. 신자가 십일조를 바치고자 한다면, 목사가 장로. 집사. 신자에게 진짜로 미쳤다고 욕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구약의 시간표가 지나갔는데 또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고자 하는 이교도의 주술적인 십일조는 배도 행위가 되는 것이며, 자격도 없는 이방인이 신약시대에 또 다시 근본 없는 이방인의 신율법을 만들어 십자가의 속죄제사 제물로 예수님을 바치는 가증한 마귀적인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교도들의 마귀적인 종교적 광기를 표현하는 행동일 것이며, 마치 아프리카 국가의 세금을 한국 사람이 내야 한다고 분을 내면서 주장하고 우기는 것과 같은 정신 나간, 뜻이 없는 헛소리 방언 같은 짓입니다.
이방인에게 율법 십일조를 명령한 구절이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 한 글자, 한 획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 땅에서 태어난 우리 민족은 구약시대에 분명한 이방인이었으나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크리스토의 피로 구원함을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언약 백성이 될 수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한국 사람이 불법적인 십일조를 바친다면 그는 유대인을 흉내내는 비천한 신약시대의 이방인 신분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유대인도 아닌 한국 사람이 십일조를 바친다면 창조주가 아닌 마귀에게 십일조 헌금을 바치는 것이 됩니다. 특히, 한국인이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가설적인 논리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근거 조차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명백한 거짓이며 사기 행위인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인 목사가 지금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에서조차 사라진 레위의 제사장직을 계승했다는 의미의 해석은 절대 불가능한 미혹의 거짓이므로,
목사가 십일조 헌금을 강요하고 거두어 들이는 행위는 성경을 근거로 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개신교가 이방 종교로 변질되었다는 특성을 보이는 것인데, 수많은 성경 말씀의 경고에 귀를 닫고 절대 불순종하는 행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며, 성령 훼방죄로 변질된 궤변 신학만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몇가지 불순종의 예로는 하나님이라는 우상의 호칭과 그리고 수많은 경고가 있지만 경고에 눈을 감고 저지르는 고린도교회의 글로쎄(γλώσσῃ) 방언 행위와 더불어 행해지고 있는 십일조 사기 행위 등이 있으며, 이는 모두 용서받지 못할 성령을 모독하는 성령 훼방죄에 속하는 것으로, 이와같이 성경에 수많은 경고를 무시하고 비틀어 해석하여 불순종하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된 교리가 개신교 안에 가득찬 것은 개신교의 뿌리가 적그리스도적인
카톨릭에서 파생된 종교이기 때문이며, 이는 불순종의 아비 사탄으로 불리는 사타나(Σατανᾶ)로 부터 온 것으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라는 증거입니다.기독이라는 뜻은 헬라어 성경에 기록된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의 중국어 음역으로 기독(基督)이며, 중국인들은 이를 지뚜(jī dū)라고 발음하는데 한국에서 다시 한국식 한문의 음역인 '기독'으로 변경된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주 테오스의 이름과 예수 크리스토의 절대적 고유명사에 대한 번역과 음역의 완전한 오류를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개신교 성경에 기록된 만들어진 신들의 이름인 하나님, 여호와, 야훼, God등은 모두 본명이 아닙니다. 이 호칭들은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갖고 있는 염소들이 창조주의 이름을 바꾸어 창조주의 정체성을 변경시켜 다른 신이 된 창조주의 가명들을 숭배하게 하는 마귀적인 창작물이며, 해방신학 사상 등에 의하여 주술적인 우상과 신의 통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호칭이며, 가짜 이름이므로 다른 대상의 신을
숭배하는 길로 안내하게 될 것입니다. 루시퍼, 사탄, 사단, 세이튼등의 이름들 또한 염소들이 만든 창작물이지만 이는 반대의 목적으로 그들의 아비 사타나(Σατανᾶ)의 이름이 저주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역기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사타나(Σατανᾶ)에 맞서 싸우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타나(Σατανᾶ)의 전략은 그의 하수인들에게 사타나(Σατανᾶ)의 이름을 사단이나 사탄 그리고 루시퍼로 바꿔 사타나(Σατανᾶ)가 아닌 사탄이나 사단과 루시퍼라는 허상의 대상을 상대로 전쟁을 하게 하므로, 크리스토인이 영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도록 사타나(Σατανᾶ)의 정체성과 이름을 바꾼 음모인 것입니다. 사타나(Σατανᾶ)는 항상 저주의 대상이며 부정적인 대상이지만, 루시퍼나 사단이라는 가짜 이름을 저주할찌라도 사타나(Σατανᾶ) 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되는 것이며,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이나 여호와나 야훼나 God을 백년 동안 찬양한다고 해도,
창조주 테오스(θεός)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만들어진 신 사타나(Σατανᾶ)에 대한 우상 숭배이며 카톨릭의 뒤를 따르는 바알 숭배일 뿐입니다. 카톨릭이 초기 기독교의 신앙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종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일부 몰상식한 목사들은 카톨릭 교도인 인도의 테레사 수녀나 어거스틴, 콘스탄티누스등을 설교 시간을 통하여 성인으로 미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관인 것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에큐메니칼 계열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지만, 실제로 그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에서는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개신교의 일부 무지한 목사들이 설교 중에 그의 업적을, 기독교의 박해를 멈추고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성인이며 로마의 황제라고 추켜세우고 찬양하기도 하지만, 그가 만든 발람의 음모에 의하여 사도로부터 내려온
초기 기독교의 진리가 크게 훼손 당했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의 손에 의하여 학살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와 바빌론의 주술 종교를 하나로 혼합하는 카톨릭의 모략에 의하여, 이를 따르는 대부분의 개신교가 불법적인 종교가 되었으며, 복음과 혼합된 불법의 종교를 거부한 초기 기독교인에 대하여 무참하게 대학살을 감행함으로서, 마치 말세의 적그리스도적 현상처럼 그의 손에 의하여 초기 기독교가 거의 궤멸되었으며, 이 과정을 통하여 카톨릭이라는 무속종교가 생겨난 것입니다. 만약, 초기 기독교가 오늘날의 개신교와 같은 무속의 춤사위를 추구하는 종교였다면 초기 카톨릭과 대립되는 일도 대학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를 궤멸시키기 위한 음모의 함정으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고 기독교 안에 ‘폰티펙스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신 종교인 바벨론의 태양신교를 들여와 혼합하고,
미사라는 제사를 지내는 음녀의 종교인 카톨릭의 토대를 만든 장본인이며, 태양신교와 기독교를 혼합하여 만든 더러운 카톨릭의 태양신을 거부한 수많은 초기 크리스챤들의 경건한 신앙을 태양신의 이름으로 살육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경건한 신앙을 살육하고 있습니다. 그는 태양신에게 미사, 즉 제사지내는 날인 선데이를 만들어 개신교인들에게 안식일을 대체하는 날로 오해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콘스탄티누스가 만든 선데이를 기독교 수난일이 아닌 성수 주일로 선포하는 마귀적인 헤프닝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카톨릭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은 개신교의 자유주의적인 해방 신학은 초기 카톨릭의 종교 혼합주의를 그대로 이어받아 해방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모든 교리와 모든 종교의 통합을 추구하며, 무속 종교이건 타 종교이건 가리지 않고 하나로 혼합하고자 노력 하는 것입니다. 개신교라는 종교가 겉으로는 회칠한 무덤처럼 깨끗하게 보이는 진리 안에 있는 종교인 것처럼 보이지만, 안과 밖이 전혀 다른 종교입니다. 그들이 종교개혁 과정에서 초기 기독교의 신앙과
성경으로 돌아가는 종교회복 운동을 하지 않고 사실상 카톨릭의 신앙 전통을 대부분 그대로 계승하여 모양과 명칭만 약간 바꾸고 불순종의 방법을 전수받아 개신교라는 간판으로 바꾸어 불순종을 교리화시킨 하나의 종교에 해당하는 개신교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개신교가 진리가운데 서있는 종교가 아니라, 회칠한 무덤처럼 그 안에는 죽음의 뼈들과 모든 사망의 더러운 오물들로 가득찬 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의 반성경적인 배교 행위들을 성경 안에서 뒤돌아 보고 그들과 연합하는 신앙생활을 더이상 유지하기 보다는 더이상 미련없이 깨끗하게 정리하고 불순종과 궤변 교리와 무속 운동이 판치는 그곳 개신교로 부터 뛰쳐 나와 홀로서기를 하는 신앙 생활이 오히려 성경적일 것입니다. 개신교가 십일조를 거두고 바치는 사탄적인 율법 행위와,
하나님이라는 잡신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우상 숭배와, 정상적인 언어로 온 신경을 써 말을 해도 부족한데, 백년을 씨부렁거려도 아무런 쓸모없는 헛소리 방언을 가지고 영적인 음란한 신접 행위등을 저지르고 있으며, 이러한 불법적인 불순종의 무속 행위들은 반성경적이고 성령을 모독하는 죄이므로, 곧 저주와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 말씀!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테오스(θεός)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진리를 정의하고 제시하는데 다수의 숫자라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고 성경적 근거도 될 수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개신교라는 종교에서 성경을 해석한 비진리를 99%나 100%의 개신교인들이
진리로 착각하고 믿는다 할찌라도, 그것은 불법이므로 진리가 될 수없는 것이며, 카톨릭과 함께 개신교 교리 안에서는 구원받을 수없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가 카톨릭과 온 유럽으로부터 비판과 협박을 받고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재판정의 위협에 굴복하고 천동설을 인정했지만, 재판이 끝나고 나오면서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진리를 진리화하여 믿고 있다고 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진리의 불변성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십일조와 하나님이라는 호칭과 신접 방언과 목사 제도 역시 비진리이므로 절대로 진리로 바뀌어질 수없습니다. 그러므로, 불변하는 진리의 역설은 결코 개신교 신앙의 근본이 진리가 될 수없는 다른 복음이라는 증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8절 9절 말씀!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바위가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온갖 이유를 만들어 말씀을 순종치 않고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들은 8절의 말씀처럼 순종치 아니하는 DNA를 타고 났으며,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바위로 이미 운명 지어졌으며(predestined),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였으나, 끔찍하게도 염소로 운명지어진 사람들이 왕같은 신분을 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짓밟고 다시 십일조 놀이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지배하는 구약시대에는 속죄의 제사를 위하여 유대인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사장의 성전에 십일조를 의무적인 규례로 바쳤으나,
엉뚱하게도 이 시대 한국의 개신교 거의 전부가 십일조를 목사가 강요하는 최면적인 심령술에 의하여 교회와 목사에게 바치고 있습니다.그런데, 9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로 언약 백성은 왕같은 제사장이며 예수 크리스토의 소유된 백성이므로, 십일조를 유대인 제사장의 후계를 사칭하는 삯군 교사에게 바쳐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더구나, 십일조로 배교를 주동하는 목사는 언약 백성도 아닌 심판이 예정된 자들로 그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이제는 멈추어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는 모두가 제사장 신분인데, 제사장이 누구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면 이는 정신이 밖으로 나간 행위이고, 더구나 목사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는 스스로의 제사장 신분을 거부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그의 소유된 백성임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불순종하는 염소 행위입니다. 십일조 행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성취하신 십일조의 열매인 아가페(αγάπη) 사랑을 외면하고 마귀의 술수에 빠져들게 하는 행위입니다. 십일조를 미화하여 강요하는 목사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레위 제사장을 승계하는 직도 아닌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에게 많은 핍박으로 십자가에 못박은 율법 선생 서기관을 승계하며, 율법을 따르는 이방의 개와 같은 삯군들입니다. 마태복음 7장 29절 말씀!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율법선생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서기관은 율법 선생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쳤는데, 신약 교회에서 목사를 사칭하는 교사들도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똑같이 예수를 핍박하고 복음을 떠나 그를 율법 십일조로 십자가에 못박는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5장 6절 말씀!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테오스(θεός)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율법 선생인 삯군들의 사악한 속임수에 더 이상 속아서는 안됩니다.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율법을 따라 십일조를 바치면, 창조주의 창조 질서와 구원 섭리의 역사를 훼방하는 행위가 되므로, 창조주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오늘 6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7부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십일조및 각종 헌금을 하는 사람들은 첫번째,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업 직장 승진 자녀 물질의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저처럼 재앙 질병 사고를 피하고 물질 손해를 안보기 위해서 액땜하는 심정으로 정직하고 철저한 믿음이라는 것으로 포장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제가 30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그랬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하십니까? 네번째, 십일조는 형편상 또는 믿음이 없어 물질이 아까워 못하겠고 월정헌금만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섯번째, 예수복음은 정말 좋은데 십일조및 각종 헌금할 형편이 안되어 일요일 예배 한번만 참석하고 교회 조직과 헌금 참여는 전혀 안한다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여섯번째, 나는 교회를 나가고 싶어도 십일조및 각종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싫어서 교회에 안나가고 인터넷으로 설교만 듣는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일곱번째,십일조및 각종 헌금은
예수님이 거부하는 불법의 제물이라서 누가 뭐라고 하던지 상관없이 안하는 것이고 다만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내가 자원해서 교회에 기부하는 마음으로 연보 한가지만 실천한다는 분도 계십니다. 가장 신약성경적으로 하는 예배는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으로 들어 오셔서 임재하여 계신 상태에서 말씀의 떡과 생수로 항상 공급해 주심을 바라고 사는 것이고, 돈이라는 제물은 창조주 예수님을 노엽게 하고 십자가 대속을 헛되게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하며, 교회 공동체에 어려운 지체들을 위하여 십시일반의 정성으로 기부하는 연보만 허용하는데.. 대면예배든 비대면예배든, 일요일에서 토요일 어느날 어느시든, 창고든, 사무실이든, 가정이든, 들판이든, 차량 안이든, 혼자든, 여럿이든, 오디오든, 영상이든, 참된 예수복음만을 찾고 구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와 헌신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및 각종 헌금을 당신만 안하면 그만이지, 왜 어째서 그것도 자주 틈만 나면 미친 사람처럼
오지랖넓게 전하는 것이냐?라고 질문하신다면 이렇게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교회 공동체 예배에서 성경에 근거한 말씀을 듣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라는 독초의 씨앗을 한국 개신교 안에 사단이 닥치는대로 뿌려 놓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뽑아 버리면서 예수님의 참된 복음만 내 심령 밭에서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코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 누구라도 성경 말씀에 옳고 바른 것이 무엇인지, 성경과 전혀 다르게 그릇되고 왜곡되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똑바로 알려주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도리요, 전도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목사 그룹은 십일조및 각종 헌금을 금기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알아도 말하지 않을 것이고, 십일조및 각종 헌금이 성경을 위반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개신교 안에는 거짓선지자들이 넘쳐나고 있고,
십일조및 각종 헌금을 창조주 예수님께서 받는다고 갖다 바치는 바리새인들로 가득찹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하고 싶을텐데, 천국에 가는 것과는 전혀 정반대로만 나가고 있으니, 이를 시급하게 알리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심령의 귀를 열고 복음 메시지를 집중해서 자세하게 들으십시오! 서론이 좀 길어진 점에 대하여는 너그러운 이해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유안젤리오' 전도자께서 2019년에 증거하신 십일조에 대한 바른 복음적인 메시지를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 - 제5부'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가톨릭 전례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경배의 중심 행위인 성체성사의 희생 제사를
미사라 부른다. 단 한 번 죽으신 예수님은 당신 교회의 직무로써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제대 위에 다시 바치신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 즉 그리스도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의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끊임없이 제사를 드려야 하는 율법적인 짐승의 피로 그리스도를 정의하고 있는 바와 같이 크리스마스는 '크리스토의 미사'이며, 미사란 희생 제사를 말하므로, 개신교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끌어 내려 십일조의 속죄 제사의 희생물로 다시 크리스토를 바치는 것과 똑같은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놀랍도록 무서운 십일조의 음모와 똑같은 크리스마스의 미혹입니다. 크리스마스와 십일조는 다시 말해서 예수 크리스토의 생일과 십일조를 통하여 예수 크리스토를 희생 제물로 삼아서 다시 제사와 미사를 지내며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이며 '십일조'입니다.카톨릭 교회에서는 매번 미사 의식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그를 희생 제물로 제단 위에 다시 바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는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라, '크리스토의 미사'라는 뜻으로 즉 로마 카톨릭의 구원자인 바알의 생일 잔치를 기념하는 의식으로서, 기독교의 크리스토를 희생 제물로 죽여서 바치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크리스토는 메시아와 똑같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믿고, 그 날을 기념하여 개신교가 지키고 있지만, 카톨릭의 의도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크리스토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제단에 다시 바쳐 제사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 계통을 따르는 개신교인들이 개의치 않고 의미적, 관념적 크리스마스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지킬지라도, 그것은 틀림없는 예수 크리스토를 모독하는, 크리스토의 제삿날이며, 선데이는 태양신 바알에게 미사하는 제삿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는 태양신에게 제사하는
Sunday를 기념하는 어처구니 없는 날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일을 기억하고 지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흘리신 계약의 피를 통하여 그의 고난을 기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5절 말씀!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기념하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히브리서 7장 6절 11절 12절 17절 18절 19절 20절 28절 말씀!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쫒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쫒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쫒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테오스(θεός)께 가까이 가느니라.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드린 것이고, 그것은 땅의 소산인 율법 십일조가 아니며, 그가 드린 십일조는 오직 한 번 뿐이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원한 화목 제물이 되심을 상징하는 실제적 예표였으며, 율법에 얽메이지 않는 신약시대의 언약 백성에 대한 구원의 표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 번 십일조의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의 언약 백성들을 단번에 구속(救贖)하셨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원수들을 이기고 거두어 들인 전리품의 실제적인 십일조를 예수님과 같은 제사장으로 비유되는 멜기세댁에게 드린 것이며,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십자가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마중한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18절 말씀!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라. 엘(לְאֵ֥ל)의 제사장이었더라." 그러므로, 언약 백성은 예수크리스토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언약의 피로 구원하시고 믿음을 따라 신약시대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의 언약 백성에게는 유대인의 율법과 율법 십일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을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 28절 29절 말씀!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할 것없이 다 크리스토 예수(Χριστοῦ Ἰησοῦ)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크리스토(Χριστοῦ)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므로, 이방인은 미혹의 율법 십일조를 레위 제사장을 사칭하는 목사나 교회에게 바쳐서도 안되며, 유대인이라고 할지라도 이 시대에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제사장이 되셨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레위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를 개신교는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강조하는 것입니까? 신약시대의 언약 백성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를 십자가에서 언약의 피를 흘려 성취하신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육체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가 없는 십일조는 거짓이며 가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레위 제사장을 사칭하는 자에게 바치는 십일조는 십일조가 아닌 사기 당한 돈에 불과할 뿐이며, 율법의 피가 아니라 거룩한 예수 크리스토의 피로서 신약의 언약 백성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율법 십일조는 속죄 제사의 짐승의 피를 상징하며, 이는 율법의 피를 찬양하는 것이 되며, 이방인들의 주술적인 축제의 제사를 방불케 하는 모양으로, 예수님 부활 후에 교회나 삯군에게 바치는 십일조는 사탄이 받게 되며,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짐승의 제사를 지내는 신약시대의 십일조 행위는 사탄의 복음입니다.유대인의 십일조는 레위 제사장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바치는 것인데 예루살렘 성전이 이천여 년 전에 완전히 파괴됨으로, 레위 제사장과 속죄 제사를 드려야할 장소인 성전이 모두 사라졌음으로, 이천년 가까이를 유대교에서조차 금지시킨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장로나 집사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있는 것입니까? 십일조는 단순한 헌금이 아니며 교회 운영비로 치환될 수 있는 헌금도 아닌 분명한 율법입니다. 복음시대의 율법 행위는 율법에 대하여, 율법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크리스토의 십자가 사역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성령 훼방죄이며,
예수님의 육체를 밟는 행위로 용서받지 못할 "성령 모독죄"입니다. 삯군 스스로가 레위 제사장의 계승자라고 사기치고 있지만,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을 거짓말인데, 가난하고 순진한 사람들의 돈까지 십일조는 복이라고 속이고 받아먹는 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하지 않으며, 거짓으로 가득찬 양심 불량 행위입니다. 삯군들에 대한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집사들도, 사기꾼 된 삯군들에게 십일조라는 복채를 바치고 있는데 정말 어쩌자는 것입니까? 이것은 영과 육이 사기 당하는 것입니다. 레위 제사장을 사칭하여 강요와 협박을 해서 십일조를 받아내는 선생된 삯군들은 양들의 생명을 돈으로 바꾸는 패륜적인 비양심의 종교인으로, 길잃은 양무리에게 범죄를 강요하고 지옥 권세와 사망의 저주를 선물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악 중에 죄악이요, 심각한 죄인 중에 죄인 들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과 구원 역사의 핵심인 유대인의 십일조를, 엉뚱하게도 율법에 속하지도 않았고
율법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유대땅도 아닌 한국땅에 사는 이방인이 은혜의 시대에 다른 복음인 율법 십일조를 지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불순종의 결정판이며, 예수 크리스토의 언약의 피를 훼손하고 짐승의 피로 바꾸어 사탄에게 바치기 위해서 크리스토의 십자가 복음을 훼손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크리스토의 십자가 복음 앞에서 죄악이 아닌 율법은 하나도 없고, 율법이 복음을 결코 대신할 수 없으며, 이는 복음이 율법과 하나 될 수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복음은 하나가 아니라,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하신 신율법인 아가페 사랑의 계명과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별되어 있습니다. 예수 크리스토께서 십자가 상에 희생제물이 되셔서 피흘려 율법을 완성하신 아가페 사랑의 계명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교의 율법을 하나로 혼합하여 동시에 섬기는 신자들은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삼키는 것과 같은 가증한 이교도 세력인 것입니다.
율법에 속하지 않는, 크리스토( Χριστοῦ)를 방불케하는 멜기세댁에게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를, 십자가 위에 매어 달리신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께서 피흘려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언약 백성의 구원은 율법이나 율법 십일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믿음을 따르는 백성인 것입니다. 또한, 헌물이 아닌 돈으로 바치는 십일조는 삯군들이 돈을 신도들로 부터 빼앗기 위해 만든 거짓 교리이며 술수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십일조에 속하지 않는 이방인은 개신교인들처럼 돈을 사탄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따라 마귀와의 전쟁에서 이긴 전리품으로 우리 자신을 십일조로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께 직접 드려야 합니다. 목사에게 돈으로 바치는 행위는 완전한 불법이며 용서받을 수없는 저주입니다. 히브리서 7장 11절 말씀!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쫒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쫒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이 드린 레위 제사장의 십일조 제사가 온전치 못하며, 신약시대의 언약 백성을 위하여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신 제사만이 온전함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 십일조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그림자였으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십일조를 완성하시고 아브라함이 살렘 왕 예수님을 방불케 하는 멜기세덱에게 드린 온전한 십일조를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왕과 제사장은 관유 기름을 선지자로부터 머리에 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약 율법이 아니라 개신교 율법에 의하여 신학교에서 기름 부음 받고 가짜 목사가 된 자들은 수입산 GMO 콩기름등을 선지자가 아닌 가짜 선지자로부터 머리에 부음 받은 자들이며, 그들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삯군 선생입니다. 그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신성한 자나 율법 선지자나 하나님의 종이나 제사장 혹은
사도의 후계자로 자신의 위치를 높이고 있으며, 엉뚱하게도 중보자를 사칭하는 중보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격이 없는 불법적인 선생에 불과할 뿐이며, 성경을 악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며,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악질적인 거짓 사기꾼입니다. 목사로 번역된 원어 성경의 뜻은 목자(ποιμένας)인데, 목자를 목사라고 번역한 후에 교사들이 앉아 있는 자리는 불법이며, 잘못 번역된 개신교 성경에만 목사가 존재할 뿐, 헬라어 원문 성경에는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그 자리는 목사를 사칭하는 삯군들이 감히 앉을 자리가 아닌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을 성경은 목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결코 머리에 콩기름 바른 가증한 자들에 대해서 목자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목사의 위치는 제사장이나 사도의 지위를 계승한 자들이 아니라, 정확하게 율법 선생 서기관된 자들의 후계자로 불법의 행위를 일삼는 자리를 계승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비성경적인 자리인
목사라는 불법의 자리를 없애고, 목사가 교인들을 지배하는 차별적인 교회의 틀을 깨고, 신자들이 공동체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성경적인 해석이며, 목사의 일방적인 궤변 설교가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자리에 앉아 서로가 토론과 공동 예배를 통해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공동체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목사들은 자신들이 신학적인 지식이 풍부하여 교인들에게 신학을 가르친다고 스스로를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존재가 교회에서 필요없는 이유는 성경에서조차 언급이 없는 직책이기도 하지만, 만약에 교회를 사오십년 간 열심히 밤낮으로 다니면서 목사에게 개신교 교리를 배운다고 해도 궤변 신학 외에는 성경을 아는 지식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목사 자신들도 사탄적인 궤변 신학만을 공부했기에 진리를 해석할 수없고 오히려 진리를 훼방하는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사 혼자 교회의 중심이 되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목사 하나가 타락하면
교회 전체가 대부분 타락하게 됩니다. 그들이 진리의 훼방자인 증거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이라는 가명으로 만들어진 우상을 숭배하도록 가르치고, 탐심의 눈으로 십일조라는 돈을 빼앗음으로 예수님을 모독하여 사망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인 헛소리 방언 등을 성경이라고 억지 해석하여, 가짜 방언을 금하지도 않고 오히려 강조하면서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할례와 같은 율법 십일조 행위가 현대 개신교에서 할례받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던져진 질문에 대하여 고민하고 결론에 도달하고 분명하게 잘못을 인지하게 되기 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모든 개신교인들에게 십일조와 하나님과 방언은 최면적인 진리에 가깝고, 개신교라고 불리우는 종교에서 십일조와 하나님이라는 호칭 문제에 대한 비판은 금기어로 되어 있을 만큼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법 행위가 저주받을 행위임을 성경은
많은 곳에서 경고성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이교화 되고 있는 이유는 개신교라고 믿고 있는 종교가 종교개혁을 통하여 원래대로 초기 기독교로 회복된 종교가 아니라, 카톨릭을 적당히 개혁하고 교리를 속이고자 포장으로 덮어 바꾼 종교이며, 또한 성경 번역을 할 때에도 다른 복음으로 번역하는 카톨릭의 전통과 유전의 방법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 들여, 본질적으로 크리스토교와 전혀 다른 종교가 되어 버린 한국 개신교에서 십일조는 종교적 미혹에 의한 복받는 번영신학과 교회 재정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신성불가침의 괴물이 되어, 감히 비판할 수없는 가치로 여겨지고 있는 그것이며, 만약 누군가 십일조를 비판한다면 그는 곧 이단으로 의심을 받게 되는 불법적인 전통과 제도 안에 자리한 다른 복음을 숭배하는 종교가 개신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누군가가 십일조를 반대한다면 삯군의 혈압을 상승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모든 언약 백성들은
예수 크리스토의 십자가 앞에서 장로나 집사나 신자나 예수님의 은혜로 똑같이 왕같은 제사장 신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현장을 보면 하나님의 종은 오직 목사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반칙왕 목사를 식용유 기름부음 받은 자로 강요된, 목사는 오히려 불법의 자리에 앉은 불법한 자이나, 똑같은 신자로 취급하지 않고 군대 계급처럼 차별을 둔 상전으로 섬기고 있거나, 혹은 중보자나 숭배에 가까운 신성한 자로 여기고 있으며, 그들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삯군으로부터 복빌어줌 받기를 원하여 머리를 조아리는 반성경적이며 이성없는 행위를 교회가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목사라는 호칭의 선생들이 십일조 범죄의 주범이 되므로 오히려 그들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주도하는 삯군들이며, 십일조 마피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자신을 십일조로 드려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 율법 십일조를 내거나 받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다른 종교인입니다. 율법 십일조는 선택된 민족인 유대 백성에 대한 증표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언약의 피는 언약 백성에 대한 증표입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사기치는 삯군들의 집단에 속아 율법 십일조를 바친다면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함으로 인하여, 사기 당하여 길 잃은 불쌍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 돈으로 복을 주거나 받으려 하는 자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며, 최면적인 십일조 사상에 의하여 속고 속이고 있는 사탄의 뿌리에서 나온 염소 신학의 실천자들입니다. 염소와 가라지는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훼방하고 훼손시키기 위하여 목사나 장로등의 이름으로 교회의 교권 뒤 또는 그 중심에서 스스로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도 모르면서 본능적으로 교인들을 사망으로 인도하고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5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6부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하게 구분해서 교회 예배시간에 바친다는 것자체만 보면 감히 아무도 흉내낼 수없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로 볼 수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일생 동안 돈 벌기도 어렵지만 돈을 어디에다 바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인데, 수익에 대한 지출처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돈이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창조주 예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돈이라는 것도 차근차근 잘 생각해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십일조와 각종 돈헌금을 바친 기독교인의 경우에는 돈십일조와 각종 돈헌금이라는 "기독교 복채"와 반드시 연관지을 것이기 때문이고, 성경에 십일조와 헌물이라는 구절을 교활하게 이용한 목사 설교를 들은 것과도 꿰어 맞추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며, 비그리스도인이 받은 물질의 복의 경우에도 성경과 연결지어 따져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유안젤리오' 전도자께서 2019년에
증거하신 십일조에 대한 바른 복음적인 메시지를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 - 제4부'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십일조를 통한 거대한 불법의 음모와 올무에 빠져 사탄 신학의 궤변에 갇혀,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어 피를 흘리고 자기를 사신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삯군들이 짐승이나 농작물 대신에 현금으로 십일조라는 돈을 갈취하고 속죄 제사 대신에 복받는 복채 돈봉투를 강대상에 쌓아놓고 그들의 신 하나님에게 무속의 기도로 바치는 퍼포먼스를 통한 다른 복음이 개신교의 교리가 되었으며, 이성없는 염소들이 돈으로 제사를 하는 종교가 되어 복음이 그들에 의하여 가리워지게 된 것입니다. 중세 카톨릭의 면죄부만 있으면 자신은 물론 연옥에 있는 친척들까지 돈의 권능에 의한 중보의 힘으로 천국으로 올라가는 황당한 보증수표가 되었는데, 복음시대의 십일조가 황당하게도 개신교의 면죄부와 진리가 되었고 만복의 원인과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터 위에 쌓아 올려진 인간의 의가 되기 때문에, 중세 카톨릭 시대의 면죄부처럼 판단과 이성을 마비시킨 황당한 십일조의 미혹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로 부터 아프리카의 샤먼과도 같은 존경과 숭배를 받기도 하며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반성경적인 삯군들에 의하여 개신교가 복음에 대한 율법주의적 논쟁과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싸구려 율법 목사들은 율법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율법과 율법적인 것은 다르며, 은혜로 구원 받은 자로서 율법적인 십일조를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것 입니다."라고 말이지요. 그야말로 비판의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이며, 해석할 가치조차 없는 개구리 소리같은 개굴개굴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완전한 염소이며 삯군 교사들이 교인들의 영혼이 상처받거나 죽는 것 따위는 관심이 없고 오직 십일조를 이용하여 돈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서 미혹하는 이 비지니스 궤변의
의미를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래도, 이 양심없는 거짓 설교에 아멘 아멘하시겠습니까? 은혜의 시대에 배설물같은 가치에 불과한 율법 십일조를 추구하는 것은 선택 받지 못한 신이방인들의 유전적인 원죄적 죄의 경향성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여기고 다시 죄 가운데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소의 본성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국 개신교의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염소 교회들이 율법적 신앙을 복음과 바꾸는 억지와 궤변과 사탄적 음모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와 함께 끊임없이 그 누구도 그 뜻을 해석할 수없는 개구리 소리를 내면서 비밀 기도라고 하면서 거짓말하는 방언과 함께 또 다른 종류의 귀신을 접신하는 방언과, WCC의 기독교 이단화를 위한 발명품인 영성 운동이라는 이름의 주술행위를 받아들인 예배 순서와 형식등의 수 많은 불법적인 사망의 누룩들을 교회로 들여와, 이제는 이단들과 정통과 무속을 서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교리적으로나 행위로나 본질적으로 모두가 똑같이 서로가 불법적인 누룩으로 범벅이 되어 하나로 통합되어
가고 있으며, 다만 그들 사이엔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름의 구별이 있을 뿐, 똑같이 초교파 에큐메니칼이라는 간판 아래 공통의 허무한 가치와 신앙의 행위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결단코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없는 본질적으로 택함 받지 못한 자들만의 행위라고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미혹하는 궤변 신학 혹은 이단 신학을 통하여 복음으로부터 멀어져 간 자유주의 해방신학의 추종자들입니다.그러므로, 개신교는 초기 기독교로 돌아가는 종교 회복 운동의 기회를 버리고 대신에 종교 개혁을 선택하여 카톨릭을 대부분 모양만 바꾸어 계승한 세력들이며, 성경말씀을 비틀어 혼잡한 언어로 불순종을 경쟁하는 것을 교리로 만들어 지키는 다른 복음 즉 사탄 복음을 숭배하는 이단 종교가 된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가 기독교 교리와 로마,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바벨론의 무속의 신들을 통합한 종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훗날 카톨릭이라는 미신과 제사의 종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박해를 끝내고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승인한다는 미끼와 함께 미신들과의 통합을 조건으로 하는 적그리스도적인 음모에 의하여 기독교를 부패하게 하는 올무로 초기 기독교를 확실하게 박살낸 세력이 카톨릭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카톨릭 사상을 거부하고 신앙양심을 지킨 초기 기독교 신자들을 대학살했습니다. 카톨릭이 적그리스도적인 행동으로 초기 기독교인들을 학살한 것처럼, 개신교가 루터로 부터 시작된 초기 기독교로의 회복 운동이 아닌 카톨릭에 대한 종교개혁 운동을 하다가 중도에서 유턴하여 카톨릭의 진보 세력으로 남아 껍데기 포장만 바꾸고는 크리스토교(Χριστοῦ)가 아닌 개신교라고 이름하고 오히려 더 타락한 카톨릭의 개신교가 되어 복음으로 부터 멀어져 카톨릭과 함께 적그리스도적인 종교가 되어 크리스토(Χριστοῦ)인의 영혼을 대량 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말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대문에 붙인 95개조의 반박문보다 훨씬 더 많은 950개 이상의 불법에 대한 반박문을 이 시대의
개신교 대문에 붙여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와 봉투 헌금을 바친 사람들에게만 복받게 하는 헌금기도와, 십일조 못바친 사람을 무시하는 삯군 교사의 양심이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염소라는 증거이며, 자격없는 평범한 계급의 목사가 사도의 흉내를 내며 축도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우상화 놀음일 뿐입니다. A.D 325년에 초기 기독교를 대학살하였으며, 그의 군인들의 군화발 아래 기독교를 짓밟은 적그리스도적인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소집된 사제와 주교들로 이루어진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지만, 개신교가 카톨릭의 진보 세력답게 에큐메니컬 공의회인 카톨릭의 '니케아 공의회' 결의 사항으로 공포된 사탄 교리 대부분을 인정하고 개신교의 교리로 받아 들였습니다.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기독교를 승인한 성인으로 추앙하지만, 콘스탄티누스야말로 기독교 신앙에 주술적 사상을 끌어들이고 이를 거부하는 초기 기독인들을 학살한 장본인이며, 근본적인 기독교 교리를
카톨릭의 이름으로 더럽히고 대학살을 저지른 주인공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카톨릭과 개신교에는 복음이 사라졌으므로 차라리 카톨릭과 개신교의 제도권 밖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근본주의적 독립 크리스찬으로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카톨릭의 니케아 공의회 결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개신교가 카톨릭과 똑같은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였으며, 그리고 율법을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으로 구분하고 도덕법은 영원히 유효하고 나머지는 폐하여졌지만, 구약 율법이 유효하다고 불법적이면서 자폐적으로 저주받을 결정을 했습니다. 기독교의 원수인 카톨릭의 궤변적인 율법 해석을 그대로 수용한 개신교가 기독교 행세를 하며 지키는 도덕법은 미혹하는 불법이므로, 불순종하게 유도하는 교리는 마귀 숭배를 위하는 법이 되는 것이고, 새 언약 안에서 모든 율법과 율법의 가치를 부여하여 섬기는 율법과 율법적인 것은 하나도 남김이 없이 모두 범죄 행위이며, 특히 복음 안에서 도덕법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모략의 덫입니다. 복음이 율법에서 나타난 도덕법의 뜻과 일치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지만 그 속성은 전혀 다른 것이며, 도덕법을 포함한 구약의 모든 율법에 대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모두 못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 신학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아가페(αγάπη)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배설물 신학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를들어, 카톨릭의 염소들이 도덕법으로 분류한 십계명의 율법은 초등학문 안에 있으며 복음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크리스토의 존귀한 피가 그 안에 없으며 다만 십일조 안에 예수님의 피가 예표적 상징으로 존재하는 그림자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이룰 수없는 것이며, 성경이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 율법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이나 계시나 율법의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이르러 완성이 되고 끝이 났습니다. 한 두 개쯤 남겨둔 율법이나 예언이나 계시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방인이었던 한국인에게 이 시대에 도덕법이라는 궤변적인 낡은 율법을 요구하는 삯군 교사들은 복음을 비틀어 다른 복음으로 해석하므로 복음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소경이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이며, 이들에게는 멸망과 심판이 예고된 자들이며, 복음을 율법으로 해석하여 율법을 복음으로 만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욕하는 마귀적인 행위를 일삼고 교인들에게 그 행위를 강요하는 사탄의 앞잡이들입니다. 율법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어떠한 율법의 의도 주장할 수없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이 주장하는 의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더우기 인간의 의는 하얀 옷이 아닌 더러운 옷이라고 계시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의 의를 주셨으나, 신약시대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는 혼인 잔치의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피흘려 세우신 가장 값진 십자가 복음의 의를
선물로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율법주의의 유대인과 염소와 개신교인들과 신이방인들에게는 구약의 율법의 의를 결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만 허용된 율법 십일조를 이방인이었던 한국 사람들이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행하면서, 신약시대에 가짜 유대인 행세를 하며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과 율법을 혼합해서 믿는 행위는, 저주받을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개신교의 현주소가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 구약의 율법은 복음이 아니며 예수님의 육체를 밟는 저주받을 행위입니다. 그 곳에는 구약의 선택된 민족 유대인만을 위한 구약의 율법과 유대인에 대하여만 엘로힘이 인도하는 구원의 역사가 있으며, 신약시대의 선택된 이방 민족을 위한 성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구약 성경이 아닌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된 유일한 복음인 신약 성경만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유대인만을 위하여 쓰여졌으며, 신약 성경은 신약의 언약 백성만을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신약의 언약 백성이 구약의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유대인까지도 신약시대에서 행하는 율법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의 율법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없고, 다만 유대인들을 위한 불완전한 율법의 속죄 제사만이 존재할 뿐이며, 신약에 대하여는 지나가 버린 옛 언약과 옛 예언이 있었을 뿐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피가 존재하는 오직 신약성경 안에만 존재합니다. 구약의 어떤 율법으로도 신약 교인을 거룩하게 만들 수 없고, 율법은 오로지 유대인에게만 유효한 것이었으며, 유대인이 아닌 신약의 언약 백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초등학문적인 배설물에 불과한 존재일 뿐입니다. 만약, 구약이 신약백성에게 유효하다면 성경 안에서 이유를 밝혀야겠지만, 그 어떤 성경 구절도
구약이 복음이며 신약의 언약 백성을 구원한다고 기록하지 않았으며, 수 많은 곳에서 거듭하여 오히려 율법의 행위가 불법이며 배설물에 불과하며 그 행위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라와 하지 마라로 구분된 "행위의 의"만을 강조한 율법 안에는 "원수를 아가페(αγάπη) 사랑하라."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아가페(αγάπη) 사랑하라."라는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법이 없고, 율법으로는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 안에서는 구약의 율법과는 비교할 수없이 강하고, 높은 차원의 계명의 율법은 탐심이 도둑질이며 음란한 눈길이 간음이며 미워하는 것이 살인 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자나 도덕법등을 선별하여 지키는 자는 복음의 자비심없는 심판에 의하여 모두 도둑이며, 살인자이며, 음행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인 아가페(αγάπη) 사랑의 계명이 구약의 율법과는 완전히 구별되고 단절되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신약시대에 개신교인들이
이방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유대인이 되어 율법을 완전히 다 지켰다고 해도, 그러나 그들은 눈이 범죄함으로 눈을 빼야할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모든 율법주의자들이 도둑이며 간음한 자이며 살인자이므로, 율법에 의하여 돌로 내려침을 당해야 할 대상자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 15절 말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에 의하여, 율법에 대하여 고난을 당하실 때에 율법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 선생에 의하여 기소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율법도 함께 일점일획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못박았습니다. 결코 도덕법 따위의 율법을 일점일획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십일조와 율법을 꺼내어 다시 율법의 밑으로 들어가 율법과 사탄의 종노릇하며 교리의 중심으로 믿고 있는 개신교의 이교도적인 행태의 근본이 성경을 떠난 카톨릭의 전통적 교리를 살짝 모양만 바꾸고 받아들인 또 다른 변종 카톨릭이라는 증거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지금도 개신교의 교리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개신교는 무속적인 유대교와 다를 바 없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바라보는 구약 성경을 유일한 경전으로 사용하는 유대교는 우상숭배 종교이며 무속종교입니다. 또한, 이슬람도 율법을 지키면서 '알라 God'나 '알라 하나님'을 같이 믿고 방언도 하는데 개신교와 무엇이 다른 종교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어 코란은 알라 하나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유대교 또한 율법과 엘로힘을 믿고 있음으로 율법과 하나님을 믿는 개신교와 동일하거나 사촌관계 정도의 종교로 여겨집니다. 천주교 역시 개신교 하나님의 아류인 하느님이라고 만든 신이 있으며,
귀신과 태양신의 우상을 숭배하면서 같은 방언을 하므로 개신교와 차별이 없는 같은 예큐메니칼 종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과 카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힌두교등 세상의 모든 종교는 같은 이름의 하나의 God를 숭배하며 하나의 접신 방언을 하는 우상 종교로 은밀히 통합된 것은 장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이념적인 신학으로 통합되어 있던 것입니다. 또한, 한국 개신교의 대부분은 십일조 행위를 지속하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종교 단체가 되었으며, 원문 성경에 없는 다른 우상의 하나님을 만들어 숭배하는 적그리스도적인 믿음을 지지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교인 이교도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와 개신교는 우상숭배의 형식만 다를 뿐, 똑같이 우상숭배하고 있는 형제된 이교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과 천주교와 개신교와 세상의 모든 샤머니즘이 겉 표면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God나 하나님을 숭배하고 같은 방언의 굿으로 춤추는 영성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카톨릭과 이슬람등은 똑같이 율법 아래 있지만, 개신교는 율법의 전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반절 혹은 몇개 정도를 골라서 지키고 있으면서도 율법으로 정통하다고 스스로를 구분하겠지만,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그 중에 하나만 어겨도 모든 율법에 범한 자가 되는 것이므로, 온 율법을 지켜야하는 종교가 유대교와 더불어 이슬람과 카톨릭과 개신교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말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러므로, 이슬람과 카톨릭과 개신교에는 공통적으로 유일신 사상이 있으며, 그리고 그 모든 종교가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신 God이 있으며, 영성의 방언과 율법이 함께 존재하므로 적그리스도적인 이단 세력들이 해방신학과 에큐메니칼로 통합하는데 걸림돌이 없이 마귀적 신앙의 연합체가 된 것이 바로 카톨릭이 만든 WCC이며, 이것이 염소들과 선생된
삯군 교사들의 모임이며 그들이 가톨릭을 대표로 하는, 카톨릭의 음모를 따르는 집단의 정체성입니다. 마태복음 12장 6절 말씀!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이곳에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를 죄로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참으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Lord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율법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며,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안식일 범함을 정죄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율법 십일조 제사의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희생 제물은 원치 아니하시고, 자비를 원하시며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Lord가 되시며, 무너질 율법 성전보다 더 크심을 밝히셨지만, 율법 선생인 바리새인과 개신교인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율법의 주일성수와 율법의 십일조를 주장하며 율법적인 가치를 부여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정죄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9장 16절 말씀!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테오스(θεός)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이 구절에서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은 율법 선생인 서기관및 바리새인과 똑같이 안식일의 정신을 강조한 성수 주일과 십일조라는 신 율법을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율법의 도덕법을 가르치는 율법선생 서기관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또 다시 못 박는 자들입니다. 결과적으로 개신교인들이 율법의 상징적인 장소인 성전도 아닌 교회에서 지키는 신율법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다 더 큰 것이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율법이 중요한 교리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차라리 십일조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개신교인들이 주일성수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교리로 여기고 성경에서 그 근거를 억지로 찾아서 궤변적인 해석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주일은 성경에 의한 해석도 아니며 주일을 만든 장본인은 개신교가 아니라, 초기 기독교를 학살한 카톨릭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하여 공포(公布)한 것으로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닌 바벨론의 종교를 해석한 날입니다. 즉, 초기 근본주의 기독인들을 카톨릭이라는 우상숭배의 덫으로 유인하고 덫에 걸리지 않은 카톨릭의 외부에 있는 초기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기독인들을 무참히 대학살한 원수가 해석한 선데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가 없는 카톨릭의 해석을 개신교의 형님쯤으로 여기고 카톨릭의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주일과 주일 성수가 의미하는 것은 카톨릭이 숭배하는 바벨론의 신, 태양신에게 제사 즉 미사를 드리는 날이므로, Sunday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또한, 크리스마스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절기도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는 카톨릭에서 창작한 원수의 작품입니다. 크리스마스 용어를 살펴 보면, Christmas의 Christ는 크리스토라는 뜻이고, mas는 카톨릭의 고대 어원에서는 미사(Mass)를 뜻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뜻하는 것은 크리스토를 미사 지내는 날이며, 미사는 카톨릭이 만든 거룩한 제사라는 뜻으로 거룩한 예수님의 탄생일을, 예수님을 제사 지내는 날로 속이고,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카톨릭 사전은 크리스마스를 축제일(祝祭日), 즉 제사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축(祝)은 '빌 축' 혹은 '저주할 축'을 뜻하는 글자이며, 제(祭)'는 제사를 뜻하므로 '축제(祝祭)'는 '제사를 지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생일을 기념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렇게 속이는 망령된 교리적인 새로운 절기가 율법적인 것으로, 주의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주일성수를 지키는 신율법도 부족해서
부활절. 추수감사절등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한 것까지, 모두 비판할 가치도 없는 성경의 근거없는 사탄적인 다른 복음으로 미혹하는, 새로운 날이나 새로운 절기를 만든 카톨릭을 따라 개신교가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와 한국 개신교인들이 바치는 십일조가 똑같이 배도적인 무서운 목적을 갖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된 생일 잔치는 바로의 생일 잔치와 헤롯의 생일 잔치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40장 19절에서 22절까지를 보면, 바로의 생일 잔치에서 감옥에 있던 빵 굽는 자들의 우두머리를 목베어 죽여서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또, 마태복음 14장 10절 11절을 보아도, 헤롯의 생일 잔치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이처럼 이교도 왕들의 생일 잔치에서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죽이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카톨릭이 숭배하는 태양신인 바알의 생일이 12월 25일입니다. 그렇다면, 12월 25일은 이교도의 왕이며 사람 신(神) 바알의 생일 잔치에서 누구를 잡아 죽이겠습니까?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잡아 죽여서 제사 지내는 끔찍한 날입니다.
오늘 4부 메시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5부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1986년 여름! 당시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다니엘서. 요한계시록등의 종말론을 연구하며 집회를 했던 서아무개 목사의 가칭. "세대주의 전천년 공중 휴거및 7년대환난 바코드 666 적그리스도 정부 임박"을 알리는 특별집회"에 6일 정도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거짓말을 오랫동안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2000년도가 되면서 바코드 666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더니, 베리칩 666이 계시록에서 말하는 진짜인데, 그것을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으면 지옥가는데, 공중 휴거 못하고 7년 대환난에 남거든, 부디 받지 말고 목베임을 받고 순교해야 천국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1999년까지는 레이저로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바코드 받으면 지옥간다고 하더니만, 2000년 부터는 오른 손이나 이마 피부 안쪽으로 베리칩 주사를 맞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세대주의 전천년 종말론 메뉴얼은 똑같았습니다. 베리칩 속으로 바코드가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의심하지도않고 덮어놓고 잘 믿으려다 보니까, 사단이 만든 온갖 거짓말을 예수님 말씀으로 곡해하여 맹신해 버린 일을 겪은 것입니다. 바코드 20년과 베리칩 6년 거짓말 교리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일은 정말 불가능했습니다. 한편, 세계적으로 창궐한 코로나 시대를 틈탄 정신병자 종교인들이 코로나 백신 안으로 베리칩이 들어가 있으니 절대로 맞지 말라! 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했습니다. 참고로, 존 넬슨 다비는 영국 신부였으나 개신교로 개종하여 19세기 초에 만든 극단적인 종말론 교리가 "세대주의"입니다. 세대주의에 빠진 종교인들이 또 나뉘어 세대주의 전천년과 역사적 전천년으로 믿기 시작합니다. 서로 성경적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역사적 전천년 주의자들은 세대주의 전천년 주의자들을 흡수 통합하려 하고 있지요. 둘 다 가라지인데도 말입니다. 마치, 삼위일체와 양태론 모두 다 가라지인 것과 똑같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기도하면서 성경 연구와 자료 검색을 통하여 기어이 알아낸 신구약의 창조주 한분 하나님의 신관은 "영원 전부터 영원 무궁하도록
영과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창조주 영존하신 아버지 예수님"입니다. 여기에 대한 자료는 제 유튜브방 제목을 검색해서 별도로 들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아무튼, 너무 오래된 일이라 다음 기독교 카페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 카페는 삼위일체 지지자들이 주로 모인 인터넷 공간인데, 갑론을박 논쟁이 극심한 어느 게시글에 댓글 한번 달았다가 육두문자가 총동원된 인신공격을 엄청나게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저는 직장을 많이 옮겨다니는 생활을 주로 하다 보니까, 우리 가족이 교회를 여기저기 다녀보고 새로 정해서 등록을 했던 사람입니다. 성결교.통합. 합동.순복음. 침례회, 감리교등을 다녔는데, 어느 목사 그룹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있는데 이 세분 하나님이 한분이라고 하면서 신비한 분이니까 그냥 믿기만 하라고 가르치는 반면에, 또 다른 목사 그룹은 액체. 기체. 고체가 어떻고.. 또는 나는 혼자인데 남편. 아버지. 스승의 세가지 역할을 한다는 등..
이 두가지를 확실하게 개념 정리 못하고 얼른 생각났던 것이 액체. 기체. 고체를 댓글로 답변했던 것같습니다. 삼위일체 지지론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당장 죽일 것처럼 했던 일은 당시에 얼마나 어리둥절했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쌍욕을 잘하나 싶고,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재간도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언제쯤부터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저의 풀리지 않은 삼위일체및 양태론에 대한 미스테리를 속시원하게 풀어주신 것입니다. 예수재림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풀리기 위해서는 창조주 예수님의 신관을 똑바로 아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서론이 좀 길어진 점에 대하여 많은 이해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현재,성령으로 각자 예수 재림인가? 미래,육체로 전 세계적인 예수 재림인가?'입니다. 오늘은 다음 카페 '주님의 깨어있는 신부들' 회원이신 '씨앗' 전도자의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재림에 대한 바른 이해"라는 매우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첫째,먼저 전도자가 전도를 합니다. 두째, 그 다음에는 성령이 역사하셔서 피전도자의 마음을 여십니다. 셋째, 그리되면, 전도자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넷째, 다음에 성령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따라 자기 부인하는 길을 갑니다. 그 길을 가는 도중에 고난도 핍박도 받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기 시작하면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자기를 향한 주변의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므로, 가장 가까운 그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또 사단이 방해하므로 고난도 옵니다. 그 때에 말씀을 의지하여 그 길을 무사히 지나면 드디어 흠이 없는 자기 부인을 완성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이 기간과 과정이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마음 속에 세상에 속한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버려야 하므로 오래 걸리고, 또 믿음이 약하면 가진 것이 얼마 없더라도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조건에 있든지 그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다 자기 마음에 가진대로 진도는 나가게 됩니다. 다섯째,이 길을 다 가고 나면 비로소 전도자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 때를 일컬어 "자기를 산 제사로 드렸다!" 혹은 "자기의 가지에 첫 열매로 자신을 익게 하여 드렸다!"라고 말을 할 수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이 전도자가 바울처럼 전도자로 나서서 전도를 할 때 성령께서 피전도자의 마음을 열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 그 피전도자는 이 전도자의 첫 열매가 되며, 그 전도자와 피전도자를 일컬어 '두 증인' 혹은 '두 제자' 혹은 '성전의 두 기둥' 또는 '교회 세움을 받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에끌레시아'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에끌레시아'라는 단어의 뜻은 '불러내어 만나다'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을 불러내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불러내어 만난 상태를 일컬어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이 교회가 섰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로 오십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불러내어 만나려면 성령의 법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성령의 법을 바탕으로 하는 길입니다. 그 성령의 법이 사람 마음 속에 들어 있던 세상에 속한 흠을 지우는 것이므로, 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세상에서 불러낼 수가 있고 또 '교회'가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사람이 모여 있을 때 그들이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또 다른 이를 불러내어 만나는 일을 기획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 기획에 '모사'로 그리스도께서 참여를 하셔서 '모략'을 베푸시는 것이며, 그 임하심이 곧 '재림'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령의 법 안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마가 다락방에 모인 이들에게 성령이 임한 뒤부터 교회가 시작이 되고 전도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여덟째, 사도 바울이 서신서를 통하여 예수복음의 편지를 쓴 때에는
아직 성령의 법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서 있지 못한 때입니다. 물론, 메시지를 청취하거나 한글 텍스트를 읽는 그리스도인 여러분의 경우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상황도 같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지금처럼 인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성령의 법의 선포는 당시 정치적 권력을 가진 개인의 마음에 성령의 법이 서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령의 법이 그 당시의 권력자들 마음에 서게 되었을 때, 과거 모세의 율법 하에 있었던 유태인들이 멸절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바울은 옥중에서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하여 '종말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예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성령의 법을 전하던 사도와 제자들에게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서 계신 것이므로 이미 재림하여 계시는 것이나,아직 발표를 하지 않음으로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 재림하지 않으신 것이 됩니다. 물론, 그 이후라도 각각의 개인에게 말씀으로 임하시는 것이지, 환상적인 어떤 모습으로 재림을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제가 책을 만들어 발표를 한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성령의 법의 선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마음에 그 성령의 법이 자리하게 되어야만, 그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시는 것입니다.당시에는 십자가에 달리는 일을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이나, 이미 성령의 법을 완성하신 뒤인 지금 현재의 시점에는, 다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올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 완성하신 말씀 안에 이미 계시며, 그 말씀을 자기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각각 개별적으로 개인이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으로 믿는 것이지, 신비주의적 사고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발에 밟히는 풀 한 포기에도
하나님의 창조는 나타나 있으므로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문제가 있어서 성경을 신비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이지, 성경이 신비주의적 사고를 야기하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기까지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폭삭 망하기 전까지는 개봉박두식의 깜짝 이벤트를 계속 떠들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대표적인 가짜 교리들이 있습니다. 십일조 바치면 복받고 안바치면 재앙이 생김. 각종 헌금을 바치면 천국에 쌓임, 예수믿으면 천국이고 예수 안믿으면 영원히 불타는 유황불지옥, 베리칩 받으면 지옥가고 베리칩 거부하고 목베임 받으면 천국!, 예수 재림 곧 임박하고 7년대환난 적그리스도 출현이 눈 앞에!등등 모두 다 가짜입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유안젤리오' 전도자께서 2019년에 증거하신 십일조에 대한 바른 복음적인 메시지를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창조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정직하고 정성스러운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예배의 제물로 받으십니까? 아니면, 엄히 꾸짖으시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십니까? 또, 교회 조직 직분을 처음으로 받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십일조와 주일성수 만큼은 교회의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까? 아니면,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하는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적인 은혜를 거역하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까? 각자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두 후자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각종 헌물의 제물이 되시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주일날과 절기를 지킨다거나 무슨 제물을 갖다 바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 - 제3부'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조롱하고자."오마이갓"이나 "지저스 크라이스트"라고 하면서 욕을 하며 모독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의 본명이 아니며, 그것의 방향은 개신교 신의 이름을 욕하고 모독할 뿐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창조주의 이름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가명인 하나님이나 God 또는 Jesus라고 정체성을 바꾸고 또한 숭배의 대상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존귀한 본명은 헬라어 성경에 기록된 '테오스'(θεός) 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도 음역으로 모양을 바꾸어 이름이 포함하고 있는 거룩함과 메시지를 변질시켜 다른 대상의 정체성을 갖는 우상으로 번역했는데, 예수님의 본명은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입니다. 그런데, 염소 신학은 '지저스 크라이스트'라고 음역하여 의도적으로
정체성을 바꾸어 다른 이름을 숭배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의심할 여지없이 호칭이 아닌 고유명사 이름인데, 그 이름까지 바꿔치기한 염소의 의도를 간파해야할 것입니다. 고유명사인 창조주의 본명 대신에 개신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라는 보통명사의 가명으로 가려진 신의 이름이 스코틀랜드 선교사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창조주의 본명은 성경 번역 과정에서 완전히 삭제해 버림으로서, 또 다시 창조주의 이름이 구약시대 처럼 개신교인에게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창조주의 이름 테오스(θεός)는 구원받은 신약의 언약 백성에게만 밝히 그의 본명을 드러내었다는 것은 놀라운 주의 은혜입니다. 구약 성경은 구약의 선민인 유대인만을 위한 율법 성경이고, 신약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성경이 아닙니다. 구약은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한 십일조의 십일조로 드리는 속죄제사의 짐승의 피가 있으며, 신약은 십자가에 단번에 드려진 크리스토(Χριστοῦ)의 피로써
오직 선택함을 받는 신약의 언약 백성들만을 위한 복음의 성경입니다. 유대인의 십일조로 드려진 십일조의 십일조로 레위 제사장이 불완전한 속죄 제사를 매일 드린 것을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께서 신약시대 언약 백성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화목제물로 자신을 단번에 드려 유대인의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한 복음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진실이며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예수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십자가는 십일조의 십일조로 드려진 유대인의 율법 속죄제사를 멈추게 하였으므로 대신에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님의 피로서 구원함을 얻을 그의 언약 백성에게 약속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바쳐지는 율법 십일조의 속죄 제사는 예수님의 육체를 짓밟고, 그의 십자가를 모독하며, 그의 거룩한 피를 짐승의 피와 바꾸는 율법의 저주 받을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피로
신약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면 결코 율법의 향기를 음미하거나 율법 행위를 흉내내는 짓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이방인에게 부여된 율법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개신교는 카톨릭처럼 다른 신을 숭배하는, 다른 종교로 분화된 종교입니다. 그들은 신약 성경 속의 절대자의 거룩한 이름을 자기들 멋대로 한국의 무속인들이 숭배하던 신 하나님으로 감쪽같이 바꾸었습니다. 염소들이 성경 번역 과정의 신약 성경에서 전능하신 창조주의 변경될 수 없는 절대적 고유명사인 테오스(θεός)의 이름을 완전히 삭제해 버림으로서, 개신교 교인들 가운데 전능하신 창조주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한정되어 있으며, 안다고 해도 이름으로 믿지 않으므로 결국은 모르는 것이 되기 때문에, 개신교는 그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작명되어진 우상의 신 하나님만을 개신교의 유일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개신교로 끌어들이고
십일조라는 저주받아 멸망하게 될 교리와, 영성이라고 포장된 마귀의 임파테이션이 개신교를 완전히 집어 삼킴으로서, 다른 우상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른 대상의 신을 숭배하는 이단 사상으로 변질된 관계로 저주받을 무속 종교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겉으로는 페인트 칠한 무덤같이 아름다워 보이나, 그 속에는 생명이 없는 죽은 뼈다귀만 가득찬 개신교와 카톨릭에서 굿판을 멈추고 속히 떠나야만 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드린 십일조와 신약시대에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 이후에 바치는 십일조는 완전히 정반대 의미와 행위로 인한 결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이 같은 교리의 연속성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의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종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의 기준이 되고, 진리라고 단정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는 창조주를 믿는 자들보다 창조주가 없다고 하는 자들이나 거꾸로 창조주의 가명을 본명으로
믿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이 바친 십일조는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십자가를 표상하고 있지만, 신약시대에 바쳐지는 십일조 행위의 결과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와 원수가 되는 율법 행위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대립하는 것이며,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죄의 속성을 따라 모세 율법의 저주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로 들어가 머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결국은 사망이 지배하는 원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정신이 밖으로 표출된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개신교인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은 각각의 교단 교리나 목사의 성경 해석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목사들이 신학적인 오류가 있다고 해도 공의의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진행되고, 이해될 것이라고 하면서 막연하고 무책임하게 생각하는데,
교사의 불법적인 다른복음에 대한 해석도 교회와 목사의 이름으로 이해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목사에 의한 불법의 결과는 그의 최면 심령술에 걸려든 불행한 신도들이 사망으로 향하게 되는 길이 될 뿐입니다. 개신교 안에 가득한 저주받을 교리는 대부분 목사에 의해서 주도되기 때문에 목사로부터 떠나야만 살 것입니다. 특히, 십일조는 목사에 의한, 목사를 위한, 목사의 불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이 이방 한국인에게 주어졌다면 삼국 시대부터 백삼십 여년 전의 개신교가 도착하기 전까지 어찌하여 율법 십일조는 단 한 사람도 바치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바쳐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단군이나 무속의 귀신들이 득실대던 시대에도 하나님과 하느님을 숭배하던 한민족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한국 전통의
귀신 하나님을 숭배하고 구약의 율법 십일조를 하나님에게 바쳐야 한다고 어찌하여 광분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십일조는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의 땅에만 유일하게 적용된 제도로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닌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바치는 십일조는 개신교인이 절에 정기적으로 가서 시주를 하는 것과 같이 정신빠진 행위일 것이며, 이방인이 바치는 더러운 십일조는 십일조가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 전통의 귀신 하나님에게 바치는 십일조는 바칠 수있는 자격이나 성경적 근거 조차 없는 악의적인 해석에 의한 거짓입니다. 신명기 18장 1절 말씀!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가운데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십일조의 십일조로 드려진 희생 제사에서 불살라진 고기와 십일조의 유산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이방인이었던 한국 사람은 이스라엘의 율법이나 분깃이나 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민족입니다. 더구나, 한국 사람은 십일조를 바칠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코 바칠 수도 없는 신분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미혹하는 더러운 쓰레기를 삯군 염소에게 바치는 것은 죽기를 원하여서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나 율법이라는 이름은 이방인인 우리 한국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구약 시대에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만의 특권의 징표가 되고 유전일 뿐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말씀! "화 있을진저! 위선적인 율법선생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했었느니라."
현대 한국 개신교회에서 이 성경 구절이 구약 말라기와 함께 신약 교인들을 속이기 위한 십일조의 근거로 가장 많이 악용되어지고 있는데, 십일조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삯군들과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화 있을진저! 위선적인 개신교인들과 삯군 목사들이여! 너희가 위선적인 자비의 말은 하면서 복음의 더 중한 바 사랑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불법적인 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 복채는 잘도 바치는도다."라고 재해석해서 알려주는 경고가 도리어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율법 선생들에게 십일조에 관해서 경고를 한 시기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시대이지만, 신약시대를 준비하는 과도기의 구약시대가 배경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이전은 할례와 절기와 안식일과 십일조가 유대교의 법으로써 반드시 지켜져야하는 율법 시대였습니다.예수님 시대가 한국사에서는
시대적으로 삼국시대 즈음이며, 그 예수님 시대에 한국인은 십일조 밖의 이방인이었고 할례가 무엇인지, 속죄 제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율법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귀신이나 마귀만 알던 민족이었으며, 130년전 이전에 한국인이 십일조를 바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130년 전에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천지신명이나 하나님과 천신 하느님과 온갖 잡신등 민족 전통의 신으로 귀신만을 전문으로 섬기던 민족이었으며 십일조와 상관없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유대교조차도 십일조를 바쳐야하는 시대도 아니며 십일조를 바치면 오히려 유대교 법에 의하여 범죄가 되는 시대에, 한국인들 전교단에서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 완전히 사탄의 종들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속죄 제사를 드리는 예루살렘 성전이 예수님의 예언대로 돌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파괴되므로 제사드릴 성전이 사라짐으로서, 레위 제사장과 백성이 뿔뿔이
흩어져 레위 족속이 없어진 것과, 가나안 땅의 소출이 아닌 산업시대에 돈 등의 다른 수단의 십일조가 율법 해석에 의하여 범죄행위가 되므로 신약시대의 십일조를 유대교에서조차 완전히 폐지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이스라엘 땅 유대교에서 조차 십일조가 완전히 사라지고 2천년이 흐른 지금까지 십일조의 십일조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할 율법을 상징하는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축되지 않는 이 모든 역사는 창조주의 창조와 구원의 섭리 그리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유대 민족에게만 주어진 그들만을 위한 옛 언약이었고, 그들만의 구원을 위한 약속의 땅 이스라엘의 농작물과 가축으로 속죄 제사를 드려 구원을 받는 선택된 백성임을 증거하는 유대교의 율법입니다. 이방인들의 개신교와 십일조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이방나라 이방인에 불과했던 개신교인이 가나안 땅이 없으므로 율법을 지킬 수도 없었고, 율법안에서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에는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으며 오히려 이 시대의 율법 행위는 유대교인이나 한국의 개신교인이나 저주받을 율법의 범죄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십일조는 선민의 규례였으며 구원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 후에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율법으로 구원을 받기 위한 행위와 노력으로 십일조를 바친다거나 혹은 유대인이 속죄제사의 제물을 바친다고 하여도 속죄받지 못하는 범죄 행위이며, 결국은 죄의 값인 사망에 속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구약시대에 이방인은 율법과 십일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하물며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의 시대에 어찌하여 율법과 한국인이 상관이 있길래 십일조가 한국 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헛소리 주장을 하면서 십일조를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방인에 불과했던 한국인들이 유대인이 아니듯이, 거짓 행위를 할찌라도 구약의 율법과 옛 언약 안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절대 없으며,
만약 구약시대에 이방인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었다면 그는 이미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한국 사람은 운명적으로 완전히 이방나라로 구분되어졌고, 율법 십일조에 의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으로 이미 정해진 운명(predestined)안에 있는 이방인이었으며, 죄의 값으로 사망 가운데에 있었던 멸망할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예수님의 복음에 의하여 사망 가운데서 생명으로 미리 운명지어진 (predestined) 언약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율법 십일조의 속죄 제사로 예표되었던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미리 구원하기로 예정된 그의 언약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로마서(롬) 8장 29절 30절 말씀! "테오스(θεός)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For those θεός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likeness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And those he predestined, he also called; those he called, he also justified; those he justified, he also glorified.)"
구약시대에 십일조의 십일조로 드려진 속죄 제사의 희생 제물의 피로 유대인을 율법의 선민 삼으시고 구원하신, 율법이 예표하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 크리스토께서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율법에 대하여, 율법에 의하여 십자가 위에서 희생 제물이 되셔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예언과 율법의 완성과 마침이 되셨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로운 언약의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재창조하시고 그리고 크리스토 안에서 새로운 신약의 선택된 언약 백성(προορίζω)으로 삼으시고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선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약 백성에게 구약의 율법이라는 것이 지나간 배설물에 불과한 이유는 구약 성경으로는 결단코 구원 받을 수없는 유대교의 경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100년을 구약 성경에 몰두한다 할지라도 결단코 구약 안에서 구원받을 수 없으며 저주만 쌓일 뿐입니다. 개신교인들이 생명없는
구약의 율법 교리를 따르며 유대교를 흉내내고 있지만, 한국사람은 유대교 율법에 의하여 유대교인이 될 수없습니다. 이 시대에도 유대교 신자가 될 수있는 자격은 오직 유대인과 유대인의 배우자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율법은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으므로 이 시대에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시도는 아무리 유대인일찌라도 유효기간이 지나 먹을 수없는 부패한 불량식품을 먹고자 하는 행위이며, 더더욱 우리는 신약 성경안에서만 예수님께서 피흘려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을 발견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 안에 생명의 계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의 바리새인과 율법 선생 서기관이 율법 십일조 생활은 1등으로 했지만, 그들이 경고를 받은 것은 그들이 소홀히 했던 정의와 자비와 신의가 포함되어 있는 사랑의 정의인
생명의 계명 안에 구약의 불완전한 율법때문이었는데, 이를 완전한 아가페(αγάπη) 사랑으로서 성취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는 피를 흘려 자기를 사신 예수를 부인하는 배도행위이고, 복음을 가로막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며, 결단코 신약 백성의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초등학문적 배설물 수준의 가치로서만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빌립보서 3장 6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크리스토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크리스토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크리스토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크리스토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테오스께로부터 난 의라."
마가복음 14장 24절 말씀!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율법도 없었으며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도 없어 죄의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이방인에 불과한 우리를 구원하려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크리스토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거룩한 언약의 피값으로 인하여 이제는 유대인의 율법 십일조를 지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또 예수 크리스토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시대에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고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염소 무리인 개신교가 자칭 정통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쭐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하여 율법 안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방인 신분인 많은 개신교인들이 크리스토의 십자가 안에서 구원을 받고서 유대인 만의
규례인 율법을 부분적이나마 선별하여 지키는 행동을 하거나, 십일조 신앙 생활 등을 하거나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완성하시고 사망 가운데에 있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율법에 대해서 그리고 율법에 의하여 율법 선생들과 레위 제사장들로 부터 기소를 당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부정하는 정신나간 행위입니다. 개신교인이 된 후에 율법을 부분적으로라도 지킨다면 사망의 율법으로 돌아가 율법에 의한 내 행위의 의를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됨으로서,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토의 십자가 부활을 오히려 모욕하고 그를 배도하게 되는 심각한 죄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이며, 율법을 추종하는 자들은 율법에 의하여 운명적으로 구원받을 수 없었던 이방인처럼 율법에 의하여 복음이 그들에게 가리워진 신 이방인이며 염소가 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새롭게 발생한 신 이방인들에게는 구약시대의 이방인에게 구원이 없었던 것과 같이
신약시대에도 구원이 없는 존재들이며, 염소와 가라지들과 동급의 정체성을 가진 가증한 자들로서, 마치 성경 말씀을 불순종하고 죽기 위하여 운명적으로 태어난 사람처럼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신으로 숭배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모독하는 십일조를 바치며 엄숙을 가장한 위장된 위선을 행하는 자들이며, 예수 크리스토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세우신 복음을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구약시대이든, 신약시대이든, 신 이방인은 율법 가운데에서 아무런 의를 이룰 수도 없으며, 그들이 선택한 율법에 의하여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신분이 되었으므로, 가짜 유대인 흉내를 그치고 회개하여 율법에 대하여는 배설물로 여기고 당장 율법의 행위를 멈춰야 할 것입니다. 율법 십일조는 신약 백성의 것이 아니며 오직 선택된 민족인 구약의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선민을 증거하는 표이며
규례인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을 통하여 율법으로 이방인이 이룰 수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다만 우리가 알 수있는 것은 이방인은 사망과 저주만 얻을 뿐이며, 만약 개신교인이 카톨릭의 유전을 그대로 받아들여 모든 율법이나 부분적인 몇가지의 도덕법이나 사회법등의 율법 몇 가지만을 선택해서 지키고자 한다고 해도 그 결과 역시 똑같이 율법에 의한 죄의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벽돌 몇 장 정도는 남겨두고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자칭 목사들께서 교사 직급이면서도 기름부음 받은 자인 척 사기를 치지만, 겨우 식용유를 머리에 바른 자들이며, 거짓의 제사장 가면을 쓰고 구약시대 유대 민족만의 십일조를 신약시대에 율법의 무덤에서 다시 끄집어냄으로써 율법 대신에 크리스토를 다시 십자가에 매달아 예수복음을 파묻어 장사지내려는 시도입니다.
오늘 3부 메시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4부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구약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십일조는 돈이 아니며, 10%가 아닌 23.3%입니다. 먼 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산까지 제물을 운반하려면 많은 문제가 따르므로 돈을 갖고 와서 필요한 제물을 구매했던 것이지, 구약시대 성전 제사에서 제물로 돈을 바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 제사나 율법 십일조와는 전혀 무관한 한국인 목사가 레위인 제사장 흉내를 낸다는 것은 성경의 근본도 모르는 무식쟁이가 아니고서야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없습니다. 성경으로 사기를 쳐서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끌어 모아 호의호식하면서 건물 성전도 짓고 종교단체 권력을 374개 교단씩이나 만드는 등.. 이것은 신약성경의 예수복음과는 너무나 많이 다릅니다. 헌금은 신에게 돈으로 바치는 제물이고, 연보는 사람을 돈으로 도와주는 기부금입니다. 상당수 사회인 기부자는 자신의 이름을 내고 나팔을 불지만,
진실한 그리스도인 기부자는 각자 마음으로 정하여 무기명으로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무려 30년 동안 철저한 십일조 율법주의자였던 저와 우리 가족들이 교회에 뜯긴 추정 금액을 따져본다면 약 2억 5천에서 3억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30년 동안의 화폐가치와 은행이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신약시대 신약교회에서 목사가 사회적인 직업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하여 저는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일평생 생계를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책임을 지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따져 보았을 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무슨 명목의 댓가 또는 사례비를 받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전한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또, 사도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해서 자신의 전도 여행에 필요한 금액을 마련했습니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오늘은 '유안젤리오' 전도자께서 2019년에 증거하신 십일조에 대한 바른 복음적인 메시지를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 - 제2부'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말라기 제사장처럼 목사 자신들이 불법 십일조를 편취한 도둑이며 사기꾼인데, 양심도 없이 엉뚱하게도 교인들을 도둑으로 몰고있는 것입니다. 또, 부흥강사들은 부흥회 기간 중에 대부분 빠짐없이 말라기를 인용하여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고도 합니다. 비지니스 신학을 공부하여 돈을 무척 탐하며 좋아하는 목사들의 사악한 단골 예화 중 하나는 복 받으려고 그들의 하나님과 흥정을 위해 십일조에 투자했다가 금전적으로 손해보거나, 영혼이 쫄딱 망한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그런 얘기하는 목사는 한 사람도 없고 눈알을 굴리며 엄숙을 가장한 채 개구리 목소리로 설교를 합니다. 십일조 한 번 빼먹었다가 10배로 손해를 봤다거나 사고가 일어났다는 등의 얘기와 십일조의 전설 록펠러와 카네기가 철저한 십일조 복채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등.. 복채를 철저히 많이 내야 록펠러나 구약의 아브라함과
욥처럼 복받고 바치지 않는다면, 벌이나 사고 또는 저주를 받는다는 판박이 무속인을 방불케하는 일명 복채를 위한 당위성을 조작하여 협박하는 사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장수 목사의 의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순진하고 맹목적인 교인들은 이미 최면의 올무에 걸려든 불쌍한 짐승과 같이, 일식집 수족관의 활어처럼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목사가 '아멘입니까?' 하는 최면의 암호를 외치면 무조건 자동으로 아멘! 아멘! 하면서 그들의 우상신이며 재물신이기도 한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시험하기 위하여 열심히 십일조 복채를 바칩니다. 속이는 염소와 번영신학에 빠져든 교인들이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안에서 함께 뒹구는 난장판이 된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평생을 노인되기 까지 사기꾼이 된 삯군들의 교활한 속임수에 속아 세뇌 되어져, 물질의 복을 받고자 십일조를 바쳐 왔으며 지금까지도 생활이 힘들며 어렵게 살고 있지만 불쌍한 그들은, 폐지와 박스를 모은 돈까지 철저히 십일조를 강요당하여 십일조를 바치고는 쌓을 곳이 없도록 복 받기를 원했지만
지금까지 힘겹게 극빈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불쌍하게도 오히려 영적 생명까지 삯군들에게 속아 노략질 당하고있는 것입니다. 흔한 우리 주위의 교회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양심없는 풍경이기도 하며, 오히려 가난한 그들이 구약에서는 십일조의 혜택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들까지도 목사들의 교회 운영과 그들의 부를 위한 양심없는 착취의 대상일 뿐이며, 삯군들은 스스로를 목회자라고 하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부끄럽게도 참된 목회를 하지 않으며, 양떼를 늑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착취하는, 양심이 불량한 삯군들로 양떼를 푸른 초원이 아닌 독초가 가득한 사망의 초원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신학생 시절의 순수함과 사명감이 변질되어 마침내 돈을 목적으로 목회하는 선생된 자들인데,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십일조는 축복의 통로요, 십일조를 바치기만 하면 하늘 문을 열고 차고 넘치게 육십배 백배를 주신다고 계속 큰소리치며 강조를 했지만,
복을 받지 못하고 극빈층이 된 그 노인들은 무엇이 잘못되어 수십년 동안 철저히 십일조를 해왔지만 지금까지 물질의 복을 전혀 받지 못하고 물질과 건강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입니까? 각자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생을 가난에 힘겨워하면서도 십일조와 봉투헌금을 바치는 교인들과 비교하여 왜 대부분의 목사들은 지나치도록 많은 부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가난의 눈물에는 눈을 감고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까? 십일조 정신을 강조한 대부분의 목회 삯군들이 넘치게 누리는 부와 자신감을 그들 극빈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구약 시대의 십일조 정신이 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하늘의 상급을 쌓으라고 하면서 착취하며 그들의 신음소리 위에 삯군들 자신의 육신의 행복을 쌓아 올리고 있는 비양심적인 삯군 목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삯군들께서 설교시간에 틈날 때 마다 목에 힘을 주고서, 바치기만 하면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차고 넘치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장담하고 보장한 십일조 결과가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으로 나타나는 현재의 노인들에게 그 진실은 무엇입니까? 현대의 십일조가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아니면 사기입니까? 최면적인 이단 사상입니까?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십일조로 목사에게 사기당한 그 노인들에게는 삯군께서 힘주어 보장하셨던 십일조 복을 받을 시간이 다 지나가고 이제는 복받을 시간이 없습니다. 복받은 사람과 복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비결은 침을 튀기며 설교하면서, 십일조로 복 받지 못하고 망한 사람에 대한 예화와 비참한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목사의 관심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금기어입니다. 모두가 복받는 십일조를 바쳤지만 신으로 부터 직접적인 물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 십일조가 저주받을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통하여 삯군 자신들의 지갑만 물질의 축복으로 채워졌을 뿐이므로 신도들에게 사악한 음모로 거짓 십일조를 착취하는 삯군들은 이제는 악의 행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교회에 성경적으로 불법적인 직함인
목사가 왜 필요합니까? 본래 코이네 헬라어 원문 성경에는 목사라는 직위가 없습니다. 칼빈이 만들어 낸 용어이며 개신교가 사용하는 목사는 불법의 자리이며 불법의 용어입니다. 헬라어 원문 성경에 기록된 목자(ποιμένα)를 목사로 다른 호칭을 만들어 번역한 개신교인데, 성경은 목자를 예수님을 상징하는 비유 표현으로 거듭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단코 목사에 대한 표현으로 목자(ποιμένα)가 쓰여진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창조주의 본명을 바꾸어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만들고, 목자이신 예수님의 자리를 목사라는호칭으로 바꾸어 예수님과 동등한 자리에 앉아서, 창조주와 목자이신 예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목자이신 예수님의 자리에 불법으로 앉아서 이따위 더러운 목회를 하여 오히려 교인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 사탄의 앞잡이 일군을 자처하므로 차라리 불법의 명함인 삯군 목사가 없는 교회가 성경적이며 오히려 복음적인 교회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래에는 목사없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목사라는 차별적인 불법의 명함 대신에 감독. 선생. 교사라는 성경적인 호칭을 직함으로 사용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많은 개신교인들이 삯군 교사에게 수십년 이상 설교를 듣고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해도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삯군 스스로가 신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성경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정상적인 성경 해석을 하지 못하여 신학교에서 배운 궤변 신학에 의지하여 해석하는, 미혹하는 교리를 제시하여 교인들을 안개 속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성경과 기독교 교리의 실상을 알 수가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삯군들은 교인들의 돈을 많이 착취하기 위한 방법의 메뉴얼을 따라서 십일조 바쳐서 실패한 간증은 없고 하늘 문이 열려서 돈을 많이 벌어들인 사람에 대한 돈 간증만 가득 넘치고 있습니다. 십일조만 내면 창고가 넘치도록 돈을 주신다고 강대상에서 큰소리쳤지만 그 노인들의 결과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삯군들이 장담한 미혹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으므로 십일조 복이라는 말은 사기입니다. 정신이 멀쩡한 목사라면 오늘부터라도 회개하고 강대상에서 설교시간에 먼저 주술 행위를 방불케하는 그 더러운 십일조 복채를 교회와 목사에게 더이상 바치지 말고 다른 복음인 율법 십일조를 바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대로 정확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며, 목사의 호칭도 다른 직함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많은 수의 신도들이 힘겹게 간신히 먹고 사는 생활을 하면서도 봉투 헌금과 십일조를 내는게 현실인데, 많은 수의 중대형교회 목사들은 양심도 없이 빈곤 계층의 헌금이 포함된 착취한 돈으로 자녀들을 해외 유학 보내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심지어 어느 대형교회 목사는 돈 없는 교인들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교인들 앞에서 설교 시간에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까지 하며, 또 어느 유명한 횟집 고기가 두껍게 썰어서 맛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등,
이런 어렵고 힘든 시대임에도 십일조를 바치고 있는 배고픈 교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허무를, 십일조 공갈빵 복대신에 안겨주고 있는 저질적인 인격과 양심의 소유자들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바로 차별적인 거룩함을 느끼게하면서도 존경까지 받고 있는, 우리가 다니는 교회의 삯군목사들입니다. 더 이상, 삯군목사들의 신분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차별적인 또 다른 신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으며, 오히려 양심에 구멍난 자들입니다. 이 따위 삯군들에게 십일조를 열심히 바쳐서 무엇을 도대체 어쩌자는 것입니까? 십일조는 새 언약 안에 포함될 수 없는 지나간 유대인만의 규례이며, 이방인이었던 신약 교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삯군들이 속임수와 사기로 십일조라는 돈을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넣기 위하여 부끄럽게도 신앙 양심을 버리고 도둑의 양심으로 성경을 악의적으로 비틀어 해석하여 착취한 행위는 복음을 떠난 배도 행위이며,
그 행위의 결과가 결국은 교인들의 영혼을 저주와 사망 아래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이방인이었던 한국 사람들은 율법이나 율법 십일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십일조 대상에서 탈락된 자격없는 민족입니다. 종교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카톨릭의 신앙 전통과 교리를 껍데기만 바꾼 다음, 알맹이 대부분을 계승한 부패한 개신교는 교권주의의 절대 권력자인 목사들이 순전히 자신들의 인간적인 탐욕을 위해 불법적으로 성경을 해석한 다음에 불순종하기 위해서 만든 신율법이며, 그 불법 안에서 삯군들이 기생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예수복음이 가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근본적으로 이단보다 더 이단이며, 정통교회라는 이름 아래 신도들을 속이고 영혼을 상처 입히고 파멸시키며 농락하는 자들은 염소요, 삯군들이며, 그들에 의하여 결국 개신교는 복음이 가리워져 멸망할 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즉 그들은 '정통 교단이라는 이름 아래 숨은 이단들'이며,
이들의 불법한 신앙양심을 통한 제도적인 전통으로 내려온 목사의 교권이 성경과 진리의 우위에 서려하고 있고, 마침내 진리 위에 서 있어 숭배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권주의자들 밑에서 불법을 쉽게도 용납하며 받아들이고 진리를 왜곡시킨 삯군들의 주장과 제도를 단순 추종하는데 학습된 자들에 해당한다고 볼 수있는 장로. 권사. 집사 등으로 교회 안의 어깨들입니다. 또, 그들에 의해 야기된 개신교 비판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귀를 막아버리고, 교회와 목사에 대한 비판이나 비평은 그것이 무엇이든 이유없이 이단이라고 결론 내리고, 비판에 대하여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자폐증적인 골수 집사와 장로들이 교회를 부패하게 하는 커넥션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헌금과 십일조로 삯군의 인정을 받아 교권 장로가 되어 율법이 무엇이 나쁜 것이냐?라고 하면서 교만한 모습으로 교회의 어깨가 된 교권주의의 맹목적인 추종자들, 그들은 세뇌되어진 교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할 것입니다.
"염소 목사는 왕이다."라고 하면서 신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계급적인 목사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거룩하고 신성한 존재이며, 교황처럼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와 같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차별적이며 비성경적인 불법의 직책으로 섬김을 받는 위치에 있는 성직자 내지는 영적인 아버지로 여기면서 숭배에 가까운 섬김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기독교의 부패와 이단화 그것은 일부일 뿐이고, 자신들은 그 일부도 아니며 관심도 없다고 생각할 것인데, 세뇌를 당한 많은 수의 불쌍한 집사와 장로들은 귀를 닫고 성경에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행위 즉 그들의 불법적인 신율법 십일조를 계속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4절 말씀!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잘도 용납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서 받지 않은 다른 영을 잘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서 받지 않은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라도
저주를 받을것 이라고 성경은 경고하고있습니다. 불순종을 신앙의 원칙으로 삼고있는 삯군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성경이 경고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불순종하는 자들이며, 다른 복음이라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근본이 불순종하는 일군 즉, 사탄의 종을 자처하는 행위로 이는 저주를 받게 될 자들입니다. 그들 삯군들이 전하는 불순종의 행위가 다른 복음인 증거는 헬라어 원문 성경에 기록된 창조주의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 대신에 '하나님'이라는 한국 전통의 가명을 쓰는 우상 숭배와 가짜 유대인 흉내를 내는 십일조와 가짜 영성 운동의 헛소리 방언등..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저주받을 다른복음이 삯군들의 주도로 교회 안에 꽉 차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조건적인 목사, 하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삯군 목사가 아니라 다른 복음으로 미혹하는 거짓 삯꾼인지,
이름만 예수이지 다른 예수를 전하여 다른 영을 받아들이고 숭배하게 만드는 염소는 아닌지, 세밀하게 구별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이단적인 염소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메뉴얼로 정통교단에 등록하여 말로는 자신들을 정통 보수라고 강조하면서 속이고 있고, 기독교 TV 등에서 강변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본질적으로 교인들을 사망으로 인도하고 있는 거짓 영성과 거짓 교리의 리더들인 것입니다. 목사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인 닭을 속임수로 숨기고 봉황 행세를 하며 거짓 영성과 번영 신학으로 교인들을 속이고 십일조 복채를 착취하고 있는 자들이며, 그 목사들이 바로 성황당 교회의 두목이며 샤먼입니다. 닭들이 보증하는 가짜 진리인 십일조 복채 등의 다른 복음으로는 결코 복을 받을 수 없으며, 그 복은 바로 사망과 저주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라고 했습니다. 양의 가면을 쓰고 양처럼 말하고 선지자처럼 행동하는 삯군을 구별하는 것은 교인 스스로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들의 주술적인 예배 파티에 참여한다면 사탄의 굿판에 끼어드는 꼴이 될 것입니다.
거짓 삯군들이 좋아하는 많은 성경 구절 가운데 오역으로 번역된 한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가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그러나, 헬라어 원문 성경에서는 "너희가 심판(κριθῆτε)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남을 심판(κριθῆτε)하지 말아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라는 한국어 성경의 명백한 오역에 근거하여 마귀까지도 비판을 하지 않으려 하고 비판하지 않는 것을 사랑이라고 까지 착각하는 것이 한국 개신교인들 대부분의 견해이며 오히려 양의 탈을 쓴 삯군들이 십일조등의 멸망할 교리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 이단 사상도 비판하지 않고 목사와 교회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존경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최면적인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중세 카톨릭이 신자들을 얼마만큼 무시하고 얼간이 취급을 했으면 면죄부라는 황당한 제도를 만들었겠으며, 사제들의 말만 믿고 면죄부를 돈주고 산 카톨릭 신자들은 실제로
얼간이가 되었으며, 그와 똑같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삯군들이 신자들로부터 십일조를 받고서는 그들을 복받게 하며, 얼간이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목사라는 이름의 삯군이 신자들을 무시하고 얼간이 취급하여 속이고 거두어 들이는 돈입니다. 중세시대에 악의적으로 돈을 거두어 들이는 면죄부에 항거하여 종교개혁을 통하여 만든 개신교이지만 특히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중세 카톨릭의 면죄부 전통을 따라 신자들의 수준을 저능아 취급하여 오히려 카톨릭의 면죄부보다 훨씬 더 악랄한 율법 십일조 면죄부를 만들고 거두어 들이므로서 모든 개신교인들의 영혼을 면죄부처럼 침몰시키고 있으며, 그 주도자는 개신교라는 배의 선장인 목사들입니다. 중세 카톨릭 시대에 면죄부에 대하여 의심없이 대부분의 신자들이 진리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이 시대의 십일조를 의심하지 않고 진리로 받아들여 율법으로 돌아가 다시 현대판 이방인이 되어 사망을 향하여
개신교인들이 역주행을 하고 있습니다. 면죄부 하나 구입하고는 구원 얻었다! 라고 생각하는 저 어리석은 중세 카톨릭 교도들과, 십일조 복채를 바치기만 하면 복을 받고 저주나 화를 면하게 된다는 이 시대 무속적인 개신교인들은 돈으로 육적인 것과 영적인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믿는, 똑같이 비정상적인 얼간이들 이라는 것입니다. 돈으로 구원을 받고 돈으로 복을 받고 저주를 피하는 부적을 믿는 자들은 삯군들의 거짓 최면에 빠져 이성적인 판단과 구별을 상실한 자폐증 환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경제적 능력이 파산 상태가 되어 면죄부를 못 산다면 지옥으로 가게 되며, 만약 십일조를 지불하지 못한다면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당하게 되며, 저주를 받게 된다는 협박에 최면당한 자폐아들이 또 다른 거짓복음의 환상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진리로 따져 볼 때, 면죄부를 구입한다면 지옥에 가게 되며, 십일조를 지불한다면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구약은 이 시대에 역사적으로 신약을 이해할 수 있는 옛 언약의 지침서이며, 창조주의 창조 섭리와 구속 사역을 이해하는 신약 교리에 대한 역사적 길잡이 이지만, 신약 교리와 함께 하는 크리스토(Χριστοῦ)교 경전이 아닙니다. 구약은 신약 백성의 복음이 아닌 지나간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율법을 통하여 구약 성경 안에서 장차 오실 예수님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러나, 구약은 예수님의 피가 흐르는 복음서가 아니며 불완전한 율법의 십일조와 십일조에서 십일조를 떼어 내서 레위 제사장이 유대 민족의 속죄제사를 드려 구원받았던 시대입니다. 구약의 율법으로는 이방인이나, 신약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나 복음의 말씀이 한 글자도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에 이방인을 멸망케 할 위험하고 불완전한 교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교리는 하나가 아니라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옛 예언으로 부터 출발하여 새 언약에 대한
성취의 관계이기 때문에 결코 복음 안에서 율법으로 되돌아가 하나가 될 수없습니다. 그 증거는 이 시대에 유대교에 결코 구원이 있을 수없으며, 구약은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기록된 선택된 유대민족 만을 위한 율법의 옛 언약을 기록한 성경이고, 신약은 유대인의 히브리어가 아닌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은혜 안에 선택된 신약의 언약 백성만을 위한 새 언약과 계명을 기록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완전하게 다른 언어로 분리되었음은 구원의 대상이 이스라엘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복음이 온 세상을 향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성경은 문자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언어로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교리적으로도 율법과 율법의 반대편에 있는 복음으로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구원의 대상도 민족도 다르며 구약 시대의 창조주의 이름은 비밀이었지만 신약 시대의 창조주의 이름은 율법의 불완전한 것이
완전하게 복음 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창조주의 이름을 밝히 나타내었으며, 우리가 이제 영광스럽게도 창조주를 '아빠 아버지'(Ἀββᾶ ὁ Πατήρ)라고 부를 수 있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빠(Ἀββᾶ)라는 단어는 공교롭게도 한글과 헬라어의 완벽한 동음동의어(同音同意語)입니다. 아빠(Ἀββᾶ)라는 단어는 아버지도 아닌 아빠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만을 위한 창조주의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나타내었으며, 그의 본명을 나타내는 발음 기호는 "YHWH"이며 즉 יהוה를 자음으로만 기록하여 불완전한 율법 아래에서 누구든지 그의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을 발음하여 읽을 수 없도록 완전히 표기하지 않은 비밀의 이름이었습니다. 만약에, 불완전한 율법의 죄 아래 놓여있던 유대인들이 창조주의 이름을 알았거나 발음했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세 카톨릭의 염소 신학자들은 그들의 유전자 본능을 따라 여러 궤변을 동원한 불법으로,
유대인에게 창조주의 이름은 거룩하여 함부로 부르거나 글자로 표기할 수없도록 이니셜만으로 기록했으니 그 이니셜을 이제는 해석해야 한다면서 만든 것이 "여호와" 또는 "야훼"라는 가짜 이름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호와나 야훼라는 이름이 없으며 모두 발음할 수 없는 יהוה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도 염소들에게는 여전히 창조주의 이름은 염소들 스스로의 사탄적인 궤변 신학에 의하여 비밀이 되었고, 염소들이 오히려 창조주의 사역에 이용 당하면서 돕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염소들은 창조주의 존귀한 이름을 신약 성경 번역 과정에서 모두 삭제해 버리고 하나님이라는 한국적인 가명을 만들어 기록하므로서, 그의 본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도록 감춰지고 가려지게 되었으며, 염소들에 의하여 그의 거룩한 본명을 부르거나, 이단적인 예배를 통하여 그의 거룩한 본명이 모독 당하지 않도록 감춰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2부 메시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3부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유안젤리오' 전도자께서 2019년에 증거하신 십일조에 대한 바른 복음적인 메시지를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부제목은 '연보 외에 십일조및 헌금은 "성령(말씀) 훼방죄"로 영원한 죽음(흙)이다-제1부'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말라기 3장 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유명한 말라기 3장10절이 신약성경이 아닌 것을 매우 아쉬워하면서 그래도 십일조를 좋아하는 목사들은 특유의 뻔뻔함으로 십일조를 바치기만 하면 창고가 넘치도록 하늘 문을 열고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쌓아주실 것이니 개신교의 하나님을 시험해보라고 큰 소리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십일조가 율법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며, 또한 철저하게 십일조 율법을 지키므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과 율법 선생인 서기관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으며, 33절 이하에서는 결론적으로 위선적인 율법주의에 대하여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 말씀!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신약시대에 바쳐지는 모든 십일조는 율법이며, 그 율법의 결과는 저주와 사망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임을 예수님은 거듭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쌍한 개신교인들은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사의 정체가 거짓을 전하는 삯군인지.. 아니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인지,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목사 말만 믿고 율법 십일조 시험을 시도한 결과, 교인들은 그들의 영혼이 저주 받을 율법의 행위를 지키므로서, 복이 아닌 저주 앞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10절 말씀!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사도 바울 특유의 문장체인 이중의 강조로 쓰여진 것으로, 복음 안에서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없으므로 복음 안에서 지키는 율법 하나 하나가 모두 저주의 대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됨을 강조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불완전한 유대인의 율법은 하라와 하지 마라, 라는 명령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데, 복음안에서 율법 해석은 율법 행위 뿐만 아니라 율법에서는 죄가 아니지만 율법에서 금지한 죄를 음미하거나 상상만 해도 살인죄와 간음죄 등의 범죄가 되는 것으로서, 구약의 율법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신약의 계명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 말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요한일서 3장 15절 말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하여, 율법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율법을 복음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십자가 긍휼없이는 모두가 율법의 살인자가 되며, 간음한 자가 되는 것이므로 신약 시대에 율법으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자로 모두가 저주 아래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에 대한 상상이나 냄새까지도 불법이 되므로 구약의 율법에 대한 상상을 단절해야 합니다. 말씀은 완전한 복음 안에서 불완전한 율법으로의 회귀는 결코 의를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모든 율법 행위는 저주입니다. 그러나, 돈이 목적인 비지니스 전문 목사들에 의해 야기된 참으로 거짓되고 악의적인 십일조 흥정이 양심과 진리를 포기한 삯군들의 개신교인지 맘몬교인지, 아니면 목사교인지 묻고 싶습니다. 또한 율법 십일조의 돈과 복 때문에, 양심과 진리를 포기한 개신교의 정체성이 염소의 DNA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없습니다.참고로, 헬라어 고유명사나 단어는
독특한 문법의 특성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단어가 많으므로, 한 단어에 대하여 한국어로 번역할 수없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이는 한글과 서로 다른 문법의 특성으로, 성경 말씀의 의미를 완전하게 한글로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할 수없거나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하는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번역할 때 글자대 글자로 고유 명사를 직역해야 합니다. 결단코 고유 명사를 이해할 수 없는 뜻풀이로 의역을 해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글 성경들은 모두 의역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한글 성경은 하나의 방언으로 번역했지만 헬라어 원문 성경에는 여러가지의 완전히 다른 뜻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방언이라는 뜻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글 성경들이 방언으로 의역한 방언 가운데 하나는 글로싸이스(γλώσσαις)이며,
이는 사도들이 사용한 외국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스테리아(μυστήρια) 종교에서 온 글로쎄(γλώσσῃ)이며, 이는 주술적인 소리를 말하는데, 접신할 때 옹알거리는 그 뜻을 알 수없는 언어가 아닌 소리를 한글 성경은 방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가페(αγάπη)를 한국어 번역 성경처럼 단순히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 없음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의미하는 것이 인간의 사랑등으로 해석되어지면 그것은 큰 오해와 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방언이나 창조주의 거룩한 헬라어 이름이 한글로 하나님이라고 의역된 뜻풀이로 단순하게 한국어로 번역되어지면 큰 오류로 연결되어지게 됩니다. 또한, 성경을 이런 식의 의역으로 번역하는 것과 같이 십일조를 자의적인 마귀 사상으로 율법 해석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미혹에 속아 마침내 저주의 형벌에 처해지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원문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 야훼,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한 글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이 모두는 마귀적인 개신교 신학에 바탕을 두고 의역에 의한 가명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번역 성경에만 존재하는 거짓 신들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야훼. 하나님은 인간에 의하여 창조를 당한 것입니다. 한글 성경 번역 과정에서 의역과 작명을 통하여 본명이 가명으로 변경된 것이며 이는 다른 신을 둔 우상인데, 거짓의 아비 사탄을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의역된 하나님이 의미하는 것은 진리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 창조주를 거부하고 창조주를 빙자하는 다른 신 사탄을 창조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역 성경이 만들어 낸 여호와나 야훼 그리고 하나님이나 하느님은 다른 신(귀신神)을 지칭하고 있으므로 한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나 하나님 등을 반드시 삭제하고 읽어야 합니다. 또한,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된 원문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 하느님. 그리스도. 지저스. God라는 이름 역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문 성경에 없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라는 가명이 한글 번역 과정에서 의역과 음역과 마귀적인 궤변 사상을 통하여 한글 성경에 기록됨으로서, 전능하신 창조주의 거룩하고 존귀한 고유명사가 사탄을 의미하는 보통 명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전해드리는 메시지에서는 의역이나 음역이라는 마귀적인 방법으로 도입된 단어들을 버리고, 히브리어 구약 성경과 헬라어 신약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고유명사 그대로 창조주의 이름을 표기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헬라어 원문 성경에 기록된 대로 테오스(θεός)로 복원하였으며, 그리스도는 크리스토(Χριστοῦ)로 헬라어 신약 원문 성경 그대로의 고유명사로 되돌려 기록했습니다. 로마서 10장 4절 말씀! "크리스토(Χριστοῦ)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인 사망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셔서 죽임을 당하셨으므로 크리스토(Χριστοῦ)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율법의 끝과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불법적인 율법 십일조를 강조한 많은 교단의 한국교회가 신율법을 만들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떠나 추악하고 부패한 자본의 상징인 맘몬 교회로 변질되었습니다. 전혀 성경적이 아닌 율법 십일조와 봉투헌금으로 불법의 벽돌을 만들어 건축한 한국 개신교의 자랑인 거대한 중대형 교회들, 신앙 양심을 속인 주술적인 기복 신앙을 통하여 공범관계인 샤먼 목사들과 그의 교인들, 그들은 세상에 부러울 것없이 자신들이 동맹하여 쌓아올린 맘몬의 상징인 대형교회의 건축물과 자신들이 완성한 교만의 결과물에 취해 예수와 고난의 십자가는 관심도없고 필요도 없으며 주술적인 심령술에 의지하여 인지 능력을 상실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불가능하게 마비시킨 번영 신학이 추구하는 율법 십일조가 그들 위에 진리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는 구약시대라면 돌로 내려침을 당할 범죄 행위이며 이 시대의 개신교가 고난의 복음을 떠나서 이제는 율법 십일조를 바치면 복받는 다른복음의
샤머니즘 교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교인들로 부터 돈뜯기가 전문인 교회 프렌차이즈 자영업자인 삯군들이 자의반 타의반 무당이 되어 십일조에 버금가는 봉투 헌금자 명단을 기복 명단으로 바꾸는 반칙으로, 헌금 기도시간에 돈봉투 헌금을 지불한 교인들만을 위해 개구리 목소리로 복 받는 기도를 무속의 신 하나님에게 올리며, 주보와 교회벽에 헌금자 명단을 공개하는 추잡한 짜내기 복채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여 사용함으로, 자발적인 연보는 사라지고 위선과 체면과 교만과 번영의 환상만이 가득한 어둠의 영을 숭배하는 주술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으며, 연보는 교회에서 사라져 버린 채, 이렇게 바쳐진 불법 헌금들이 성경적인 헌금인지 샤먼을 자처하는 삯군의 복 기도를 위한 복채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으며, 이러한 행위들은 복음으로 부터 떠난 가증한 삯군들과 그의 다른 복음을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야기된 한국교회의 비이성적이며 반성경적인 자화상입니다.
그들은 아직 정식 면죄부는 만들지 못했지만 곧 만들 것이라는 분위기이며, 현재는 면죄부를 모방한 변종 면죄부인 헌금을 바친 자만을 위한 축복기도와 이해할 수 없는 수십종의 헌금 명목을 만들어 그들의 신 하나님에게 상달되도록 개구리 목소리로 주술적인 축복기도를 드림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돈 많은 교인들만 더 많이 복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자칭 목회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헌금을 바친 사람들만을 위한 목회를 하고 복채나 헌금 바친 사람들을 위해서만 축복 기도를 하여,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봉투 헌금을 못바친 과부같은 교인들에게는 축복 기도를 하지 않는데, 무관심한 이유가 가난한 자는 돈을 사랑하는 염소 목사의 목회 대상이 아니라 무시의 대상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정체성이 십일조 속임수와 무당놀이 기술을 전문으로 하여 신도로 부터 돈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염소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돈을 갈구하는 기도로
무속적 종교행위가 보편화된 이 시대 대부분의 교회 안에서 샤먼 목사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는 착취와 최면적인 기복 헌금 종류가 아마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신기록 감일 것이며, 세계에서 한국교회처럼 부패하여 복음에서 빨리 멀어지고 멸망을 향해 가속으로 달려가는 것도 세계 신기록일 것입니다. 기독교 진리를 파괴하고자 하는 거대한 음모의 한 가운데에 십일조라는 불법의 메시지가 들어가 있음으로 해서 개신교는 복음이 거의 파괴 되어졌고 망가져 다른 복음이 되었으며, 교리 변개라는 불법과 불순종의 대가로 쌓아올린 십일조 더미 위에 삯군과 그의 추종자들을 위한 거대한 교회 건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십일조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과 삯군들이 불법의 대가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복음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며 이름만 개신교인일 뿐이며 성경을 이용하여 성경 말씀을 속이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절 28절 29절 말씀!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모세의 율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테오스(θεός) 아들을 밟고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구약 시대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두 세 명의 증인을 세워 죽였지만, 신약 시대에 율법을 지키는 자는 창조주 테오스(θεός)의 아들을 밟고 자신을 거룩하게 한 십자가에서 흘리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만드는, 율법과 복음을 섞어 믿는 자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이며 그가 반드시 받게 될 율법의 형벌은, 다시 용서받을 수 없는 죽음입니다. 구약시대에 율법을 범하므로 죽였던 형벌보다 오히려 신약시대에 율법과
율법 십일조를 지키는 행위가더욱 큰 형벌이 있을 것임을 가장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또 다시 율법을 지키는 자는 다시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 훼방죄에 해당하므로, 율법은 곧 성령 훼방죄와 성령 모독죄에 해당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진리가 포함하고 있는, "진리를 아는 지식"이 율법 십일조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율법 십일조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언약 백성이 아닌 구약의 율법과 복음을 혼합한 즉, 기독교와 유대교라는 두 개의 종교를 혼합한 다른 복음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으로 그 결과는 자비심없는 저주와 사망이라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 십일조는 크리스토(Χριστοῦ)의 십자가를 부정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육체를 발로 밟게 되는 상징적인 행위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며, 결과적으로 은혜의 시대에 율법으로 말미암아 예수 크리스토
(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은혜를 거부하고 또 다시 구약의 이방인으로 되돌아 가서 저주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교리대로 만약에 개신교인이 유대교의 집회에 참석하여 유대교 교리인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제사에 참여한다면, 그는 사도 바울의 서신에 기록된 대로 우상 숭배자가 될 것이며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며 저주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며, 저주의 학문인 초등학문을 탐하는 결과를 원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율법 십일조 행위자는 율법 중의 율법을 지키는 불순종을 충족시켜, 복음을 떠난 자로,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것이며, 은혜의 시대에 왕같은 제사장 신분인 신약 백성이 율법 십일조를 바침으로서, 신분이 다시 율법이 지배하는 구약시대의 신분으로 바뀌어 구원받을 수 없는 현대판 이방인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구약시대에 이방인은 차별적으로 구원의 대상에서 철저히 제외된 신분이었으며, 이방의 개와 같았던 우리는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없었으며,
철저히 율법으로 부터 분리되어 저주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신약시대에 와서 이방인의 신분이 왕같은 제사장 신분으로 급격히 변화되었으나, 만약에 율법을 지키는 자는 염소의 본능으로 인하여 스스로 또 다시 저주 아래에 놓이게 되는 이방의 개로 돌아가는 것을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철저히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방인에게 할당된 몫의 율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특별히 가나안 땅과 율법 십일조와 십일조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만을 구속하는 선민의 징표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선택된 이스라엘과 신약의 언약 백성 구원하실 것을 예표하는 십일조의 제사들을 통하여 장차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실 예수님의 그림자를 구약의 율법 안에서 나타내셨습니다. 창세기 1장1절의 히브리어 성경은 "태초에 엘로힘(אֱלֹהִ֑ים)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서 거듭 자세하게
예수님께서 천지 창조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별히 십자가에서 어린 양으로 속죄 제물이 되셔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유대인의 선민 시대가 끝났으며, 신약의 새로운 선민인, 언약 백성을 재창조하셨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직역 버전으로 읽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크리스토(Χριστοῦ)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καινὴ κτίσις)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의 율법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크리스토(Χριστοῦ)의 십자가 안에서 새롭게 재창조된 언약 백성의 시간입니다. 언약 백성들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이는 구약의 율법에 대하여, 율법 십일조에 대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유대인의 십일조가 단순한 세금이 아닌 것과 같이, 현대판 이방 민족이 바치는 십일조 역시 단순한 감사헌금
정도의 돈이 아닌 예수님의 육체를 짓밟고, 십자가를 부정하는 행위의 표시이며 결과는 자비심없는 사망입니다. 유대인에게 주어진 613개의 율법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교리적인 율법은 단연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에는 반드시 율법으로 정해진 속죄 제사가 포함되어 있어, 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언약 백성을 위한 구원 사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선택된 유대 민족의 영적인 생명의 구원이 좌우되는 가장 큰 율법이었으나, 율법의 선민시대를 지나, 장차 육으로 오실 예수님께서 그가 예비하신 언약 백성을 구속(救贖)하시는 십자가를 예표하는 율법 중의 율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드려진 십일조의 십일조로 반드시 속죄를 위한 속죄 제사, 번제등의 제사를 레위 제사장을 통하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예표대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십일조의 율법을
완성하시고 성취하셔서 언약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속하지도 않은 구약시대의 이방인 신분에 불과했던 한국 사람이 엉뚱하게도, 신약시대에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의 결과는 구약시대 유대인과는 정반대로 끔찍합니다. 이 시대에 이방인이 바치는 십일조의 의미는 율법과는 상관이 없으며, 율법을 지켜야 할 자격도 없는 이방인이 주제넘게 십일조를 바침으로 십일조 속죄 제사의 희생물로, 이방인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그의 육체를 짓밟고, 그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자 하는, 십자가를 모독하는 사탄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3절 말씀! 직역 버전으로 읽겠습니다. "그리고, '온 마음과 온전한 이해 (συνέσεως)와 온 힘으로 그를 아가페(ἀγάπῃ)사랑하는 것 '과 '자신의 이웃을 자신처럼 아가페 (ἀγάπῃ)사랑하는 것'은 모든 번제물의 희생 제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율법의 십일조로 불태워 바치는
속죄 제물보다 율법의 열매이며 완성이며 성취이며, 새 계명인 아가페 사랑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예수 크리스토(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께서 강조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짓 사도들의 친구인 거짓 삯군들이 과거 카톨릭이 일반인의 성경보는 것을 금지한 것과 같이 복음을 가장한 신율법이라는 불법으로 교인들을 복음으로 부터 가리우고 진리에 대하여 무지하게 만들어, 돈을 착취하기 위한 속임수 전술로 자신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며, 이 시대에 어느 누구도 절대로 실행이 불가능한 구약 시대의 율법을 위주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유대인과도 상관없는 방대한 분량의 구약의 율법 위주로 설교를 하므로서, 말씀을 혼잡케하여 일반 신도들이 정확한 성경적 지식이나 교리 판단을 할 수없도록 만드는 저주받을 초등 학문적인 교리와 배설물 지식에 집착하며, 그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저주받을 율법을 강조하므로 자신들이 목사가 아니라 염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자임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약의 복음보다 구약의 율법에
몰두하는 몽학 선생의 전도자인 목사들은 율법에 대하여 죽은 신약 백성에게 복음을 가로 막고 배설물에 불과한 율법을, 율법의 무덤에서 다시 끄집어 내어 진리로 바꾸어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부흥강사는 부흥집회에서 본 교회 목사와 짜고서 더 많은 십일조와 헌금을 착취하기 위한 메뉴얼을 따라 십일조는 성경에 없는 초율법이라는 거짓 주장의 억지 궤변으로 교인들을 무시하고, 속이며 사악한 양심으로 윽박지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 양의 가면을 쓰고 불쌍한 신도들의 영적 생명을 노략질하는 늑대의 친구들인 삯군들은 오늘도 강단에서 교인들을 도둑으로 몰고 있지만 사실은 말라기의 제사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둑은, 제사장 흉내를 내는 목사, 그들 자신이며, 또한 개신교 안의 저주받을 불법들은 대부분 삯군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실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십일조 문제는 단순한 감사헌금이 아닌 매우 심각한 사망의 올무입니다.
오늘 1부 메시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2부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위한 오디오와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사역자 누구라도, 주변에 가까이 계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친절한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