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Professor Nam Dae-geuk / Ezra's Wooden Pulpit

* 원제목: 지옥은 어떤 곳이며 어디에 있는가? 여호와의 날은 무슨 날인가?

* 부제목1: 지옥은 어떤 곳인가? 여호와의 날은 무슨 날인가?

* 부제목2: 지옥불에 타면 끝난다! 의인에게 영생의 날! 악인에게 심판의 날!

                                        ♧ 43분 메시지 url, https://zrr.kr/3Y0P

☞ 원출처(구독, 좋아요): https://zrr.kr/NThi , https://zrr.kr/9eLw

[설교자 View]

"에스라의 나무강단( Ezra's Wooden Pulpit)"은 구원의 교과서인 성경을 알기 쉽게 해석하고, 신학의 여러 분야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앎을 선사하고, 그들이 보람 있는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하여 심도있는 강의와 영감적인 설교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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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Noah Bak

* 원제목1: 삼위일체 반대하니까 양태론 새끼라고 하는데, 이게 맞나요?

* 원제목2: 신구약의 바른 신관인 "창조주 예수 유일신"을 믿으세요!

                                        ♧ 9분 메시지 url, https://zrr.kr/gXUq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 박 전도자입니다. 저새끼 양태론 새끼! 정말 황당하면서 당황스럽고 놀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략 2009년 경에 삼위일체 전문 카페인지도 모르고 회원 가입했는데, 어느 게시글을 보니 댓글이 어마무시하게 달려 있었습니다. 모 회원 댓글 밑에 달려 있는 인신공격성 발언이 제 눈을 의심해 봐야 할 정도로 수위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사람에게 공격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단을 두루 다니면서 주워 들었던 신관이 생각나서 짧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나중에 들어가서 보니까 앞서 말씀드린 회원에게 한 것과 똑같이 저를 짓밟는 이야기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렇게 육두문자를 유창하게 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여기 다 모여있구나!를 생각했고, 그런데 왜 내가 이런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건지 그 자체를 몰랐습니다. 온갖 육두문자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 쥐새끼 내용을 미화해서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런 것입니다.

"이 새끼! 양태론 상 양아치 새끼네!"입니다. 강아지를 개새끼라고 하니까, 사람도 사람 새끼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 카페에 있을 이유가 없어서 당장 탈퇴하고 몇 년 동안 멍청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부터 예수 성령께서 삼위일체와 양태론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 유튜브방 Heaven or Grave로 오시면 해당 자료가 넘쳐나니 별도로 시간내셔서 청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설교나 글 메시지를 남겼다가 너 양태론 새끼 아냐?라는 공격성 댓글을 만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고양이 형상의 삼위일체론자들이 쥐 형상의 양태론자들을 먹잇감으로 잡아 먹는 전통은 중세 가톨릭 시대의 황제, 태양신 바벨론 종교인들, 종교재판소를 통해서 약 5천만 명에서 6천만 명을 살육했던 사건이 그 출발점입니다. 국내외 한국 개신교는 절대로 정통이 아닙니다. 이단 사이비로 지목한 신땡땡, 하나님의 땡땡, 몰몬땡, 여호와의 땡땡 등 기독교 모양의 종교단체 모두 다 동일합니다. 저 스스로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것이지,

창조주 예수님은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끝날에 지구 전체를 지옥불 가마솥으로 만들어, 사단 마귀들을 비롯하여 무덤에서 부활시킨 악인들과 그때 살아있던 악인들 모두를 집어 넣고 깨끗하게 태우고 소멸해서 재를 만들어 영생의 기회를 완전히 박탈해 버리고 본래의 상태인 티끌로 되돌려 보냅니다.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 삼위일체는 3신인데 짜맞추기식 억지궤변으로 1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기독교 가톨릭을 태동시켰던 태양신 바알 3신 숭배자인 황제와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창작물 짝퉁 신관입니다. 3은 천지가 개벽해도 3이지, 3은 1이 되지 못합니다. 한편, 중세 가톨릭 종교인 중 일부가 성경과 삼위일체 해석이 다르다고 하면서 또 다른 해석인 양태론을 내어 놓았습니다. 가톨릭 대사전을 찾아 보니까, 양태론은 4세기 니케아 공의회보다 훨씬 더 앞선 3세기 초에

'프락세아스'가 주창한 이론인데, 양태론 선구자도 태양신 바알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태양신 3신을 믿는 사람들이니까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어쨌건 한국 개신교가 왜 태양신 3신에 해당하는 삼위일체 또는 양태론을 믿으면서 중세 로마 가톨릭 시대를 재연하느냐? 이런 말씀입니다. 3신3체에 해당하는 3신 할머니 믿는 것과 똑같은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가톨릭 대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양태론은 삼위일체에 있어서의 위격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다만 나타나 여러 양태에 지나지 않고, 하나의 성질의 여러 국면이며, 신성한 동일 인격의 발현 에네르기에 지나지 않고, 하느님이 각각 하는 일이 다르게 됨에 따라 그 기능에 따라서 각각 다른 이름이 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역할로서 ‘창조’가 이루어졌고, 성자의 자격으로서 ‘구속’이 행하여졌으며, 성령의 자격으로서 ‘성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영원부터 하나인 하느님은 언제인가 세 인격이 되었으며, 성자가 인간 세상에 오신 일은 성부가 사망했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프락세아스의 성부수난설 이론은 니체아 공의회 이전 시기에 사위일체 교리에 가장 공헌하였다.. 프락세아스의 설은 성부와 성자의 동일성이 너무나 철저하여 성부가 친히 성모 마리아에게 하강하여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며, 그 자신이 수난을 당하고 따라서 성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사전에서 언급한 사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 성모를 두고 말하는데, 3신을 넘어 4신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가톨릭의 실제적인 신관은 사위일체보다는 성부가 교황이고, 성자는 아기 예수이며, 성령의 자리에 성모가 앉아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의 구색을 갖추어 성부는 천주이고, 성자는 아기 예수이며, 성령은 거룩한 영이라고 전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주일성수. 토요 안식일 준수. 맥추절. 사순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대강절. 성탄절 등이 비성경적이라고 바르게 전파해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맹신하거나, 성부가 변하여 성자가 되었고 그 성자가 변하여 성령이 되었다는 양태론을 믿으면, 

구원 즉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양태론자 중에서 성자로 안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짜 아들로 믿는 사람이 있는데, 1이 3으로 양태했다는 해괴망측한 신관이기에 거짓 신관에 해당합니다. 한국 개신교에 몸을 담고 있는 한, 당신은 삼위일체 아니면 양태론에 걸려들 수 밖에 없는데, 모 아니면 도에 걸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5칸을 전진시키는 모가 나오든, 1칸 밖에 움직일 수 없는 도가 나오든, 어떤 일이 최고일지 최악일지 예측할 수 없을 때 하는 말인데, 신구약 성경과 전혀 다른 삼위일체 또는 양태론을 분별 못하고 산다는 것은 영생을 박탈 당하고 세상끝날 지옥불에 태워져 존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무명 전도자가 전하는 이 메시지에 내 영혼의 생명이 달려 있음을 인지하시고 앞에서 말씀드린 비인기, 비영리 제 유튜브방 Heaven or Grave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한 분이나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된 분들은 하단에 링크를 하나 걸어 두겠습니다.

삼위일체 반대하니까 누가 양태론 새끼라고 하거든, 나는 양태론자라고 떳떳이 밝히고 영생을 사단에게 내어 주던지 하십시오! 삼위일체 문제점 설교는 잘 하면서, 정작 자신의 양태론 사상을 은근히 감추기 때문에, 왜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아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양태론은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나누어 믿기 때문에 1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3신입니다. 성자시대로 믿는 무리도 있지만, 하나님의 진짜 아들인 양아들로 믿는 무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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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Noah Bak

* 원제목1: 기독교, 세상종교, 무속인이 국적도 없는 방언및 통역을 하는데 맞나요?

* 원제목2: 진짜 방언은 국적없는 통역 불가능한 소리가 아니다!

                                        ♧ 7분 메시지 url, https://zrr.kr/M3A7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 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교회 안에 쓰나미처럼 덮친 랄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에 대해 논하려고 합니다. 세상종교인들, 무속인과 같은 신접자 즉, 신들린 자를 포함하여 한국 개신교와 동일한 랄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이들 모두에게 허락하신 것입니까? 위키백과에 소개된 일반적인 방언과 성경적인 방언의 정의에 대한 해석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는 것이 피차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시간 소개합니다. 첫쩨, 일반적인 방언의 정의입니다. "방언(方言, 영어: dialect) 또는 표준어가 아닌 지역의 방언인 사투리는 특정 집단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일컫는 말이다. 대개 지역 방언을 의미하지만, 언어학에서는 사회 계층별, 연령대별로도 방언을 나누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 개개인이 사용하는 개인어(idiolect)까지도 방언으로 볼 수 있다. 방언과 언어를 구분하는 기준은 뚜렷하게 정의내리기 힘들다.

민족, 문학 작품의 존재 여부, 타 언어나 타 방언과의 의사소통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으나, 국가 권력에 의해 언어의 지위와 명칭이 결정되는 일도 있기에 “언어란 육군과 해군을 가진 방언”이라는 말도 있다. 예를 들면, 힌디어와 우르두어는 서로 어휘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으로 같은 언어이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로 분류된다. 한편, 중국어는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여러 언어나 방언들을 하나로 묶은 용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베트남, 라오스, 쿠바에서는 정치 이념상의 이유로 하나의 언어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방언은 뜻과 소리가 모두 존재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통용되는 언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외국어인 것입니다. 두째, 성경적인 방언에 대한 정의입니다. "방언(方言, 영어: speaking in tongues, glossolalia)은 기독교에서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 charism)들중 하나로 설명하는 언어의 종교적 현상을 말한다. 보통 화자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외국어'를 의미한다. 방언은 성경에서 '신령한 언어' 등으로 기록되고 표현되어 있다. 이는 '노력 없이도 어떠한 영적 힘에 이끌려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표준어였는데, 문화인은 그리스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는 야만스런 언어로 여겼다. 초기 기독교 교인들에게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 즉, 예수께서 전하라고 하신 진리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도 설파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근거는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성경이 완성되기까지의 방언은 세상나라에서 사용하는 외국어인데,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 말을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는 진리를 알아듣는 기적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초대교회 때에는 성령이 임하여 외국어를 구사하는 기적이 한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은 국적도 없는 희안한 소리이지,

뜻이 없어 의사소통이 안되는 옹아리 수준의 소리 정도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준 영은 성령이 아니라, 악의 영인 사단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을 주고 사단 편으로 끌어 들여 거짓 영에 사로 잡히도록 하려는데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는 7,102개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A라는 외국인은 한국어를 공부하여 능통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었는데, 나중에 들어와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에 있는 B라는 외국인을 위해서는 B가 사용하는 외국어까지 할줄 안다면 통역이 필요없이 의사소통이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을 가지고 창조주 하나님께 비밀 기도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말합니다. 피조물 인간이 7,102개의 세계 각나라 외국어를 선택하여 기도하면 되지, 무슨 비밀로 기도한다고, 허탄한 잡소리에 불과한  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이라는

거짓 영의 주술을 가지고 창조주께 들이대느냐? 이런 말씀입니다. 당장 사단으로부터 받은 가짜 방언및 가짜 통역을 폐기 처분하십시오! 부활 천국 영생을 얻으려면 말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알아듣는 자가 없고 "비밀을 말한다"는 의미는 "영으로 예수 그리스도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성령의 일시적인 역사로서 실제 외국어가 초자연적으로 통용되었다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독교인, 세상종교인, 무속인 등이 받은 방언및 방언 통역은 지절거림에 해당합니다. 악령으로 부터 온 것입니다. 사단의 방언을 성령과 악령으로 다시 나누어 설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사단을 결박시키려면 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을 반드시 받아야 하고 날마다 무시로 랄라 따따따 맘맘마 방언및 통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사단을 결박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단에게 결박당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요한복음 8장 43절에서 47절및 계시록 2장 7절을 읽습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듣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상입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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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 원출처: 이상수 설교가

* 원제목: 나는 스스로 있는 자(창세기 3:14)

* 부제목: 나는 나다 = 에고 에이미 = εγω ειμιI = I Am Who I Am ≠ 삼위일체 ≠ 양태론

♤17분 메시지, https://zrr.kr/sM5T

☞ 원출처 URL(구독, 좋아요): https://zrr.kr/F6RB

[출애굽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 원출처: 이오석 강사 / 인자학

* 원제목1: 신학생에게 권고합니다! 인자학을 배우자! 구원 착각하고 있는데도! 신의 은총이란?

* 원제목2: 인자학으로 나눈다! 주일성수, 십일조 벗어나자! 삼신숭배 버리자!

* 원제목3: 인자학 배우고 구원 받자!  백보좌 심판대를 아는가?

* 부제목1: 신학생, 장로, 집사, 성도, 목사 여러분께 권고합니다!

* 부제목2: 착각 구원, 종교생활, 인자 예수, 백보좌 심판, 지옥불을 아십니까?

♤41분 메시지, https://zrr.kr/LpG5

☞ 원출처 URL: https://zrr.kr/zMJC , https://zrr.kr/rC6d , https://zrr.kr/KTRr ..(총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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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예수천국 불신 유황불지옥 협박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다!

* 원출처: 앤드류강 목사 / 마지막 사명 

* 원제목1: 사람이 죽으면 불멸의 존재가 되나요? 하나님의 창조 공식을 아십니까? 

원제목2: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2)

* 수신자1: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미검증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믿고 전하도록 허용한 목사들!

* 수신자2: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성경처럼 믿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맹신하며 전하는 지체들! 

                                         ♧ 40분 메시지 url, https://zrr.kr/Fpr8

☞ 원출처 url: https://zrr.kr/b2nK , https://zrr.kr/GTcC , https://zrr.kr/6kfv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라스트타임 넷을 운영하시는 앤드류강 목사께서 Q&A 메시지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죽은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무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라는 원제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국내외 한국 개신교 그리스도인 사역자및 기독교 종교단체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특이한 습성이 있는데, 그것은 2천년 전의 유대 민족과 이방 민족 사이에서 성령의 복음 전파 역사가 일어나는 과도기적인 당시 배경도 감안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말 번역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어 버린 나머지, 계시된 진리의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무엇보다도 세상끝날에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일어난 후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고 악인은 영원토록 죽지도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하는 유황불 지옥이 아닌, 단회적으로 지구 전체에 일어나는 지옥불 불가마 속에

부활한 악인들과 끝날에 살아있는 악인들을 깨끗하게 태워서 없애 버리는 불심판을 믿지도 전하지도 않으며, 전하는 공동체를 이단 사이비로 규정하여 회중들을 입단속시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를들면, 이혼이나 재혼을 성경 글자 그대로 지키지 않으면 성경에서 말씀하지도 않은 그러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영원한 유황불 지옥"에 간다고 사기를 치고 있으며, 결혼하지 않는 비혼 즉 독신까지도 지옥간다고 가르치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짓 선생이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자의적으로 푸는 일이 도리어 성령훼방죄가 되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스도인 누구라도 자살 예방에 기도하면서 힘쓰는건 좋은데, 자살하면 영원한 유황불 지옥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한국 개신교가 가장 심각합니다. 주일성수 안하면 유황불 지옥! 십일조 안하면 유황불 지옥! 뭐 안하면 영원한 유황불 지옥!이라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목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중보자의 역할을 하면서 교인 숫자 늘리기 경쟁을 해서라도 재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부자교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세계 천국지옥 신비체험 거짓말 대잔치까지도 100% 수용해서 목사와 성도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 놀이하듯이, 삐끼식 포교짓을 해서 교회로 나오도록 동서남북 해외 오지 구석구석을 뛰어 다니는데, 당신이 교회 나와서 예수 안믿으면 영원한 유황불 지옥 심판받는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국 개신교 특유의 새빨간 거짓말을 해대고 있습니다. 사단의 회당입니다. 태양신 바알을 숭배하는 이세벨을 추종하는 집단입니다. 강도의 소굴입니다. 사기꾼 집단 공동체입니다. 저는 40년간 한국 개신교 골수분자 열심당이었고 어마무시한 가짜 교리들을 가지고 포교해 왔던 교회 호객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성령께서 저를 그곳에서 나오도록 강력하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근본이 개신교 사람입니다. 다만,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벗어 버린 다메섹 도상 이후의 바울의 복음을 쫒아가는 사람입니다. 40일 40주야로 물심판 전까지 120년 동안 방주를 예비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한 노아를 쫒고 있는 사람이며, 신약의 사도들이

마지막 단1회의 지옥불 불심판을 전한 메시지를 믿고 따르고 있으며 이를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론이 조금 길어진 점 많은 이해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지막 사명'의  앤드류강 목사님의 메시지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의 원어가 말하는 “영혼”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즉, 네피쉬가 된지라.” 성경은 완성된 인간 창조물을 가리켜 “생령”즉,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구약 성경에서는 히브리어로 “네페쉬”(nephesh)라는 단어로 표현했고, 신약 성경에서는 헬라어로 “프쉬케”(psuche)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 두 원어는 모두 “숨 쉬며 살아있는 존재” 또는 “생명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네페쉬=프쉬케=살아있는 영혼=생명체=사람). 그래서, 새번역 성경에서는 혼이나 영이라는 표현 대신에 “생명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원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습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호흡”이라는 뜻을 가진 “루아흐”와 “프뉴마”를 잘못 번역함으로써 생긴 오해가, “생명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잘못 번역함으로써 똑같이 오역한 것입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한 성경 말씀을 번역하면서 왜 이런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었을까요? 왜냐하면, “영혼”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에 맞추어서 성경을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두째, “영혼”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입니다. “생명”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종종 “영혼”으로 번역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의미를 크게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잘못 번역된 말씀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영혼”을 불멸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혼이나 연기같은 존재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라는 말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경은 단 한 번도 영혼을 불멸이나 죽지 않는 연기같은 존재로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의 원어인 “네페쉬”는, 구약에 기록된 총 754회 중에서 22회는 “새. 물고기. 짐승” 등을 가리켰으며, 7회는 사람과 짐승을 동시에 가리켰고, 절반 이상은 “영혼”(soul)으로 오역되었습니다. “네페쉬”의 참뜻인 “생명”(life)으로는 119회만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네페쉬”와 동의어인 신약 성경의 “프쉬케”는 총 105회 사용되었는데, 번역하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서 “생명”으로 40회, “마음”으로는 3회가 번역되었고, “영혼”이란 말로는 58회나 오역되었습니다. 이러한 번역 상의 심각한 문제 때문에, 사람이 죽는 순간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서 불멸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면서, 영혼불멸설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말씀! “몸은 죽여도 영혼 즉, 프쉬케는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 즉, 프쉬케를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영혼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성경 구절을 지적하면서,

“몸은 죽어도 영혼은 몸으로부터 빠져나가기 때문에 결코 죽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이어지는 성경 구절을 읽을 때 쉽게 풀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39절 말씀! “자기 목숨 즉, 프쉬케를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 즉, 프쉬케를 잃는 자는 얻으리라.” 28절에서는 “영혼”으로 잘못 번역되었던 “프쉬케”가 39절에서는 “목숨”, 즉 “생명”(life)으로 올바르게 번역되었습니다. 왜 계속해서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까? 죽음과 영혼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견해에 맞추어서 번역하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성경을 재번역할 때 이런 부분을 바로 잡아야만 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 9절 10절 말씀!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 즉, 프쉬케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이 장면은 일곱인 예언의 다섯째 인에 나오는 장면인데, 중세 로마 시대에 죽임을 당했던 순교자들의 영혼이 부르짖는 모습입니다. 중세기 천주교회는 종교재판소라는 것을 만들어서 수많은 성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진리를 따른다는 이유 때문에 약 5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 핍박의 시대가 끝나면서 중세 로마 시대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 탄원하는 장면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실제로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 외치는 장면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연기처럼 그 혼이 빠져나가서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는 순간에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서 불멸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기에 나온 영혼들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인데, 그들의 영혼은 하늘에서 자신들의 원통함을 부르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이 말씀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중세기에 죽은 순교자가 5천만 이상이나 되는데, 그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조그만 제단 아래 모여서 탄원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순교자들이 하늘에서 연기처럼 존재하는 영혼들이라면, 어떻게 영혼들이 흰 두루마기를 입을 수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6장 11절 12절을 읽습니다.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이 실제 장면인지 상징적인 표현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다섯째 인에 나오는 영혼들은 실제로 살아있는 존재들입니까? 아니면, 중세 로마 시대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9절에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제단은 어떤 제단입니까? 성소에는 두 가지 제단이 있습니다.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이 있고, 성소 안에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희생 제물로 드려진 양이 죽임을 당하고 그 피를 쏟는 곳은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입니다. 그러므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는 말씀은 중세기 성도들이 순교할 때 번제단 아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희생의 피를 흘린 것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실제로 번제단 아래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순교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은유와 상징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을 책망할 때도 하나님께서 은유와 상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4장 10절 말씀!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아벨)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였느니라.” 이 말씀도 실제로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벨의 억울한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상징과 은유로 해석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죽은 순교자들이 탄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서 9장 5절 말씀!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편 6편 5절 말씀!

“사망 중에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시편 146편 4절 말씀! “그 호흡이 끊어지면(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죽는 그날에) 그 도모(계획, plan)가 소멸하리로다.” 아멘입니다. 성경에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기억도 못하고, 계획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호소한다는 말씀은 상징적인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의 주석가인 아담 클락 박사도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한은 상징적인 계시 가운데 제단을 보았다.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순교를 당한 성도들로서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거짓 가르침들 때문에 희생당한 자들을 표상한다. 왜냐하면, 이 제단은 이 땅에 있는 제단을 말하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제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편집인 주, 아담 클락 박사도 성도들의 순교를 이 땅의 제단에서 희생당하는 것으로 해석했음).”(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들, p.433). 요한계시록 6장 11절을 가지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서 흰 두루마기, 흰 옷, 흰 세마포는 모두 순결과 승리와 구원을 상징하는 의의 옷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순교당한 성도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잠시동안 쉬라”고 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승리와 구원을 나타내는 흰 두루마기를 받았는데, 왜 잠시동안 쉬어야 합니까? 왜냐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죽은 성도를 부활시키고 영생의 보상을 주실 때까지 잠시 무덤에서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 신앙입니다. 죽은 의인들은 구원의 증거인 “흰 두루마기”를 받고 무덤 속에서 쉬면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나팔같은 소리로 죽은 의인들을 부르시면, 그때 무덤이 열리면서 부활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절 16절 17절 말씀!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 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쫒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부활),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셋째,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 대한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꼭 나오는 것이 누가복음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비유입니까?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장면입니까?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실제로 해석하게 되면, 지옥에 있는 부자와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이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천국에 간 나사로가 손끝으로 물을 찍어서 지옥에 있는 부자의 혀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시원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천국에 간 의인과 지옥 불구덩이에서 지글지글 타는 악인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며 물을 찍어서 혀에 묻혀주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런 장소가 과연 천국이 될 수나 있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자녀, 남편, 아내를 보면서 영원토록 살아야 한다면,

그 곳이 정말 천국이 될 수 있느냐? 이런 말씀입니다. 그 곳은 천국이 아니라, 고문이고 형벌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실화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성품과 기독교 신앙 자체가 이상하게 됩니다. 한번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떤 젊은 목사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 교회에서 나이 많은 장로들이 문병을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해 주려고 하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믿음이 좋은 장로님들이 먼저 천국에 가야 하는데 젊은 제가 먼저 가게 되어 죄송합니다. 몸은 죽지만, 제 영혼은 곧바로 하늘에 가서 주님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믿음이 정말 성경적인 믿음입니까? 만일, 사람이 죽는 순간에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와서 의인들은 하늘에 가고 악인들은 지옥으로 간다면,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나 의인들의 영혼은 지금 하늘에 있어야 하며, 악인들의 영혼은 지옥에 있어야 합니다. 정말 그런 것입니까? 성경에서 죽은 자의

현주소를 찾아보겠습니다. 넷째, 죽은 의인들이 있는 곳은 무덤 속인가? 아니면, 천국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죽은 지 900년 이상이나 되는 다윗에 대해서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4절 말씀!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윗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는 순간에 의인의 영혼은 즉시로 몸을 빠져나와서 천국에 갔다면, 왜 베드로가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을 했습니까? 다윗이 죽고난 후 9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윗은 천국에 올라가서 영생의 복을 누리지 못했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다윗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9절과 34절 말씀!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합니까? 베드로는 다윗이 지금 무덤 속에 있으며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선언했습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의인도 아직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는데, 누가 다윗보다 먼저 천국에 간단 말입니까? 요즘 신문에 나오는 부고 광고를 보면, “000님의 영혼이 소천하셨습니다”라고 나오는데, 그것은 성경적인 부고 광고가 아닙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한 깊은 오해를 갖고 있는 분들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사도 베드로는 진실을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다윗도 죽은지 700년이 지났지만 무덤 속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의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다윗처럼 그들도 무덤 속에서 쉬면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은 의인들의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 말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되..” 히브리서 11장에서 바울은 믿음의 조상인 아벨. 에녹.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을 열거하면서, 그런 믿음의 조상들도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다가 죽었지만,

아직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구약 시대 믿음의 조상들도 다윗처럼 무덤 속에 누워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 받게 될 부활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의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과 영생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4절 말씀입니다.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마태복음 16장 27절 말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성도 여러분! 이 말씀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의인들을 부활시킬 때까지 아무도 보상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아무도 하늘이나 지옥에 먼저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재림의 날까지 죽은 의인들은 어디에 있게 됩니까? 무덤 속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무덤 속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몸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생명의 호흡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무덤 속에서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보상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11장 23절 24절 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말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 성도들은 어떤 모습으로 보상을 받게 됩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1절 52절 53절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28절 2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의인들은 예수 재림 때까지 무덤 속에서 “생명의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다섯째, 죽은 악인들이 있는 곳은 무덤 속인가? 아니면, 지옥불 속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악인들이 죽었을 때 영혼이 즉시로 몸을 빠져나가 지옥의 유황불에 들어가서 형벌을 받게 됩니까?라는 이런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43절 말씀!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악인의 혼이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두 손”을 가진 몸이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도, 예수께서는 “온 몸”이 지옥불에 던지운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악인의 혼이 아니라, 몸이 유황불 속에서 형벌을 받으면서 태워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30절 말씀!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그러므로, 악인이 죽을 때 영혼이 소리 없이 몸을 빠져 나가서 지옥불에서 형벌받는 것이 아니라, 몸이 형벌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의인들이 부활해서 몸으로 천국에 가는 것처럼, 악인들도 부활해서 몸으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악인들의 부활에 대해서 다음과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15절 말씀!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의인에게 부활이 있는 것처럼 악인에게도 부활이 있는데, 예수께서는 악인의 부활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8절 29절 말씀!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의인들은 예수 재림 때까지 무덤 속에서 “생명의 부활”을 기다리게 되며,

악인들 역시도 무덤 속에서 “심판의 부활”을 기다리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죽는 순간에 영혼이 몸을 살짝 빠져 나가서 의인은 천국에 가고 악인은 지옥에 간다면, 부활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천국과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다시 지구로 불러 내려서 무덤 속에 들어가게 하여 부활시킨 다음에, 공중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처럼 영접하고 다시 천국과 지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이야기입니까? 이제 여러분들이 판단해서 각자 대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죽은 의인과 악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덤 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천국이나 지옥에 있습니까?” 여섯째, 데리고 오는 것인가? 데리고 가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의인이 죽으면 영혼이 연기처럼 빠져 나가 천국에 간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제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말씀!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천국에서 자는 자들을 함께 데리고 오시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천국에서 자는 자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도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아야만 올바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데리고 온다”는 말은 헬라어로 “악세이”인데, 그 의미를 찾아보면 “데리고 가다” 또는 “데리고 오다”입니다. “악세이”는 “간다”는 의미와 “온다”는 의미를 다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 “데리고 온다”로 번역했습니까? 왜냐하면, 성경의 번역자가 “의인이 죽으면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천국에 간다”는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들을 “데리고 온다”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 문제를 수정해서 올바로 번역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죽어서 세상을 떠난 모든 그리스도인도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늘에서 자고 있는 의인들의 영혼을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자는 의인들을 부활시켜서 하늘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악세이”를 “데리고 간다”로 번역해야만 15절부터 이어지는 말씀과도 문맥이 정확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17절 말씀!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쫒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죽은 자들은 부활의 순간까지 무덤 속에서 어떤 상태로 있습니까? 성경은 죽음을 “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잠”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적합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죽은 자를 가리키면서 “잠자고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마태복음 9장 24절 말씀!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다니엘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흙으로 돌아간 죽은 자들이 잠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 12장 1절 2절 말씀!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성경에서 성령께로부터 복음을 받아 쓴 저자들은 왜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했습니까? 몹시 피곤에 지쳐서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눕자마자 깊이 잠들게 되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면 긴 밤이 마치 한순간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자신이 잠든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깊은 무의식 세계 속에서 잠을 잔 것입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죽음을 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죽음은 마치 잠과 같아서 시간과 공간과 주변 사물을 전혀 의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죽음이라는 잠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죽는 순간부터 부활할 때까지를 “순간”처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째,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의 상태입니다. 일곱째의 1번, 자식이 잘되고 못 되는 것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욥기 14장 21절 말씀! “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일곱째의 2번, 일체의 감정과 의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9장 5절 말씀!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시편 146편 4절 말씀!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plan, 계획)가 소멸하리로다.” 일곱째의 3번, 무활동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9장 10절 말씀!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나니..” 일곱째의 4번,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시편 6편 5절 말씀! “사망 중에서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 즉, 무덤. grave에서 주께 감사할 자가 누구리이까?”시편 30편 9절 말씀!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시편 115편 17절 말씀!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이사야 38장 18절 19절 말씀! “음부 즉, 무덤이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죽음은 이런 상태로 들어가는 것인데, 어떻게 영혼이 살아있어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까? 눈을 떠서 성경을 읽고, 성령의 음성에 들을 귀가 있는 성도들은 죽음과 영혼에 대한 진리를 반드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죽음 이후의 상태를 “잠”(sleep)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를 풀어줍니다. 오늘날 기독교 뿐만 아니라, 여타의 종교계에 공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죽음 이후에도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오직 성경에서만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9장 5절 6절과 10절을 읽겠습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 즉,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분명한 말씀이 있는데 누가 감히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서 느끼고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 너무나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분명한 성경 말씀을 눈 앞에 보여줘도 진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마치 성경에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라는 말씀이 있는 것처럼 무조건 믿고 따라갑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교와 불교와 미신에서 가르치는 “죽은 자의 영혼은 살아 있다”라는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의인들이 죽는 순간에 하늘나라로 인도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큰 소리로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죽은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편 115편 17절 말씀!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시편 6편 5절 말씀!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가 누구리이까?” 여덟째, 사도 바울의 장례식 설교입니다. 신문에 가끔 실리는 장례 광고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게 됩니다. “000님께서는 향년 89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가셨기에 이에 부고합니다.” 동시에, 장례식장에서 “성도님의 영혼이 훨훨 날아서 하늘로 올라갔으니 후에 하늘에 가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위로하는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들의 영혼은 하늘에

지금 올라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라는 것으로 장례 설교를 끝마쳤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유가족을 위로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17절 18절 말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 말씀에서 바울은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장례 설교에서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을 쉽게 넘기면 안됩니다. 언제부터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까? 성도들이 부활해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때부터 “항상 주님과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유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소망입니다. 죽은 가족의 영혼이 연기처럼 몸을 떠나서 천국에 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식의 설교는

유가족들에게 아무런 위로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부활 신앙과도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했을 때,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 지상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이 세상에서 겪는 마음 아픈 상황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유가족들에게 참된 위안을 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죽음과 무덤이 끝이 아니라는 소망이 가득한 진리를 설교했습니다. 바울은 유가족들에게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는 부활을 말하면서 위로했습니다. 부활의 날에 의인들은 불멸의 몸을 선물로 받을 것인데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52절 53절 말씀을 읽습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모든 죽은 자들은 완전한 무의식 세계 속에서 잠을 자다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종 선고를 듣기 위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이 1,000년 전에 잠들었든, 아니면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하루 전에 잠들었든, 그들에게 있어서 부활하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0.01초도 안되는 “찰나”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썩어서 부패하여 흙으로 돌아간 시체들을 어떻게 회복시키실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염려합니다. 물론, 어떤 시체들은 폭탄에 맞아서 흩어지고, 어떤 시체들은 불에 타고, 어떤 사람들은 깊은 바다에 빠져서 수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 한마디로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께서 각 사람의 모습과 개성을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을 완전하게 부활시키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죽은 자들은 완전한 무의식 속에서 부활의 시간까지 “잠”을 자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메시지를 듣고 계시는 여러분들이나

뭇 심령들께서 대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무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앤드류강 목사 설교 마지막 시간으로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죽은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무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보내드렸습니다. 혹시, 국내외 한국 개신교및 이단 사이비로 불리우는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서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한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를 걸어 두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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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예수천국 불신 유황불지옥 협박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다!

* 원출처: 앤드류강 목사 / 마지막 사명 

* 원제목1: 사람이 죽으면 불멸의 존재가 되나요? 하나님의 창조 공식을 아십니까? 

원제목2: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1)

* 수신자1: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미검증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믿고 전하도록 허용한 목사들!

* 수신자2: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성경처럼 믿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맹신하며 전하는 지체들! 

                                         ♧ 32분 메시지 url, https://zrr.kr/SY1w

☞ 원출처 url: https://zrr.kr/Ds2W , https://zrr.kr/xKtb , https://zrr.kr/sEXv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라스트타임 넷을 운영하시는 앤드류강 목사께서 Q&A 메시지 "사람이 죽으면 불멸의 존재가 되나요? 하나님의 창조 공식을 아십니까?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라는 원제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국내외 한국 개신교 그리스도인 사역자및 기독교 종교단체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전도자의 한사람으로서 여러분들께 성경을 근거하여 진솔하게 말씀드린다면, "영원히 불타는 유황불 지옥"은 이집트 헬라 철학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이 세상 종교들마다 인과응보의 신, 권선징악의 신을 내세워서 선한 자는 극락이나 천국과 같은 내세로 간다고 말하고, 악한 자는 영원히 펄펄 끓는 불지옥에 처하여 영원토록 고통 받는다고 철학을 교리화하여 말하고 있지만, 곧이 곧대로 그렇게 믿는 종교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국내외 한국 개신교가 기염을 토하면서 협박 공갈 수준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무대뽀로 전파하게 하여 교단 교파 교회에 사람 수 끌어 모아 부흥해 보려는 목적으로 악용 내지는 오남용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국내와 해외 한국 개신교 사람들은

영원토록 죽지 못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불지옥 거짓말을 하는데, 교회로 나와 예수 안믿으면 영원한 유황불 지옥간다고 사기면서 닥치는대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가지고 포교짓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복음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라는대로 하면 천국! 교회가 하라는 것을 안하면 지옥! 이런 식입니다.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사람의 영혼을 친히 구원하는 분은 창조주 예수님이시지, 한국교회 다니는 성도. 집사. 장로. 목사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오지랖 넓게 동서남북 다니면서 교회 나가라고 삐끼식 포교 즉, 포섭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중동 나라에 들어 가거나, 북한에 몰래 들어가서, 호화 술집에 들어가서 덮어놓고 성경책과 교회 전도지를 준다고 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전도가 결단코 아닙니다. 아니, 그것이 기회와 동기가 되어 예수믿을 수도 있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태양신 바알 3신을 믿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 천지인데, 그딴 교회에 나가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Heaven or Grave 유튜브방에 들어 오셔서 삼위일체와 양태론 관련 제목을 찾아 별도 시간에 청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지막 사명'의  앤드류강 목사님의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이 문제의 중심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속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원히 존재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 말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이 유지되지만, 불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영원불멸의 조건입니다. 그것을 잘 아는 사단은 뱀을 매체로 이용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로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결국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거짓말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사람의 운명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죄가 지구에 들어오기 전에는 에덴 동산에 낙엽도 없었고 동물끼리 서로 죽이는 약육강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가시나무와 독초들이 자라나게 되었고 동물들의 성질이 사나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죄는 즉시 자연계에 무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영향은 인간에게도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유전자가 노화되기 시작했으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도 혼이 연기처럼 몸을 빠져나가서 영원히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죽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도 하나님처럼 영원불멸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하지만, 성경에서는 영원불멸의 속성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 말씀! “오직 그 즉,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첫째, 영원불멸의 속성을 받는 날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죽지 않을 영원불멸의 본성을 가질 수 있는 소망의 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날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인들이 영원불멸의 생명을 받는 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52절 53절 말씀! “그리스도 재림의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몇 년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에 어떤 목사가 “죽음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기고했는데, 그는 거기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죽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며, 이전에 알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죽음 이후에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이런 설교를 듣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영혼은 영원토록 불멸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불멸의 속성은 사람이 죽을 때 받는 속성이 아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한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선물입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무덤에서 부활한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불멸의 속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 신앙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의인이 죽은 후 영혼이 곧바로 하늘로 올라간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에서 환호하면서 일어나는 의인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하늘에 가 있던 의인의 영혼들이 다시 죽은 시체 속으로 들어가서 무덤 속에 누워 있다가 부활하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 신앙은 코메디가 되어 버립니다. 온 우주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도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해서 충성을 바친 의인의 부활과 영생을 그렇게 계획하셨다고 믿으십니까? 편견을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모습과

성품을 온전히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각자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영원불멸의 속성을 받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까?” 만일 영혼이 불멸하는 것이 아니라면, 죽음 이후에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성경 속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죽음에 대한 정의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말씀이 전도서에 나옵니다. 전도서 12장 7절 말씀! “흙은 예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 즉, spirit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모든 사람은 그가 악인이든지 의인이든지간에 죽었을 때 “흙은 예전에 있던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표현된 “영”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알아보기 전에, 사람이 태초에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창조의 역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살펴보면, 인간이 죽을 때 어떤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째, 사람의 창조 공식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 즉, life of breath, 생명의 호흡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즉, living soul, 살아있는 영혼이 된지라.” 아멘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창조 공식은 흙 + 생기 즉, 생명의 호흡 = 생령 = 살아있는 영혼 즉, living soul = 인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생명을 가진 인간을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 성경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용하신 재료는 오직 두 가지, “흙”과 “생명의 호흡”입니다. 흙으로 몸을 만드신 후 하나님께서 직접 아담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니까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창조하신 공식은, 흙 즉, 몸+생명의 호흡 =

생명체 즉, 살아있는 영혼 =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람”이나 “인격체”를 “영혼”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사기 5장 21절 말씀!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시편 103편 1절 말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누가복음 1장 46절 말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이 성경 구절에 나오는 “영혼”이라는 단어는 사람 속에 들어있는 “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 즉,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은 몸 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자, 사람이 살아있는 영혼 즉, 생령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 속에 영혼을 집어넣었다는 거짓말을 기독교회 전체에 퍼트렸습니다. 셋째, 사단의 거짓 공식은 흙 즉, 몸 + 영혼 즉, 사람 몸 속에 있는 연기 같은 존재 = 사람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사단의 공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연기처럼 몸에서 빠져나가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헷갈리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죽을 때 영혼이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호흡이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인간의 몸 속에는 영혼이 있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간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몸 안에 “영혼”이 들어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런 미신적인 가르침이 기독교회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두 가지 재료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넷째의 1번, 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몸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죽은 시체가 부패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몸을 구성하는 화학적인 성분이 흙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시체가 땅에 묻히면, 몸은 태초에 창조주께서 땅에서 취하셨던 그 화학적 요소들을 다시 땅으로 되돌려주게 됩니다. 전도서 12장 7절 말씀입니다. “흙은 예전에 있던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넷째의 2번, 생명의 호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눈과 귀와 코와 모든 내장과 심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서 움직이고 활동하려면 생명력이 주입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포에 생명력을 제공하고, 심장을 박동케 하고, 호흡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생명의 호흡”을 코에 불어넣으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life of breath, 생명의 호흡)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soul, 살아있는 영혼)이 된지라.” “생기”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느샤마”(neshamah)인데, 그 의미는 “생명의 호흡”(life of breath)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느샤마”는 “호흡”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욥기 33장 4절 말씀!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neshamah)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 이사야 2장 22절 말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neshamah)은 코에 있나니..” 열왕기상 17장 17절 말씀!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neshamah)이 끊어진지라.” 넷째의 3번, 사람의 죽음입니다. 두 가지로 만들었으니, 두 가지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죽음은 창조의 역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두 가지 재료인 흙과 생명의 호흡을 사용하셨으므로, 인간이 죽어서 땅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용하셨던 두 가지 재료(흙과 생명의 호흡)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사용하셨던 두 가지 재료 이 외의 어떤 것도 인간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의 반대 과정인 죽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 = 흙 + 생명의 호흡 = 사람인데, 죽음 = 사람 – 생명의 호흡 = 흙이 됩니다. 그렇다면, 전도서 12장 7절 후반부에 나오는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죽는 순간에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사용했던 두 가지 재료 중에서 “몸”은 부패돼서

원래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명의 호흡”도 처음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생명의 호흡”이라고 표현되었던 것이 전도서 12장 7절에서는 “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을 “호흡”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전도서 2장 7절 말씀!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 즉, 호흡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사람이 죽을 때 “호흡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뜻이지, “호흡”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어딘가에 보관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음 = 사람 – 생명의 호흡 즉, 하나님께로 돌아감 = 몸 즉, 흙으로 돌아감입니다. 창세기 2장 7절과 전도서 12장 7절을 비교하면 말씀의 평행 구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은 “생명의 호흡”(life of breath)과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spirit)이 성경에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오직 하나, “생명의 호흡”입니다. 어떤 영혼이나 혼이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대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죽는 순간에 무엇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까?” 영혼이 몸에서 소리없이 빠져나갑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호흡”입니까? 전구 + 전류 = 빛과 같은 이치입니다. 죽음에 대한 진리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구에 전류가 흐르면 빛이 나오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가면 생명이 있는 사람 즉, 살아있는 영혼이 됩니다. 사람의 몸을 전구라고 가정하고(전구=몸), 그 속에 흐르는 전류는 하나님께서 몸 속에 불어넣으신 생명의 호흡으로 생각하면(전류=생명의 호흡), 전구에서 비쳐 나오는 빛은 몸과 호흡이 합쳐졌을 때에 사람이 된 영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구 즉, 몸 + 전류 즉, 생명의 호흡 = 빛 즉, 영혼 또는 사람 의 공식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반짝거리는 빛을 볼 때, 우리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를 연상케 하는 매우 좋은 표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스위치를 내려서 빛이 꺼졌다고 합시다.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에 빛은 어디로 갔습니까? 빛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더이상 전류가 전구에 흐르지 않기 때문에 스위치를 내림과 동시에 빛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런 전구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몸에서 호흡이 끊어지면, 영혼(빛=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살아있는 영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죽었던 자들의 몸에 다시 생명의 호흡(전류)을 넣어주실 때까지 영혼(빛=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올림으로써 다시 생명이 흐를 때까지 영혼(빛=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올리셔서 다시 영혼(빛=사람)을 회복시키는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52절 53절 말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셨을 때 오장육부가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고, 뇌가 있었지만 생각과 개성과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에 생명의 호흡을 주시자, 즉시로 사람은 “살아있는 영혼(생령)”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생명의 호흡)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살아있는 영혼)이 된지라.”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영혼(생령=사람)은 몸과 생명의 호흡이 결합함으로써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사라지는 때는 언제입니까? 몸과 호흡의 결합 상태가 깨질 때입니다. 죽음이란, 몸과 호흡의 결합 상태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은 즉시로 사라져 버립니다. 스위치를 내리면, 전구를 흐르던 전류가 중단되어 빛이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이 죽어서 생명의 호흡이 끊어지면 영혼(사람)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의 어떤 곳에도 영혼이 몸 없이 떠돌아 다닌다거나,

몸 없이 계속 존재한다는 말씀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호흡(생명력)이 끊어져 몸과 호흡의 결합 관계가 깨어지면, 단 한순간도 영혼(생명체)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때 몸도 호흡과 결합되기 이전의 상태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호흡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메시지에서는 “호흡”이 “영”으로 번역된 단어의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또는 신약 성경의 헬라어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이 두 단어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섯째, 구약 성경의 “루아흐”에 대한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사람이 죽을 때 마치 영혼이나 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루아흐”(ruach)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루아흐”의 뜻은 “성령. 호흡. 바람. 기운”이며,

구약 성경 전체에 총 389회나 등장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루아흐”는 “성령”이라는 의미로 94회 사용되었으며, 그 이외에는 번역하는 사람이 죽음과 영혼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에 따라서 “신. 영혼. 영. 호흡. 생기. 기운. 정신. 마음” 등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 이상한 오해를 하게 됩니다. “루아흐”가 “성령”으로 번역될 경우를 제외하고, 죽음과 생명을 묘사하는 성경 구절에 나오는 “루아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명의 호흡” 또는 “생기”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구약 성경에서 히브리 원어인 “루아흐”는 어떻게 번역되었으며 또한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에서 “루아흐”는 “영”으로 번역되었지만, “루아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코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명의 호흡”을 뜻합니다.

죽을 때 “생명의 호흡(루아흐)이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마치 영혼이 연기처럼 몸을 빠져 나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처럼 번역함으로써 큰 혼돈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이 모든 사람의 죽음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악인의 영혼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 됩니다. 시편 146편 4절 말씀! “그 호흡(루아흐)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계획)가 소멸하리라.” 이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사람이 세워놓은 계획은 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죽음을 설명하는 이 성경 구절에서는 “루아흐”가 “호흡”이라는 단어로 올바르게 번역됨으로써, 창세기 2장 7절의 창조 공식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7장 5절 말씀! “내가 생기(루아흐)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는 모습을 상징하는 이 말씀에서는 “루아흐”가 “생기”로 올바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는 “루아흐”를 “생명의 호흡”으로 번역했습니다.

에스겔 37장 5절 현대어 성경입니다. “내가 너희 속에 생명의 숨(루아흐)을 불어넣겠다.” 욥기 27장 3절 현대어 성경입니다.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루아흐)이 내 코에 있느니라.” 만일 이 말씀에서 루아흐를 “영혼”이라고 번역했다면 “영혼이 내 코에 있느니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우습게 되겠습니까?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숨결(루아흐)”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코에 불어넣으셨던 그 “생명의 호흡”을 뜻합니다. 전도서 3장 19절 말씀입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루아흐)이 있어서 동일한 죽음으로 저도 죽으니..”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짐승도 사람처럼 죽을 때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짐승에게 어떤 형태의 혼이나 정신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으므로,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의 호흡”이지, 영혼이나 혼백으로 볼 수 없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 다른 것일 뿐,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서 짐승과 사람은 “동일한 호흡(루아흐)”이 있고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루아흐”를 “영혼”으로 번역한다면, 짐승과 사람에게 모두 영혼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됩니까? “루아흐”를 모두 “영혼”으로 번역하면 이런 문제들이 수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전도서 12장 7절의 완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했던 솔로몬의 말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몸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루아흐”를 어떤 의식을 가진 “혼이나 귀신”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히브리 원어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영”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서 빚어진 오해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해서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 당시에 사용했던 “흙과 생명의 호흡” 외에 어떤 것도 가감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고 죽음을 묘사했을 때, 그는 생명의 호흡이 그것을 주신 분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호흡”만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신약 성경의 “프뉴마”에 대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서 “호흡. 바람. 생기. 성령”을 뜻하는 “루아흐”가 신약 성경에서는 “프뉴마”(pneuma)라는 단어로 385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프뉴마”는 성령이나 악한 영으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하는 사람의 사상과 주관에 따라서 “영. 마음. 심령. 정신. 바람”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심지어는 “영혼”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는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고보 2장 26절 말씀! “영혼(프뉴마)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영혼”이라는 말을 성경의 난외 주에서 찾아보면, “호흡(breath)을 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 “영”이라는 표현이 “생명의 호흡”을 뜻했던 것처럼, 이 말씀에서도 “영혼”이라는 표현이 “호흡”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호흡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 말씀!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영혼(프뉴마)이 떠나시다.” 이 말씀은 십자가에 매어 달린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프뉴마”가 “영혼”으로 잘못 번역되었기 때문에, 마치 예수께서 죽는 순간에 그 분의 혼이 몸을 빠져나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다시 한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라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 말씀!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프뉴마)을 받으시옵소서!” 이 말씀은 스데반의 생명이 끊어질 때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치 스데반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389회 쓰여진 “루아흐” 그리고 신약에서 385회 쓰여진 “프뉴마”가 한글 성경에서는 “신. 영. 영혼”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원어 의미를 살펴보면, 그것이 “성령”을 가리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연관되어 사용되는 경우에는 단 한 번도 불멸하거나 죽은 시체에서 연기처럼 몸을 빠져나가는 “영혼”을 의미하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한 진실을 정말 알기 원하시는 분들은 “신. 영. 영혼”이라고 번역된 말의 원어적 의미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죽음에 대하여 오해할 수 없으며, 죽는 순간에 사람의 혼이 소리 없이 빠져나가 허공을 떠돌아 다니게 된다는 미신에 빠져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메시지를 듣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영”이나 “영혼”으로 번역된 원어가 “호흡”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앤드류강 목사의 두번째 메시지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죽은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무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 국내외 한국 개신교및 이단 사이비로 불리우는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서 가나안 성도가 되기로 결심한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를 걸어 두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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