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한국 기독교 '김종설' 형제의 "개혁이 필요한 비성경적 종교적 관습"에 대한 글 메시지, 오늘은 마지막 5부 시간입니다. 미국의 독립 침례교회 목사들 중에 대부분은 일년치 설교 계획을 미리 세워놓고, 그 계획에 따라 미리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말씀 강론할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점은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스물 여섯째, 찬양 연습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거룩한 옷(찬양대 가운)을 입고 더러운 곳에 갔다 왔다면서, 장로에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레위기 6장 10절 11절 말씀!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 갈 것이요." 그렇다고, 지금이 구약시대입니까? 그리고, 대한민국 여기가 이스라엘입니까? 스물 일곱째, 예배당 앞에 나와서 찬양을 하는데 인원이 좀 많아서
작은 강대상을 약간 뒤로 밀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옮긴다며 야단을 치는 장로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당에서는 그 자리를 "모세의 자리(Moses' seat)"라고 하지만, 강대상을 법궤라고 주장하는 곳은 한국 밖에 없습니다.스물 여덟째,한국교회에서는 주일성수나 토요 안식일 준수를 가르칩니다. 일요일이나 토요일을 구약의 안식일처럼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전통이지만, 신약 성경에서의 날들을 거룩한 날과 속된 날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로 나누지 않습니다. 왜 일주일 중에 하루만 하나님께 드리고, 엿새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탄에게 바치려고 합니까? 우리는 일주일 모두를 거룩하게 살아야하며, 아무 날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말씀받고 서로 교제하는 일로 보내야 합니다. 일요일이라는 요일 자체에 어떤 주술적인 효험이 있다거나, 그 날이 본질적인 면에서 다른 날보다 특별히 더 거룩한 날이라는 가르침은 성경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물 아홉째,교인에게 어린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데려오라고 부탁하면 하나님이 그 애를
택하셨다면 언젠가는 불러 주시겠지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칼빈주의 운명론을 열심히 가르친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설흔째,교인 중 누군가가 병들었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희도 기도할께요"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것은 "수고하셨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God bless you."와 같이, 서로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관례적인 표현일 뿐, 정말 간절하게 기도해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설흔 한째,목사가 교회에서 필요한 일을 맡아달라고 하면, "한 번 기도하면서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자기가 모든 일을 기도로 결정하는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비쳐지기를 원할 뿐, 실제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는 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체면도 세우고 상대방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그 제안을 잘 거절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말하지만, 실제로 언제 어느 식당에서 만나자고 연락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한 번 기도해 봅시다"라고 말해놓고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놓고 기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도 응답 결과는 대부분 자기에게 편리한 쪽으로 판가름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러분! 계속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중략) 창조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없으면, 그 자리에다 사람이 만든 관습과 전통이 대신 자리잡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잘못된 관행과 율법적인 요소를 버리고 새롭게 변화를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 예수 진리 복음을 만나야 합니다. 전도자의 권면입니다. 1부에서 5부를 들으시고 여러분이 하실 일은 한국 개신교및 한국 기독교 종교단체 조직. 직분. 예배. 봉사 등의 활동을 깨끗하게 버리고 가나안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마지막 5부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개신교는 99.9999% 구원이 없습니다. 개신교는 성경 정통이 아니며, 이단 사이비 일 뿐입니다.
1. 삼위일체는 국내외 한국 개신교의 약 70%가 "이세벨이 시돈의 바알과 아세라 신을 이스라엘에 들여와 여호와(창조주)의 신앙을 말살시키려고 우상 신을 믿게 한 것"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중세 가톨릭 시대에 태양신 바알 3신을 믿었던 황제와 종교인들이 사단의 가르침을 받아, 신구약 성경에 계시한 "한분 하나님"을 조작하여 가톨릭의 신을 만들어 전세계에 3신을 전파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한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예수이시지, 아버지 아들 성령 따로가 아닙니다.
2. 양태론은 국내외 한국 개신교의 약 30%가 "중세 가톨릭 시대에 태양신 바알 3신을 믿었던 종교인들의 다른 분파가 삼위일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시대별로 각각 나타난 하나님들이라고 하는 헛되고 망령된 신을 믿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아버지신! 예수시대에는 아들신(또다른 무리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함)! 신약에는 성령신!으로 3신을 1신이라고 합니다. 3을 1이라고 억지궤변을 펴는 자들은 개신교를 비롯하여, 가톨릭. 기독교 이단 사이비 종교단체에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한국 기독교 '김종설' 형제의 "개혁이 필요한 비성경적 종교적 관습"에 대한 글 메시지 총 5부 중에서, 오늘은 4부를 전하겠습니다. 열아홉째, 교회들끼리 벌어지는 단골손님 확보 경쟁 때문인지, 교회에서 좀 서운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꾸 이러면 나 교회 옮길거야"라고 협박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이런 협박에 별로 신경을 안쓰지만, 그 사람이 매달 내는 헌금 액수가 엄청나게 많을 경우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별꼴이 반쪽(보기에 정말 좋지 않다, 이해할 수 없다)"입니다. 스무째, 한국교회에서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누가 언제부터 예배 순서에 가톨릭의 사도신경을 극히 일부만 편집해서 넣자고 했는지 모릅니다. 이단 시비에 휘말릴 경우,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그대로 믿는다고 주장하면 이단 의혹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이단이 아닌척 연기하는 겁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성경 말씀에 근거한 바른 교리를 믿고 전파해도,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안하면 이단으로 간주가 됩니다. 예배 시간에 주기도문을 암송하게 한다든지, 사도신경을 읊조리게 하는 일을 즉시 중단하십시오! 스물 한째, 한국교회에서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 중에 하나는 종교적인 세력입니다. 교인들의 숫자가 많고, 교회 재정이 많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으면, 이단이라도 아무나 건드리지 못합니다. 어느 대형교회는 이단으로 판명되었으나 세력이 강해지자, 이웃교회 목사들이 스스로 이단 시비를 철회하고, 그 교회 목사 앞에서 무릎꿇고 회개 기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스물 두째, 현재 세력이 좀 약하더라도 이단 정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교계에서 영향력이 큰 교회 목사를 자기 단체의 고문이나 상임 이사 등으로 추대하고, 꼬박꼬박 활동비를 지급하면 됩니다. 가끔 그런 거물급 인사를 자기 교회에 초빙해서 설교도 하게 하고, 밥도 같이 먹고, 함께 사진도 찍으면, 자기를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바른 교리를 가진 목사들은 그런 제안에 응해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자기와 비슷한
이단 교리를 가지고 있는 거물 목사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스물 셋째, 많은 한국 기독교 교인들이 의미도 잘 모르면서 주문 외우듯이 사도신경을 외웁니다. 사도신경 내용 중에는 일부 맞는 내용도 있지만, 사도신경이 로마 카톨릭의 거짓 교리를 옹호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스물 넷째, 한국교회에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본래 용도 외에도 다양한 쓰임새가 있습니다. 스물 넷째의 1.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나거나, 악몽을 꾸거나, 무서울 때에는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가르칩니다. 스물 넷째의 2 , 방언을 가르친다면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고속으로 암송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혀가 풀려서 비정상적인 발음이 나오거나, 만트라! 즉, 짧게 되풀이되는 종교적인 진언을 외우다가 황홀경에 빠져서 헛소리를 하면, 그것을 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보다도 짧고 간단한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물 다섯째, 종종 부흥사 중에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원래 오늘 전할 본문 말씀은 주보에 인쇄된 것처럼 성경구절 몇 장
몇 절인데, 방금 하나님께서 다른 성경구절로 이러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말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많은 교인들은 그가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를 나누는 영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음 셋 중에 하나입니다. 스물 다섯째의 1, 원래 설교할 내용은 후자이고, 주보에 있는 구절은 미끼로 던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물 다섯째의 2, 그는 설교 준비를 전혀 안했고, 지금 즉흥 연설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스물 다섯째의 3,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직통 계시를 주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그가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지금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4부를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지막 5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한국 기독교 '김종설' 형제의 "개혁이 필요한 비성경적 종교적 관습"에 대한 글 메시지 총 5부 중에서, 오늘은 3부 시간입니다. 열다섯째, A교회 목사가 교회에서 지급하는 생활비 외에 용돈이 더 필요할 때에는 자기와 친분이 있는 B교회 목사를 초청해서 헌신예배 설교나 특강을 시킵니다. 그리고, 재정부에 이야기해서 그 분께 사례금으로 50만 원 정도 넣어드리라고 합니다. 물론, 사례비 금액은 교회 사정에 따라 다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B교회에서 A교회 목사를 강사로 초빙하고 싶다는 연락이 옵니다. 둘이서 너무 자주 이렇게 하면 탄로가 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목회자 3명에서 5명 정도만 돌아가면서 그들끼리 강사 초빙을 하면 거의 안 들킨다고 합니다. 이웃교회 목사를 설교자로 초청하고 사례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목사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식으로, 교회 재정을 가지고 용돈 벌이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하고도 영생 얻을 자신이 있습니까?
열여섯째, 목회자들은 자기 교인이 이웃 동네로 이사를 가면, "다니는 교회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부축입니다. 이사가기 전에 다녔던 교회를 꾸준히 다녀야 한다"면서 계속 자기 교회로 나올 것을 회유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동네에서 자기 동네로 이사 온 사람이 있으면, "신앙 생활은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등록해서 해야 한다"며 자기 교회로 오라고 강권합니다. 열일곱째, 청년들이 직장이나 진학 문제로 먼 도시쪽으로 이사하면, 예배는 그 곳 교회에서 드리되, 십일조는 본 교회에 납부해야 한다고 가르치기까지 합니다. 물론, 자기 교회로 새로 나오게 된 타지역 출신 청년들에게는 이와 반대로 가르칩니다.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본 교회에서 전천후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목사의 임기응변식의 편리주의 아닌가요?열여덟째,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유월절 또는 무교절, 수확절 또는 초실절.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 장막절 또는 초막절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이 중에서 맥추절 만큼은 반드시
지킵니다. 그들은 유월절, 초막절을 지키는 안상홍 증인회를 이단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맥추절은 철저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왜들 그러는 것입니까? 그 어떤 이유보다도, 추수감사절 헌금 이외에 또 한 번의 감사헌금을 걷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맥추절 헌금 봉투에는 주로 "맥추절을 지키라"와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는데, 구약 성경을 악용하는 사례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빈 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구절은 맥추절이 아니라, 유월절(무교절)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5절 16절 말씀!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이것들은 다 그림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 17절 말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실체이신 예수님이 이미 오셨고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키셨는데, 왜 아직도 사람들을 구약의 율법 아래에다 가두어 두려고 합니까? 정말 그렇게 지키고 싶으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예루살렘 무너진 성전 앞마당으로 가서 짐승을 잡아다가, 레위인 제사장과 함께 지키십시오! 그런데 이것 한가지! 정작 유대인들조차도 성전과 제사장이 없어서 각종 절기들을 구약 성경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종교공화국입니다. 종교를 직업으로 하여 돈과 권력을 만들어, 좌파 우파 정치 운동까지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4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한국 기독교 '김종설' 형제의 "개혁이 필요한 비성경적 종교적 관습"에 대한 글 메시지 총 5부 중에서, 오늘은 2부를 전하겠습니다. 열째, 만약 목사나 장로가 진리의 말씀에 어긋난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성도들은 그들에게 권면이나 책망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입식 길들이기 쇠뇌 교육을 시킵니다. 열째의 1. 성도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일반회원! 곧, 평신도(가톨릭 전문 용어)이고, 목사나 장로는 특별회원! 그 중에 목사는 성직자(가톨릭 전문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하려면 지금 즉시,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읽어보면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장로. 목사. 집사. 성도가 각각 구분되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열째의 2.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책망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분들을 판단할 분은 오직 한분 창조주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그들의 죄를 사랑으로 덮어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만 하면 됩니다. 이것도 역시, 갈라디아서 6장 1절을 읽어보고 정말 그런지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말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최근 청년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J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드러나자, 그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도 전에 "비판하지 말자, 용서하자. 간음한 다윗을 쓰신 것처럼 하나님이 앞으로 크게 쓰실 것이다"라는 논리가 먼저 나오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열한째, 목사나 전도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가르칩니다. 그리고, 목사가 아닌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신분을 구별시킵니다. 그러므로,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종에게 충성을 바치고
그들을 섬겨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들이댑니다. 한국교회에는 이처럼 아들이 종을 섬기는 이상한 관습이 교회들마다 존재하고 있습니다.열두째, 많은 목회자들은 "주의 종"으로 불리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 중에 대부분은 진짜 종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열셋째, 집사 안수식. 장로 취임식 등을 하려고 하면, 최소한 8명의 목사가 필요합니다. 8명의 목사는 각각 한 사람씩 "사회, 기원, 대표기도, 성경 낭독, 설교, 축복기도, 광고, 축도" 등의 순서를 나누어 맡게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에게 일인당 10만원에서 20만원씩 사례금을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례금은 교회별로 다르고, 물가 연동에 따라 상향 조정됩니다. 열넷째, 집사나 장로로 임명되려면 "임직 예물"이라는 명목으로, 예배당에 에어컨 또는 오르간을 기증하거나, 수백만 원을 내야 합니다. 임직헌금도 교회별로 다르고 물가 연동에 따라 상향 조정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모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구절로 민수기 7장을 들이대기도 하는데, 성막이나 성전이 없는 이방나라 한국인으로서는 이해가 안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통을 파괴하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민수기 7장 1절과 10절 11절 말씀!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족장들이 단의 봉헌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그 예물을 단 앞에 드리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족장들은 하루 한 사람씩, 단의 봉헌 예물을 드릴찌니라 하셨더라." 지금의 21세기 시대가 구약인지, 신약인지, 이스라엘인지, 이방나라인지 조차 분간 못하는 장로. 목사. 집사가 99.9999%입니다. 2부를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는 3부를 전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오늘은 한국 기독교 '김종설' 형제가 평소 신앙생활하면서, 성경과 다른 부분이 교회의 율법적 전통으로 고착된 부분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개혁하자고 하는 글 메시지 총 5부 중에서, 오늘은 1부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청취자및 정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더 알아듣기 쉽도록 일부 수정하거나 첨가한 메시지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는 목사의 축도로, 그 외는 주기도문 암송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교회 헌법에 의하면 축복 기도는 목사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두째, 예배당에 처음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거나 혹은, 기도하는 척부터 합니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통이나 관습에 따라서 하는 행위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기독인의 집을 방문한 경우에도 서로 인사를 나누기 전에 자리에 앉아서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집 주인도 가만히 있기가 멋쩍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기도하는 척을 합니다. 넷째, 성경책을 엉덩이에 깔고 앉거나 성경책 위로 넘어 다녀서는 안된다는 교회에서 정한 율법이 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성경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전통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성경 말씀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어떤 사람은 밤에 악령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기 전에 성경책을 창가에 갖다 둔다고 합니다. 드라큘라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인데, 악령이 왜 꼭 창문으로만 출입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리고, 마귀가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마태복음 4장 6절 말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여섯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서인지, 장식용인지 모르겠지만, 자동차에 성경을 비치해 두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차피 읽기 위한 성경책이 아니므로 대부분 뒷좌석 유리 쪽에다 전시용으로 올려둡니다.
그러다가 접촉 사고가 나면 일단 성경책부터 치웁니다. 차 안에 성경책이 있으면 목소리를 높이고 막말을 하면서 싸우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니면, 자신 때문에 주님의 영광을 가리운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일곱째,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면 무사고 운행을 위해 목사를 모셔다가 자동차에 안수 기도를 받아야 안심합니다. 돼지 머리와 막걸리 대신에 목사가 등장할 뿐, 주술적인 기복 신앙에는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여덟째,교회 조직 안에서는 목사나 장로가 시키는 일에 토를 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은혜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에서의 "은혜"란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전해지는 뭉클한 감동이나, 당회나 공동의회에 제출한 안건이 아무런 반대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아홉째, 목사나 장로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도들을 공격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무기는 "순종이 제사와 헌물보다 낫다"라는 구절일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말씀!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구절은 다른 사람들을 제압하는데 있어서 거의 호신용 무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구절이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말씀인지, 사람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인지, 직접 성경을 읽어보고 확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 말씀을 인용하는 사람도 성구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입니다. 1부를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는 2부를 보내드립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