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 원출처: 서범관 목사 / ABA TV

* 원제목: 하나님을 아는 지식 - 힘이 되신 여호와

* 부제목: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어야 한다!

 

♤4분 메시지, https://zrr.kr/E4c2

 

* 원출처 URL: https://zrr.kr/DyiT

 

[설교자 View]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교회입니다. '실로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나의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며, 내가 그를 위하여.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요.' (빌립보서 3:8)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바른 복음(이웃교회)을 전달하는 말씀 배달부입니다!'

[태그] 개신교, 초교파, 회개와 개혁, 예수천국 불신 유황불지옥 협박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다!

 

* 원출처: 앤드류강 목사 / 마지막 사명 

* 원제목1: 죄의 결과는 영원한 고통입니까? 멸망입니까? 언제 어서 지옥불이 점화될까요?  

* 원제목2: 악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불에 탈까요?  

* 수신자1: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미검증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믿고 전하도록 허용한 목사들! 

* 수신자2: 천국지옥 신비체험을 성경처럼 믿고, 예수천국 불신지을 맹신하며 전하는 지체들! 

 

                                                        ♧ 19분 메시지 url, https://zrr.kr/vYsH

 

☞ 원출처 url: https://zrr.kr/FYsN , https://zrr.kr/X4mF , https://zrr.kr/ASkE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라스트타임 넷을 운영하시는 앤드류강 목사께서 Q&A 메시지 "죄의 결과는 영원한 고통입니까? 멸망입니까? 언제 어디서 지옥불이 점화될까요? 악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불에 탈까요?"라는 원제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국내외 한국 개신교 그리스도인 사역자및 기독교 종교단체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전도자의 한사람으로서 여러분들께 성경을 근거하여 진솔하게 말씀드린다면, '영원히 불타는 유황불 지옥'은 이집트 헬라의 철학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이 세상 종교들마다 인과응보의 신, 권선징악의 신을 세워서 선한 자는 극락이나 천국과 같은 내세로 간다고 말하고, 악한 자는 영원히 펄펄 끓는 불지옥에 처하여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다고 철학을 교리화하여 말하고 있지만, 곧이 곧대로 그렇게 믿는 종교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국내외 한국 개신교가 기염을 토하면서 협박 공갈 수준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무대뽀로 전하여 교단 교파 교회에 사람 수 끌어 모아 부흥해 보려는 목적으로 악용 내지는 오남용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지막 사명'의  앤드류강 목사님의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죄를 범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멸망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 말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누구든지 죄를 범한 자는 멸망당하게 됩니다. 오직 십자가 앞에 나가 회개하고 죄를 버리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그것은 멸망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한편, 영원한 생명은 의인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결과가 멸망받을 짐승처럼 영원토록 재와 티끌로 즉,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 말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성도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이고 멸망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진리가 성경을 탈선하여 크게 비틀어져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의 삯”은 생명을 유지하면서 지옥불에서 끝없이 고통당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받는 의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사단이 에덴동산에서 첫 번째 했던 거짓말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죄를 범해도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창세기 3장 4절 말씀!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절 17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정녕 죽으리라'인데, 사단의 주장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인 것입니다. 사단은 죄를 범한 사람도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거짓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단의 거짓말에 미혹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설교자들이 “악인은 지옥불 속에서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악인의 멸망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세상끝날에 지옥불로 타서 연기처럼 없어질 것입니다. 시편 37편 10절과 20절 말씀!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 말라기서는 악인들의 형벌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4장 1절과 3절 말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즉, 마른 풀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그들이 즉, 악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And ye shall tread down the wicked; 

 

for they shall be ashes under the soles of your feet in the day that I shall do this, saith the LORD of hosts”, Mal 4:3). 이 말씀에서 악인들이 풀무불로 태워지는 형벌의 장면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 시제로 기록되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계시를 통해서 장차 악인들이 지옥불로 태워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죄를 붙잡고 있는 악인들이 장차 유황불에 의해서 마른 풀처럼 태워질 것을 보았습니다. 유황불이 악인들의 몸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태울 것이고 재만 남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악인은 타서 재가 될 것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 끝에 있을 지옥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계시록 21장 8절 말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죄의 결과는 유황불로 태워서 재를 만들어 소멸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두째, 이교도의 영원한 불지옥이 기독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지옥에 대한 개념이 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지옥은 영원히 계속된다”라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서 뱀이나 구렁이에 감긴 채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악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죽어서 귀신이 되어 영원토록 허공을 방황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악인이 죽는 순간에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지글지글 타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태초에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던 거짓말 즉, “죄를 범해도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기만이 불교나 각종 토속 신앙을 통해서 온 세상으로 퍼졌고, 그것이 중세기 기독교회 안으로까지 깊숙히 들어 왔습니다. 창세기 3장 4절 말씀대로 속고 사는 인생이 너무나 많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성경에서는 악인이 죽는 순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 날까지 죽은 채로 무덤에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셋째, 지옥은 언제, 어떻게 시작될까요? 여러분은 언제 지옥불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마태복음 13장 40절 41절 42절 말씀!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추수 때 가라지들을 모아서 불에 태우는 것처럼, 세상 끝에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악인들을 태우는 지옥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 끝”은 정확하게 언제입니까? 그리고, 악인들의 형벌은 언제 이루어지게 됩니까? 넷째, 어디서 지옥불은 점화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사람들은 땅을 파고 깊이 내려가면 지옥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옥이 우주 저 끝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옥은 땅 아래 깊은 곳도 아니고 우주 저 끝도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지구의 표면이 지옥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통해서 유황불이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계시록 20장 9절 10절 말씀! “저희가 지면 즉, 지구의 표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아멘. “하늘에서 불이 지구로 내려와서 악인을 소멸한다”는 것은 “지구에서 악인들이 불로 태워져서 멸망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장면은 무엇을 연상시킵니까? 구약시대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당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 19장 24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려 소돔과 고모라 도성을 뒤집어 엎었고 멸망시켰습니다. 그 곳에 남아있던 악인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연기만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의 악인들이 멸망되었던 것처럼, 세상 끝에도 악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유황불로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지옥에 대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악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불 속에서 고통받을 것인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인들이 영원토록 불 속에서 죽지도 않고 고통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계시록 22장 12절 말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께서 언제 보상을 주시겠다고 했습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상하시겠다고 했습니까?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아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형벌을 받는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미 언급한 내용이지만, 자신의 동생을 죽인 가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가인은 죽은 즉시로 영원한 유황불 속에 떨어져 고통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죽은 지 5천 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에 6백만 명 이상을 죽인 아돌프 히틀러가 지옥불 속으로 떨어졌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한 사람을 죽인 가인이 6백만 명을 죽인 히틀러보다 5천 년이나 더 오랫동안 유황불 속에서 형벌을 받은 것이 되고 맙니다. 가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올라오겠습니까? 너무나 억울하고 하나님의 불공평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 그런 식으로 악인을 취급하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요한계시록은 “각 사람의 행위를 따라”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0장 12절 13절 14절 말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주며,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성경은 명확하고 공의로운 심판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공로나 행함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형벌은 우리가 악을 행한 만큼만 받게 됩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형벌입니까? 성도 여러분!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선을 행한 자녀에게는 무한히 나눠주기 원하지만, 악을 행한 자녀에게는 그가 행한 만큼만 벌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부모도 자녀가 악을 행했을 경우, 계속해서 두고두고 벌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예수께서는 불순종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게 처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7절 말씀!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이 얼마나 합당한 말씀입니까? 

 

주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불순종하면 그 사람은 많은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과 말씀을 잘 알지 못해서 죄를 범한 사람은 적은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형벌의 원칙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형벌을 내리실 것이며, 자신들이 받아야 할 형벌이 마쳐질 때 몸과 생명은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이대면서 지옥불 속에서 몸은 태워져 없어지지만, 영혼은 영원히 고통당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말씀이 정말 그런 뜻입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성경을 보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얼마나 분명합니까? 예수께서는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불에 태워서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곱째, 지옥을 오해하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오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균형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게 되면 이런 간증을 하게 됩니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악인들을 고문하시는 분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고 교회를 거의 등질뻔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을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지옥불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지옥의 형벌은 악인의 행위와 죄값에 따라서 다르다는 성경의 진리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능력이 되시는 말씀입니다.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유명 철학자. 유명 사상가. 유명 종교인. 유명 신학자. 유명 목사 등을 내 앞에 많은 스승으로 두지 마시고, 신구약의 '창조주 한분 여호와 예수님 영존하신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항상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가 예수이시고 성령이심을 모르고 3신이 1신이라는 중세 가톨릭의 삼위일체를 믿거나, 구약에는 성부가 계셨고 33년 예수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셨으며 신약에는 성령만 유일신으로 계신다고 믿는 반삼위일체 양태론을 쫒는 한, 내 영혼의 구원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태양신 바알 3신을 믿었던 중세 로마 가톨릭의 종교인이 두 파로 나누어져 삼위일체를 만들고 반대파 교리인 양태론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 약 70%가 삼위일체를 쫒고 있고, 양태론은 약 30%정도 쫒는데, 어느 양태론 목사는 양태론으로 끌어 들이려고 양태론이 70%를 차지한다고 거짓말하는 칼럼도 보았습니다만, 삼위일체와 양태론 모두가 사단의 거짓된 신관임을 아십시오! 제 유튜브방 Heaven or Grave로 오셔서 해당 제목을 찾아 메시지를 들으신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바르게 믿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디모데전서 4장 3절 4절 말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쫒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쫒으리라.' 여호와의 영이시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저와 여러분의 선하신 목자이시고 영원한 스승이시며 진리의 근본이 되시기에 성경의 저자가 되신 말씀의 본체가 되십니다. 여호와 예수 성령, 아버지 아들 성령, 물 피 성령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분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입니다. 예수 안에서 부활 천국 영생을 믿고 바라시거든, 부디 최우선적으로 창조주 예수님 신관을 가지십시오! 가톨릭의 신관을 한국 개신교가 믿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삼위일체 3신이나 양태론 3신을 믿으면 세상끝날 지옥불에 집어 넣고 깨끗하게 태워 존재를 소멸시켜 버립니다. 지옥불의 재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면 그렇게 믿으십시오! 창조주 예수님 목소리를 분별하고 귀를 기울여 똑바로 들어야 삽니다. 혹시, 기독교 교단 교파 교회를 떠나서 가나안 성도되기로 결심한 분들을 위해 하단에 링크를 걸어 두겠습니다. 

 

☞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 원출처: Pastor Ko Dong-yeop 

* 원제목(2018): 축도의 바른 이해 

* 부제목1: 세계 대부분의 교회는 십일조를 없앴고, 

* 부제목2: 일반 성도에게도 축도권및 당회장권 기회를 준다!

 

♤25분 메시지, https://zrr.kr/wt8u

 

* 원출처 URL: https://zrr.kr/nIKn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이웃교회의 참예수 복음을 찾아 한국교회를 위하여 말씀 배달부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동엽 목사께서 증거하신 "축도의 바른 이해"라는 원제목 글 메시지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내지는 교제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아멘' 여기까지 밖에 없는데, '있을찌어다'를 번역할 때 엉큼하게 살짝 집어 넣은 것입니다. '있을찌어다'가 원문에 없다는 것을 꼭 아셔야 합니다. 헬라의 원문을 보면 '있을찌어다'와 같은 동사는 없습니다. 그리고 '교통'하심이 아니라 '교제'하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히브리어및 헬라어 원문을 참조해 보시고 영적으로 바른 판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η  χαρισ του  κυριου  ιησου  χριστου  και  η  αγαπη  του

헤    카리스  투    큐리우     예수       크리스투    카이   헤   아가페   투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그    은혜                주    예수의      그리스도                  사랑과   

θεου  και  η κοινωνια του   αγιου πνευματοσ μετα

  데우  카이  헤  코이노니아  투       하기우    퓨뉴마토스     메타

   God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with

  하나님의               교제가                       성령의              함께

παντων υμων αμην

    판톤     휘민     아멘

     all      of you   A-men

     모두에게  너희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아멘. 이 표현이 원문에 의한 바른 번역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가지고 있는 절대 권한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축도권입니다. 축도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복을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왜 복을 빌어주는 기도가 목사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합니까? 축도의 의미를 기독교 백과사전에서 찾아 봤는데, '목사가 예배 시간에 회중을 위하여 드리는 축복 기도로서, 보통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있는 말씀을 외운다'라고 되어 있으며, 이 축도 때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관습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축도를 가장 엄숙한 순서로 인정한 나머지, 사제는 예복을 입고 이를 선언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축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신 기도, 도고, 감사 등의 기록은 있으나 축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6장 28절 말씀!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은 당시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대교회 목사들을 비롯하여 일반 성도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지금과 같은 축도 개념으로 잘못 풀어 버리면, 복을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축복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목사가 주장하기를, 만일 일반 성도가 축복을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라고 말들을 하는데, 이는 성경과 전혀 다르게 어긋난 왜곡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축복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축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계급주의적 차별 의식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서, 교회 내에 목사. 장로. 집사. 성도라는 계급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 목사라는 계급의 권위를 위한 일종의 권력 상징으로서 규정한 것인데, 이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용하시겠습니까? 

 

그런 권력 앞에 어떻게 감히 일반 성도가 교회 재정에 관하여 떳떳하게 요구할 수나 있겠습니까? 권리가 어떤 특정 집단에게만 허용될 때, 그 권리는 권력이 되고 맙니다. 그 권리가 목사라는 직분에게만 허용이 되어진다면 이것은 종교 권력의 도구로 변하게 됩니다. 목사가 전도사를 대할 때에도, '감히 축도권도 없는 주제에!'라고 내세울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축도라는 것을 하는 목사에게 주어졌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더구나 손을 높이 들고 하는 축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목사가 손을 든 순간, 하늘로부터 복이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절묘한 연상 장치로 보일 것입니다. 비슷한 모양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믿게끔 만드는 심리적 작용을 만들어 냅니다. 그저 눈감고 하는 것보다는 손을 들고 하게 되면, 목욕탕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모양을 연상하게 됨으로서, 심리적 작용에 의해 복이 쏟아질 것 같은 믿음이 생성되도록 하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했고, 이삭이 야곱에게 했고, 야곱이 아들들에게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숱하게 행했던 축복 기도 즉, 복을 비는 기도를,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사를 제외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약에는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백성을 축복하는 권한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셨습니다. 레위기 9장 22절 23절 말씀과 민수기 6장 22절에서 27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목사들은 이것이 오늘날 강단에서 목사들이 하는 축도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축복기도는 대제사장의 중보 기도였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였고,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히브리서 3장 1절과 4장 14절을 참고하십시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참고하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시며,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이십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 20절과 디모데전서 2장 5절 그리고 요한일서 2장 1절을 참고하십시오!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성도나 모두 주 안에서 다같은 형제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2장 11절및 마태복음 23장 8절을 참고하십시오! 이와 같이, 아론의 대제사장적인 축도권에서 그 기원을 찾아 축도를 한다면 누구라도 감히 쉽게 축도를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8절 말씀에 나오는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축도의 모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시편 63편 4절의 손을 들고 기도하던 관습에 따라 말한 것 뿐이고, 다투기보다 서로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참고로,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던 경건한 풍습이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서신서 끝에 있는 '축원'을 축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3절, 고린도후서 1장 2절,

 

갈라디아서 1장 3절, 계시록 1장 6절, 로마서 1장 7절, 사무엘하 15장 20절, 계시록 1장 5절, 룻기 2장 19절 말씀을 참고하십시오! 결국 그렇다면 목사만이 축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이는 편지의 끝인사로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누구나 편지로나 말로나 서로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번역성경 말씀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가 현대교회 목사 축도권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입니다. 또, 유다서 1장 24절 25절의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은 예배시의 축도가 아니라, 서신의 일반적인 끝인사에 해당합니다. 서로를 위한 축복 기도는 모든 성도에게 해당한다고 봅니다. 세상 사람들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새해에 복많이 받으라고 빌어주는데, 

 

성도 간에 축복하는 일이 어떤 직분에 의해서 제한받는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특별한 위치에 있는 바울이 자기가 세운 고린도 교회를 위한 축복이었고 또 오늘날 개교회에서 행해지는 축도를 목사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자주 흔하게 남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목사의 축도 기원은 가톨릭 신부의 강복을 흉내내어 만든 전혀 성경과 다른 우상숭배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신 일은 부활 후 승천하실 때 단 한 번 뿐이었습니다. 목사 여러분은 이를 아십니까? 누가복음 24장 50절에서 53절까지의 말씀!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아멘. 멜기세덱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4장 19절 말씀!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멜기세덱은 인류 최초의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위치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은 단 일회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삭도 야곱을 축복하였으나, 에서는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7장 34절에서 38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에서는 동생에게 축복을 다 빼앗긴 후에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니까?'라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자신이 받을 복을 애원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38절을 참고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입장에서 야곱에게 또 다시 축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성도들을 위한 목회적인 특별한 위치에서 자기 교인들을 위해 축복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자주 축도를 해댈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사가 은퇴할 때나, 혹은 목사가 죽을 때나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매 주일마다 자기 몸에서 무슨 복(福)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양 손을 들고 강복 의식을 행하는 것은 자판기의 돈만 넣으면 쏟아져 나오는 커피처럼 자주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말씀인 것입니다. 신명기 18장 22절 말씀!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만약, 축도가 복을 비는 기도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회중에게 '간절히 축원하노라!'라고 한다면, 복을 비는 사람이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것은 종교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 스스로를 격상시키려는 '사단의 무서운 함정'인 것입니다. 결단코 비는 자는 자신의 권위를 포기해야 합니다. 기도의 첫번째 태도가 구하기 위해 높은 자 앞에서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또, 만약 축도가 기도라면 그것은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빌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을 부탁하셨는데, 목사는 왜 이런 중요한 원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복을 비옵나이다. 아멘.'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면 가장 성경적임에도 말입니다. 또, 축도가 기도라고 하면서 그 기도를 꼭 가톨릭처럼 예복을 입고 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물론,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사복을 입고 축도하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복을 입는 경우에는 주기도문을 암송시키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도대체, 목회자 가운을 입고 하는 기도와 벗고 하는 기도의 구별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또, 축도가 기도라고 하면서 그 기도를 대예배나 공예배와 같은 정해진 시간에만 하도록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의식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에 따라 기도는 때와 장소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기도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축도가 복을 비는 기도라면 기도할 수 있는 자와 기도할 수 없는 자의 구별이 있는 까닭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위엄과 권위와 자만의 태도로 기도한 바리새인보다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겸손히 기도하는 자가 의롭다함을 얻고 돌아간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을 참고하십시오! 일반적으로 지금껏 목사들에 의해 쇠뇌 당하고 학습당해서 의식화된 신자들은 축도를 복받는 수단으로 곡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도를 한 그 목사에 의해서 복이 좌우되는 것처럼 오판하며 맹신하고 있습니다. 현대교회 소경 목사들의 죄가 가장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도는 비복음적인 용어이고 하나의 의식행위 밖에 안됩니다. 이는 로마 가톨릭에서 신부의 교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성도들에게 기복신앙을 갖도록 만들어 낸 발상에 불과합니다. 본래 축도를 베네딕숀(Benedic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부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위해 베네딕트 신부가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본 따서 만든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는 개신교가 이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장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축도 등 온갖 교회 목사 교리를 

 

자기네들 각자 교단 헌법에다 집어 놓고 성도들이 덫에 걸려서 맹종하도록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이상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교권이라는 자만심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분명히 목사는 그 신분에 있어서 교회의 회중들보다 높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앉아 있는 위치보다 조금 높게 한 강단에 있다고 해서 높지 않다는 것을 아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은 목사까지를 다 포함하여 죄인으로서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힘입어야만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예수 한 분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어떤 인간의 대리자를 세우고 또 그를 통하여 복을 받으려는 성도들의 태도는 절대로 성경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목사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창조주 예수님께서 목회자를 더 의롭게 하셨다거나 목회자가 아니라고 해서 덜 의롭게 하는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주일 학생예배가 끝난 후에 한 학생이 교육 전도사에게 질문했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은 예배 끝날 때 

 

손들고 하는 기도를 왜 안 하세요? 어른 예배 때는 주기도문 대신에 목사님이 손들고 축복기도 하시던데요. 우리 어린이 예배도 그렇게 해주세요. 네?' 그러자 전도사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건 목사님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단다.'라고 답변해 주었다고 합니다. 목사와 전도사가 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 아이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아이가 끼어 들었습니다. '어? 아닌데요? 영국에서는 모두 다같이 하던데요..?' 그 아이는 몇 년 간 영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아이였습니다. 영국에서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것을 한국에서는 목사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아이에게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거기에서는 직분도 없는 어린이들까지도 다같이 했던 축도였던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축복이라는 개념과 복이라는 개념이 아무 생각없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이런 말을 아무 생각없이 누구든지 오남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축복하실 수가 없습니다. 축복은 복을 비는 것인데, 말 그대로라면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복을 주라고 빌고 있다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축복 즉, 복을 주라고 누군가에게 간청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기도하다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바른 표현은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인간은 복을 비는 것 즉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아멘입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4절 말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라.' 역시 동일한 맥락의 말씀입니다. 과거 초대교회 때의 핍박이나 또 중세 때의 기독교인들의 핍박, 또 현세에도 어디 목사들만 핍박을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굳이 목사들에게만 한정하여한 말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핍박하는 자까지라도 축복해 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복하는 기도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며, 목사들에게만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목사에게만 축도권이 한정됐다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교회가 비성경적인 십일조를 없애 버린 것처럼, 세계 거의 모든 교회가 일반 모든 성도에게도 축도권 뿐만 아니라, 당회장권까지도 열어 놓고 있습니다. 특히, 한가지 특별한 사항은 이런 교회에서는 분배 원칙도 성경적이다!라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 담임 목사의 식구 수가 3명이고 그 교회 나이 어린 전도사 식구 수가 4명이었을 때, 사례비 개념의 봉급도 식구 숫자에 따라 담임 목사보다 오희려 나이 어린 전도사가 식구 1명이 더 많기 때문에, 더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축도를 주로 예배의 폐회 순서에다 넣고 선언함으로써 끝맺음을 합니다. 그러나, 축도가 예배의 끝맺음이 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끝나는 개념이 없고 생활 속에서도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후에 만찬으로서 그 모임을 마무리하고 

 

서로 교제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말씀을 유추해 볼 때, 초대교회 모임은 말씀을 강론하고 떡을 떼며 교제한 후에 헤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배는 끝나는게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같이 서로 서로에게 열심히 마음껏 축복해야 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하심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끝부분에 '있을찌어다'라고 함으로써, 괜히 언어적인 위엄을 드러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복을 빌어주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시면 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을 끌어다가 사도 바울의 편지식 설교문 끝인사를 흉내낼 필요도 없는 것이고, 가톨릭의 강복을 모방하여 가운을 입고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접신 무당처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종교 행위를 한다고 해서 창조주 예수님께서는 듣지도 응답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 목사가 입는 가운을 포함해서 현대교회 예배 끝말미의 축도 폐기하는 일에 목사의 결단이 있기를 빕니다. 내친김에, 묵도. 묵도송, 사도신경 등의 기존 예배 순서 의식을 최대한 없애고 찬양과 말씀만 나누는 것을 영과 진리의 예배로 인지하는 개혁 교회로 발돋음한다면 그 목사와 회중에 대하여 창조주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올바른 참예수 복음만을 성경대로 믿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받아서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진한다면, 비록 성도들이 많이 떠나는 아픔이 있더라도, 교단 교파를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감당하기만 한다면 바른 성경교사로 당신을 세워주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장로. 집사. 성도가 포함됩니다. 만약, 지금 이대로가 좋사오니!식으로 나간다면, 부활 천국 영생을 얻을 자가 별로 없습니다. 노아 가족 8명과 롯의 가족 3명을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 원출처: 이오석 강사 / 인자학

* 원제목: 인자를 배우라 

* 부제목1: 성경의 창조주가 성부 성자 성령인가? 

* 부제목2: 인자 예수를 모르면서 창조주를 잘 알고 믿는다고 한다! 

* 수신자: 현대교회 삼위일체. 양태론. 십일조등 목사 교리 맹신하가 지옥불에 타 죽을 지체들! 

 

♤14분 메시지, https://zrr.kr/XNYn

 

* 원출처 영상 URL: https://zrr.kr/oMvE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20분 메시지, https://zrr.kr/uNFB

 

* 원출처: '진리수호' 전도자

* 원제목: 방언기도와 뜻에 대하여

* 부제목1: 신구약의 방언은 나라들 방언및 복음 통역! 

* 부제목2: 연습 방언? 사단에게 접신하여 받은 방언및 통역?

* 원출처 URL: https://zrr.kr/LYmx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이웃교회의 참예수복음을 찾아 한국교회를 위하여 말씀 배달부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랄랄라 따따따 바바바 옹아리 방언을 받고 이 것을 통역한다고 하는 그룹은 성령이 주셨다고 굳게 믿기로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성령께는 여쭙지 않는 분들이 상당수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한두번 접했을 때 듣긴 듣는데 내가 어렵게 체험한 방언및 통역에 흠집이 날까봐 조심조심 건성건성 듣다가 수틀리면 그냥 도중 하차해 버리는 무리도 꽤 많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검증 차원에서 확인해 보려는 이성적인 무리도 있다고 봅니다. 내가 체험하여 믿고 있는 방언및 통역 내지는 방언 찬양을 하는 분이라 할지라도, 이런 것을 받으려고 사모했다가 아직 받지 못하는 중에 오늘 메시지를 듣고 계신다면, 현대교회의 랄랄라 방언및 통역이 내 생각에 100% 틀림없는 성령의 은사로 여겨질지라도, 오늘 이시간 만큼은 창조주 예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심령문을 열고,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지나가겠다는 심정으로, 베뢰아 사람들처럼 과연 그러한가?의 자세를 가지고, 

 

진지하게 차분하게 들어 주시면 전달자든 청취자든, 피차 간에 많은 유익이 됩니다. 오늘은 네이버 블로그 '올바른 신앙 지킴이'를 운영하시는 '진리수호' 전도자께서 증거하신 "방언기도와 뜻에 대하여" 글 메시지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기독교 이단사를 살펴보면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 시절에는 이단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우상종교이었기에 사단이 굳이 이단들을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이단이 등장한 것은 '오직 믿음'을 부여잡은 마틴 루터가 가톨릭을 뛰쳐 나와 종교개혁을 이룬 후가 됩니다. 비로소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자 이 복음을 막으려는 사단이 이단들을 등장시킨 것이지요. 종교개혁 이후 가장 먼저 등장한 이단은 입신하여 영계를 보는 신비주의 이단 스웨덴 보리 혹은 스베덴 보리와 사두 선다 싱입니다. 9개 나라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스웨덴 보리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심지어, 왕비까지 미혹하며 전 유럽을 신비주의로 물들였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주의가 개혁 신앙의 불길을 꺼버린 것입니다. 개신교의 본산지인 유럽의 개신교가 오히려 더 퇴보한 것은 신비주의 이단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개신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본산지인 유럽이 아니라, 미국과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인데, 미국과 한국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인종들이 몰려들어 만든 미국은 신생국임에도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되었고, 또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최빈국이었던 한국도 단숨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나님께서 복을 주신 미국과 한국의 개신교를 시기한 사단이 복음을 말살시켜 버릴 이단을 등장시켰습니다. 이른바 방언이 터지는 현대교회 오순절 이단입니다. 사단이 19세기 말에 찰스 파햄이라는 거짓 선지자를 등장시켜서 말입니다. 입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온 찰스파햄은 이것을 오순절 방언이라고 오해하여 방언 집회를 개최하면서 방언의 불을 지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방언이 터지는 체험을 하려고 동서남북에서 몰려 들었습니다. 뜻모를 방언은 엄청난 위세로 삽시간에 미국 개신교를 초토화시켰으며,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의 개신교마저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의 집회에는 방언 뿐만 아니라, 병을 고치고, 귀신이 나가며, 입신하여 환상을 보고, 가짜 성령에 취해 쓰러지는가 하면, 황홀경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등.. 요사스럽고 신기한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현상은 강한 전파력을 타고 급속히 확산하여 집회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들었습니다. 오순절 이단들은 이 현상을 '대부흥 운동'이라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첫째, 현재 유행하는 방언이 왜 사단인지 살펴봅니다. 선민 의식이 강하여 이방인을 개로 여겼던 제자들에게 방언 은사를 주신 것은 이방인에게 진리를 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는 방언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방언은 통역이 가능한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나라의 언어를 말합니다. 구약 성경도 방언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는데, '아스돗 방언, 느헤미야 13장 24절의 유다 방언과 가나안 방언,

 

이사야 19장 18절의 아람 방언, 이사야 36장 11절의 가나안 방언, 이사야 36장 11절의 아람 방언, 스가랴 8장 9절의 선지자들의 입의 말 즉, 각 민족 방언 등 각 나라 언어를 방언이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오순절에 제자들의 입에서 터진 방언도 16개국의 이방나라 언어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8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을 참고하십시오! 천하 각국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나라의 방언을 듣고 깜짝 놀라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5절에서 8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이방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사도들의 방언을 '하나님의 큰 일 즉, 아들을 내어 주심'을 말함으로 알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9절 10절 11절을 보면, 바대인. 메대인. 엘림인.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 그레데인. 아라비아인들이 사도 바울의 언어를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었단 말씀인데, 어찌 랄랄라 따따따 바바바 옹아리 거짓 방언을

 

성령께서 허락하셨다고 사단 편에 서서 속고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방언은 복음으로 알아 듣는 나라의 말이기 때문에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도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6절을 참고하십시오! 이처럼 방언은 그 나라 사람이 알아듣는 언어인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방언은 통역이 가능한 언어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사도들의 방언을 흉내내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방언을 통역하라고 무려 7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0절과 30절, 고린도전서 14장 5절 13절 26절 27절 28절을 참고하십시오! 바울이 이렇게 통역을 강조한 이유는 사도들이 하는 각나라 방언의 뜻도 모르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흉내를 내고 심지어 방언으로 기도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뜻을 모르는 방언을 할지라도 외국어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방언을 알아 듣고 고린도전서 14장 15절 16절 17절을 보면 

 

“찬미, 축복, 감사”라고 통역해 주었습니다. 여러나라 방언을 할 줄 알았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방언을 알아 듣고 통역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을 참고하십시오! 두째, 21세기의 방언은 국적도 없고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절대는 자신의 방언 소리의 뜻도 모릅니다. 이런 소리로 진리를 전할 수 있겟습니까? 그리고, 성령께서 주셨겠습니까? 오직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를 전하게 하시는 성령께서 진리와는 전혀 무관한 소리를 주절대게 하실리 만무합니다. 사단이 준 것입니다. 이방종교에서도 주술이나 염불을 반복하듯이 지금의 현대교회 방언도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단 중 가장 위험한 이단은 방언이 터지는 이단입니다. ​여타 이단들은 돌이킬 기회라도 있지만, 사단과 접신하여 방언이 터지면 돌이킬 기회조차 없습니다. 방언은 사단과 직통으로 접신하기 때문입니다. 즉, 방언이 터진 것은 사단에게 사로잡혔다는 표적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끝날까지 함께 하시듯이, 사단에게 한번 잡히면 끝까지 끌고가 버립니다.

 

그래서, 현대교회 랄랄라 방언이 위험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즉,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하는 것은 사단을 부르는 주문(呪文)인 것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이방종교에서도 이런 소리가 현대교회와 똑같이 터집니다. 따라서 이런 소리가 터진다는 것은 사단의 포로가 되었다는 증표인 셈입니다. 그래서 정말 위험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많은 한국교회 교인들의 방언은 대부분 연습 방언이고 최면 방언입니다. 즉, 사단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연습하다가 받은 방언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멈추시면 됩니다. 넷째, ​사단이 주는 방언과 연습 방언을 분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단이 접신하여 방언이 터지면 턱이 흉측하게 뒤틀리며 혀가 꼬이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터져 나옵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멈추거나 제어할 수 없어서 며칠씩 계속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방언의 원조인 찰스 파햄에게 첫 번째로 안수받고 방언이 터진 '아그네스 오즈만'이라는 여성도 3일 간이나 멈출 수 없었다고 했는데, 

 

한국의 "기쁨의 교회 이종선목사"라는 분도 방언을 며칠 간이나 멈출 수 없었다고 간증한 바가 있습니다. 사단의 방언은 황홀함, 엑스타시를 동반합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며, 방언으로 찬양도 나옵니다. 또 기이한 에너지가 넘쳐 오랫동안 기도해도 피곤함을 모르고 시간가는 줄도 모릅니다. 특히 여성 목사들이 방언으로 찬양하면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이것은 배후에 아름답게 지음을 받았던 미혹의 영인 사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연습 방언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연습 방언은 곧 최면 방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방언을 흉내내거나 연습함으로써 터지는 방언입니다. 연습 방언은 파주 순땡땡 교회 오산땡 기도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퍼졌습니다. 목을 뒤로 꺾고 할렐루야를 계속 외치면서 빠른 속도로 외치다보면 혀가 꼬부라져 랄랄라가 터져 나옵니다. 랄랄라를 반복하여 계속 외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혀가 꼬부러지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데, 이것을 더욱 발전시키면 어느 순간 자신이 흠모하던 외국어같은 멋진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단이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걸었던 최면 때문에 툭 터져 나온 것으로 봅니다. 이런 연습 방언은 사단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했다 할지라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멈출 수 있습니다. 여섯째, 사단이 준 방언은 반드시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사단이 준 방언은 처음에는 황홀하여 오래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강팍해지고 악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19세기 최초로 방언이 터진 찰스 파햄부터 악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1907년 찰스 파햄은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한 호텔에서 동성연애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나흘 뒤에 석방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의 신문사 기사에서 '성령께서 과연 찰스 파햄을 통해 전 세계적인 부흥 운동을 일으키셨는지 의심스럽다'고 썼습니다. 찰스 파햄은 방언을 받은지 수년 만에 동성애자가 된 것입니다. 또, 일리노이의 부흥집회에서는 류머티즘 귀신을 내쫓는다며 장애 여성을 때려 숨지게 만드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열린 재판이 살인 재판으로 전국에 알려졌고, 신문사들은 살해자들의 신원을 “찰스 파햄 종파의 일원들”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 후 찰스파햄의 삶은 급속히 망가졌습니다. ​일곱째, 우리나라에서도 방언이 터진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 뉴땡땡 기사 제목이 '천국에 보내주려고 모친 살해한 30대 구속'인데,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가정예배를 하다가 갑자기 방언을 하더니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범행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고 일찍 천국에 보내주기 위해서 죽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경찰은 A씨가 정신병력은 없지만 전날부터 방언을 하며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는 목격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안타까운 사건의 원인이 되고 있는 피의자의 방언이 사단이라는 증거가 확실한 것입니다. ​또 음행을 저지른 유명 목사들을 살펴본다면, 한국에 방언을 퍼뜨리는데 일등공신인 S복음교회 조땡땡 목사나 금땡교회 김땡땡 목사나 이재땡 목사나

 

성땡교회 김땡동 목사의 공통점은 모두 음행과 불륜을 즐긴 목사들인데, 모두 방언을 유창하게 한다는 것이 동일한 특징이 되겠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기독교를 부끄럽게 만든 유명 목사들에게 방언을 주셨겠습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이들의 방언은 사단이 준 것입니다. 즉, 방언의 악한 열매가 음행 불륜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여덟째, 왜 수많은 신도들이 방언에 미혹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여덟째의 1번, 현대교회 오순절 이단들이 방언은 성령을 받은 증표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즉, 방언을 못하면 성령이 없는 자로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기도원들은 방언을 받으려는 신도들로 넘쳐났던 것입니다. 방언을 받기 위해 3일 5일 7일, 심지어 21일까지 금식하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나머지, 기필코 방언을 받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서 11절까지를 보면, '그러나, 은사는 노력한다고 받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나눠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여덟째의 2번, 방언은 하늘의 언어이고 영의 기도라고 극찬하는 김땡땡 감독이나 방언의 능력을 체험하라고 부추기는 박땡진 장로와 같은 "방언 신봉자"들이 설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소문난 <예수님을 따르는 아땡땡 목장> 같은 곳도 방언을 미화하는 글을 수백 개씩 걸어놓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아홉째, ​구원과 무관한 현대교회 방언을 이토록 칭송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아홉째의 1번, 사단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아홉째의 2번, 십자가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창조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열어주신 구원의 진리를 진실로 알았다면 오로지 십자가만 칭송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식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구원과 관계없는 방언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열째, 대부분의 신도들은 하나님께 비밀로 기도하기 위해 방언기도를 한다고 듣고 배운대로 주장합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서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를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방언 지도자들은 마귀가 모르게 

 

하나님께만 비밀로 은밀하게 통하는 통로가 방언이라고 가르칩니다. 즉, 비밀로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만 알아 들으시고 사단은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무서워하십니까? 그래서 사단 모르게 비밀로 기도하라고 방언을 주셨읍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에서 말로 나오기 전의 생각까지 미리 다 아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방언으로 기도할 때만 들으실까요? 열한째, 방언 전도자들은 고린도전서 14장을 방언의 교본으로 삼아서 방언장이라고 부릅니다. 사단의 앞잡이들은 고린도전서 14장을 교묘하게 왜곡시켜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늘의 언어이니, 천국 본향의 언어이니, 천사의 말이니 하면서, 사단과 중매를 서는데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방언장이 과연 바울이 가르친 방언을 권면하는 장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방언을 꾸짖고 책망하는 구절로 가득차 있습니다. “거문고 같이 생명 없는 것,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않겠느냐?, 분명치 못한 소리, 허공에다 하는 말, 무엇이 유익하리요, 깨닫는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열매 맺지 못하리라"가 랄랄라 방언을 장려하는 구절이라고 가르치거나 맹신하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의 호통과 꾸짖음이 방언을 권면하고 독려하는 것이겠습니까? 왜 사도 바울을 통한 성령의 꾸짖음에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것입니까? 방언 신봉자들의 주장처럼 정말 방언이 중요하다면 예수께서 반드시 방언을 구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방언을 구하라고 하신 일이 없습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맺습니다. 뜻없는 소리는 결코 방언이 아닙니다. 사단이 쳐놓은 그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방언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고 찾으며 두드려야만 합니다. 즉, 십자가 복음을 믿어서 얻게 되는 창조주 예수님의 의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오늘 전해 드린 메시지는 성경의 참예수 바른 복음입니다. 내가 믿는 것만 믿고 보는 것만 고집하면 귀가 닫혀서, 진리의 복음을 듣지 못하여 결국 내 영혼이 망합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 원출처: Pastor Yonggi Park / 성경신학선교회

* 원제목(2017): 방언

* 부제목1(편집): 현대교회 방언 - 랄랄라 방언 못받은 성도는 예믿는 믿음이 없는가? 

* 부제목2(편집): 랄랄라 방언 거부하면 지옥가는 이단자인가?

 

♤50분 메시지, https://zrr.kr/0A2W

 

* 원출처 영상 URL: https://zrr.kr/8MDV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26분 메시지, https://zrr.kr/HuHs

 

* 원출처: '진리수호' 전도자

* 원제목: 삼위일체 뜻,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은 무엇일까?

* 부제목: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를 성자로 부르는 것이 맞을까?

* 원출처 URL: https://zrr.kr/b79b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개신교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이웃교회의 참예수복음을 찾아 한국교회를 위하여 말씀 배달부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뜻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은 무엇일까?에 대한 주제를 처음 대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한두번 접하긴 했지만 들어볼 필요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읽지도 듣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믿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100% 틀림이 없는 참 신이라고 믿어왔다고 할지라도, 오늘 이시간 만큼은 신구약 성경 66권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창조주 예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심령문을 열고, 더 단단히 믿는 차원이든  검증 차원이든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지나가는 심정으로, 베뢰아 사람들처럼 과연 그러한가?의 자세를 가지고, 진지하게 차분하게 들어 주시면 전달하는 자나 반응하는 자나 피차 간에 유익이 되겠습니다. 기독교 종교생활이든, 자신의 생각에 성경 말씀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든, 신구약 성경의 신관이 잘못되면, 부활 천국 영생과는 무관합니다. 오늘은 네이버 블로그 '올바른 신앙 지킴이'를 운영하시는

 

'진리수호' 전도자께서 증거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를 성자로 부르는 것이 맞을까?" 글 메시지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서슬퍼런 교황과 목숨을 걸고 싸우며 종교개혁을 이루어 냈던 위대한 개혁가 마틴 루터 덕분에 지금은 성도들도 자유롭게 마음껏 성경을 보며 진리를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과 함께 청산되었어야 할 가톨릭의 잔재들이 개신교에 유입되어 바른 신앙을 저해하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예수를 부를 때 "성자 하나님"이라는 호칭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의식은 반드시 청산했어야 할 가톨릭의 잔재였습니다. 이를 모르는 개신교 목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예수를 "성자 하나님"으로 부르는가 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 호칭과 세례의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어떻게 기독교를 우상 종교로 변질시켰는지 알아봅니다. 첫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 맞는지 여부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당부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일깨우시려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이해하지 못한 교회 지도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세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히 "이름"으로 주라고 하셨음에도, 아버지 이름을 그냥 아버지 즉, 성부로! 아들의 이름은 아들 즉, 성자로 부르며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이름이 그냥 아버지이고 아들의 이름도 그냥 아들이란 말입니까? 성경에 눈이 먼 지도자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 즉 성부로 인식하고 아들의 이름을 아들 즉, 성자로 부르면서 엉터리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두째,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안다면 이 세례가 왜 엉터리 세례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하는 의식이며 예수와 합하여 죽고 함께 살아난 것을 의미하는 의식입니다.

 

로마서 6장 3절을 참고하십시오! 특히, 사도행전 19장 5절 6절에서 제자들이 세례를 줄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즉,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하고 성령의 임하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이름이 아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로 죄씻음을 받고 성령이 임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만이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 외에 천하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을 참고하십시오! 따라서 예수 이름이 아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는 죄 씻음과는 전혀 무관한 가짜 세례인 것입니다. 지금도 가톨릭은 예수 이름을 "성자"로 대체해서 악하고 우상숭배적인 가톨릭 방식의 세례 의식을 행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을 뛰쳐 나왔다고 주장하는 개신교에서 많은 소경 목사 교회들이 이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는지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28장 18절 19절 20절 말씀!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의 말씀은 말씀마다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이유도 제자들이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제자들을 일깨우시려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주라고 지시하신 바로 앞 구절인 마태복음 28장 17절에서 보듯이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에서 제자들의 믿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이 믿음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사장 무리들에게 잡혀가실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기 바쁘지 않았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했으나 믿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1절에서 14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심지어 요한복음 21장 3절의 경우,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도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본래의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를 금방 잊어버리고 외면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3년 이상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이 예수의 실체와 십자가 죽으신 이유조차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동안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이 창조주의 근본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무수하게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게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가지셨는데 예수께서 이 권세를 가지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바로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또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도 예수께서 성령으로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당신 자신임을 깨닫게 하려는 뜻이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에 대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말씀을 참고하십시오! 이 이름들을 알면 그동안 따랐던 예수님이 누구신지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가르치셨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셋째의1번.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가르치셨을까요? 변질된 삼위일체 교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마도 충격을 받고 거부 반응을 보이겠지만 믿음의 대상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친히 아버지 이름이 예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다 틀림없는 진리이며 생명인 것을 유념하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라는 이름을 살펴봅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께서 나시기 전에 이미 지으신 이름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 말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시라." 자기 백성이라는 표현을 유념해서 보면 예수 이름이 아버지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을 가리켜 수없이 "내 백성"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출애굽기 10장 4절, 역대상 11장 2절, 이사야 40장 1절을 참고하십시오! 즉, 하나님 아버지만이 "자기 백성"이라 하실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곧 "자기 백성"인 예수께서는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반복하여 요한복음 5장 43절에서 "나는 내 아버지 이름으로 왔으매.." 요한복음 10장 25절에서도 "내가 아버지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라고 하셨으며, 요한복음 17장 6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7장 26절에서 는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라고 하시면서 "예수"라는 이름이 곧 아버지 이름이 됨을 반복하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 말씀! 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2장 45절 말씀!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9절 10절 말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시면서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가 한 분이심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에서 "한 아이"로 오실 예수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고, 영존하신 아버지라고 이사야가 전하지 않았습니까?' 예수에 대하여 "전능하신 아버지"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뜻이 "구원하시는 여호와" 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의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인 "여호와"라는 이름과 "구원"이 합성된 이름입니다. 스스로 자존하시는 여호와 한 분 외에는 모두 다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하시는 여호와"라는 뜻으로 지으신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셋째의 2번. "아들"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예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나시기 전부터 이미

 

"예수"라고 지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과 누가복음 1장 31절을 참고하십시오! 셋째의 3번. "성령"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성령의 이름도 역시 예수이시며 예수의 영이십니다. 성령(聖靈)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성령의 이름도 예수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오셔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 7장 14절에서 예수에 대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뜻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성령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이름도 예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예수의 말씀을 기억한 제자들은 성령에 대하여 사도행전 16장 7절에서 '예수의 영이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1장 11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으며,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서 주의 영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즉,성령의 이름도 예수이시며 예수의 영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깨닫고 예수 이름으로만 세례를 주었습니다. 즉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한 제자들은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사도행전 8장 16절, 사도행전 10장 48절과 19장 5절을 참고하십시오! 결단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넷째, 믿음이 분산되면 결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것은 당신이 아버지이시며 아들이고 성령이신 것을 깨닫게 하여 당신께서 성경의 전부이심을 알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데, 믿음이 분산되면 결코 구원이 없습니다. 믿음이 오직 예수께로만 향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는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즉, 당신께서 시작인 창조부터 마지막 심판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본체라는 말씀입니다. 또, 여호와께서도 이사야 44장 6절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와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참으로 바른 신관입니다. 그러나, 눈이 먼 신학자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를 성자 하나님으로 격하시켰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으로 호칭하는 것은 어마무시한 불경죄가 됩니다. 기독교 초기 이단인 "아리우스" 때문에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세워졌습니다. 아리우스가 선동하기를 '예수는 창조물'이라면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는 예수와 성령과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셋이 아니라 한 분이시라고 맞서 대항했지만, 결국 거부되어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세워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예수님이시고 한 분이심을 이해하지 못한 지식적인 신학자들이 예수를 성자

 

즉, 아들 하나님으로 호칭함으로써, 예수와 아버지를 구별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성부는 성자와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부와 성령이 아니다."라는 이론까지 만들어 하나님을 명확히 셋으로 구별했고, 삼위일체를 삼신론으로 변개했습니다. 또, 일체(一體)가 한 분이심을 이해 못한 신학자들은 일체를 한 본질 즉, 같은 성질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구별되나 본질 또는 성질이 하나이기에 일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질된 삼위일체 교리는 세 하나님의 가면을 쓴 사단을 믿게 했고, 결국 기독교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살인용 도끼가 되게 했습니다. 다섯째, 성자 하나님 또는 아들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중세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중세교회의 삼위일체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나오는 세 명의 하나님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회의 중인지 아니면 환담을 나누는지 모르지만, 이 그림은 중세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을 셋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성자 하나님, 아들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예수님을 영원한 아들로 존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여섯째, 영원토록 마리아 품에 안겨 있는 예수 동상에 대한 것입니다. 가톨릭의 예수는 언제나 마리아 품에 있는 아들로 머물러 있습니다. 성당 곳곳에 서있는 수많은 예수 동상들은 늘 마리아의 보살핌을 받는 연약한 아들로 존재하도록 형상화 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성자 하나님으로 부름으로써 나타난 첫 번째 결과는 자칭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마리아의(聖母) 등극입니다. 예수를 아들 하나님으로 부름으로써, 세 분 하나님을 믿고 타락한 교회는 아들 하나님을 낳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즉, 예레미야 7장 18절의 하늘 황후로 추대하여 숭배 받는 위치에다 올려 놓았습니다. 세 하나님을 믿게 된 기독교는 이렇게 급속도로 변질되었고, 사단이 마음껏 활개치는 놀이터가 되고 만 것입니다. 눈이 어두워진 교회는 우상 종교의 염주를 본 따 묵주를 만들어 돌리고, 성모송으로 염불하며, 촛불을 켜고 복을 빌거나, 죽은 자를 위해 향을 피우는 등 그야말로 불교의 절을 훨씬 능가하는 우상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삼신론인 세 신을 섬기며 참 하나님을 잃어버린 신도들은 임금이시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껴 버리고 사람의 왕 즉, 교황을 뽑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9절 말씀! '또 땅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을 아비라 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땅의 지도자들을 아비(神父 Father)라 부르며 따르고 있습니다. 황제를 파문할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교황은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예수님 말씀을 무시하고 검을 들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방인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구원의 십자가를 들고 사람들을 학살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방인들에게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가 아니라, 전쟁의 십자가 또는 살육의 십자가로 비쳐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진 종교 지도자들은 귀신들린 마녀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악의적인 선동과 온갖 고문을 통하여 마녀를 사냥하고 마녀들의 재산을 착취하는 등 누명을 씌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우상종교가 된 중세의 기독교는 악마의 종교요 공포의 종교였습니다. 구원과 사랑의 기독교가 이처럼 사악하고 가증한 종교로 변질하도록 만든 단초는 예수를 성자 하나님, 아들 하나님으로 부르고 세 존재의 하나님 이름을 가진 세 신을 섬기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성자 하나님, 아들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 영존하신 아버지 한분 예수'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성자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은 예수를 아버지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참람한 행위인 것입니다. 지음받은 자에 불과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구별하여 셋으로 나누고 서열을 정하는 행위는 지옥불에 깨끗하게 태워 심판받을 사악한 행위입니다. 아버지와 분리된 아들은 더이상 유일신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을 참고하십시오! 일곱째, 예수께서 왜 아들로 오셨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은 첫 사람 아담을 대신하여 둘째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절을 참고하십시오! 즉, 아담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인 아들이었으나 죄를 지음으로 쫓겨났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이 된 아담을 대신하는 사람의 아들인 중보자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신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의 원리에 따라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 하기 때문에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즉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시려고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17절까지를 참고하십시오!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여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과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심으로써,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없는 사람으로 오기 위해 아들이 되신 것이지, '성자 하나님'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본체가 하나님이신 예수를 아들 하나님으로 칭하는 것은 하나님을 둘로 나누는 것이며, 

 

성령을 훼방하며 모독하는 죄가 됩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을 참고하십시오! 여덟째,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根原)이시며 원천입니다. 스스로 자존하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첫번째 명령인 십계명의 1계명을 통하여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또 성경의 곳곳에 "홀로"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외에는 신이 없음을 누누이 경고하셨습니다. 행여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속이는 다른 영 즉, 사단 섬길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으로 강조하지만, 신앙의 머리이신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십니다. 아홉째, 구원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이 진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낳은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이고 친아버지이듯이,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통하여 나를 낳아 주신 예수님이 진짜 나의 하나님이고 친아버지이신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분이 나의 아버지시며, 하나님이신 것을 알 때 그 사랑과 은혜를 더욱 크게 느끼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맺습니다. 거듭 거듭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둘이나 셋으로 믿으면 결단코 구원받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이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셋으로 믿더라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대단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참된 복음 신앙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왜곡시키면 다른 예수를 믿는 것이 되기 때문에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한분 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오늘 메시지는 성경의 핵심입니다. 내가 믿는 것만 믿고 보는 것만 고집하면 귀가 닫혀서, 참예수 복음을 듣지 못해 망합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바른 복음(이웃교회) 말씀 배달부인데, 제가 전달한 이 메시지에 한하여 바른 복음입니다!"

♤11분 메시지, https://zrr.kr/uxUd

 

♡원출처 영상 URL(구독, 좋아요): https://zrr.kr/dN1z

 

* 원출처: Pastor Antipas

* 원제목: 교회가 신천지에 교인을 왜 빼앗기는가?

* 부제목: 교회들의 성경 무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신천지 미혹이 허락되었다!

 

[설교자 View] 

 

신천지의 이/만/희가 개신교회에 침투해 들어가서 왜 유독 기독교 교인들만 빼앗아 가고 있습니까? 이 또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입니다. 왜 그러는 것일까요? 교회들이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신천지한테 끌려가지 않습니다. 끌려갈 수 없습니다. 교회들이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다보니까, 신천지가 성경 말씀을 갖고 교인들을 미혹하면 그대로 넘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심판). 

 

끝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